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기쁜 한편 안스럽고 안타까워요.” OTT와 영화를 동시에 석권한 천성일 작가의 소감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다시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론 코로나로 인해 주저앉은 극장을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것. <해적: 도깨비 깃발>이 한국영화로 오랜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 오피스 정상에 올랐지만, 누적 관객이 120만 명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손예진과 김남일 배우가 주연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은 2014년 여름 극장가에서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명량>(1761만 명)과 맞붙었다. 866만 명을 동원하며 크게 히트쳤는데 무려 7년 만에 나온 후속편이 <해적: 도깨비 깃발>이다. “기대를 채워야 할지 기대하는 부분과 다르게 가야 할지 고민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김정훈 감독과 논의 끝에 “재미”에 포인트를 맞춰서 “리부팅”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모험과 어드벤처”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점을 차별점으로 꼽는다.
평소 촬영 직전까지 시나리오를 계속 고치는 편이라는 천 작가. “젤 적을 때가 13고, 젤 많을 때가 27고까지 나왔는데요. 이번에는 감독님이 각색을 전담하기로 해서 감사했죠.” 덕분에 상대적으로 편했고 그래서 고마운 작품이라고. <추노> 등 드라마 작업을 꾸준히 해왔지만, OTT와의 협업은 처음인데 “TV 드라마는 포맷과 수위가 정해져 있어 임의로 넘어갈 수 없는 반면 영화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합니다. 이번 넷플릭스와 작업해 보니 OTT는 드라마보다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게 무리가 아니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죠.” 라고 느낌점을 짚는다.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로서 OTT 동영상 스트리밍이 일상에 파고든 현재, 현장에서 체감하는 부분은 뭘까. “영화는 2시간 내외, 드라마는 16부작이라는 포맷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쓴다는 건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에요. 그다음은 OTT 플랫폼이 많이 생기다 보니 그만큼 만드는 작품의 수가 늘었다는 거죠. 한데 세계로 뻗어 나가는 K-콘텐츠가 양적 팽창만큼 질적 팽창이 따랐는지는 의문입니다. 기회의 확대가 꼭 작품의 퀄리티로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요즘은 흡사 르네상스 시대 같아요, 그럴수록 공부를 더욱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젤 큰 체감은 ‘돈’이에요. ‘누구’와 한다에서 ‘얼마’ 받는다로 변한 것 같아요.”라며 시장이 커지면서 자본에 포커싱되는 건 당연한 흐름이겠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전한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관람객 저마다의 분분한 반응 사이로 의견이 모아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특수효과에 대해서다. 대표적인 해양 어드벤처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상상한 건 거의 다, 아니 어찌 보면 상상 이상으로 구현됐어요.”라며 이번 작업을 통해 작가의 상상을 기술이 못 따라간다는 보편적인 생각이 뒤집어질 때가 된 것 같단다. “작가의 상상은 완벽한 그림이라기보다 이미지의 편린인 경우가 많아요. 근데 상상 이상으로 구현되어 이젠 작가가 미술과 영상 디렉터의 상상력에 기대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반면 후반부 등장한 펭귄에 대해선 ‘너무 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천 작가에게 그 의도를 물었다. “후속편이 언제 나오냐는 질문보다 많이 받은 게 이번엔 어떤 바다 생명체가 등장하냐는 거였어요.” 전편에 등장한 고래가 그만큼 임팩트가 강했다는 말이다.
“글을 쓰면서 바다에 관해 자료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바다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 연근해가 아닌 먼바다를 그린 지도일수록 괴물이 살고 있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가 용이 불을 뿜는 지도였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리서치 하면서 남극 펭귄이 길을 잃어서 적도에 산다는 내용을 봤어요. 장거리 미아라고 할지… 그래서 해적단이 적도 쪽으로 가니 펭귄을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죠. 또 미아가 한 마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웃음)
전편의 고래가 바다의 가장 큰 생명체이니 반대로 작은 생명체를 염두에 뒀지만, 처음부터 ‘펭귄’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새인 펭귄이 비록 날진 못하지만, 멋지게 바닷속에서 비행한다고 생각해요. 생김새도 귀엽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려했던 ‘라마’를 제치고 선택”했다고 비하인드를 푼다.
천 작가는 지인들이 자신을 ‘길바닥’ 작가라 부른다고 소개한다. 정식으로 배워서 글을 쓴 게 아닌 여차저차 하다 보니 작가로 데뷔했다는 말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2007년 즈음 “되지도 않게” 제작사를 차렸고 적은 비용으로 작품을 개발하다가 “작가료가 없어서” 직접 쓰게 됐다.
작가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지점은 “재미”이고 경계하는 지점은 “대중에 끼칠 영향력”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인장은 무엇인지 묻자 “제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없더군요. 그래도 찾아보니 핵심은 ‘재미’ 더군요. 어떤 의미와 메시지든 ‘재미’라는 외피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 그는 “공인은 아니지만, 대중문화가 파급력이 큰 만큼 세상에 악한 영향을 끼칠 지점은 경계합니다”라고 짚는다.
“(사실) 캐릭터 코미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상황이 웃음을 유발하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선호해요.”라는 천 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은 드라마 <더 패키지>(2017)다. “대표작이라기 보다 저와 가장 가까운 작품 그러니까 작가 개인과 작품의 괴리가 가장 적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민망하지만, 따뜻한 작품인데 알다시피 흥행은…”(웃음)
12년 만에 사극 드라마 <탁류>로 돌아올 그는 “말초적으로 표현하자면, 조선시대 나루터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가 전국적인 폭력 조직의 보스가 되는 이야기예요”라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해적: 도깨비 깃발>이 팬데믹으로 지치고 힘든 시기에 잠깐의 휴식이 되길, 모처럼 웃음을 준다면 좋겠네요.”라고 인사한다.
사진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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