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댓글 조작,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요즘과 극 중 모습이 매우 유사하다. <광대들: 풍문조작단>(이하 <광대들>)의 관람 포인트는.
우리 영화의 포커스가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을 지닌 자들이 여론을 조성하고 이용하는 모습에 맞춰져 있다. 촬영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만약 현 상황을 대놓고 꼬집었다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극 중 풍문 조작하는 세태를 꾸짖는 이가 누군가. 가장 천한 계층인 광대다. 당대 최고 권력자인 ‘한명회’를 중심으로 한 공신 일당이 광대들에게 수모를 당한다. 그런 데서 오는 통쾌함이 있다. 또 풍문을 연출하고 시연하는 과정에서 오는 여러 캐릭터의 팀플레이와 사극 특유의 보는 재미도 크다.
<해빙>(2017), <독전>(2018) 등 이전 작들과 달리 <광대들>은 원톱이나 투톱이 아닌 쟁쟁한 여러 선배와 함께했다.
손현주, 박희순, 고창석 선배를 비롯해 모두 착하고 인자한 분들이라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한 번은 손현주 선배의 가방을 불시에 열어 본 적이 있다. 너무 완벽해 보여서 가방 속에 뭔가 꼬투리 잡을 거리가 있기를 바랐는데…뭐가 있었는지 아나?
뭔가. (웃음)
글쎄 괴테의 책이 있더라. 놀랍지 않나?
상상도 안 된다! 후배들에겐 당신 역시 선배 입장이다. 조진웅은 어떤 선배인가.
선배에겐 깍듯하지만, 후배에게는 나름.. 아마 무서워할 것 같다. 그런데 자꾸 후배들이 술 마시고 찾아온다. 아, 좀 안 왔으면! 고민 있다고 오는데 안 듣고 싶다고 말하고 그냥 한잔 마시고 가라고 등 떠민다. 내가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참 왜 자꾸 오는지. (웃음)
음. 고도의 자랑이었군! (웃음) 솔직하게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5점이다. 1.5점이 빼진 것은 전부 나 때문이다. 첫 장면을 나로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농담이고.. 독하고 센 영화를 보다 보면 순하고 착한 영화가 보고 싶지 않나. 또 전체 관람가니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고 말이다. 주변에 모니터링을 나름 해봤는데 미취학 아동들은 ‘세조’(박희순)가 형수의 귀신 보는 장면을 좀 무서워하더라. 중고등학생부터 20대까지는 아주 즐거워하고, 30대는 고생하셨겠다며 웃더라. 또 40대는 아이들과 함께 보겠다고 했고, 그 이후 연령대는 귀엽다가 묵직했다는 반응이었다.
요즘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다. <광대들: 풍문조작단>의 경우 사극에 규모가 커서 제작비가 꽤 돼 보인다.
한 300만 정도 관객이 들어야 한다. 순수 제작비가 80억 이상이거든. 참 영화 한 편 만드는데 돈이 많이 든다. 100억이면 생수 공장의 라인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비록 쫄딱 망하셨지만, 아버지가 생수 공장을 운영하셨었기에 정확히 안다!
배우 입장에서도 예상보다 흥행이 저조하면 참 난감하겠다.
당연하다. 흥행 실패한 <해빙>(2017)의 제작자가 현재 워너브라더스코리아의 최재원 대표셨다. 정말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물심양면 이끌어 주는 분이다. 후배들도 엄청 따르고 배울 게 아주 많은 분인데, 이번 <광대들>도 워너에서 투자했다. 정말 잘 돼야 한다.
<해빙>(2017)의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는 의사 ‘승훈’, <독전>(2018)의 마약 수사에 사활을 건 형사 ‘원호’에 이어 이번엔 광대의 리더 ‘덕호’로 풍문을 조작한다. 요 근래 가장 밝은 역할인 것 같다. 캐릭터가 지닌 특징에 따라 연기 방향도 달라질 텐데 어떻게 준비하나.
어떤 캐릭터든 어차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건 마찬가지다. <해빙>이 그리 비싸지 않은 차로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 거였다면 <광대들>은 아주 튼튼한 말을 타고 경부 타고 갔다 대전에서 빠졌다 다시 고속도로 타는 등 이곳저곳 들리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타고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체감이 다 다르다. 또 역할에 따른 신체적인 변화가 당연히 따른다.
멋진 비유인데 좀 더 풀어서 얘기한다면. (웃음)
보통 캐릭터가 상징하는 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독전>의 ‘원호’는 마른 장작 같은 느낌이었다. 불이 붙으면 확 타오를 준비가 돼 있지만 현재는 푸석푸석 아주 메마른 상태를 생각했고 그렇게 외형과 심상을 맞췄다. 반면 이번 ‘덕호’는 곰 같은 느낌이다. 무서운 곰 말고 ‘패딩턴’ 혹은 ‘푸우’ 같이 푸근한 모습의 곰. 공신들을 향해 마지막에는 포효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매 작품 교통수단과 상징물을 정하면 연기 노선이 명확해지겠다.
솔직히 말하면 잘못 정해져 딴 길로 샌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다시 방향을 재설정한다. 어떨 땐 전체 촬영 일정을 스톱하고 전반적으로 재점검한 후 차종과 도로를 바꾸기도 한다. 또 이미지를 더하고 빼기도 하고.
