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공작>을 향한 관객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만세까지는 아니지만, 안도는 하고 있다. 영화로 욕도 많이 먹어봤기 때문에 관객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덤덤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감사드린다.
욕을 많이 먹었다는 건…(웃음)
<아수라>때지. 이 배우들 데리고 영화를 이렇게 찍었느냐, 알탕 영화다, 회사 이름 좀 봐라, 앞으로는 믿고 걸러야겠다, 심지어는 한국 영화의 적폐다! 정말 여러 가지 댓글이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화평점을 보는데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계속 1점만 나오더라. 그때는 언제까지 1점 나오는지 보자는 심정이었다.(웃음) 강도가 그리 높지 않은 온화한 비판 댓글을 쓴 사람에게는 빵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더라.
웃으며 말하지만, 제작자로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대중에게 박한 평가를 받으면 속이 너무나 쓰릴 것이다.
영화가 욕먹는 건 숙명이라고 본다. 어떻게 찍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마음에 안 들 수 있으니까. 그런 것 때문에 상처받는 건 모자란 짓이다. 그보다는 배우가 욕먹을 때 가장 속이 상한다. 배우라는 업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그들은 대본에 동의해서 촬영에 임한 것뿐인데 말이다.
인신공격성 악플은 분명 문제라고 본다.
일종의 화풀이라고 본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어딘가에 화를 내고 싶은 게 아닐까. 만약 주말에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훌쩍 떠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윤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그런 행동을 할까. 아마 아닐 것 같다. 단언할 순 없지만 감히 그렇게 유추해 본다.
다행히도 <공작>에는 그런 악평이 많지 않다. 북한 내부로 들어간 스파이를 다룬다는 기획이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서 꽤 흥미롭게 다가온 듯하다.
윤종빈 감독이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끝낸 뒤 이런저런 아이템을 가져오더라. 워낙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라 이건 재미가 없다, 저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또 그건 윤 감독 당신과 안 어울린다 하는 식으로 생각을 전했다. ‘흑금성’ 사건을 들고 오니 비로소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바로 ‘하자’고 했다.
재미있겠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가.
느낌이다. 그게 다 맞지는 않지만.
영화 기획 당시에는 북한과 그리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었다. 촬영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처음에는 별 부담이 없었다. 내가 워낙 단순하다. 그런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려니 괜히 재밌다고 말했나 싶을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서, 윤 감독에게 타박을 많이 들었다. 제작비 100억대 수준에서 촬영할 수 있겠다고 한 내 말을 믿었는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다.
최종적으로 투입된 예산은 165억가량이다.
처음 예산을 짰을 땐 200억이 나왔다. 이미 작업은 시작했고, 해외 촬영이 많아 예산은 잘 줄지 않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180억 이하로는 내려가질 않더라.
결국 어떤 비용은 제해야만 했을 텐데.
감독, 배우, 스태프의 인건비를 조금씩 다 줄였다.
윤 감독은 그걸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친구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 자기부터 먼저 연출료를 깎겠다고 하더라. 영화를 찍고 싶다는 열정이 있다는 뜻일 거다. 만약 자기 몸값은 그대로 두고 남의 것부터 깎겠다면 이율배반적이겠지만, 윤 감독은 살신성인했고 또 솔선수범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 165억은 여전히 적은 예산이 아니다.
씨제이에서 어려운 결단을 해줬다. 윤 감독의 연출력을 믿어줬고,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은 데다가 연기까지 잘하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을 평가해준 것 같다.
‘흑금성’역의 황정민은 당신이 프로듀서로 일한 <부당거래>부터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 때> <검사외전> <아수라> <공작>까지 여섯 작품을 함께 했다. 이 정도면 마음이 굉장히 잘 맞는 상대라고 봐야겠다.
여러 차례 함께 일한 경험이 있으니 당연히 의사소통이 빠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가 사나이픽처스의 대표작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이른바 ‘한국식 남자 영화’로 대변될 만큼 색깔이 또렷한 편이다.
일부러 그런 영화만 하려고 한 건 아니다.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만든 이야기들이다. 아마 회사 이름을 다르게 지었다면 좀 덜 또렷해 보였을 것이다. ‘사나이’라는 이름에서 개념 없는 남성 우월주의자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웃음) 절대 그런 의미로 지은 건 아니다. 근사한 이름을 짓는 재주가 없다.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 세 개 정도 후보가 있었는데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사나이’가 좋다길래 주먹구구로 결정한 이름이다. 무엇보다 받침이 없어 외국 사람들도 발음하기 쉽다고 판단했다.
오해를 좀 받는 모양이다.(웃음) 그래도 사나이픽처스라는 이름으로 굵직하고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긴 건 분명하다.
주변 사람이 일을 잘한다. 사나이픽처스 피디들이 워낙 베테랑이라 얻어걸린 거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불안감이 있다. 솔직히 많이 ‘후달린’다. 다음 영화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유행과 멀어진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제작자 선배 중에 60세 이상인 분들을 뵌 적 있는가. 거의 없다. 종종 나이와 상관없이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는 제작자들이 있지만 그건 타고난 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노력까지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유행을 쫓지는 않는다. 불안감은 막연한 것일 뿐이다. 언젠가는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겠지?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일을 할 땐 그저 재미있는 작품이 될까?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일까? 혹은 네가 보고 싶은 영화일까? 그것만 생각한다. 그게 첫 번째다.
그간 투자에 어려움을 겪은 때도 많았을 텐데.
그럴 땐 캐스팅을 아주 좋게 만든다. 그럼에도 투자가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마디로 까이는 거다. 투자사 역시 수없이 많은 작품에 투자하고 개봉을 시킨 정보가 축적돼 있으니 비상업적인 작품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겠나. 갈수록 투자를 유치하는 게 힘들다. 능력 밖의 일들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음 작품을 빚어낼 계획 중이다.(웃음)
영화가 좋으니까. 직장인이 월급날 하루 생각하면서 나머지 날을 버티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고생스럽게 영화를 만들어도 시사를 본 친구들이, 기자들이, 관객들이 좋다고 평가해주면 그간의 힘듦은 눈 녹듯 사라진다. 축구에서 인저리 타임에 골 넣는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그전까지는 기어 다니다시피 하던 선수가 세레머니를 할 땐 공중부양을 한다.(웃음)
바쁜 와중에도 영화를 찾아 보는 편인지.
의무감으로 본다. 종종 수면제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웃음) 사운드가 조악한 흑백 영화를 틀어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당시 자동차, 의상, 거리 모습 같은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에는 엄앵란 선생님이 출연하신 <노다지>(1961)와 독일 영화 <바더 마인호프>(2008)가 기억에 남는다.
이후 선보일 작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박누리 감독의 <돈>이 내년에 개봉한다. 김성수 감독님은 7월 중으로 시나리오를 주신다더니 아직도 안 주고 계신다.(웃음) <무뢰한>(2014)을 연출한 오승욱 감독님은 대본을 각색 중인데 뭔가 마음대로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만든 한동욱 감독도 작품 준비 중이다. ‘애기’들도 열심히 쓰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박근범, 김진황 감독 이야기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그저께 호프집에 갔다. 옆에 앉은 손님들이 “너 <공작> 봤어? 재밌더라” 하는데 기분이 좋더라. 관객이 찾아줄수록 배우와 스태프가 좋아하니까 그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2018년 8월 24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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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사나이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