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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복’의 선택,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어 <갈매기> 김미조 감독
2021년 8월 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오복’(정애화)은 몇십 년 동안 자신은 먹지도 못하는 생선을 시장에서 팔아 세 딸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킨 엄마다. 첫째 딸의 상견례를 잘 치러 기분 좋은 어느 날 저녁, 시장 사람들의 술판에 합류한 오복은 험한 일을 당하고 만다. 덮고 넘어가려던 애초의 생각을 바꾼 오복은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다. <갈매기>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장년 여성을 응시한 작품으로 미투는 선택이나 투쟁이 아닌 당위라는 젊은 감독의 인식이 읽힌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다양한 관점과 해법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김미조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이벤트처럼 어쩌다 한 번 내놓는 것이 아닌, 직업 감독으로서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장편) 데뷔작은 대체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 중·노년 여성이 당한 성폭행을 화두로 꺼내든 까닭은.
여러 면이 쌓였다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크게 사로잡혔던 생각은 나와 ‘오복’(정애화)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였다. 살면서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기보다 무던한 척하며 살진 않았는지, 또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폭력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걸 보고 들어 직·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또 당시 미투 이슈가 불거졌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가졌던 화두라 자연스럽게 꺼내들게 됐다.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를 매우 좋아해서 첫 장편 제목은 장르와 이야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갈매기’로 정해져 있었다고. 희곡의 어떤 면에 매료된 건지 궁금하다.
그게, 내게 딱히 잘해준 게 없어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괜히 미운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런 것처럼 연극 갈매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또 자문해봐도 어디라고 콕 짚어 말하기 힘들다. 처음 접했을 때는 극이 함의하고 있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참 제목이 투박하다고 생각했고, 연극을 보고 난 후에는 이런 서사에 갈매기라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구나 싶더라. 어딘가 투박한데 매력적이라 딱 꽂혔고, 지금도 여전히 꽂혀 있다.

‘오복’은 시장의 동료 상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성별에 따른 인식의 차이도 있지만, 여성 간에도 연령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장년 여성인 오복의 연령대에서 공론화하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수십 년을 봐온 이웃 상인이다.
현실에서 오복 연령대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영화를 준비하며 60대 어머니를 비롯해 친척분이나 지인 등의 인터뷰를 통해 그 연령대의 생각을 알고자 했었다. ‘오복’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건지 물으니, 대부분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견이었다. 영화를 만들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이런 방법도 있다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상상할 수 없는 길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라도 다양한 관점과 해법을 이야기하려 했다.

결혼을 앞둔 큰딸 ‘인애’(고서희)과(와) 막내딸 ‘지애’(김가빈) 입장에서도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는데 별반 갈등이나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미투란 선택과 투쟁이 아닌 ‘당위’라는 인식이 읽히는 대목이다.
시장 철거를 반대하며 농성 중인 상인들은 쉬쉬하고 덮으려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복은 가족들마저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설 곳이 없게 된다. 시장은 노동자인 오복이 일하는 터전이라면, 가족은 엄마 오복이 속해 있는 정서적인 테두리다. 성폭행을 당한 후 일의 터전은 불안정해지고 퉁겨져 나온 상황이라, 가족 안에서 오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오복이 성폭행에 대한 시위를 한 이후 넥스트 단계로 이어가는 데 있어 딸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오복의 남편이자 자매의 아버지 ‘무일’(장유)은 어떤 인물인가. 비겁하기도 한편으로는 철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무일은 남편이 아니라 아들 같은 캐릭터다. 오복으로 하여금 오롯이 가장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남편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복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아버지 같은 어머니여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듬직하고 보수적인 남편보다는 다소 무능하고 한심한 말을 내뱉지만, 동정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무일은 먹는 걸 참 좋아하는 인상인데 특히 시장 한편에서 돈가스를 먹으며 낮술하는 장면, 정말 생생한 먹방이더라. (웃음)
남대문 회현시장에 현장 조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상인 두 세 분이 모여서 영화 속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시고 있더라. 그래서 무일이 먹는 음식이 꼭 돈가스여야 한다고, 거기에 마요네즈를 뿌린 양배추 샐러드가 필수라고 준비팀에게 말했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돈가스를 공수해 왔던 기억이 난다.

