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승의 마지막 배웅자이자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장의사에 관해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멍>(2019)을 하게 된 계기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사건으로 죽음에 관해 생각을 많이 했던 시기가 있었다. 죽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부터 죽음이 함유하고 있는 두려움 등을 고민하다 죽음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었다. 그러다 우연히 장의사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평소 좋아하던 일본 영화 <굿’ 바이>(2008)가 떠오르면서 장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 생전의 지위나 쌓은 부와 상관없이 또 인간이 아닌 고양이라도 정성을 들여 염하고, 종이꽃을 접어 장식하는 행동에서 생명을 향한 존중과 어떤 경건함이 전달되더라. 영화 보며 오랜만에 환기된 감정이었다.
<종이꽃>은 장의사 ‘성길’(안성기)로 시작해서 ‘성길’로 끝나는 오롯이 그가 중심이 된 영화다. 죽음이란 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스러운 존재요 현상이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던 장의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죽은 사람을 도와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직업인데 왜 터부시하고 멀리하는지였다. 심지어 장의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말리기도 하지 않나. 요즘엔 장례지도사가 있어 인식이 많이 개선됐으나 예전에 그랬다. 일부러 편견을 깨뜨리겠다는 의도로 접근한 것은 아니고, 장의 절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거기서 직업적인 경건함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종이꽃을 접어 관 속에 넣고, 상여를 장식하는 게 사실 생소한 풍경이었다. 상여에 장식할 생화를 마련할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망자를 위해 종이로 꽃을 접어 가는 길을 배웅했다니!
나 역시 상여를 직접 본 세대가 아니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로 ‘종이꽃’이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망자가 돈이 있든 없든 평등하게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마음으로 ‘종이꽃’을 접었다고 하는데, 우리 선조의 너그러운 마음을 느끼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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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회사의 성장으로 일거리가 없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동네 장의사 아버지 ‘성길’(안성기)과 사고로 인해 젊은 나이에 침대 생활을 하는 아들 ‘지혁’(김혜성), 옆집에 이사 온 가정폭력 피해자 ‘은숙’(유진)과 어린 딸 ‘노을’(장재희), 암울한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데 영화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인상도 든다. 전체적인 톤앤 매너와 연출 시 신경 쓴 점은.
기획단계부터 소재가 주는 무거움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지점을 나만의 유머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심각한 상황인데 미소가 슬며시 지어진다고 할까. 동화까지는 아니라도 성길, 노을, 지혁, 은숙의 만남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소소한 에피소드를 넣어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순화하려 했다. 가혹한 현실에 가슴 아프기보다 관객이 희망적인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도록 톤앤 매너를 끌고 갔다. 스탭과 배우들 모두 이런 연출 방향을 좋아했다.
성길의 근엄함과 노을의 천진난만함이 만나 희망적인 시너지를 끌어올리더라. 또 화사한 색감이 연출 의도에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진지한 얼굴로 엄하게 대하는 ‘성길’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는 ‘노을’이 형성하는 공기가 소재의 무거움을 희석하고 동화적인 인상마저 주는 듯하다. 성길-지혁 부자가 은숙-노을 모녀를 만나기 전후로 색감과 톤에 변화를 줬다. 처음에는 어둡고 우울한 톤이었다면 이후는 좀 더 밝고 화사한 톤으로 가져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화분을 놓는 등 적절한 소품을 배치해 분위기를 업시키려했다. 음악의 활용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안성기 배우가 ‘성길’이라는 맞춤옷을 입었다는 생각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두고 쓴 건가.
극 중 이름이 ‘성길’이지 않나. (웃음) 생각하면서 글(시나리오)을 썼었고, 제작진에게 의견을 말하니 일단 전달해보자고 하더라. 당시 선배가 <사자> 촬영 중이셨는데, 일주일 만에 수락 연락을 주셨다. 작은 독립 영화에 출연할지 의문이었는데 흔쾌히 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해 주셨다. 장의사 역할이 처음이라 끌린 데다 시나리오가 지닌 따뜻함이 좋았다고 하시더라.
의대생 ‘성길’을 의사가 아닌 장의사로 이끈 그의 전사(5월 광주), 평소 자신들에게 인정을 베풀던 국숫집 사장의 장례를 위해 노숙자들이 힘을 모아 노력하는 모습에서 정의를 향한 지지와 연대가 읽힌다.
‘성길’이 중심인 이야기라 노골적으로 연대를 강조하기보다 이야기의 전개 속에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 자신도 약자라 장례를 강행하는 이들을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느낀다. 그와 유사한 감정이 내게도 있는 것 같다.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은 있으나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었거든. 그래서 영화 속에서나마 살짝 드러내려 했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시대·사회적 상황이 평범한 개인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보이고 싶었다. 제주도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4.3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뼛속에 새겨졌다고 할까. 이를 광주로 표현해 봤다.
