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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서, 진실해서, 미워할 수 없는 <악질경찰> 이정범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빼도 말이 다 되는데 굳이 왜 넣으셨어요?” <악질경찰>을 언론과 평단에 처음 공개한 날 이정범 감독에게 날아들던 질문 세례를 기억한다.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교무실에 불려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가 무슨 질문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한다는 투다. 목소리가 슬며시 떨리고 눈빛이 여러 차례 허공을 향했지만 그는 “살아 돌아온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덤덤히 고백했다. 기실 정말 궁금했던 건, 그렇게 미안했던 소녀 ‘미나’(전소니)를 영화 속에서 왜 그토록 허망하게 떠나보냈는지다. 일각에서 다시 한번 ‘구원자 서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열혈 남아>(2006)의 ‘김점심’(나문희)과 <아저씨>(2010)의 ‘정소미’(김새론)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남주인공을 보듬는 모성애를 보여주거나, 자기희생을 통해 남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존재였다. 세월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악질경찰>이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 비리 경찰 ‘조필호’(이선균)는 세월호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미나’의 죽음 후에야 비로소 자기 인생의 방향성을 조정한다. 이 감독은 “내 영화를 봐오던 이들이 이번에는 ‘너무 나갔다’고 보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야기를 밀어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겠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접한 언론과 평단이 적지 않게 놀란 듯하다. 비리와 폭력, 권력 유착이 일상적으로 전시되는 상업영화에서는 예상하기 쉽지 않았던 세월호 이야기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놀란 정도면 다행이다. 그것보다 더 거칠게 표현한 분들도 있다.

더 많은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 순간이라고 본다.
철저하게 예상한 반응이다. 영화를 만들 때부터 내부에서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영화보다 편집 과정을 6개월 정도 더 거쳤다. 감정을 너무 밀어붙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거나, 전반적으로 과하게 느껴진다는 주변의 조언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리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활동하는 무대는 안산시 단원구다. 그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세월호 희생자를 친구로 둔 고등학생 ‘미나’(전소니)를 만난다.
<우는 남자>(2013)를 다 찍고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그 일’이 생겼다.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가 개봉했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산과 들로 떠돌다가, 단원고를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 약간의 죄의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는 단원고 교실 등 참사와 관련한 실제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면이 많다.
아마 그곳에 실제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매체에서 보도하는 세월호 이야기와 실제 장면은 다른 측면이 있다. 이렇게 많은 추모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 영화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
살아 돌아온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취재하면서 그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알았다. 어른으로서 사죄하고 싶었다. 5년 만에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됐고 이제는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된 그들과 만나게 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극 중 살아 돌아온 아이는 ‘미나’다. 어른들의 보살핌 없이 거친 세상에 남겨진 듯 보이는 그는 세월호 희생자인 친구의 옷을 입고 다닌다.
안산에 가보면 유가족을 알아보는 게 정말 쉽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당신들의 연령과는 안 맞는 아디다스 티셔츠나 나이키 후드티를 입고 다닌다. 아이들이 남겨두고 간 옷이다. <악질경찰>에서 표현한 세월호 관련 이야기에는 과장도, 상상력도 없다. 모두 취재와 검증을 통해 끌어다 쓴 것들이다.

언론시사회 당시 투자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기획 시점을 돌아보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나리오가 2015년 11월에 나왔다. 광화문의 세월호 방명록에 세 번 정도 사인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주요 투자사에는 아예 시나리오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김조광수 대표의 청년필름과 공동제작을 하면서 그가 소개해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최재원 대표를 만났다. 아무래도 (한국 주요 투자사보다는) 자유로운 입장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인 이유로 투자가 어려웠다면 캐스팅 역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완전 난항이었다. 큰 일 나요, 다쳐요, 세월호 얘기를 왜 넣어요? 같은 말을 하는 배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저 알겠다고 답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데 (이)선균이 만큼은 너무나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성대모사 하듯) “형, 이게 무슨 세월호 영화야~”


당신, 지금 이선균 목소리를 흉내 낸 건가…(웃음)
(웃음) 이 친구는 내가 단순히 세월호를 소재로 쓰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다. (이)정범이 형이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라는 걸 알아봐 줬다. 그게 소름 돋을 정도로 고마웠다. 이선균과 화학 작용이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만 거의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선균이 연기한 ‘조필호’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그의 직업을 왜 경찰로 설정했나.
형사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지리멸렬한 사건을 가장 먼저 겪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는 소재를 다루는 이들이다. 안산이라는 도시에서 형사 생활을 하는 분들은 조금 더 특수하다. 희생된 아이들, 세월호 유가족, 그들을 대하는 보수 단체와 관련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그분들의 시선이 필요했고, 여러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주인공 ‘조필호’의 직업이 경찰이 됐다.

