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연가시>(2012) 이후 오랜만에 영화 출연이다. <소리꾼>은 판소리를 다룬 요즘 흔치 않은 장르로 판소리, 뮤지컬, 영화 세 요소가 융합된, 차별적인 매력을 지녔다. 어떤 면에 끌렸나.
조정래 감독님의 <귀향>(2015)을 인상 깊게 봤었다. 특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편집이 아주 세련돼 기억에 남았었다. <소리꾼>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당대를 살던 서민의 삶에 민간 이야기 등이 섞여 있어 어떻게 만들지 기대됐고, 어떡하든 함께하고 싶었다. 감독님이 처음엔 몰락양반(김동완) 역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뭔가 일을 벌일 것 같이 기대하게 한다는 이유로 망설였지만, 하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설득한 끝에 맡을 수 있었다.
마침 사극을 꼭 하고 싶던 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컸다. 알다시피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 아닌가. (웃음) 사극은 감정의 폭이 깊게 오가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마치 애주가가 독주를 좋아하는 느낌이랄까. 평소 전쟁물이나 사극을 워낙 즐겨 보기에 꼭 하고 싶었고 자신도 있었다.
해보니 어떤가.
과거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의상과 분장을 맞춰 당대의 시대와 공기를 느껴보는 것도 모두 아주 재미있었다. 연극배우 출신 박철민 선배와 함께해 그런지 마치 연극처럼 준비하고 연습했었다.
당신이 연기한 몰락양반 캐릭터가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전형적인 모습이긴 하다.
전형적인 모습이라도 전체적인 발란스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사실 좀 더 감칠맛을 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니 혼자 튀는 것 같아 자제했다. 또, 촬영할 때는 충분히 거지 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화면이 예쁘다 보니 그리 꾀죄죄해 보이지 않아 놀랐다.
연기에 살짝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요즘 연극하고 있는데, 연습하는 동료 배우들을 보고 정말 놀랐다. 잡담도 안 하고 오로지 연습의 연습이다. 무대에 올라가 연기하고 다시 복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가는데, 솔직히 뮤지컬 할 때보다 2배 이상 많이 연습하는 것 같다. 평소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을 맹신하는 편이라 일단 오케이가 떨어지면 내가 먼저 다시 하겠다고 나서진 않는다. 최대한 한 번에, 집중해서 끝내려는 마음도 있고 말이지. 근데 연극을 경험한 후 다시 보니 좀 더 연기에 욕심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
평소 전통 음악, 특히 소리에 관심 있는 편인가.
모든 음악에 관심 있다. 터키, 중국, 일본 등의 전통 음악을 포함해 다채롭게 듣는 편이다. 찾아보면 장르마다 다 좋은 음악이 있거든. 판소리는 ‘사철가’로 입문한 후 자주 들었다. ‘봄아 왔다 가려거든 가거라’는 가사만 봐도 정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지 않나. 이자람 씨가 주연한 뮤지컬 ‘서편제’를 보면서는 어떻게 연기하면서 소리하는지 신기해했었다. 쉽게 접근할 수 없어 (직접 해보려) 시도하지 않았으나 듣는 것은 꾸준히 해왔다.
이번에 한 곡조 직접 부를 만한데, 안 불렀다.(웃음)
처음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켜만 달라고, 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으려면 소리를 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실제로 낙원동에 배우러 가기도. ‘흥부가’ 한 소절을 연습했으나 결론은 안 시켜줘서 다행이라는 거였다! 사실 서예도 살짝 배웠다. 영화 보면서, ‘청이’(김하연)와 ‘학규’(이봉근)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나지 않았나. 내가 출연한 영화 보면서 펑펑 울긴 처음이었다. (웃음) 그 둘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눈물까진 아니고!(웃음) 우리 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효와 연관된 이야기라 그런가. 눈물 나던데… 이번에 새삼스럽게 <심청전>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딸 ‘청이’를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보낸 후 아버지가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 이런 감정들이 소리하는 ‘학규’와 교차 편집되면서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 같다.
그런데 서예는 왜 배웠나.
극 중 붓을 잡는 장면이 있어 배웠는데 편집됐더라. 그래도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않았다면 굉장히 어설펐을 것이고,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실렸다고 생각해봐라. 자신 있게 촬영에 임하려면 대략이라도 좀 알고 가야 한다.
소리도 좋지만, 전국 풍경이 참 정겹더라. 촬영 다니며 서로 정말 친해졌다고.
늘 지방 촬영이라 일정이 끝난 후 만나 술 한잔하곤 했었다. 회식이라고 거창하게 못 박은 것은 아니지만, 방이나 식당 혹은 바닷가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그게 또 대본 연습 등 연기 연습으로 이어지는 거지. 그렇게 눈빛과 대화를 교류한 게 실제로 연기에 크게 도움됐다.
|
나만의 컷을 꼽는다면. 코멘트도 부탁한다.
