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배우 윤여정,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엄마와 할머니를 연기했을까. 그랬기에 차별화를 두고자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부산 사투리’에 도전했다. 그 결과에 대해 자신에게 엄격하고 직선적인 그녀답게 명백하게 실패한 연기라고 확언한다. 그리고 본인 연기의 실패지, 작품의 실패가 아니니 오해 말라고 못 박는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어 예능까지 섭렵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시니어를 대표하는 윤여정, ‘고생하는 과정조차 즐거웠다’는 흔한 빈말 한 번 내비치지 않으며 힘든 건 힘들다고 좋은 건 좋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직언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즐기는 그녀,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지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해당 인터뷰는 <그것만이 내 세상> 관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담백하니 좋더라.
그런가. 훗, 그냥 인사로 하는 얘기 아닌가?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스스로 실패작이라 하셨는데....
영화가 실패작이라는 게 아니라 내 연기가 실패라는 거였다! 제발 정확히 써 달라. 그리고 완성본을 보고 시나리오보다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편집이 잘 됐구나 싶더라.

음, 작품에 대해 기대가 별로 없으셨던 거 같다. (웃음)
우리 좀 입체적으로 생각하자!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 뻔한 얘기라, 시나리오만 볼 때는, 아직 배우들 연기도 못 본 상태고 내가 상상력이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두 아들인 이병헌과 박정민의 연기 합이 작품을 잘 살렸더라.

좀 전에 언급하셨듯 다소 뻔한 서사와 익숙한 전개임에도 출연을 결정하신 이유는.
별로 큰 이유는 없다. 그냥 이병헌이나 박정민 같은 젊은 배우들이 한다니까 아, 그럼 해보자 한 거지. 늙은이가 뭐 그렇게 감성이 있겠나, 젊은 그들에게 묻혀 가려고 했던 거지. (웃음)

극 중 ‘인숙’은 아들을 버린 엄마이자 장애아들을 둔 엄마이다. 심정적으로 공감이 되셨는지.
내가 지금까지 들어 온 건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거다. 그녀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나오고 나쁜 마음을 먹은 순간 구해준 사람이 ‘진태’(박정민 분) 아빠다. 그를 따라가 보니 아이가 있었고, 그 후 남자는 죽고 그 아이를 버릴 수 없기에 자신이 책임진 거로 생각했다. ‘진태’를 그렇게 끔찍하게 아낀 이유는 아들을 두고 온 죄책감이 작용했다고 본다. 버려두고 온 아이에 대한 보상으로 더 성심을 다한 거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극 중에서 ‘진태’의 출생 관련 부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조하’(이병헌 분)에게 하는 대사 중에 살짝 드러나지 않나. ‘다음 생에는 너만 바라보겠노라고’. 그리고 ‘인숙’이 주인공도 아닌데 구구절절 다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게 드라마도 아니고 말이다.

서번트증후군 연기를 하는 당사자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 연기를 받는 엄마 역할도 힘드셨을 거다.
(박)정민이가 설정을 많이 해온 것도 있고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받을지 좀 힘들었다. ‘네, 네’만 하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헷갈렸는데 하다 보니 그 뉘앙스의 차이를 알겠더라. 어느 순간 저절로 됐다.

함께 연기한 두 아들 이병헌과 박정민과의 호흡은.
이병헌은 정말 집중도가 높더라. 내가 극 중에서도 ‘조하’’를 어려워하지 않나. 자신이 손수 키운 아들이 아니기에 항상 긴장해서 대하곤 한다. 그래서 (이)병헌이를 어렵다고 표현한 거고, (박)정민이도 그렇게 말이 많은 애가 아니다. 그런데 항상 내 옆에 와서 앉아 있는 애? 라고 할까.

박정민은 선생님이 영화 작업 끝나고 함께 밥 먹자고 했다고 아주 기뻐했다.
그래? 그게 피아노의 ‘피’ 자도 모르는 애를 그렇게 몇 달을 고생시켜서 결국 피아노 연주를 하게 했으니, 얼마나 혼자서 노력했겠나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더라. 그래서 내가 끝나고 꼭 연락하라고 했던 거지, 밥 같이 먹자고.



