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제작보고회 때 당신이 출연을 수 차례 고사했다고 이정재 감독이 밝혔다. (웃음)
내가 <보호자>를 찍고 있을 때 정재 씨가 나를 만날 때마다 ‘그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했다. (웃음) 원래 연출 생각이 없던 사람이니까.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연출을 직접 맡겠다고 이야기하길래 '지옥문을 열고 들어오겠다는 거냐'고 우스게소리를 했지만 사실 무조건 지지할 생각이었다. 여기에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님이 함께하면서 확신을 더 가졌다. 나 역시 이미 (연출에) 도전했기 때문에, 그 도전의 값어치를 알아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정재 씨가 처음 출연을 제안했을 땐 이정재가 연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리스크가 있는데 나까지 참여하게 되면 주변의 시선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싶더라.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게 났지 않나 하는 취지에서 고사를 했던 거다.
그런데 결국은 출연 제안을 받아들였다. (웃음)
1년에 한 번씩 세 번을 거절했는데 결국엔 일이 그렇게 가더라. 정재 씨가 원하는 배우를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다. 출연을 결정하고 나선 계란 두 개를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터지더라도 가는 거다. (웃음) 흥행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최소한 욕 먹지 않을 정도의 만듦새로 해보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출연을 결정한 건 시나리오나 '김정도'라는 역할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다. 아티스트 스튜디오 이름으로 제작하는 작품이고, 동료이자 파트너가 하는 작품이어서 회사일로 같이 작업하게 된 거다.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우리가 23년 만에 한 영화에 나온다는 것에 절대 도취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끼리 재밌게 하자고 혹은 우리가 멋있게 나오려고 찍은 영화가 아니다. ‘저 두 사람이 회사도 같이 하더니, 연기도 같이하네?’, ‘자기들끼리 노네?’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 영화의 의미를 퇴색하지 않으려고 정말 치열하게 했다.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이 판이지 않나. 우리가 생각했던 기준점을 넘겼다는 만족감은 분명히 있다.
평소 절친한 사이로 유명한데 영화에서는 철저한 라이벌 구도로 그려진다.
캐릭터 간의 관계 때문에 서로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뒷면에서의 다소 무거운 공기를 감당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감독이 얼마나 그 캐릭터를 애정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긴 한다. (이정재 감독이) 나를 애정하고, 잘 관찰하고, 잘 담아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이 담길 수 있는 여지는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내 역할이 멋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웃음) 다만 ‘김정도’와 ‘박평호’ 두 사람이 만들어낸 기류가 잘 산 것 같아서 성공적이라고는 생각했다.
이번 작품에서 당신의 연기에 대해 특히 호평이 많은데, ‘김정도’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김정도’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서 환멸과 딜레마를 느끼는 인물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집단 안에서 환멸을 느끼고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딜레마를 느낀다. 잘못된 궤도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데서 형성된 신념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억울함 그리고 아픔이 담겨있어 그 무게가 상당했다. 평생 그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캐릭터 설정에서 가장 신경 쓴 건 외모였다. 헤어스타일을 비롯한 외적인 모습이 '김정도'의 성격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안기부 요원이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빈틈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빈틈이 느껴지지 않게끔 만든다. 상대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도록 외형을 설정했다.
‘박평호’와는 팽팽한 심리전뿐만 아니라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데.
둘 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찍는 내내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를 내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김정도'와 '박평호'는 각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액션이 단단하게 느껴지기를 바랐다. 어떤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닮은 면도 드러나야 했고. 그런 게 액션에서 고스란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이정재와 함께하는 건 어떻던가.
사실 정재 씨와 친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정재 씨가 감독으로서 촬영 현장에 있는 건 처음이고,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하더라도 내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으니 현장에서 의견을 내거나 조언을 할 때 조심하게 되더라.
본인 역시 <보호자>에서 연출과 주연을 같이한 만큼 누구보다 이정재 감독의 고충을 잘 이해했겠다.
직접 위로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에 형성된 공기와 분위기만으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걸 충분히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면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재 씨가 그 부담감을 온전히 다 짊어지고 잘 견뎌내길 바랐다. 지금껏 배우 생활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역시 잘해내더라.
정재 씨와 나 둘 다 영화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또 제작부터 연출까지 영화 전반의 작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서로의 성향은 다르지만 그 점은 닮았다. 영화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에 우리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다. 그래서 함께 모험도 할 수 있었던 거다.
당신의 첫 연출작인 <보호자>도 <헌트>와 함께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비단 배역에 한해서가 아니라 제작사 설립부터 연출까지 다양한 도전을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자체가 도전이었다. 막연한 청춘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이 와서 영화배우가 됐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작품도 많이 했다. (웃음) 사실 지금껏 톱스타라는 수식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로서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고 내 길을 찾아가려고 했고 또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예정이다.
사진제공_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