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단단하고 유연한 판사로 돌아오다 <배심원들> 문소리
2019년 5월 22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008년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참여 재판 시행을 결정한다. 비주류 여성 판사 ‘김준겸’은 연령과 성별 그리고 직업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선정된 8인의 배심원과 재판부를 이끌어야 할 중책을 맡는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에서 청순하고 묘한 매력을 뽐냈던 문소리가 새 옷 갈아 입고 <배심원들> 속 판사 ‘김준겸’으로 관객을 찾는다. 인물을 부각할 만한 구체적인 전사도 감정 표출과 행동도 없기에 연기의 방향과 톤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문소리는 털어놓지만, 목소리 그리고 눈빛만으로 법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8인의 배심원들을 정의의 방향으로 이끄는 그 모습은 대중이 바라고 기대하는 판사 그 자체다.

<배심원들>은 2008년 처음 시행한 국민참여재판을 모티브로 한다. 실화 반영 정도는.
2008년경 국민참여재판 중 존속살인 사건 즉 극 중 사건과 약간 유사한 사건이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꼭 그 사건만이 아니라 여러 사건을 참고해 각색했다고 들었다. 홍승완 감독이 판결문을 540여건 읽고 대학교에게 청강까지 했다고 하더라. 그만큼 시나리오가 원체 법리에 맞게 꼼꼼히 쓰여 있었다.

일찌감치 캐스팅돼 영화 제작이 진척되는 동안 기다렸다고 하던데, 어떤 점에 그토록 끌렸는지.
여러 사람이 만나 한마음이 돼 승리 혹은 결실을 얻는 결말이 좋았다. 사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신인 감독이 이 많은 인물을 컨트롤할 수 있을지, 진두지휘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기우였다. 또 시나리오도 촘촘하지만 홍승완 감독의 더 놀라운 능력은 캐스팅이라고 본다. 어떻게 그렇게 요소요소 캐릭터에 맞게 캐스팅했는지! 촬영을 끝내고 난 후 다양한 연령대가 정말 좋은 팀워크로 뭉쳐 마치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공연을 한 느낌이 들더라. 그런 모습이 영화에 잘 녹아든 것 같다.

첫 국민재판을 담당한 판사 ‘김준겸’(문소리)을 맡았는데, 판사가 돼 보니 어떻든가. (웃음)
재미있었다. 캐릭터를 만나 탐험해가다 보면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그런 게 많을수록 흥미롭다.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캐릭터를 다각적으로 고민하는데 그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김준겸’(문소리)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배심원들과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라 사법부와 배심원 사이에서 조율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법대 출신에 여성 그리고 형사재판만 18년 담당, 어떻게 보면 권력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워커홀릭으로 불릴 만큼 자신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자긍심에서 오는 단단한 강단을 지녔다. 위에서 뭐라 하든 혹은 세간의 관심에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동시에 자신의 판단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겸비했다. 그럼에도 배심원들의 눈에는 권위적이고 냉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김준겸’이기에 배심원들이 하는 요구의 상당 부분을 들어주고 반영하면서 극 중 모습처럼 재판을 끌고 갔다고 본다.

여성 판사를 중심에 놓은 작품이 그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임을 강조하면 캐릭터가 지닌 깊이가 덜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인간 김준겸을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성 판사로서의 고충이나 워킹맘으로서의 모습이 저절로 느껴질 거로 생각했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한 인물을 드러내거나 강조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사법부의 안일한 모습과 여성이 지닌 유리천장 등의 문제를 살짝 건드리기만 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 같다.
맞다. 그 정도로만 언급해도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가 평범한 배심원들이 의식의 변화를 겪고 그들이 일궈낸 결과물에 중점을 둔 만큼 그 외의 문제들에 깊이 들어가긴 힘들었다.
 <배심원들> 스틸컷
<배심원들> 스틸컷

인물의 전사를 드러내는 요소가 거의 없는데 김준겸을 표현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또 동작보다 대사와 눈빛 그리고 표정만으로 대부분의 연기를 소화해냈다.
처음에는 김준겸을 조명한 신이 몇 장면 있었지만, 편집됐다. 초반엔 걱정되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로 확신했고 그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일전에도 밝힌 적이 있는데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기보다 내 안에 깊게 넣어 조금씩 배어 나오게 하려고 했었다. 행동의 도움 없이 감정을 전달해야 했기에 사건 기록을 넘기는 속도, 목소리 톤, 템포와 리듬 등 세세한 것에 신경 썼다.

