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이 지난해 공개 후 픽사 애니메이션의 정점, <업><인사이드 아웃>의 계보를 잇는 어른이 더 좋아할 애니메이션 등 호평받고 있다. 영화의 작업에 참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를 화상으로 만나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화합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에 개인적인 만족감이 크다면서, 그간 디즈니/픽사가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온 측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정점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Q1. 상상력 넘치는 작품이더라. 특히 ‘태어나기 전’ 소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콘셉트와 캐릭터 디자인이 정해지면 애니메이터는 그 위에 움직임과 연기를 입힌다. 이번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 내야 해서 꽤 오랜 기간 고민했었다. 특히 ‘테리’ 등 소울 캐릭터는 픽사로서도 처음이라 그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데 신경 썼다.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잡아 놓은 후 계속 살을 붙여가며 적용해갔다.
Q2. 당신이 주로 작업한 캐릭터는. 또 이번 작업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주로 ‘조 가드너’와 ‘소울 22’, 고양이 몸에 들어간 ‘조’를 작업했다. 소울 캐릭터를 작업하면서는 캐릭터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살리기 위해 사전 조사를 많이 했다. 가장 신경 쓴 지점은 ‘조’가 오디션에서 피아노 치는 부분이다. 피아노 음을 테스트하고, 실제로 재즈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어떻게 치는지 등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공부했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웃음)
Q3.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에 이어 어른이 더 좋아할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도 있다.
타깃이 높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보통 영화를 만들 때 연령층을 넓게 잡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면 어린 연령층은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울>은 가족 영화로 생각해 스토리가 허용하는 한 개그나 유머를 많이 넣었다. 소울 월드(태어나기 전 세상)도 밝게 보이도록 디자인했고 말이다.
Q4. 픽사 애니메이션의 정점이라는 등 호평 일색이다. (웃음) 개인적으로 만족한 부분은.
다양성 측면이다. 그간 디즈니/픽사는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지점에서는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 몇 년 미국은 특히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했다. 그 시기에 화합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높다. 작품적으로는 아직은 더 올라갈 부분이 있을 듯하다.(웃음)
Q5. 미국에서는 <소울>이 극장 개봉이 아닌,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됐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몇 차례 연기됐지만, 극장에서 개봉한다. 소감은.
사운드와 영상 등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극장 상영을 기준으로 제작했는데 아쉽게도 미국에서는 개봉을 못 했다. 한데 디즈니플러스 공개 후 의외의 반응을 접했다. 극장 개봉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고, 그 감상을 트위터를 통해 활발히 나누다는 거였다. 특히 부모 연령대의 사람들이 그렇더라. 스트리밍의 서비스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영화가 도움됐다는 얘기가 많아 뿌듯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을 포함해 몇몇 국가에서는 극장에서 개봉하게 돼 참 기쁘다.
|
Q6. 2020년은 코로나에 의해 전 세계가 잠식당한 해였는데,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벌써 재택근무를 한 지 1년이 된다. 떨어져 작업하다 보니 아무래도 소통이 불편하고 원활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며 그 디테일한 퀄리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서로 협력해 작업하고 있다. 작업 방식이 변한 만큼 생활 형태도 변했다. 아이들도 온라인 수업을 하니 가족들과 나름 더 돈독해졌다. 서로에 대해 여러가지를 더 알게 됐다.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을지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Q7. <소울>이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지. 또 당신에게 극 중 등장하는 ‘불꽃’은 무얼까. (웃음)
의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진로를 변경한 터라 <소울>의 주인공 ‘조’에 공감이 컸다. 또 <소울>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성취를 넘어 ‘산다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에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유사한 포인트에서 관객 역시 힐링을 받을 것 같다. 음, 내게 불꽃이란 병원을 그만두게 한 그 무엇이다. 그때 나를 스치고 간 스파크를 떠올려 보자면, 아마도 근본적으로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한다.
Q8. 가장 좋아하거나 혹은 힘들었던, 각별한 장면을 꼽는다면.
‘조’가 피아노 치는 장면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힘들었던 시퀀스다. 그 중 내가 맡은 장면은 오디션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것과 피아노 연주 중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이다. 작업 초반에 한 피아노 테스트부터 시작해 피아노 치는 연기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데 1초에 24장, 한 장 한 장 감정과 의미에 맞는 연기를 담아내야 했다. 감독님이 몸의 동작 매커니즘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과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고 요청하셨었다. 굉장히 부드럽고 감정적으로 풍성하면서도 격렬하길 바라셨다. 감독님과 수차례 작업한 결과물을 놓고 수정을 거쳐 완성했다. 나중에는 감독님이 OK 했으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 고친 부분도 있다.
Q9. <굿다이노>(2017) 관련 인터뷰 당시 ‘블리자드에서 픽사로 들어온 후 나만의 강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애니메이터 김재형의 강점은 무얼까. (웃음) 또 요즘 일적으로 관심사가 있다면.
지금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남들과 비교해서 무엇인가가 낫다기보다 내가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을 꼽는다면 감정선을 보여주는 연기와 관련된 작업이다. 세세한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고 와중에 조금이라도 어떻게 특별하게 표현할지 고민도 많이 한다. 마냥 특이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는, 스토리텔링에 맞으면서도 독특하게 보이고자 노력한다. 요즘 관심사는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작업 방식에 변화가 많이 생겼고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에 제약이 많아졌다. 어떻게 기술적으로 잘 해결해 작업할지 고민 중이다.
Q10. 2008년 픽사에 입사,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픽사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혹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도전할 생각은.
감독 도전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몇 차례 받았었다. 회사에서 우연히 기회가 생겨 짧은 영상을 연출했고, 1~2주 후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준비해 하기에는 아직은 부족하다. 애니메이터로서 배울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픽사의 장점은… 어떤 평론가가 이런 비유를 했더라. ‘교실 안에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학생이 있는데, 디즈니는 예쁜 공주, 드림웍스는 뒤에서 껄렁껄렁한 학생 같은 느낌이라고. 픽사는 <소울> 이후 빨리 월반해라!’ 이렇게 말이다. 퀄리티의 좋고 나쁨 보다 스토리 자체가 머처한(mature 성숙한),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게 있어서 그렇게 얘기한 듯하다. 내가 생각해 봐도 좀더 넓은 타깃이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왔고, 그런 부분이 많이 어필되고 장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_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1년 1월 2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