영화검색
검색
“최선을 다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 김윤석 배우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웅이자 성웅으로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이지만, 최민식과 박해일에 이어 이순신으로 분한 김윤석이 바라본 그는 모든 걸 잃은 비극적인 사람이었다. ‘이렇게 불행한 사람이 있나’ 할 정도로 초인적인 인물이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동료를 하나둘 떠나 보낸 군인 이순신, 그 애끓고 비통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정제되고 절도 있는 장군을 그려낸 김윤석을 만났다.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김한민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이순신의 모습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표현했다’고 말한다.

전작들이 워낙 흥행 대작이라,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기대감은 어느 정도인가.
CG 작업만 800여명이 넘게 붙어서 1년을 매달려 작업했고, 또 무술팀이 너무 고생한 걸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들이 보람을 느낄 정도면 좋겠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순신을 맡은 소감은.
빈말이 아니라,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가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계 2차 대전에 관한 영화가 수백 편이고 ‘덩케르크 해전’을 다룬 영화만 해도 수십 편 아닌가. 임진왜란은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가장 긴 전쟁이었고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쟁이다. 그래서 관련 콘텐츠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싶고, 지금은 <노량>의 의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지 불안하고도 설레는 좀 복잡한 마음이다.

김한민 감독에 의하면 ‘이순신 월드에 입성해 몸을 맡기겠다’고 했다는데, 운명 같은 느낌이었을까. (웃음)
음… 그렇게 콕 집어 얘기한 적은 없는데, 감독님이 원체 미사여구를 잘 사용하는 분이시다. (웃음) 감독님과 하루 동안, 시나리오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회의했었다. 장면과 대사에 담긴 의미를 모두 살펴봤는데, 압도적인 승리의 한산해전(이하 한산)과 기적적인 승리의 명량해전(이하 명량)이라면, 노량은 승리 자체보다 전쟁의 의미가 중요했다. 알다시피 세트 촬영은 하나부터 열까지 매우 섬세하게 맞추고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고, 이런 부분을 너무 잘 알기에 감독님께 ‘난 연기에만 집중하겠다, (나머지는) 맡기겠다’고 했었다. 이순신 배역을 제안받고 솔직히 ‘운명 같은’ 느낌까지는 아니었고 ‘내가 이 역할을 할 나이가 됐구나’ 싶더라. 연극계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다. 20대는 로미오, 30대는 햄릿, 40대는 맥베스, 그 다음은 리어왕으로 방점을 찍는다고 한다. <노량>을 촬영할 당시 내 나이가 이순신 장군의 나이와 비슷해서 여기서 오는 감회가 있었다.

이순신을 체화하면서 어떤 감정이 들던가.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명량과 노량 사이라고 알고 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오던 노모가 배 위에서 돌아가셨고, 고문과 3년 상이 겹치며 몸은 만신창이 상태였다. 명랑에서 기적의 승리를 거뒀지만, 그 보복으로 왜구들이 아산에 있는 본가를 침입해서 셋째 아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바닥에 다다른, 영웅이나 성웅이 아닌 7년간의 전쟁에서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 매우 불행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한 바대로 극한의 그로기 상태인 장군이지만, 이를 드러내기보다 꾹꾹 눌러 담은 모습이다. 절제된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당시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명량 때는 모든 이가 적이고 한산 때는 원균과의 대립이 첨예했다면, 이번에는 아군과의 갈등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명이 개입하면서 곤란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가령 명나라 장수가 전체 아군을 네 군데로 나누어 분포해서 힘이 분산된다. 또 왜군 장수 ‘고니시’(이무영)와 명나라 도독 ‘진린’(정재영)이 서로 어느 선까지 협상했는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무슨 작전을 펼치고 있는지 그들의 내심을 모르니 장군은 더욱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을 거다. 7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항왜는 물론 순왜도 생기고 게다가 세작 활동은 무성하니, 돕겠다는 진린의 말을 믿을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판단하기 어려운 난감한 입장이었을 터이고, 그 마음을 따라가 보고자 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동료를 잃은 장수인 이순신의 아픔과 비통함이 극의 주요 정서 중 하나인데 어떻게 접근해 나갔는지.
살해당한 아들 꿈을 꾸는 장면은 경주에서 촬영했다. 왜군이 얼마나 간악했냐면, 그들은 가문마다 고유의 문양이 있고 이를 칼에 새기는데, 진범을 찾지 못하도록 일부러 다른 가문의 칼로 살인을 자행했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 그것도 자신과 가장 닮은 면이 많은 아들을 보낸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나도 아버지다 보니 저절로 온몸이 떨리고 대사가 나오지 않는 거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후반부 배 위에서 ‘시마즈’(백윤식)가 이끄는 살마군과 백병전 할 때, 해가 뜨기 시작하는데 김한민 감독이 그러더라. ‘선배님, 장군이 이 해를 보며 어떤 운명을 예감하지 않았을까요’ 하고 말이다. 또 7년 전쟁 동안 동고동락한 장수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그냥 전쟁이 아닌, 귀하고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전쟁’이라는 걸 절감하며 깊은 울림을 받았다.

