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전작 <승리호>가 넷플릭스 영화이고 이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찍었다. 그간 현장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관객과 직접 만나니 어떤가.
너무 행복하다. (웃음) 쇼케이스에서 엄청난 인파를 보고 ‘아, 그래. 이거였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무대 인사는 예의 차리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한다. 소리도 지를 수 있고 어쩔 땐 춤도 춘다.
이번 작품은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 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아무래도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진 않을 듯한데.
사실 그런 부담은 별로 없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제외하면 이렇게 과정이 즐거운 작품이 있었나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어떤 결과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연기에 대한 고민은 꽤 컸다는 말로 들린다.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늘 그렇다. 연기적으로 괴롭지 않으면 배우 일은 때려 쳐야 한다. (웃음) ‘이안’은 내가 그간 맡은 그 어떤 배역보다 마음의 사이즈가 큰 사람이다. 이걸 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조금이나마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일반적인 접근으론 안 될 거 같고 일반적이지 않은 걸 하자니 내가 뭘 할 수 있나 싶고. (웃음) 그런 추상적인 생각으로 싸웠다.
한 영화 안에 여러 장르가 혼재돼 있고, 외계인과 도사가 함께 나온다. (웃음) 타임라인도 고려 시대와 현재 두 시간대가 동시에 진행된다. 시나리오만 읽고는 쉽게 상상이 안 됐을 거 같은데.
예전부터 글을 정말 느리게 읽는 편이었다. 어렸을 적 책방에서 만화책을 한 권 빌리면, ‘으라라라라!’ 같이 중요하지 않은 대사나 효과음 한 글자 한 글자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웃음) 그렇게 보다가 이해가 안 되면 또 앞으로 넘어가서 다시 읽고 그랬다.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감독님께 설명부터 들었다. 감독님은 늘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신다. 듣다 보면 ‘그래서요?’, ‘그 다음은요?’ 하고 자꾸 물어보게 된다. (웃음) 그렇게 대화하다 보면 이미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얘기인 데도 마치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 원래 글을 꼼꼼하게 읽는 데다가 그때 들은 설명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읽으니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완벽하게 엮어낸 거 같았다. 풀어놓기만 하고 회수하지 못하는 작품도 많은데 이번 작품은 진공청소기처럼 솨~악 회수한다. 그러니까 1부보다 2부를 더 기대해주셨으면 한다. 1부는 초읽기에 불과하다. (웃음) 그리고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시나리오로 읽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연기였다.
특히 어떤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던가.
선배님들 연기도 좋았고 특히 어린 ‘이안’을 연기한 최유리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가 캐스팅 됐을 때 사람들이 나랑 닮지 않았냐며 사진을 보여줬는데 솔직히 당시에는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니 유리에게서 자꾸 내 얼굴이 보이더라. 연기도 잘했고!
사실 내가 계속 걱정했던 건 아이 ‘이안’과 어른 ‘이안’이 번갈아 나오는데, 과연 관객이 둘의 성격적인 간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관한 거였다. 그런데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님께서 ‘영화는 그런 게 아니다. 유리가 앞에 쌓아놓은 서사에 네가 이미지든 대사 한마디든 방점만 찍으면 관객은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본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 말을 듣고 좀 마음 놓고 연기했던 거 같다.
1부에선 어른 ‘이안’의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액션 혹은 CG 연기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래도 고려 쪽은 현대 쪽보단 수월했던 거 같다. 바람이 부는 장면에선 강풍기를 썼고, 로봇인‘썬더’나 고양이 ’우왕’, ‘좌왕’은 모형이 있었기 때문에 연기할 때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액션 연기는 어땠을까. 제작보고회에서 영화를 위해 기계체조까지 배웠다고 밝혔다.
기계체조는 힘을 어디에 얼마나 줘야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한 번 배워두면 와이어 액션은 물론 발차기를 하더라도 중심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기계체조를 배우면 공포와 싸우는 법을 함께 배우게 된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겁이 없는 성격이라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웃음) 또 하나 더 좋았던 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펜싱 선수로 나오는데, 이게 펜싱을 배울 때도 도움이 되더라.
호흡을 맞춘 류준열 배우와는 이번이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두 번째다.