그는 ‘미나’와 만난 뒤 일종의 각성을 한다. 일각에서는 <아저씨>에 이어 또다시 여성이 남성을 구원한다는 ‘구원자 서사’라는 지적도 있는데.
요즘처럼 젠더 관련 문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 어머니, 사랑했던 여자 등 많은 여성에게 영향을 받으며 컸다. 마치 <열혈 남아>의 나문희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들 덕분에 ‘영글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고맙다. 아무래도 내 전작에 그런 생각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영화를 자주 본 분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살아 돌아온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정작 ‘미나’의 마지막은 허망하다. 연출자로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듣고 싶다.
‘미나’의 마지막은 찍기 직전까지도 토론과 논쟁이 이어진 신이다.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아이를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하게 해야 했냐고 묻는다면,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미나’는 극 중에서 내가 생각한 유일한 어른이다. 비록 훔친 돈일지언정, 그 돈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써야 한다는 걸 알고 행동한다. 그런 그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너희들 같은 것도 어른이냐”는 것이다. 그 상황을 마주한 관객이 주의를 집중하고 감정을 환기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조필호’를 만나지 않았어도 ‘미나’가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미나’ 캐릭터를 연구할 때 성북동 미혼모의 집에 머무는 이들을 취재했다. ‘미나’는 아마 그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고 극 중에서는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설정이다. 학교는 그가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백안시하고, 반 평균이나 깎아먹는 아이 취급한다. 어떤 사건이 닥치지 않았어도 이미 칼 끝에 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 잔혹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면면을 보면 세월호 이외의 취재도 많이 곁들인 것 같다. 불법 산부인과 장면 등이 그렇다.
안산이라는 도시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곳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임신을 해도 산부인과에 가지 못한다. 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무허가 병원 시설, ‘야매 산부인과’ 다. 극 중에서는 바로 그곳에서 ‘조필호’와 ‘미나’가 서로를 마주 본다. ‘조필호’는 ‘미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고, ‘미나’는 ‘조필호’를 처음으로 어른으로 보게 되는 장면이다.

여러모로, 사회적 취약 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관한 관심이 깊어 보인다.
흔히 말하는 사회에서 ‘놀던’ 녀석들에게 관심이 많다. 어쩌면 굉장한 애정이 있는 편이다. 아마 어린 시절 내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에서도 계속해서 상처받은 남자 이야기만 하지 않았나. 계속 자기복제를 해 가며 내 이야기만 한 셈이다.

자기 복제라… 당사자가 하기에는 꽤 용감한 고백이다.(웃음)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좀 벗어난 것 같다. 굳이 내 얘기가 아니어도 되고, 꼭 액션이나 장르 영화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부드러운 드라마로도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겠다는 걸 처음으로 느껴보는 요즘이다.

축하해주고 싶은 일이다. 꽤 멋있는 변화라고 본다.
이미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고 바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굵직한 메시지 정도를 미리 들려줄 수 있을까.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갈수록 꼰대가 돼 가는 건지…(웃음) 가끔은 말 많은 노인네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흔히들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이곳에서 가장 살기 힘든 건 청춘인 것 같다. 10대와 20대가 봤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청춘물을 만들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개봉 전 세월호 유가족께 먼저 <악질경찰>을 보여드렸다. 그 다음날쯤 한 아버님이 문자를 주셨다. 고맙다고 말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쓸데 없이 욕도 폭력 장면도 많은 작품이라 보기 힘드셨을 거라며 답장으로 송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자기들이 실제로 겪은 일은 영화와는 쨉도 안 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고 하시더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고 해주셨다. 혹시 누군가가 감독 당신의 마음을 오해한다면 자기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말이다. 나를 배려해주신 그 마음에 너무 감사하다. 소소한 행복 정도가 아니라, 큰 행복이다.

사진 제공_워너브러더스코리아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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