평생을 자신을 뒷전으로 하고 살아온 오복의 고단한 삶의 단면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오복의)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 절절하게 드러난다. 어떤 장면보다도 마음이 찡했다.
촬영하면서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오복이 남편과 자식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엄마이겠더라. 치매로 기억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렇기에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때때로 원망 섞인 푸념도 할 수 있는 오롯한 존재 아닌가.
 <갈매기>
<갈매기>

<영자의 전성시대>(1975), <바보 선언>(1983) 등 70~80년대 국내 영화를 레퍼런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들의 어떤 면에 끌렸나.
대학원 때 과제로 이장호 감독님의 <바보선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마디로 ‘이 강렬함은 뭐지?’였다. 촬영도 거칠고 동시녹음도 아니지만, 어떤 열기에 매료되어 당시의 영화들 <영자의 전성시대>, <꼬방동네 사람들>, <겨울 여자> 등을 연달아 찾아봤다. 소재 등의 면에서 지금은 만들기 힘들 수도 있지만, 테크닉적으로 다듬어지고 세련된 최근 영화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갈매기>를 찍으면서, (내) 테크닉적인 단점을 오히려 70~80년 대의 영화가 지닌 패기와 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디졸브로 처리하지 않고 과감하게 장면을 전환하고, 크레딧을 바로 띄우는 등 나름대로 시도를 해봤다.

극 중 가장 패기있는 장면을 꼽는다면.
오복이 시장 상인의 입을 잡아끌며 드잡이하는 장면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보면서 아주 멋지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맨몸으로 부딪치는 그 모습이 말이다. 또 하나는 화면 전체를 뒤덮는 ‘갈매기’ 타이틀이다. 예전 방화를 보면 대체로 타이틀이 크다. <갈매기>는 규모가 작은 영화라 타이틀이라도 크게 하자, 어딘가에서 상영될 때 ‘갈매기’라는 제목을 잊지 못하도록 각인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딸 넷인 집의 막내라고 들었다. 자매가 여럿인 건 어떤 느낌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언니가 ‘지애’로 분한 김가빈 배우인데 캐스팅 등 이번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굉장히, 엄청난 유대와 연대감이 있다. (웃음) 누구 한 명 부당한 일을 당하면 끓어 넘쳐 올라 가만히 있지 못한다. 든든한 방패이자 내 편의 군단이 있다는 느낌이다. 한데 그만큼 격하게 싸우기도 한다. 피 터지게 싸우고 열정적으로 미워하고 또 사랑하는 관계라 하겠다. 가빈 언니는 바로 위인 셋째 언니다.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줄곧 내 영화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해줬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처음과는 방향이 변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처음 구상할 때는 주로 인애의 시점으로 외동딸 ‘인애’가 엄마의 성폭행을 겪는 이야기였는데, 쓰다 보니 엄마의 심경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중·장년의 성폭행을 다루는 콘텐츠가 별로 없어 시점을 엄마 ‘오복’으로 옮겨 그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여름날> 오정석 감독,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등 신예 감독의 약진이 두드러진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출신이다. 대학 입학 후 영화로 진로를 정한 건가.
맞다. 어떤 목표가 있어 4수를 했고, (웃음) 이후 대학에 입학해서는 모험하지 말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모토였는데 전공이 기질과 너무 안 맞더라. 그래서 휴학하고 2년을 호주에서 보냈다. 6년이나 궤도이탈을 하다 보니 진짜 하고 싶은 것, 꿈꿨던 걸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마침 언니가 배우 일을 하고 있어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놨다. ‘영화를 하고 싶다고’. 언니가 이러는 거다. 언제 이 이야기를 꺼내나 했다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아는데 애써 외면하고 있더라고. 언니의 말에 힘을 얻어 영화를 복수전공했다. 처음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주눅들기도 했는데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고 졸업작품으로 찍은 단편이 주목받으면서 힘을 받았다.

영화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은가. (웃음)
영화로 관객을 감동시키고 세상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거창한 명분도 좋지만, 그보다는 복닥거리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위로하고 기쁨을 나누는 작업 과정 자체에 의미가 크다. 평소에 게임해도 솔로 게임을 즐기지 않거든. 성향인 것 같다.

계획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 이번에도 여성이 주축이 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웃음)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어떤 사건으로 희생을 당한 모녀가 복수하는 모녀 복수극이다. 내년에 제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기회를 탐색 중이다. 앞으로 장르에 상관없이, 여성 감독이나 섬세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보다 직업 감독이 되는 게 목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음, 내게 원동력은 ‘다음’인 것 같다. <갈매기>의 개봉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다음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영화를 이벤트처럼 어쩌다 한편 내놓는 것이 아닌, 회사원이 매일 출근하듯이 일정한 주기로 꾸준히 내놓는 게 목표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개발하는 것이 지금의 고민이자 소소한 행복이다.


사진제공_(주)영화사 진진

2021년 8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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