또 대부분 앉아 있는 신이 많아 움직일 수 있을 때 미리 충분히 움직여 놨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일부러 더 걷고, 점심 빨리 먹고 한쪽 구석에서 5번 배심원 역의 조한철과 탱고를 추는 등 열심히 땀을 빼곤 했었다.(웃음)

연기 준비하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했는지.
일반 재판과 국민참여재판 모두 방청했는데, 국민참여재판이 실제 많지가 않아 아직 자리 잡았다고 하기엔 시기상조더라. 또 영화에서 묘사되듯 배심원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일 뿐 판결에 이르지 못한다. 현재 배심원 판결에 효력을 갖게 하자는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 중으로 알고 있다. 배심원보다는 판사가 또 판사의 연차가 높을수록 유죄 판결 선고율이 높다고 들었다.

연기하는데 참고하기 위해 판사들을 만났을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조언을 하든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표현법은 다르지만 (판사 역시) 다 비슷한 사람이라는 거? 판결문 쓰는 문체도 제각각이었다. 사실 어떤 정해진 틀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개인에 따라 은유적으로 혹은 아주 간결하거나 반대로 만연체 등 아주 다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내 스타일로 접근해도 좋겠다 싶었다.
 <배심원들> 스틸컷
<배심원들> 스틸컷

자세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판결하는 장면이 좋았다.
그 장면을 마침 크랭크업한 날 촬영했는데 마지막까지 연기 톤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했었다. 전반적인 것은 미리 생각해 놨지만 미묘한 템포나 톤을 끝까지 결정하지 못했었다. 감독님은 ‘김준겸’이 마지막 선고 때 그간 누르고 눌렀던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칼을 휘두르길 바랐는데 나는 그가 초심을 떠올리며 좀 더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더라. 여러 사람을 품는 모습이 더 힘있게 보일 거로 생각해 제안하니 잠시 고민하더니 감독님 역시 수긍하셨다.

극 중 마음을 치는 대사가 여럿 등장한다. ‘김준겸’이 8번 배심원(박형식)에게 무고한 사람을 보고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부분, ‘김준겸’의 파일에 새겨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야 한다’는 형사재판 원리 등이 그렇다.
동감! 그런데 대사가 명언 같고 좋으면 연기하기가 힘들다. (웃음) 그래서 주문과 판결문을 어떻게 어떤 톤으로 읽어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8번 배심원을 제외한 다른 배심원들이 처음에는 유죄를 단정하다가 점차 결정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과 정의를 향해 반응하는 모습이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더라.
그 모습에 ‘김준겸’ 역시 초심으로 돌아갔던 거로 본다. 실제로 배심원에 선정된 사람들이 배심원이 뭔지도 잘 모르고 왔다가도 실제 재판에 참여하게 되면 몰입하고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연기와 연출 그리고 강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극 중 ‘김준겸’ 만이 아니라 당신도 워커홀릭 아닌가. (웃음)
이제 강의는 그만하려고 한다. 워커홀릭이라기보다 영화일이 좋으니 학교를 그만두면 제작과 기획에 좀 더 전념해보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영화사 연두를 가지고 있으니 흥미로운 작품이 있으면 재미있게 해보려는데 아직 구제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

연기와 연출은 아주 다른 분야인데 연출의 매력은.
정말 많이 다르다. 비유하자면, 헬멧을 써 숨이 막혀오는 상황인데 배우는 그 헬멧을 벗어버리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 컨디션 조절이 가능한데 감독은 점점 더 조여와 숨을 쉴 수가 없게 되는 느낌이다. 또 배우는 캐릭터 뒤에 있을 수도 있지만, 감독은 자신을 훨씬 많이 드러내는 작업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배우 혹은 감독으로서 목표 혹은 지향점은.
내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어떤 지향점을 두고 그곳에 도착하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 길을 즐겁게 탐험해 나가고 싶다. 그래서 영화도 연극도 드라마도 영역 구분 없이 하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 요즘 당신을 웃게 하는 건 무언가. (웃음)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집에 강아지들과 아이들 보면 마냥 행복하고 웃음이 난다.


2019년 5월 2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CGV 아트하우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