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추석 연휴에 <담보>가 개봉됐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JK필름의 대표 윤제균 감독이 먼저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며 <담보>를 추천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괜찮고,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침 아이들이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족의 반응이 더 궁금했다. 애들이 영화를 보더니 제일 먼저 “아빠 연기가 늘었다.”고 하더라. 막내는 너무 울어서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고. (웃음) 영화의 예산이 얼마인지, 흥행 성적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봤을 때 영화가 재밌고 감동적이라고 하니 그걸로 만족한다.
주연으로 스크린에 나오는 건 오랜만인데 부담은 없는지.
주변에서 우정 출연이나 카메오로 영화 출연은 많이 하는데 왜 주연은 안 하는지 의아해했다. 제작비가 큰 영화일수록 부담스럽기도 하고 되도록이면 비중 큰 역할은 피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가리지 않고 참여하려고 한다. 사실 이번 영화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 내가 부담을 느낀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많은 관객분들을 어떻게 다 만족시키겠나. 물론 <아이언맨> 주인공처럼 500억을 받는다면 미안해서 24시간 윗몸 일으키기라도 하겠지만. (웃음)
친근한 아빠 이미지가 예능과 드라마를 통해 공고해졌다. 이번 영화에서도 아빠 역을 맡았다.
내 나이대가 연기하기 편한 역할이었지만 힘든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연한 계기로 딸이 된 ‘승이’를 어떤 방식으로 대할지 고민했다. 앞서 드라마에서 만난 딸들처럼 편하게 대하기 어려웠다. 너무 과하게 해버리면 보는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고, 일단 친딸이 아니니 조심스러웠다. ‘승이’를 내 주관이 아닌 사회의 객관적인 기준에 맞춰 키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어떤 딸과 호흡을 맞추든 간에 그 딸에 맞춰 연기할 거다.
극 중 눈물이 흐르는 감정신이 많지만 정작 본인은 올지 않는다.
앞서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최대한 힘을 빼고 감정을 크게 절제했다. 대한민국에 나만큼 눈물 연기를 많이 하는 배우가 없지만 이 영화에서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중간다리의 역할로서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눈물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촬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이 터지는 장면도 있었고. 몇 번이고 눈물이 나면 닦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희원이는 정말 많이 울었다. (웃음)
김희원 배우와는 평소 친분이 깊은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준 <미스터 고>(2013)에서 만나 친해졌다. (웃음) 술을 좋아해서 술자리를 자주 만드는데 희원이는 술을 전혀 못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보이는 것과 달리 남에게 싫은 말은 절대 못하는 성격에 속이 여리고 눈물도 많다. 예쁘고 배려심이 많은 친구다. 희원이뿐 아니라 모든 제작진과 팀워크가 좋았다. 7년째 빼놓지 않고 매일 7키로를 달리는데 강대규 감독, 조명 감독, 촬영 감독 등 스텝들을 전부 모아 아침마다 운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팀워크가 좋아져서 촬영이 끝난 지금도 가끔 집에 들러 놀다가 간다. (웃음) 강대규 감독이 열린 마음으로 배우 의견을 수용하니까 희원이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열심히 했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한 배우를 꼽자면 하지원과 박소이다. 지원이는 억지로 꾸며낸 게 아니라 진짜 아버지에게 하듯 연기했다.
아역배우 박소이와 연기하는 건 어땠나.
박소이가 9살로 우리 막내와 동갑이다. 그 어린 나이에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버티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소이는 학교 가는 것보다 현장에 있는 게 더 재밌다면서 전혀 힘들지 않다더라. 연기적으로도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하다. 어려운 감정선인데 어떻게 연기할까 걱정했지만 강대규 감독님이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설명해주면서 연기를 이끌어냈다. 그래도 잘 안 되면 소이 엄마와 온 스텝이 나서서 도와줬다. 다만 평소에는 소이가 마음껏 현장에서 놀게 내버려뒀다. 그래서 중간중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더라.
시사회에서 마치 딸 셋과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딸 ‘승이’ 역이 어렸을 때, 10대 시절 그리고 성인기까지 세 시기를 거쳐서 그렇다. 거기에 맞춰서 나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연기 톤을 바꿨다. 점차 행동을 느리게 하고 대사 톤을 낮추면서 기력이 빠지는 모습을 묘사하려고 했다.
<변신> 때 사람들이 섬뜩했다고 하던데 나는 평소처럼 연기했을 뿐이다. 시나리오와 연출이 섬뜩한 거지 특별히 연기 변신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시나리오와 감독을 믿고 작품을 선택하고 거기에 따르는 거다. 감독이 영화 한 편 들어가는 데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도 더 걸린다.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은 감독을 못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담보> 때도 강대규 감독에게 나는 모르니까 지적을 많이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웃음) 그래서 평소에 주위사람들을 보고 배역을 연구하는 편이다. <수상한 그녀>도 나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몰입했고 <변신>에서도 옥천에서 건강원을 하는 친구를 모델로 삼았다. (웃음) 이번 ‘두석’ 역할도 사채 쪽에서 일한 지인의 말투나 걸음걸이를 흉내낸 것이다. 그래서 경험 없이 감정을 끌어낸 소이가 대단하다.
특별한 연기철학이 있나.
나도 아직 연기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거 같다. 멋있기보다 즐길 수 있는, 편하게 할 수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평소 ‘꼰대짓’ 하는 걸 싫어해서 후배들에게 인생이나 연기에 대해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대신 맛있는 걸 먹인다. 그러면서 고민을 경청해주고 칭찬해주면 그게 좋은 인간관계로 이어진다. 그래도 가끔 후배들에게 역할을 가리지 말고 일단 일하라고 조언하고는 한다. 음식도 이것저것 먹어봐야 맛을 알고 연애를 해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사람을 알 수 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관객 수나 흥행에 집착하지 말고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연기했으면 거기서 끝이다.
예능, 드라마, 영화까지 정말 쉬지 않고 일하는 거 같다.
지금 드라마 <시시푸스>와 영화 <지리산>을 찍고 있고 내년엔 더 많은 작품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족과 대중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족은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자식이 하나였으면 하나의 아버지 인생을 살았을 텐데, 세 명이니 세 명 분을 해야 한다. 가끔 짜증 내고 힘들어하지만 자식들에게 고맙다. 영화는 정서적, 사회문화적 기록이 가장 많이 담기는 장르이고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가정을 유지하고 지켜왔는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영화와 방송계에 30년 가까이 몸담아 왔는데 어떤 변화를 느끼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도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대단한 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들의 예산규모는 점점 커지는데 제작비는 줄어든다. 특히 조·단역 배우들은 출연료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고 나 또한 떼인 출연료가 어마무시하다. 우리는 노조도 없고 보험도 없는 프리랜서라 캐스팅이 돼도 일정이 꼬여서 반년, 일년 이상 공백기가 생기는 일이 부지기수다. 엄연히 한 가정의 가장인데 일을 쉬면 내 가족에게 피해가 간다. 하지만 알다시피 일을 하고 싶다고 바로바로 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더 그렇다. 주연급 배우들이 아니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후배들이 뭐 하냐고 물으면 미안해서 바빠도 안 바쁘다고 대답한다. 내가 모든 배우를 대변하진 않지만, 약속은 꼭 지켜달라고 (제작사에) 당부하고 싶다.
사진제공_CJ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