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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낙천주의자, 모든 것이 새롭다 <클로젯> 김광빈 감독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옷장 속으로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상원’을 연기한 하정우는 꽤 오래전부터 차기작 <클로젯>을 아끼는 후배의 감독 데뷔작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졸업 작품으로 품앗이처럼 작업한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당시 입대 하루 전날까지 현장을 지키던 성실한 후배라며 애정을 드러냈었다. 학생과 신인 배우로 언젠가 기회 되면 상업 영화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던 선·후배는 <클로젯>으로 당시의 희망을 실현했다.

좋은 배우와 함께한 작업도, 무대 인사도, 개봉도, 인터뷰도 새롭고 재미있다는 김광빈 감독은 열정적이고 꽤 낙천적인 인상이다. 평소 좋아하는 장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는 김 감독은 벽장(옷장)이라는 서양적 느낌 강한 오브제와 ‘어둑시니’ 등 한국 토속적 악귀를 색다르게 조합한다. 익숙한 듯 낯선 공포에 가족과 관계를 맞물려 용서, 화해, 성장의 드라마를 충실하게 펼친다.


<클로젯> 관련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영화의 출발에 관해서다. 자다가 눈을 뜨니 옷장 문이 살짝 열렸고 마침 ‘타닥’ 생활 소음이 들리는데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소재로 써보자 했다.

첫 장편인데 영화 관련 주변 평은 어떤가. 또 거기에 수긍하나.
호불호가 심한 장르라 영화 역시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좋게 보셨다면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고 감사하다. 반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 구구절절 변명보다 겸허하게 수용해 개선해 나가려 한다. 제각기 시선이 다르니 다양한 의견 또한 당연한 것 아닌가.

공포·호러 장르 마니아라고 들었다. 그 입장에서 영화를 자평한다면. (웃음)
대학교 때부터 시나리오, 과제, 간단한 영상물조차 호러나 공포물을 찍기는 했으나 마니아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일반인보다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웃음) 오랫동안 품었던 영화라 아직 객관화가 안 돼 평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장르적인 특성에 몰입해 쾌감을 끌어올리기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어떻게 접목할지에 더 초점을 뒀다.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사전 정보 없이) 백지상태로 보시면 된다. 그러면 여러 가지를 느끼고 한 번쯤 주위를 돌아볼 영화가 될 거다.

개인적으로 미술(영상)과 전체적인 색감과 톤이 참신했다. 하지만 익숙하다 혹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시선도 있다. 미술(영상) 콘셉트는.
우리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일부러 참고하거나 따라한 것은 아니다. 캐릭터적으로 공간을 꾸미자는 정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들어갔다. 옷장 속으로 사라진 어린 딸 ‘이나’(허율)의 방에 있는 왜곡된 인형들로 상처받은 아이들 마음을 표현하려 했고, 불에 탄 흔적으로 악귀가 된 ‘명진’(김시아)의 사연과 연결했다. 아빠 ‘상원’(하정우)이 딸을 보내려 했던 아트 캠프를 이계 공간에 재현했고 때때로 그가 지닌 트라우마를 드러냈다. 또 ‘명진’이 엄마와 사라지는 시퀀스에서는 토속적인 분위기 즉 민담이나 전설의 고향 속 한 장면처럼 연출했다. 안개 숲속 어딘가 그들이 안식할 장소로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했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어둑시니’의 존재와 등장도 새롭더라.
시나리오 단계에서 아이들 귀신이 필요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지 검색했었다. 민담에 ‘어둑시니’와 ‘두억시니’가 나오더라. ‘어둑시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그 두려움을 먹고 몸이 커지는 요괴다. 어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눈이 마주치면 공격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우리만의 모습으로 창작해 보고자 CCTV로 그들을 관찰하는 것까지 촬영한 후 후반 작업을 통해 이빨 디테일, 얼굴 표정 등을 따로 CG로 입혔다.

굿 장면도 그렇고 퇴마사 ‘허 실장’(김남길)이 벌이는 퇴마의식도 익숙한 듯 낯설었다.
무에서 유를 창작하기보다 실제 행하는 의식에 독창성을 부여했다. 오프닝의 굿 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뒤집힌 바지와 신발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허 실장’이 사용하는 부적도 원래 사용되는 것들을 조금 비틀어 다르게 꾸몄다. 그가 외우는 주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자문과 저작권이 있는 경우 모두 허락받아 살짝 변형했다.

