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범수와 이정재 주연의 코미디 <오! 브라더스>(2003)를 시작으로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선물한 <신과 함께> 시리즈까지 김용화 감독은 매번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로 관객 앞에 서 왔다. 덩치 큰 여성의 변신,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야구하는 고릴라, 지옥의 대왕들과 저승사자 등 당시 기술력의 최고치를 끌어올려 이전에 없던 캐릭터와 미지의 세계관으로 관객을 이끌어 온 감독, 이번 초대는 달과 우주다. 우주에 고립된 대원의 무사 귀환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들의 노력을 담은 SF 영화 <더 문>으로 또 한 번 한계에 도전한 김용화 감독을 만났다.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걸 키워드 삼아 매번 작업에 임한다는 감독의 말에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인간애와 작업물의 성과로 보여준 혁신가 정신, 그 진심이 읽힌다.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2018)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찾으니, 감회가 남다르겠다. 그간 관객 선호 변화 등 업계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신과 함께>를 끝내고 바로 <더 문> 작업에 들어가서 그런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한 기분이다. 중간에 두 번 휴가를 갔다 오긴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을 보여드리게 돼 설레고 기쁜 한편 아쉬운 부분도 있고 그렇다. 변모한 트렌드에 따라 영화 문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쇼츠 등 짧은 영상의 소비도가 커졌고, 또 한국영화에도 자막을 선호하는 추세더라. 관객과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부분, 그러니까 내가 (관객에게) 드리려는 정서와 이야기가 요즘 경향과 부합하는지 이번 영화를 통해서 평가받게 됐다. (웃음) 혹시 맞지 않더라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결국 잘할 수 있는 걸 완성도 있게 전달하고 싶은 바람이다.
어느 부분이 아쉬운가. (웃음)
시나리오는 원래 철저하게 ‘재국’(설경구)의 시점으로 전개됐었다. 후반 작업하며 모니터링을 자주 했고, 이를 편집에 반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애초 생각했던 방향과 다소 달리 간 부분이 있다. ‘선우’(도경수)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면서 좋게 말하면 젊어졌고, 아쉽게 보자면 재국의 이야기가 부족해졌다는 생각이다. 블라인드 시사를 여러 차례 했고 이때 리뷰단이 선우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걸 좋아해서 이 점을 고려한 것도 있다.
편집된 부분이 궁금하다.
원래 오프닝은 소백산 천문대에서 재국과 인턴연구원(홍승희)이 뉴스를 같이 보는 거였는데 이 부분이 빠졌고, 재국과 전 부인이자 현 NASA의 메인 디렉터인 ‘문영’(김희애)과의 과거사도 편집됐다. 후반부 우주선에 고립된 선우와 인턴연구원이 교신하는 장면도 처음에는 두 시퀀스였다. 약간 코믹하기도 하고 배우들도 연기를 아주 잘했지만, 선우를 구하는 게 급선무라 (홍승희 배우에게 미안!) 한 시퀀스만 가져갔다.
사후 세계에서 우주까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정신이 대단하다. 우주에서도 콕 집어 ‘달’인 이유가 있을까.
전작들을 보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관객 역시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 중 <미스터 고>(2013)는 관객이 원하지 않은 영화였다. (웃음) 판타지 SF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더 문>을 만들게 됐다. 어릴 때부터 달을 보며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앞면과 그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뒷면, 그래서 희망과 좌절 혹은 따뜻함과 공포 같은 양면적인 속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공간으로 적합했다.
<신과 함께>에 이어 도경수 배우를 캐스팅했다. UDT 출신 우주 대원으로 홀로 고립된 후 탈출과 좌절을 온몸으로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과 함께>에 캐스팅할 때 그가 무슨 노래를 부른지도 잘 몰랐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 좋았고 역할에 걸맞겠다고 느꼈었다. 평소 주연을 캐스팅할 때, 인지도는 높지만 아직 포텐이 터지지 않은 배우가 상대적으로 더 터트린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다. 이 영화로 도경수 배우의 매력을 한껏 뽑아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예산의 제한으로 풀 VFX로 가져가야 하나 그렇지 못한 장면도 있었는데 배우의 연기로 그 공백을 채워 줘서 고마울 뿐이다.
IMAX 포맷에 한국 영화 최초로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를 적용한 데다 달을 구현한 특수효과까지! 28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국내 영화 대비 상대적으로 크지만, 이렇게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해외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정말 적은 예산이긴 하다.
280억원 중 VFX에 투입한 비용은 약 62억 정도다.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적은 비용이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샷 수를 줄이고 앵글을 조절했다. 달의 표면의 경우 높은 해상도를 통해 사진과 같은 정교함, 나아가 섬뜩함이 느껴지게 하려고 했다.
소백산 천문대 전경이나 우주선 내부 같은 세트를 구현하며 신경 쓴 지점은.
<신과 함께>를 찍으며 배우들 대부분이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서 이 점이 못내 아쉬웠었다. VFX에 너무 많은 하중이 실리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다음 작업 때는 실제로, 실사를 통해 (영화의) 미술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다. 우주복의 경우는 원하는 텍스처가 안 나와서 6개월 동안 13번을 만들었을 정도다. 실크로 만드니 드디어 원하는 질감이 나오더라. 우주선 내부의 스위치 하나조차도 자문 받아서 똑같은 재질로 만들었다. 이렇게 실사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VFX의 퀄리티를 따라 올리는 전략을 썼고,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프닝을 비롯해 뉴스와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활용해서 상황을 설명한 연출이 눈에 띄더라.
