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그간 주로 험하고 거친 역할을 해왔지만,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사실은 내성적이라며 수줍게 웃는 진선규. <극한직업>에서 ‘볼 것이라곤 얼굴밖에 없는’ 마형사로 분해 탁월한 솜씨로 닭을 튀기며 웃음의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 코미디 장르는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놓는 그 모습이 순둥순등 선함 그 자체다.
<극한 직업>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캐스팅 제안받고 든 생각은.
<범죄도시>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은 후 처음 받은 시나리오였다. 너무 재미있는 데다 분량이 커서 놀랐다. ‘진짜 시켜줄 것 맞냐’고 다시 확인했을 정도였다. (웃음) 4년 전쯤 우연히 사석에서 이병헌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전작 <스물>(2014)을 보고 무릎 쳤었던 팬이었거든. 어떤 역할이라도 좋으니 오디션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진짜 불러 준 거지.
<범죄도시>(2017)의 ‘위성락’을 비롯해 그간 조폭 등 험한 역을 주로 연기했지만, 평소 성격은 상당히 내성적이고 수줍음(?) 타는 것 같더라. 예전부터 느꼈던 부분이다. (웃음)
잘 봤다. 이렇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게 평소 내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악랄한 모습을 끌어내다니!
평소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게 연기의 즐거움인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착하디착한 학생으로 줄곧 평가됐지만, 속으로는 화도 나고 가끔 씩씩거릴 때도 있었거든.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작은 극단에 놀러 갔다가 그들이 연극하는 모습을 보고 연기라는 것에 처음으로 끌렸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묻자 대사를 한번 외워보라고 하시더라. 내가 그렇게까지 소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듣는 상대방도 깜짝 놀랐다. 묻어 있던 본능이 나왔다고 할까.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거로 알고 있다.
옆자리 친구가 자료를 줘서 두 달 정도 연습해 진학했다. 내가 공부를 잘한 것도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운이 좋았다. 당시는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가능했던 것 같다.
마약반 5인방 (류승룡,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공명)을 연기한 배우들과 모두 첫 작업이다. 호흡은 어땠나.
(이) 동휘와 (이) 하늬는 전작 <브라더>(2017)를 같이 했던 터라 워낙 친했다. 알다시피 내성적이라 낯가림이 있는 편인데 이번엔 신기하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바로 편해졌다. 일단 승룡 형이 매우 젠틀하고 착하시다. 형이 딱 중심을 잡아주니 우린 그 밑에 옹기종기 모였다고 할까. (공)’명’의 경우 팀의 막내라 너무 귀엽고 또 그만큼 열정적이었다. 촬영 현장 분위기가 그대로 영화에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
훈훈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힘들었던 점을 굳이 꼽는다면. (웃음)
음, 승룡 형과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생각보다 액션 장면이 많아서 체력이 좀 달리더라. 게다가 잠복근무하는 장면은 대부분 밤 촬영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됐었다. 그런데 힘들어도 다섯 명이 모여 수다 떨다 보면 금방 피로가 사라지곤 했었다.
웃음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병헌 감독의 요청 사항 혹은 코믹 관련 조언은.
립서비스 아닌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웃음) 사실 나는 내가 안 웃겼거든. <범죄도시> 때의 모습과 달라서 좋게 보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감독님이 ‘마형사’ 캐릭터를 설명하기를 ‘조기축구회 같은 동호회에서 보면 밉상은 아닌데 왠지 분위기 파악 못 하지만 아집은 없는 아저씨’라고 했다. 그래서 아니다 싶으면 쿨하게 바로 의견을 접을 줄 아는 모습으로 가자고 했다. 극 중 ‘마형사’는 혼자 웃기는 게 아니라 구타하는 ‘장형사’(이하늬)와 한심하게 쳐다보는 ‘영호’(이동휘), 짠해 보이는 리더 ‘고반장’(류승룡), 열정 넘치는 막내 ‘재훈’(공명)과 어우러져 시너지가 발휘된 거로 본다. 뭐 나 혼자 웃긴다고 웃음이 터졌겠나.
촬영 초반 모니터링하는데 모니터 속 내가 정말 너무 못생긴 거다. 귀여운 원숭이가 아니라 진짜 진짜 못난 원숭이 같더라. 그런 내 모습이 극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니 감독님이 걱정 말라고, 매력 있는 얼굴이라고, 선규 선배를 향해 못생겼다는 말이 나오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위로와 격려를 듬뿍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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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장형사’(이하늬)의 대사 중 ‘마형사’(진선규)에게 볼 거라곤 얼굴밖에 없다는 대사도 있는데, 솔직히 그 대사할 때 빵터졌었다. 그런 걱정을 했다니! (웃음)
뭐, 사람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치는 지점이라고 할까.(웃음)
전작에서 당신의 코믹한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이번 ‘마형사’ 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지더라.