어색한 관계의 아빠와 딸이 갈등하는 가운데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등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며 초반 공포를 조성한다. ‘허 실장’(김남길)이 등장하며 영화에 웃음기가 가미되는데 캐릭터의 톤과 무게감에 고민했을 것 같다.
그러잖아도 캐릭터의 톤을 잡는 게 힘들었다. 영화 속 퇴마사들이 대체로 진지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허 실장’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전환되는 게 좋겠더라. 그렇게 가는 게 관객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줄 거로 생각했거든. 즉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는데 어쩐지 가벼운 모습이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극 중 ‘상원’(하정우)도 관객도 모두 의심하는 거지. 색다르게 접근하고 싶기도 했고 또 그래야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겠더라. ‘상원’이 딸을 찾으러 이계 공간을 헤맬 때 ‘허 실장’은 현실에서 의식을 진행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목숨을 지킨다. 점차 묵직하고 진지한 모습인데 처음부터 그랬다면 너무 숨 막혔을지도. 톤의 업·다운을 여러 버전으로 상상했는데 지금에 만족한다.
 <클로젯> 촬영 현장
<클로젯> 촬영 현장
 <클로젯> 촬영 현장
<클로젯> 촬영 현장

‘상원’역의 하정우 배우가 주연뿐 아니라 제작에 참여했다. 극 중 딸 ‘이나’(허율)가 그린 그림을 손수 그리기도 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다.
내가 설명하면 툭툭 아이디어를 던져주곤 하셨다. 가령 북유럽 스타일은 어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거기에 맞춰 푸른 톤, 의상, 가구 등으로 확장해 나갔다. 선배가 경험이 많아 내 아이디어를 듣고 피드백을 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 덧붙이는 식이다. 그렇게 주고받는 재미가 컸다.

상원과 이나 즉 아빠와 딸 관계의 빌드업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부성이 뚜렷이 안 느껴졌는데 나중에 목숨을 걸고 찾으러 간다는 게 일견 모순돼 보이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상원의 선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상원 자체가 그런 캐릭터다. 일에만 매달려 가정에 소홀했던 가장으로 아내가 죽고 딸과 둘이 되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부족한 어설픈 아빠다. 후반부 그의 모습에 방점을 두고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려 한 설정인데 빌드업이 약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극 중 ‘명진’은 굉장히 강력한 힘을 지닌 악귀인데, 그의 퇴장에 다소 의문이 들었다. ‘엄마’라는 강력한 키(key)가 등장했어도 그렇다.
정말 고민했던 지점이다. 결론은 우리 영화가 누군가를 무찌르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였다. 어른이나 부모의 이기심에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게 뭘까. 변명일까. ‘미안하다’라는 진심 어린 사과 아닐까. 그 한마디조차 안 하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명진’이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데 그게 순수한 원래의 모습일 거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방점을 찍고 결말을 가져갔다.

하정우 배우가 <용서받지 못한 자>(2005) 작업 당시 동시 녹음 스태프로 군대 가기 전날까지 현장을 지킨 성실한 후배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칭찬하더라. 상당히 오래전(?)부터 들었던 얘기다. 이후 단편을 거쳐 첫 장편을 내놨는데 소감은.
단편을 찍다가 상업 장편을 하니 일단 소통 방식이 아주 달랐다. 논리 정연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는데 다행히 배우와 스태프가 워낙 노련해서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 (정우) 선배의 경우 이러이러하게 디렉팅하면 전달이 잘 된다면서 여러 팁을 주셨다. (간섭 아닌) 진정한 조언이었다! 또 영화의 규모에 비해 CG와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결과물을 보고 잘했다고, 그럴싸하다고 한마디씩 해줘서 뿌듯했다. 좋은 배우들과 작업하고, 개봉에 앞서 언론 시사를 열고, 무대인사를 다니고 또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 모두 첫 경험이라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것 같다. (웃음)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순제 69억이다. 이 정도로 기술력을 높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스태프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영화에 입문한 계기는.
원래 공대에 진학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쳤다. 성적을 받고 과를 선택해야 했다. 내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니 영화 보는 거더라. 물론 씨네필처럼 진지하게 접근하는 건 아니고 할리우드를 비롯해 재미 위주의 상업 영화를 주로 봤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차피 늦은 것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기로 했다. 안되면 다시 시험 보면 되는 거고! 막상 가보니 동기들은 유명한 영화 고전과 감독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데 나만 모르더라.(웃음) 무거운 장비 들고 촬영 나가도 그런가 보다 했고 시나리오를 직접 써야 한다고 해서 쓰는 등 공부하며 막연하게 영화감독을 하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형들이랑 작업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용서받지 못한 자>도 그렇게 참여한 거다.

2004년 이후 입봉까지 긴 시간을 버텨(?)낸 것 아닌가.
예고편 편집 등 아르바이트도 하고, 좋은 영화 보면서 혼자 습작하며 지냈다. 중간에 연출에 대한 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영진위에 지원해 운 좋게 단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감독을 한번 해보고 싶어 버텨왔다. (웃음)

끈기에 박수를! 마지막 질문이다.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아무 약속도 없는 날에 누워서(눕는 게 중요하다) TV 보다 잠들기도 하는 그런 한때, 편하게 아무 생각 없는 그 멍한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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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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