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느릿느릿 어눌한 말투와 건들거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꼿꼿한 자세, 늘 진실만을 말하고 자기보다 타인을 먼저 챙기는 착.한 ‘건우’. 배우 우도환이 전역 후 처음 참여한 작품 <사냥개들>로 영화 <사자> 이후 김주환 감독과 재회했다. 그간 강한 인상의 캐릭터를 주로 해온 그는 이번에 사뭇 다른 결의 강렬함으로 시청자를 찾는다. 파괴가 아닌 지킴의 핵펀치를 지닌 선량한 눈빛의 ‘건우’로 분해 리얼한 권투 액션을 선보인 우도환.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을 낳는다는 선한 영향력을 캐릭터를 통해 실감했다고 밝힌 그는, 건우에 동화됐다고 말한다.
참여 배우가 도중에 하차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공개되어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소감은.
몇 년에 걸쳐 노력한 결과물을 완성했고, 이렇게 공개하게 돼 감사하고 여러 감정이 오간다. 릴리즈된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
촬영은 언제 얼마 동안 진행한 건가.
지난해 1월 5일 전역했고, 6일부터 바로 들어갔다. 촬영팀은 이전 해 12월 중순부터 시작한 거로 알고 있다. 8월까지 150회차에 걸쳐 촬영했으니 그야말로 가족같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한 달간 촬영이 중단됐다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김주환 감독에 대한 걱정이었다. ‘잘될 거야’라는 마음보다는 다들 많이 힘들었지만, 남은 일정을 어떻게든 잘 소화해서 작품을 완성하는 게 우리 모두의 숙제였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 뒤 감독님은 바로 제주도로 내려갔다. 대본을 다시 써올 테니 나와 상이형은 운동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상이 형한테는 복근을, 내게는 커진 몸(벌크업)을 요구했다. 극 중 6화와 7화 사이 ‘건우’(우도환)와 ‘우진’(이상이)이 고성에 내려가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듯이 현실에서도 업그레이드한 시간이었다. 이건 우리와 작품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세뇌하려 했었다.
7화와 8화는 이전 화와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배우의 공백으로 인해 이야기와 분위기가 변해서 이렇게 느껴지는 듯한데 아쉬움은 없나.
너무 결과론적인 얘기가 될 수 있어서 어떻게 답변하기가 힘들다. 심플하게는 ‘아쉽다’지만, 아쉽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지금의 완성본을 좋아하는 분도 많이 계시니까! 시간이 점프하는 건 원래부터 있던 설정이었고 액션 호흡이나 느낌, 등장인물은 다소 변경됐다.
고강도의 복싱 액션을 시종일관 선보인다. 특히 7화부터는 체급을 두 단계 올리고 핵펀치로 등장하는데 짧은 기간 동안 몸을 이렇게 키우는 게 가능한 건가.
촬영을 중단했던 한 달 동안은 좀 더 집중했지만, 사실은 촬영 시작부터 내내 트레이닝하며 몸을 만들었다. 몸은 마법 같지 않더라. (웃음) 그러니까 짠하고 벌크업되지는 않는 거지. 성실한 건우에게 필요한 건 거짓말하지 않는 몸이었다.
복싱 액션은 노련함이 필요한 정밀 액션이라고 들었는데 복싱 경험이 있나.
스노우볼이 굴러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열다섯 살 때 복싱 체육관에 처음 가봤는데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그때 레슨비가 10만원이었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최대한 서포트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놀이하듯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복싱이 낯설지 않았다. 손에 붕대 감고, 스텝 밟고, 샌드백 치는 동작들이 어색하지 않더라. 스무 살 때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나만의 장기를 살리겠다는 마음에 대학 입학 전까지 나인투식스로 액션 스쿨에 다녔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간 액션 작품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런 스노우볼이 굴러 <사냥개들>까지 온 거다. 이번에 처음으로 복싱을 접한 거라면 이렇게는 나오지 못했을 거다.
체중 증량과 감량을 오갔다고.
