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개봉 연기와 공개 지연 등 우여곡절을 거친 후 드디어 관객과 만난 <사냥의 시간> 속 박해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시간상으로 먼저 촬영했다) 네 친구와 그를 추격하는 킬러 한 명. 직선적인 서사의 공백과 여백을 영상과 미술, 사운드로 채운 장르성 강한 영화에서 킬러 ‘한’을 연기한 박해수. 그 존재 자체로 서스펜스를 길어 올린다.
(*코로나19 국면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맞춰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1 코로나19로 개봉 지연, 넷플릭스 공개 결정과 연기 등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관객과 만났다. 소감은. 또 극장 개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영화라는 게 온전히 아름답게 관객을 만난다면 최상이겠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안타까웠고 관객의 반응이 매우 궁금했다. 극장 개봉이 아닌 점에 대해서 물론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 영화나 공연 문화 등 산업적으로 변화의 시기가 아닌가 한다. 꼭 하나의 플랫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마음이 크다. 또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하기에 작품과 참여한 배우 모두에 어떤 가능성을 열었다고 본다.
Q2 공개 후 반응을 찾아보고 있나.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당연히 찾아보는 중이다.(웃음) ‘무서웠다’, ‘압도적이다’이라는 반응도 있고, ‘한’(박해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더라.
Q3 ‘한’은 어떤 인물인가. 부족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해하기 위한 팁을 준다면. 또 냉혹한 킬러를 연기한 소감은.
대사도 거의 없고 살짝 조소를 짓는 미스터리한 존재로 장르적 특성상 ‘한’이라는 인물이 최대한 노출 안 돼야 했다. ‘왜’라는 이유와 타당성을 부여하면 공포와 신비감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왜’를 배제하고 인물에 이입하는 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극 중 ‘한’의 방 안 혹은 그의 상처 가득한 몸 등에서 살짝살짝 전사가 드러난다. N차 관람한다면 좀 더 흥미롭게 따라가지 않을까 한다.
Q4 ‘한’이 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외양적 준비는 어떻게 했나.
구체적인 서사는 없으나 그는 오랜 시간 특별 훈련을 많은, 전직 특수 부대 출신으로 전장을 누비던 인물이다. 언제 어디든 그런 전쟁에 익숙한 모습이 나와야 해 총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몸에 익혔었다. 심리적으로 ‘한’ 캐릭터에 들어가기 위해 일기를 쓰고, 칩거하고, 촬영장에서도 혼자 지내며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웬만하면 밝은 곳에 가지 않고, 촬영 후 모니터도 보지 않았고, 실제로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외형적으론 날카롭게 보이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 전장의 총소리, 비명과 외침, 피와 어둠, 탄약 냄새 등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집에 돌아오면 마치 죽은 상태로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두우면서도 야윈 모습을 유지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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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한’이 다 붙잡은 ‘준석’(이제훈)에게 5분간 도망갈 시간을 주는데, 그 행동과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석했나.
일반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그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다. 살인이 일상이고 생존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여왔을 거다. ‘준석’과 그 친구들 역시 마땅히 제거해야 할 인물들인데, 그 대상이 의외의 모습을 보일 때, ‘한’ 스스로 심장이 뛰면서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낀 것 아닐까. 사냥감이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때의 놀람과 그를 쫓을 때의 쾌감이 있을 듯했다.
Q6 ‘준석’에게 도망갈 시간을 줄 때의 ‘한’이 보인 표정과 언행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젠틀하면서 예의 바른 심지어 상냥하기까지 한 느낌이다! 장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인 쾌감에 심취한 잔인한 사이코패스와 180도 다른데, 윤성현 감독의 디렉션인가.
윤 감독님의 세계관과 미술을 보면 알 수 있듯 캐릭터 역시 아주 섬세하게 조각해 놓으셨다. 말했듯 전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살짝 와 닿게 설계하셨다. 가장 경계한 것이 언급한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이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젠틀하지만, 내면은 용암처럼 들끓었으면 좋겠다는 게 감독님의 주문이었다.
Q7 <파수꾼>(2011) 이후 윤성현 감독의 신작인 데다 차세대 주자(이제훈, 안재홍, 박정민, 최우식)들이 함께 해 일찌감치 기대가 컸던 작품이다. <사냥의 시간>이 어떤 영화인지 소개한다면. 또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파수꾼>을 보며 그 섬세한 서사와 정서가 아주 강하게 다가왔었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과 전혀 다른,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영화이지만,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상처, 죄책감, 희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색과 영상, 사운드로 다채롭게 펼쳐낸다.
내러티브가 있는 연기도 쉽지 않지만, 내러티브 없이 함축적으로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 전사가 뚜렷하지 않으니 신마다 정당성을 찾아야 했고, 이때 온전히 감독님을 믿고 갔다. 당시에는 ‘한’이 네 친구를 심판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해서 그런지 현장에 가는 게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면이 어려웠던 것 같다.
Q8 배우들과 호흡은. 또 ‘한’이 아닌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연극은 오래 했으나) 영화에서는 신인과 다름없다 보니 나이는 많지만, 까마득한 후배 입장이다. <고지전>과 <파수꾼>의 이제훈, <족구왕> 안재홍, 단편부터 <부산행>까지 아이콘 같다고 느낀 최우식, 그리고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역할에 완전히 빠져드는 박정민까지 평소 모두 존경하는 배우였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촬영할 때는 어두운 분위기에 취하려 주로 홀로 있다 보니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끝난 후에는 정말 친밀해졌다.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처음 영화를 볼 때 내 연기보다 네 친구가 먼저 들어오고 그들에 온전히 이입했다. 두려워하고 슬프고 안타까워하는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더라.
만약 ‘한’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를 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하라고 한다면, ‘준석’(이제훈)에 도전하고 싶다. 그가 보여준 감정의 변모와 액션 없이 표출하는 공포가 영화의 서스펜스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본다. 이제훈 배우가 정말 잘 해줬다.
Q9.개인적으로 명장면을 꼽는다면. 또 혹시라도 편집됐거나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네 친구가 처음 도박장을 털기 직전 자물쇠를 부수는 장면을 좋아한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데 이후 그들이 행한 그릇된 선택이 죽음의 추격이라는 대가로 돌아온다는 신호탄 같기도 하고 아주 쫄리는 장면이다. 아쉬운 건 후반부 ‘한’이 총 맞고 걸어가면서 살짝 그의 눈을 비추는 장면이 있었다. 연기하면서 신비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감독님도 좋다고 하셨는데 아주 짧게만 나왔더라.(웃음) 총에 맞은 채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과연 닥쳐온 죽음을 두려워할지, 안식을 얻었다고 편안해할지 정말 복잡미묘한 감정이 ‘한’의 눈에 담겼는데, 자칫 그를 처연하게 묘사할 수 있어 편집한 것 같다. 다행이면서 살짝 아쉽다.
Q10.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한 즐거움을 꼽는다면.
요즘 설경구 선배와 영화 <야차> 촬영 중이다. 선배와 함께하는 소주 한잔, 맥주 한잔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지방 곳곳을 다니는 중인데, 최근 공기가 맑아져서 그런지 별이 많이 보인다. 별 보며 편의점 앞에 앉아 맥주 마시는 그 소소한 기쁨! 또 상추를 심었는데 너무 빼곡히 자라 어떻게 솎아낼지 보면서 기쁘게(?) 고민하곤 한다.
2020년 4월 2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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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