<광대들>은 어떤 편이었나.
이번엔 단순한 플롯과 패턴 덕분에 신명 나게 달려갔다. ‘덕호’를 중심으로 광대들이 풍문을 조작해 지지율을 올리고 그에 따른 이익을 누린다. 그러다 결국 각성해 악의 무리를 응징하는 게 영화의 목적지인데 지점지점 아주 명확했다. 감독님이 스마트하게 이끌었고 선배들이 원체 잘한 덕분에 막힘없이 쭉쭉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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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광대들의 리더를 맡았는데 현장에서도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들었다.(웃음)
촬영장에선 나이나 경력 상 딱 중간 위치라 다리? 역할 했다. 한창 더울 때 촬영해 뭐든 잘 먹어야 해서 회식 시간과 장소 등을 조율하는데 각별히 신경 썼다.(웃음)
캐스팅 제안받고 본인에게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나.
전공 분야인 것 같았다. 신명 나게 한 판 놀면 되니 말이다. <독전>처럼 센 영화는 전공 분야까지는 아니지만, 해보자 하고 들어가 온몸으로 부딪치면 된다. 나와 진짜 안 맞는 DNA는 멜로나 로맨스 드라마다. 왜냐면 깊이 들어가는 것을 넘어 후벼 파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못 하겠더라. 넘쳐흐르는 감정 표현이 힘들다. 또 오락성 강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다지 피 나오지 않는 영화를 하고 싶던 참이었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나중에 태어나면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한 편은 있어야지!
흠..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거로 아는데, 그런 격렬한 감정을 거쳐 한 것 아닌가.(웃음)
그런가! 내가 나름 감정적으로 합리적? 이고 경제적인 사람이다. 지금 문뜩 생각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조) 승우가 <마스크 오브 조로>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을 때인데 마침 아내와 같이 밥 먹으러 가던 참이었다. 아내가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해서 승우에게 전화해 보러 가도 되냐고 물으니 오라는 거다. 공연을 보는데 승우가 너무 잘하더라. 정말 그는 천재다! 나 역시 연극을 오래했기에 무대와 공연 모습을 열심히 보거든. 그렇게 잘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글쎄.. 아내가 만난 지 10년 만에 뮤지컬을 처음 본 거라면서 울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런 거 일일이 기억하지 말라고. 다만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잊지 않고 챙기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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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라는 데 그다지 공감되진 않지만, (웃음) 앞으로 당신의 후벼 파는 멜로 연기에 기대가 높아진다. 극 중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후반부 금강산에 부처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좋았다.
나도 그 장면 좋아하고 촬영할 때도 재미있었다. 허공을 쳐다보면서 연기한 건데, 나름 세심하게 시선 높이를 조절한 거다, 나중에 CG로 완성한 모습을 보니 멋있더라. 광대들이 이적 현상 연출에 사용하는 장치들을 현장에 다 설치해 놨었는데 아주 재기발랄한 느낌이었다. 김주호 감독님이 그런 데 비상한 재주가 있더라.
‘한명회’(손현주)를 중심으로 한 공신들과 세조가 대립하는 후반부 회맹 장면 역시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실 촬영할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놀랍더라. 촬영하느라 여러 선배가 아주 고생하셨고 중심을 잘 잡아 주셔서 힘 있는 장면이 된 것 같다. 회맹 시퀀스에서 살짝 삐끗했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스워? 질 뻔했는데 균형을 맞춰 주셔서 감사하다.
배우 조진웅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특정하긴 힘들지만, 영화 속 광대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기 싫으면 안 하고 돈보다 하고 싶은 것을 좇으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막상 그렇게 살기 힘들지 않나. 이번 <광대들> 시나리오 받고 약간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업, 장르 영화를 하고 있고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순수 영화와 멀어지고 관심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내 마음을 외면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나 자신을 자각하게 해준 영화가 <광대들>이다. 중구난방인데 결론은 잘못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배우 나아가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비우는 작업이 필요할 거다. 재충전은 주로 어떻게 하나.
털어내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주로 여행을 가는데 차라리 집에 있지 할 정도로 가서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다. 아주 가끔 걷고 거의 숙소에 머문다. 그렇게 비워내고 다음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전 캐릭터를 지운다. 개봉 즈음 홍보하려면 다시 공부? 해야 할 정도로 깨끗이 말이다. (웃음) 그렇게 안 하면 다음 거를 잘 못 하거든.
그간 제일 안 지워졌던 캐릭터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의 ‘무휼’이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10월 중순에 이규만 감독과 <경관의 피>에 들어갈 것 같다.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또 설경구 선배와 함께한 <퍼펙트맨>은 10월에 개봉한다. 부산 출신 깡패역이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하다.
마지막 질문! 요즘 관심사는.
<경관의 피> 들어가기 전에 여행 가고 싶다. 내 머리로 내 가슴으로 전력을 다해 재미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털고 왔어야 했는데 최근에 영 시간이 안 돼서 못 갔거든. 또 오늘 있을 관객과의 GV가 기대되고 설렌다.
2019년 9월 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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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