그 당시는 일어나면 도시락 싸는 게 일이었다. 그때 먹었던 닭가슴살이 아직도 냉동실에 있다! 증량할 때는 고구마와 감자를, 좀 핼쑥함이 필요하면 단호박을 먹었다. 건우의 대사가 많은 편이 아니라 대본 대신 도시락을 들고 다녔던 것 같다. (웃음) 차에는 아령이나 밴드 등 운동 기구를 상비해 놓고 틈만 나면 운동했다. 촬영이 없는 날은 무조건 운동이었다. 코로나 시기와 군복무가 겹쳐서 휴가가 많이 쌓였고,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 동안 액션 스쿨과 피부과 그리고 필라테스 다니며 촬영 준비했다. 이때 친구들이 같이 운동해줘서 내게 필요한 건 오로지 성실과 부지런함이었다! 이승기 선배의 노래 ‘소년, 길을 걷다’를 자주 들으며 힘을 냈다. 또 이때 함께 운동한 트레이너 친구 ‘이윤환’이 <사냥개들>의 경찰 ‘한구’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건우’는 정말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인데 이런 역할은 처음 아닌가. 건우를 만난 소감은.
주환 형이 생각한 건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착한 캐릭터였고, 이 부분에서 대화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건우의 착한 마음은 주위에 선한 영향을 전파한다. 우진, ‘현주’(김새론) 그리고 ‘민범’(최시원) 등 각자 조금의 이기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건우를 만나 이러한 이기심이 사라지고 자기보다 타인을 위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우리 드라마의 메시지기이도 하다. 만약 흔한 드라마 패턴대로라면 건우가 삐딱하게 흑화할 텐데 <사냥개들>은 그렇지 않다. 덕분에 선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낫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연기했고, 현장에서도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노력했다.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이라도 힘들고 싫은 티를 내지 않는 게 건우니까, 자신이 힘들어도 주변을 위해서 더욱더 힘내는 친구라 나 역시 그렇게 되고자 노력했다.
당신에게 건우란.
내게 건우는 삶의 신념 혹은 가치관을 만들어 준 친구다. 평소 배우라는 직업은 팬에게는 좋은 영향을 미치고, 안 좋게 보는 분께는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건우를 만나고 나서 그간 내가 해온 생각이 맞고, 여기에 건우의 마음가짐이 합쳐진다면 더욱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동화됐다고 할지,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건우처럼 살고 싶다. 진정으로 다가간다면 설령 그 과정에서 오해나 와전이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진심은 전해질 거로 생각한다. 촬영하는 동안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사진 작가님이 눈(빛)이 너무 착해졌다고 할 정도였다. 다만 그 어눌한 말투는 연기하기 힘들었다. 그의 마음가짐에 동화된 것이지 말투까지 닮고 싶은 건 아니었다. (웃음)
건우가 되기 위해 동작 등 외형적으로 신경 쓴 부분은.
눈빛, 걸음걸이, 서 있을 때 포즈 등 건들거림이 전혀 없어야 했다. 누군가의 말을 잘 귀담아듣는 표정과 급하지 않은 리액션 등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항상 자기 리듬을 유지하는 친구라 처음에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편하더라. 주환 형이 내 안에 건우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믿었기에 이런 글을 쓴 것 아닌가. 시청자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용기 냈던 것 같다. 리얼 복싱 액션도 그렇고 그간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했는데 주환 형의 신뢰와 응원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건우를 아끼는 ‘최 사장’역의 허준호 배우, 세계관 내 절대 악인인 ‘명길’ 역의 박성웅 배우 등 대 선배들과 함께했는데 힘을 많이 받은 현장이었겠다.
