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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초코 같은 영화” <킬링 로맨스> 이하늬 배우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CF로 톱스타에 오른 이후 10여 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킨 ‘여래’(이하늬). 발연기로 대중의 비난을 받은 뒤 남태평양의 ‘꽐라’ 섬으로 향했던 ‘여래’는 그곳에서 섬의 유력자인 ‘조나단 나’(이선균), 일명 ‘존나’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한다. 지난 2013년 <남자사용설명서>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원석 감독이 그와는 정반대되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사극 <상의원>(2014)을 거쳐 9년 만에 그만의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중무장한 <킬링 로맨스>로 돌아왔다. 극중 주인공 ‘여래’ 역을 맡은 이하늬는 이번 작품을 “민트초코 같다”고 비유한다.

작품이 공개된 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좋아하는 분들은 너무 좋아하지만, 반대로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관객도 더러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현타’가 오는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태프들이 “우리는 한국영화 역사에 남을 영화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지금은 나도 그 얘기에 많이 공감한다. 우리 영화는 민트초코 같은 작품이다. 민트초코는 처음 맛볼 땐 ‘이게 무슨 맛이지?’ 싶다가도 어느새 점점 빠져들게 되고 그 중 일부는 마니아까지 되지 않나. 그런 것처럼 우리 작품도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마니아 층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

영화를 본 주변의 평가는 어떤가.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이 더 냉정하게 비평하지 않나. (웃음) 걱정했는데 연세가 있는 부모님도 재밌게 보셨다더라. 진짜로 궁금한 건 MZ세대가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다. 그들이 나중에 또 다른 창작자가 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텐데 우리 작품이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제2, 제3의 <킬링 로맨스>가 나오면 좋겠다.

<남자사용설명서>나 민트초코라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이원석 감독의 코드가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당신은 어떻게 느꼈나.
우선 <남자사용설명서>를 워낙 재밌게 봤다.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감독님은 코미디에 있어선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 아무도 웃지 않는 ‘이가탄’ 광고를 보고 박장대소하고, 선균 선배를 캐스팅한 사람이 감독님이다. (웃음) 그 포인트에 익숙해지고 나면 아마 천재적인 코미디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느낄 거다.

극중 결혼과 함께 돌연 은퇴를 선언한 탑스타 ‘여래’를 연기했다. ‘황여래’라는 캐릭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여래’는 레이어가 큰 친구다. ‘음기’와 ‘양기’가 동시에 있다고 할까.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웃음) ‘여래’는 기본적으로 개연성을 따질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특별한 전사가 있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선균 선배는 악역을 맡았으니 아마 더 그랬을 거다. (웃음)

‘여래’를 연기하면서 전체적인 극의 에너지와 상황, 그리고 감정에 충실했다. ‘여래’는 먹는 것 하나까지 남편의 제재를 받는다. 또 남편은 ‘여래’에게 ‘넌 발연기라서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면 조롱거리밖에 안 된다‘는 모진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결혼 생활을 몇 년 지내면 신경쇠약에 걸릴 게 분명하지 않나. 코믹하게 연기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그런 인물의 레이어들이 얕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여래’의 본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 너무 소중했다. ‘여래’가 방 안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경우 특히나 중요하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그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급한 것처럼 개연성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는 서사이자 캐릭터다.
대본에 디렉션이 세세하게 쓰여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래’가 랩을 하는 장면에선 ‘랩을 한다’고만 적혀 있었다. (웃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몇 달 동안 고민했던 거 같다. 그런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웃음) 그런데 텍스트가 간단하다는 건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더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 입장에선 대본이 비교적 자유로우니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은 것도 있었다. 물론 그보다 도전적인 의미가 더 컸지만.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도 어떤 면에선 도전이었을 듯하다. (웃음)

반면에 ‘여래’ 또한 배우이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 듯한데.
정말 공감이 많이 됐다. 우리(배우)는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지 않나.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니 항상 웃어야 하고, 또 일할 땐 감정 노동을 한다. 때로는 감정 노동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더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여래’가 느끼는 피로감을 잘 안다. 나도 한때 과로 때문에 무너진 적이 있다. 그럴 때 조금이라도 쉬어야 한다.

그때가 언제인가.
정말 살벌하게 일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당시 영화 <부라더>, <침묵>,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예능 프로그램 <겟 잇 뷰티>, 그리고 CF까지 1년 내내 타이트하게 찍었다. 이동 중에 쪽잠을 자고 도착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일어나서 부랴부랴 촬영에 들어갔던 적도 많다. 동시에 가야금으로 박사 과정도 수료 중이던 때라 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니 스스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몸에 문제가 생기더라. 가야금을 연주하는 손이 떨리고 걷다가 주저앉아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일도 빈번했다.

작품으로 돌아와서, ‘조나단’ 역의 이선균 배우와는 드라마 <파스타> 이후 13년 만에 재회했다. 당시에는 헤어진 연인으로 나왔는데 이번엔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내 출연은 이미 확정된 상태고 선균 선배는 <킬링 로맨스> 출연 제안을 검토하고 있던 때, 미국에서 열린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축하파티에서 선균 선배를 만났다. 축하드리면서 겸사겸사 <킬링 로맨스> 이야기도 꺼냈다. 선배가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길래 옆에서 ‘할 거지? 해야 돼.‘ 열 번은 반복했던 거 같다. (웃음) 그래서인지 선배도 아직까지 계속 연대보증이라는 말을 한다.

많은 배우들이 코믹한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고는 하는데, 연기하면서 힘든 순간은 없었나.
확실히 코미디가 진짜 어려운 것 같다. 특정 장면이 어렵다기보다 전반적으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웃게 하려면 대사의 결에 맞는 톤, 타이밍, 호흡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어떨 땐 무심하게 연기해야 하고, 어떨 땐 연기에 정확한 의도를 담아야 한다. 타율이 잘 맞을 때도 있지만, 안 맞을 때도 있다. 현장에서 최대한 조율해서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웃음) 과하지 않으면서도 선을 지켜야 하는데 타고난 센스가 있지 않으면 힘든 게 코미디인 거 같다.

<유령>에서는 독립을 위해 가족을 등지고 목숨을 건 암투에 뛰어든 부잣집 딸, <킬링 로맨스>에서는 남편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톱스타. 올해 개봉한 두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였는데.
이전에는 여성 캐릭터를 만났을 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항상 누군가의 성공에 얹혀가는 의존적인 캐릭터가 많았고 반대로 공부를 잘하거나 진취적인 인물이면 역할이 꼭 악역이더라. (웃음) 최근 몇 년 사이에 굉장한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여성 캐릭터가 많아져서 여자 배우 입장에서 정말 감사하다.

<킬링 로맨스>는 당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거 같나.
<킬링 로맨스>는 ‘여래’가 혼자 돌파구를 찾기 힘들 때 그녀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단 한 사람 덕분에 생기는 일이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나더러 ‘너는 못한다’고 말하는 분이 많았다. '넌 여기까지야', '시집이나 가'라는 말까지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힘들었다. 그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지지해줬던 분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내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으로 상업영화이니 당연히 관객 분들께 사랑 받고 흥행이 됐으면 좋겠지만 우리 작품에는 눈에 보이는 스코어보다 더 중요한 의의가 분명 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개봉작들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한국영화 시장에서 다양성이 더욱 필요하고 <킬링 로맨스>는 감독님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처럼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사진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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