후반부에 들어 은숙은 강제로 입원당하고 노을은 할머니가 데려간다. 병원에서 은숙이 지혁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이야기의 마무리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후사를 살짝 들려준다면.
시나리오상에는 에필로그가 있었다. 성길이 상조회사와 가맹계약을 파기한 후 동네 장의사로 컴백하고, 지혁은 휠체어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다닌다. 퇴원한 은숙은 노을과 다시 함께 살게 된다. 둘이 장의사 가게를 지나며 성길과 살짝 눈인사를 건넨다는 내용인데 결론인즉슨 두 가족 모두 행복하게 됐다는 거지. 촬영하면서 사족 같이 느껴져 빼 버렸다. 두 가족이 어떻게 살 것인지 나름의 후사를 관객이 직접 생각하는 게 좋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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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 광장의 장례행렬로 끝나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시작부터 정하고 들어갔었다. 비가 주는 복잡하고 미묘한 분위기와 정서가 있어 이를 전하고 싶었고, 또 ‘비’에 영화의 의도를 많은 부분 투영했었다. 보통 ‘비’하면 떠오르는 우울함이나 어두움보다 희망적인 기분을 느꼈으면 했다. 마지막 신에 안성기 선배의 얼굴이 인서트되는데 촬영 도중 실제 비가 그쳤고, 그 순간 선배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 비가 개고 맑아지는 날씨의 변화를 바라보는 성길의 표정에서 관객이 긍정적인 내일을 읽기를 바랐다.
‘비’에 담긴 의미가 뭘까.
비라는 것은 공평한 존재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리지 않나. 각자 다른 공간에 있는 성길, 지혁, 은숙 그리고 노을이 같은 비를 보고 맞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연대감과 희망의 감정을 느끼기를 바랐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좀 전에 말한 안성기 선배 표정이 인서트되는 마지막 신 그리고 첫 장면을 좋아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쫓아가는데 원테이크로 담은 거다. 촬영하면서 뒷모습도 연기하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또 지혁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새벽에 걸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장면도 뒷모습을 잡는다. 이상하게 뒷모습에 끌리는 것 같다. (웃음)
<종이꽃>이 작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라 이미 접한 분이 많을 텐데,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은.
음.. 이렇게 말하면 웃길지도 모르지만, ‘***보다 좋았다’라고 감상을 전한 분이 있었다. 내가 다른 삶을 살다가 느지막이 영화를 해보고 싶어 뛰어든 사람인지라 스스로 확신이 부족한 편이다.(웃음) 처음 스스로 던졌던 ‘영화를 만들 수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영화를 만든 후에는 ‘내가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했는데, 이럴 때 ‘올해 본 영화 중 최고’라는 리뷰를 접하니 작가로 감독으로 자신감이 좀 생기더라. 앞으로 몇 편은 더 만들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제주도 출신인데 고향이 영화에 있어 어떤 영감이나 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는지 궁금하다.
해녀인 할머니 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내 안에 알게 모르게 쌓여 왔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 관련 전설이나 설화 등 옛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참 흥미로웠지. 4.3사건과 관련해서는 제주도민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움츠러드는 게 있었다.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아닌 느낌이라고 할까. 괜히 숨어 살고 움츠리고, 말이지. 심리·사회적인 연좌제라고 할까. 성장하면서 그런 국가적·정치적인 상황에 부당함을 느꼈었다. 또 자연 환경과 특유의 문화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섬에 살 때는 몰랐는데 육지에 와 살면서 돌아보니 독특하고 특색있고 재밌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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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늦게 입문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7년간 복무한 후 고향으로 낙향했었다. 어머니와 귤 농사도 짓고 학원도 운영했는데,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더라.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 활동하며 연기와 연출하던 때,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간이 떠오르며 ‘이거다’ 싶었지. 근데 아내에게 ‘영화..’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눈빛이 달려지는 거다.(웃음) 그 후 여차저차해서 책을 보고 독학을 하며 단편 <소분>(2010)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벌초를 대행해주는 사람이야기 거든. 운이 좋게도 <소분>으로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후 소규모로 작업하다가 한계에 부딪혔다. 공부를 더 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그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다. 이미 봤던 영화들도 다시 보이더라. 그때 인연이 단편 작업, 영화제 초청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왔다.
영화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일단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 많이 봤었다. 아주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낼 즈음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아서 나도 영화를 만들어 타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번 <종이꽃>을 보고 예전의 나처럼 치유 받고 순간의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2시간 동안 다채로운 감정을 맛보다가 돌아서면서는 앞으로 나갈 힘을 받아 가길 바란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찾아올 건가.(웃음)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영화 일을 하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참 조급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다. 지금 말도 매우 빨리하지 않나. (웃음)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아침저녁 집 앞 해변을 한 바퀴 산책하는 거다. 사는 곳이 제주 바다 근처라 아침에 ‘마요’(골든리트리버)와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이 참 좋다. 창작의 자양분이 된다고 느낀다.
사진제공_올댓시네마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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