흠… 나만의 컷까지는 아니고, 후반부 연회장에 들어가기 위해 “나도 양반이야!” 이렇게 난리 친 후 겨우 허가 받는데 정말 완전히 난리를 부렸는데 잘려서 아쉽다. (웃음) 보통 수준의 난리처럼 보이더라. 아주는 아니고 적당히(?) 아쉬운 정도다. 그 장면에서 가야금을 비롯해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소리하는 배우들 모두가 그냥 조·단역이 아니라 해당 대회에서 입상한 경험 있는 특기생 출신이었다. 그 장면뿐만 아니라 극 중 눈에 띄게 소리를 잘하네 싶었다면 정말 유명한 소리꾼이 맞다. 첫 장면에서 꽹과리를 신명 나게 치던 분도 평생 사물놀이를 하신 분이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모아 감독님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드셨다.
1세대 아이돌 출신으로 지금까지 돈독한 멤버십을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드라마, 뮤지컬, 예능, 영화, 연극까지 전 영역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중이다. 선택과 집중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다.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며 일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에 딜레마를 갖고 있다. 여러 영역을 한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해 왔지만, 이제는 한 분야에 집중해 좀 더 깊게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몰라 확언하기 조심스럽지만, 일단 예능은 지금 하는 정도가 적정선이고 연기와 노래는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려 한다.
지난 5월 <렁스>로 연극 데뷔했다. 연기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자기 최면이자 집단 최면에 걸린 듯 그 장면 안에 존재하게 된다. 보통 연기에 입문할 때 눈물 연기를 많이 연습한다. 한데 하다 보면 연기가 아니라 어느 순간 그 상황에 빠져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 순간이 즐겁고 짜릿하다. 특히 연극에서 그런 짜릿함이 극대화된다. 영화나 드라마만큼 연출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 와중에 관객과 호흡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시간 공연이라는 점에서 압박감도 상당하지만, 준비만 충분히 하고 들어간다면 공연 내내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첫 연극인데도 연기 칭찬이 많더라. 가수로서 배우로서 느끼는 칭찬의 무게와 크기가 다를 것 같다.
그룹 ‘신화’는 어릴 때 큰 성공을 안겨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타이틀이다. 당시 내가 체감하는 것보다 성공 속도가 너무 빨랐고 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돌려줬다. 우리가 한 것 이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정말 행복했다. 이후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어떤 선입견과 편견을 떠안고 혼자 활동해야 했고, 냉정한 평가를 받는 입장에 서야 했다. 이전보다 힘들고 준비할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음, 연기력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지 않았나. 대략 기억하기로 이른바 발연기 지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수 출신에 따른 부담감은 이제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신화 ‘김동완’이 아닌, 그냥 배우 ‘김동완’의 연기가 별로던데?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 사실 대차게 욕먹은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은 적도 없다. 색깔 없는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연극하면서 연기에 색깔을 넣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 선배 연기자들이 왜 연극을 강조했는지 42세에 깨달은 거지. 이번 연극도 같은 필라테스 교습소에 다니는 배종옥 선배가 한다고 해 알아본 후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서 하게 된 거다.
42세이군! 40대 들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년에 가평으로 이사를 했는데 뭔가 계기가 있었나.
너무 바쁘게 살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강박증과 불면증이 심했는데 산과 지방을 자주 다니면서 많이 치유됐고, 결국 가평까지 가게 됐다. 도시 생활과 지금 일을 더 잘하고자, 그 준비를 위해 이사 갔다고 보면 된다. 40대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집에 있는 것을 즐기게 됐다는 것? 빨래를 하루 종일 하면서 내가 게으름을 즐길 나이가 됐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무릎이 망가지는 게 걱정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돌아다녔거든. 요즘엔 휴식의 에너지를 깨닫고 있다. 쉬니까 창의적으로 바뀌고, 진중하게 문제를 바라보게 되더라. 화도 덜 내고 말이지. 단 나는 잘 맞지만, 손도 많이 가고 지루할 수도 있어 전원생활이 안 맞는 사람도 많을 거다. 처음 이사 온 후 아파트(빌라) 경비 아저씨가 평소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 절실히 알았다니까! 한 번은 눈이 오길래 귀찮아 쓸지 않았더니 쌓이고 얼어붙어 차를 꺼내지 못한 적도 있었고, 가끔은 죽은 두더지도 치워야 한다.
배우로서 달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또 앞으로 활동 계획은.
배우 김동완이 어색하지 않은 느낌? 그걸로 좋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긴 힘드나 올해 스케줄은 다 잡힌 상태다. 다만 코로나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가평으로 이사한 후 거짓말처럼 불면증이 싹 사라졌다. 무슨 병 걸린 것 같이 잠을 많이 자면서 좀 더 빨리 이사할 걸 싶었다. 어제 작년에 봤던 반딧불을 다시 보니 반갑더라. 흙과 나무 등의 자연을 가까이하는 요즘 생활이 참 좋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Office 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