사실 코미디 장르는 연극 외에 해본 경험이 없어서 많이 걱정했다. 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족한 점이 많고 연기에 있어 잘한다고 들이댈 정도는 아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아낌없이 조언과 충고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 배우들이 앞 뒤 옆 전방에서 밀어주고 자신들의 재치와 기량을 뽐낼 기회를 어느 정도 내게 양보해준 덕분에 그럴싸해 보이게 연기할 수 있었다.
마약반 5인방이 각자의 필살기를 지니고 있다는 설정이다. ‘마형사’(진선규)의 경우 유도 국가 대표 출신이다. 혹시 실제로 유단자 아닌가? 그간 몸을 잘 쓰는 모습에 궁금하던 차였다.
학교 다닐 때 내성적이다 보니 운동을 시작할 어떤 계기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의외로 잘하는 거다! 합기도, 태권도는 물론 <말죽거리 잔혹사>(2004)의 주인공처럼 절권도도 연습했고, 성룡과 원표 등을 좋아해서 그들을 따라 하기도 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체조와 무용과 마임을 좀 했고, 요즘엔 복싱에 흥미 붙였다. 다만 40대에 들어서니 숨이 차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후반부 마약반의 필살기가 드러나는 순간을 촬영할 때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촬영 후 모니터링하며 우리끼리 웃고 감탄하기 바빴다. 특히 ‘야구부’인 (공) 명이가 제일 웃겼다. 그는 맞아도 맞아도 안 아픈 야구부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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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치킨을 제일 잘 튀기는 형사인데 실제 요리 실력은.
15년 정도 자취했기에 기본적인 음식은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아주 맛있는 정도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럴 듯하게다. 의외로 팥죽을 할 줄 안다. 팔을 골라 삶아 으깨야 하는 품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음식인데, 놀랍지?(웃음)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놀랍다.(웃음) 그간 조·단역을 거치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사냥>(2016)의 ‘중현’이다. ‘양순’(한예리)의 아버지로 무너진 탄광에서 ‘기성’(안성기)과 함께 사투했던 인물인데, 분량은 적지만 모든 장면이 다 감정신이었다. 당시 스태프들이 모니터하며 연기 칭찬을 많이 해줬고, 이후 다른 작업 현장에 추천하는 등 <사냥> 이후 오디션 볼 기회가 늘었다. 또, ‘선샤인’이라고 작은 팬클럽(?)이라고 할까. ‘선규를 사랑하는 여성 영화인 모임’이 생겼다. 사실 <범죄 도시>의 ‘위성락’역에 떨어졌었는데, 선샤인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줘보라고 부탁해 결국 맡을 수 있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이렇게 주변에서 챙겨주니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
겸손한 모습이 보기 좋다. (웃음) 배우로서 지향점은.
계속 연기를 하고 싶고 지금처럼 주어진 역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욕심이자 바람이라면 많은 사람이 나를 우리 영화를 봐주는 것이다.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와 배우를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세계인이 우리 영화를 그렇게 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웃음)
여타 코믹물과 다른 <극한직업>만의 매력은 뭘까.
무엇보다 이병헌 감독의 ‘말맛’을 꼽을 수 있다. 또 코미디 장르이지만 액션의 비중이 크고 극적 반전도 있다. 코믹과 액션이 어우러져 빈틈을 메운다고 본다. ‘하하’ 웃다가 ‘우와 우와’ 이렇게 리액션이 흘러간다고 할까. 어리숙하고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마약반 5인방의 케미도 빼놓을 수 없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스님 역할을 맡은 <사바하>, 저예산 공포물인 <암전>, 강윤성 감독의 <롱 리브 더 킹>, 용수 감독의 <퍼펙트맨>이 차례로 개봉할 것 같다. <퍼펙트맨>은 오늘 아침 촬영을 종료했다. 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도 있다.
지난 1년 너무 달려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 한다. 당분간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 홍보에 주력하고 지금과 다른 느낌의 시나리오 혹은 캐릭터가 있으면 다음 작품으로 정할까 한다. 누군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하길래 나는 ‘물들어 오면 지도를 펴 보겠다’고 했다. (웃음) 노만 저으면 뱅글뱅글 돌 수가 있거든. 성공을 좇다 본질을 까먹는 경우를 주변에서 꽤 봐왔다. 다행히 나는 나이를 먹은 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서 그런지 과정의 중요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잠깐 지켜보려고 한다.
최근 행복한 일 혹은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아내에게 아이폰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니 아이패드를 선물해줬다. 그거 만지작거리는 게 너무 재미있고 요즘 푹 빠져 있다. 심지어 에어팟도 샀다니까!
2019년 2월 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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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