장군의 최후를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또 북을 치다가 전사하는 걸로 묘사했는데 실제인 건지, 아니면 픽션이 가미된 건가.
꾸미기보다 진실되게 표현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사방에서 싸우는 아비규환 속에서 장군이라면 당신으로 인해 어떤 공백이 생기길 원치 않으셨을 거다. 전세에 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숨을 거두려 하지 않으셨을까. 영웅의 죽음을 강조하는 연출은 지양하되 ‘이대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다’는 노량해전에 담긴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다.

당시 전쟁에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수단은 북소리나 깃발인데, 워낙 혼돈의 전장이라 깃발은 의미가 없고 멀리 퍼지는 북소리가 효과적인 매체였을 거다. 진격의 신호이자 격려의 마음, 또 반드시 열도 끝까지 쫓아가서 적을 완전히 섬멸하라는 장군의 의지가 담겼을 터이다. 북 치는 와중에 전사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님께! (기자 주: 김한민 감독은 ‘북 치는 중 전사’는 철저한 고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음)

당신이 그린 이순신과 극 중 그려진 이순신 사이에 차이가 없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떤가.
감독이 그린 캐릭터와 배우가 그린 캐릭터 사이에 당연히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이는 <노량>만이 아니라 모든 작품이 그렇다. 특히 영화는 편집으로 최종 리듬과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고, 이 부분에서 감독님이 그려내는 그림이 있다. 우리가 한두 편 찍은 배우와 감독이 아니다 보니, 사전에 미리 더하고 줄이며 어느 정도 합치하고 들어갔었다. 100% 일치는 아니라도 그 바운더리 안에서 잘 어루만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미성년>(2019)으로 호평받은 신인 감독이기도 한데, 감독으로서 본 <노량>의 연출 포인트를 짚는다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세 편으로 나누어서 찍겠다고 하고, 이를 실제로 완성했다는 것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한 편만 찍어도 한 10년은 늙는 작업인데 (웃음) 의상, 소총, 칼, 대포, 함선 등 당시를 재현한 꼼꼼한 고증에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또한 감독님의 끈기와 뚝심 역시 존경스럽다. 긴 시간을 작업하는 동안 ‘이만하면 됐다’부터 시작해서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흔들었겠나. 그럼에도 휩쓸리지 않는 기운의 동력은 집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김한민 감독만큼 이순신 장군에 관해 잘 아는 분이 있을까 싶다.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관련 학회에 참석하는 그 끈기와 성실성은 정말이지 값진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대기만성’이라는 점에서 이순신 장군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유명해진 후부터 지금까지 내외적으로 어떤 변화를 체감하는지.
일단은 좀 더 어려운 역할 혹은 책임져야 할 역할이 오는 것 같고, 조금씩 조금씩 변했지 않았을까 한다. 나는 잘 의식하지 못해도 관객은 아시지 않을까. 이번에 ‘아귀와 평경장의 만남’(영화 <타짜>)이라고 반가워해 주는 분이 의외로 많아서, 놀랍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 <추격자>처럼 달리는 역할은 힘들 것 같고, (웃음) 여하튼 혜안이 좀 더 생기는 것 같다.


사진제공.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