정말 그랬다. 후배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나도 많이 배운다’고 말씀하는데 과연 이렇게 힘을 주시는구나 싶었다. 박성웅 선배는 액션을 정말 잘하는데,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정확하게 동작해서 안심하고 리액션할 수 있었다. 마지막 촬영 끝난 후 ‘열정의 불씨를 다시 지펴준 것 같아 선배로서 고맙다고, 뒤를 돌아보게 해줬다’고 하는데 이 한마디로 인해 그간의 내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 같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나 혹은 가족을 연기하고 싶다. (미국에 체류 중인) 허준호 선배는 <사냥개들>이 릴리즈 된 후 ‘너무 잘했어’라고 문자 보내셨다. 후배들이 잘했으면, 잘 됐으면 하는 선배님들의 마음이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나서 말 그대로 ‘한 팀’이었다.
7~8화는 김주환 감독의 전작인 영화 <청년경찰>(2017)이 떠오를 만큼 코믹 버디 무비의 성격이 강하더라. 이상이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상이 형은 이번에 액션이 처음이었다. 글러브라도 서로 터치해야 하는데 전혀 치지 못하는 거다. 그 이유가 ‘사람을 헤친다는 느낌이 너무 힘들어서’라는데 정말 착한 사람이다. 극 중 건우와 우진처럼 첫 만남에서부터 이 사람이라는 걸 느꼈을 정도로 단숨에 친해졌다. 쉬는 날에도 자주 만났고, 또 친한 지인이 겹치기도 해서 여럿이 같이 어울린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브로맨스라고 생각한다. 서로 단백질바를 나눠 먹는 일상의 파트너라고 할까!
전역하자마자 <사냥개들> 촬영에 돌입했다고 했는데 쉴 새도 없이 연기하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
이번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복무가 원동력이었다. 일하다가 바로 입대할 만큼 사실 20대 때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군대에서도 늘 다음 작품은 뭘 할까, 어떤 역할일까 같은 생각이 가득했었다. 제대하자마자 하는 작품은 ‘정말 내 뼈를 갈아서 할 거야’라고 혼자 다짐하기도! 이런 얘기를 주환 형에게도 했었고, 이때는 아직 <사냥개들> 캐스팅이 정해지기 전이었다. 한마디로 군에 있던 시간이 <사냥개들>에게 모든 걸 쏟아붓게 해줬다.
김준환 감독의 <사자>(2019)에서 섹시한 빌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악역과 선역 중 어느 쪽이 좀 더 편한 지 우문을 해본다.
마침 어제 밤에 <사자>를 봤는데 ‘참 어리구나’ 싶었다. 이번 건우와는 완전히 다른, 극과 극의 캐릭터인데 이제는 선한 역이 좀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악역은 레퍼런스가 너무 많아서 차별점을 두고 싶은 욕심에 생각이 많아진다. 물론 착함에도 여러 종류의 착함이 있겠지만, 그래도 올곧으면 될 것 같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이번에 넷플릭스 <길복순>을 보고 전도연 선배님의 연기에 정말 감탄했다. 정석 같은 노련한 연기에 변성현 감독님의 새로운 연출력이 더해져 시너지를 발휘해 넋 놓고 봤다. 보면서 역시 정공법이 답이다 싶고,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자>의 인연으로 이번 <사냥개들>까지, ‘주환 형’이라는 호칭부터 감독을 향한 무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웃음) 당신에게 김주환 감독이란.
어릴 때 드라마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신인 시절, 단역 할 때 ‘쟤는 정말 하나도 쓸 데 없다’는 말을 듣기도! 내 그릇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인공 롤을 하면서 얻은 상처도 있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촬영 현장에서 여러 감정이 쌓였었다. 내가 원했던 배우의 삶은 이게 아니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데 이때 주환 형과 <사자>를 찍게 됐다. 촬영하면서 ‘그래 이게 연기지, 현장이지, 사람이 살아가는 거지’라고 느꼈다. <사자> 전까지는 지금 같이 주 52시간제가 지켜지지 않아서 드라마 촬영 현장이 상당히 하드했거든. 형은 한마디로 현장의 재미와 즐거움을 다시 일깨운 분이다. 정말 무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다. 이번에 불가피하게 촬영이 중단됐을 때도 형이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좌절하기를, 곁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건우를 연기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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