확실히 두 번째라 그런지 훨씬 편하고 반갑더라. 준열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편안하게 연기하고 어떤 현장에 가서도 절대 낮아지는 법이 없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데 준열 오빠는 자신의 고유한 기운, 기세로 연기에 임한다. 연기가 컨디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배우로서 좋은 자질이다.
그런데 이제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점이 처음엔 되게 싫었다. (웃음)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항상 밝고 자신감 넘칠 수가 있나 싶더라. 그래서 그 실체를 알아내려고 더 빨리 친해졌다. 그런데 정말 어두운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서로 투닥투닥 하면서 재밌게 잘 지내고 있다. 오빠가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 직업인으로서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누구든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모습은 참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 같다. 가끔은 오빠에게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조언도 한다. (웃음) 매사 긍정적인 것도 좋지만 모든 걸 좋게만 보다 보면 가끔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멈춰서 자신을 살필 줄도 알아야하는 거 같다.
당신은 어떤가. 류준열 배우와 다른 편인가.
내 발전의 동력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다. 그리고 절대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절대 덮어두고 피하려 하지 않는다. 고통을 피하는 게 더 고통스럽다. 문제가 생기면 답을 찾아야만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성격이다. 문제를 덮어두지 않고 계속 찔러보고 고민하다 보면 그게 정답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어떠한 답이든 나오더라. 고민과 싸우기 전의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나와는 아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조금 꼰대 마인드일 수도 있지만, 누가 힘들어하고 불평하는 걸 보면 ‘되게 감사한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필모그래프를 보면 늘 도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영화부터 시대극, 청춘물, SF 블록버스터까지 규모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참여해왔다.
회사나 나나 특정한 캐릭터나 장르에 치중하는 건 지양하려 한다. 저번엔 액션을 했으니까 다음엔 청춘물을 한다던가, 그런 식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진~한 멜로다. 지금 당장엔 잘 할 자신이 없지만 한두 작품 더 하고 나면 할 수 있을 거 같다. (웃음)
예전에는 작품을 고를 때 감독님과 글을 봤다. 그 중에서도 감독의 힘이 더 중요했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나를 잘 이끌어주고,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지금은 감독님보단 글이 더 중요한 거 같다. 읽었을 때 내 마음이 끌리는 글이 좋다.
<아가씨> 박찬욱 감독부터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1984> 장준환 감독, <승리호> 조성희 감독, 그리고 이번 최동훈 감독까지 이름난 감독들과 함께 일해왔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함께 일한 모든 감독님께서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셔서 좋았다. 이런 유명한 감독님들께서 왜 나를 불렀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나를 만나본 사람 중에 나 싫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웃음) 물론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싫어할 수 있는데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눠보면 나를 싫어할 수가 없다. 하하하! 내가 그런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들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웃음)
<미스터 선샤인>,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드라마 성적도 좋다. 드라마와 영화를 번갈아 가며 하고 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더 잘 맞는 거 같나.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는 천천히 쌓여가는 것과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의 차이인 거 같다. 각각 장단점이 다르다. 그래서 뭐가 더 잘 맞는다고는 얘기하기 어렵다. 드라마는 프리 작업이 완벽하지 않은 대신 현장에서 유연하게 흘러간다. 솔직히 좀 닥치는 대로 한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웃음) 반면에 영화는 프리 작업이 길고 꼼꼼하다. 배우 입장에선 ‘자,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진 걸 전부 다 쏟아 붓는다는 느낌이다. (웃음)
배우 입장에선 어떤 게 더 좋은가.
둘의 장점을 섞고 싶다. 아직은 먼 얘기지만 후에 내가 직접 연출할 날이 온다면 기획부터 함께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나는 늘 룰 브레이커가 되고 싶다. 만연하게, ‘으레’ 하고 있는 것들에 딴지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연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까.
연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브이로그 때문인 거 같다. 내가 직접 연출도 하고 촬영도 하다 보니 그쪽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게 많아지더라. 배우라고 해서 작품으로만, 혹은 SNS로만 팬들과 소통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브이로그를 하더라도 특별하게 하고 싶어서 더 공부하고 고민했다. 브이로그를 찍고 난 뒤로는 촬영할 때 촬영감독님들을 유심히 살핀다. 왜 저런 앵글을 잡는 건지, 어떤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한 게 많아졌고 그 분들과 말할 거리도 생겼다. (웃음) 당장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직접 연출에 나서고 싶은 마음은 있다.
사진제공_매니지먼트m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