평소 유머와 갈등을 통한 상황 설명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 수위와 빈도에 한계가 있었고, 관객이 알고 넘어가야 할 변곡점은 적당한 순간에 뉴스를 통해 설명해 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영화의 톤과도 잘 맞고 말이다.
조한철 배우가 연기한 과기부 장관은 웃음과 풍자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그 등장이 잦다는 인상이다. 관료주의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고 싶던 건가.
그런 의도는 없었다. 영화에서 숨통을 트는 역할이라 하겠다. 과기부 장관 외에도 몇몇 웃긴 씬이 더 있었는데 영화의 분위기가 흔들릴 수 있어서 삭제한 부분도 있다. 자기 인생 혹은 맡은 바 임무에 처절한 인물들이 살 방안을 강구하는 수준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을 희석하지 않는 선에서 그 엣지를 살리려 했다.
달을 소재로 한 SF 영화라는 면에서 중국 영화 <유랑지구>나 <문맨>(조석 작가의 웹툰 ‘문유’가 원작임)이 떠오른다. <유랑지구>의 VFX에 당신이 설립한 덱스터가 참여하지 않았나.
<유랑지구>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우리가 했고, 중국에서 한참 한류가 잘 나갈 때 중국 작품을 많이 했었다. 이 과정에서 덱스터의 기술력이 매우 높아졌고,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아티스트의 심미안이 한층 올라간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겠다. <미스터 고>를 작업한 후에는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었다. 0에서 1까지 도달하는 건 힘들지만, 1에서 10까지는 그보다 쉽다는 생각이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도전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웃음)
예산과 시장의 문제라고 본다. 한국 영화의 경우 관객(매출)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상황이라 한국 영화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천만 영화가 나오기는 더더욱 힘들어졌지 않나. 인구 구조만 보자면 2~300만 명이 보는 것도 적게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삼아 움직여야 하는데 드라마는 충분히 됐지만 영화는 아직이다. 대략 500억 정도의 예산이라면 액션 시퀀스를 늘리고 좀 더 박진감 있게 표현할 수 있으니 글로벌에도 통하지 않을까 한다. 완성도는 예산이 투입된 만큼 올라가기 마련이다.
메인 롤인 설경구, 김희애 배우를 비롯해 이성민, 김래원, 이이경 등 많은 배우가 특별출연했다. 많은 힘을 받았을 것 같다.
일곱 번째 영화인 <더 문>을 시작할 당시 뭐랄까 약간 지치고 타성에 젖은 때였다. 그런데 설경구 선배를 만나 오로지 연기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싹 사라졌었다. 언젠가 같이하자고 이야기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던 차에 ‘용서’에 관한 이야기라고 시나리오를 드리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김희애 선배는 대학교 선배인데, 40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샷 들어갈 때 보면 너무 진지하고 그만큼 준비가 철저하시다. 여전히 소녀 같고 한 다섯 가지 정도의 버전을 준비해 온다. 두 분을 보며 직업으로서의 감독, 직업으로서의 배우 같은 ‘직업적인’ 생각을 다시 되뇌었던 것 같다. 이성민 선배나 김래원, 이이경 배우는 무슨 역할이라도 같이 해주겠다고 해서 정말 큰 힘을 받았다.
<오! 브라더스>(2003)부터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 <미스터 고>(2013), <신과 함께>까지 그간의 작품을 보면 장르와 서사의 구분없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혹자는 ‘신파’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운 경험을 많이 했다. 아프고 충격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삶이란 기쁨보다는 아픔이 훨씬 많고,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상황보다 부정적인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위로받고 싶어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렇듯이 관객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고통을 경험한 이들을 위로하고, 웃음으로 혹은 울음으로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쭉 이를 키워드 삼아 전진해 온 것 같다.
대전에서 항공 우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시사를 진행한다고.
영화 <국가대표> 때도 비슷한 시사를 진행했었다. 영화를 통해 국가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조명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스포츠 분야와 그 선수들을 좀 더 알아봐 줬으면 했거든. 이번 <더 문>도 마찬가지다. 극 중 내용처럼 앞으로 ‘우주 패권’ 시대가 올 텐데 그때 한국의 위상과 경쟁력은 어떻게 될지, 이런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영화를 준비하며 공부해 보니 달에 있다는 ‘헬륨3’가 굉장한 가치를 지닌 무공해 에너지원이더라. 이를 (지구에) 가져올 기술력을 구비한다면 당연히 패권 다툼이 생기지 않겠나. 현재 한국우주과학의 성취는 놀랍지만, 지금 힘을 더욱더 실어야 다음 세대에 크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더 문>이 기점이 되어 이러한 이슈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우주 대원이 가지고 탑승한 고릴라 인형, 태어날 딸에게 지어줄 ‘아윤’이라는 이름, 뭔가 사연 있어 보인다. (웃음) 고릴라는 대충 짐작이 가는데…(feat <미스터 고>)
어떻게 알았지! 고릴라 ‘링링’은 <미스터 고>가 덱스터의 출발점이자 시그니처라는 생각에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출연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신과 함께>에도 잠깐 나왔다. 윤아-아윤은 사실 아내와 딸의 이름이다. 현장의 최전선에서 살다 보니 아내에게 항상 미안했고, 뭔가 선물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아내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딸의 이름을 지었었다. (정작 아내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이런 사연을 우주대원 중 한 명에게 적용해 봤다.
사진제공. CJ ENM
2023년 8월 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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