전작 <계춘할망>(2016) 촬영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드셨다고 들었다. 이번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당시는 제주도 햇빛 아래 촬영했고 분장도 많이 해야 해서 고생을 좀 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분장 없이 내 모습을 촬영해서 그다지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인숙’이 머리를 모두 깍은 모습은 분장으로 대체했다. 다 내 시간과 분장사의 노력이 합쳐진 결실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엄마’를 정말 많이 연기하셨었는데 이번에는 전작들과 차별화를 위해 부산 사투리에 도전하셨다.
전작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시도한 나름의 변신이었는데, 음....그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부산 사투리가 정말 너무 어려웠었다. 극 중 내가 그만큼 한 것도, 안 믿을 지 모르겠지만, 거의 세 달 동안 선생님과 합숙하면서 연습한 결과다. 내가 하도 많이 물어보니 나중에는 선생님이 뻗으시더라.

주변 부산 출신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까지 어색하지 않다고 하던데 너무 엄격하신 거 아닌가.
타인의 평가도 그렇지만 내 눈에 틀린 게 너무 많이 보이는 게 문제다. 올려야 되는데 안 올리고 등 리듬을 타는 게 쉽지 않았다. 정말 네이티브가 아니면 아무나 흉내 내는 게 아니더라. 사실 최성현 감독은 경북쪽 사투리를 생각했었는데 내가 미리 섭외한 선생님이 부산분이다 보니....그리고 주변에 있는 부산 출신들이 내가 사투리 때문에 고민하는 거 보며 칼같이 얘기하더라. 노력한 건 보이는데 그래도 몇 군데 틀렸다고. 평소 자유롭게 내 연기에 관련해 평하니까 아마 그게 진실? 일 거다.

직언하는 사람을 옆에 두는 것, 그 점이 선생님이 젊게 사시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야 한다. 어떻게 좋은 말 해주는 사람만 곁에 두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긴 지금 죽는다해도 이른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직언을 들으면 순간 기분 나쁘고 불쾌하지만 그래야 내가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어땠었나 문득 생각해보면 솔직히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아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른 게 아닐까 한다. 내가 이제는 실수를 줄여야 하는 나이인데, 흠...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촬영하면서 모니터를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이유는.
나야 뭐, 감독님이 꼭 하라고 하는 경우에만 모니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모니터하다 보면 연기 방향이나 감정 표현 등 이런 것보다 그래도 배우라고 내 얼굴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신경이 더 쓰이더라. 예를 들면 왼쪽보다는 오른쪽으로 잡아야 좀 나은 거 같은데 등등. 그래서 감독님이 OK 사인했다면 내가 따로 안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지. 아직 젊은 배우들은 열정도 욕심도 많아서 모니터하고 고쳐서 다시 연기하곤 하는데 그들은 현명해서 그런지 얼굴보다 연기에 신경을 더 쓰는 거 같더라. 아니면 아마도 어떤 각도로 잡아도 얼굴이 멋있게(예쁘게) 잘 나오든가!


직선적이고 빈말 못 하는 성격으로 유명하시다. 그 점이 매력이기도 하고.
그게 좋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오래전부터 함께 연기한 동료가 그러더라. 내가 어릴 때도 성격이 이랬다고. 하긴 사람이 크게 변하겠나. 나는 날 잘 모르니까, 박근형 선배에게 물어보니 당시도 당찬 아이였다고 하더라.

한편으론 오해? 를 사실 수 있는 면이기도 한데.
다행히 내가 젊을 때는 매체가 적었고 인터뷰를 해도 영화 관련 이야기를 주로 했다.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솔직히 그때 기자가 지금 보다 훨씬 전문적이었지! 미안하다. (웃음)

간담회에서 이번 <그것만이 내 인생> 을 하면서 연기란 게 나이에 비례해서 느는 게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다.
꼭 이번 작품하면서 깨달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 지는 꽤 됐다. 예를 들면 떡을 이렇게 오랜 세월 만들면 정말 떡에 관해서라면 장인이 될 거 같은데, 연기는 그렇지가 않다. 요즘 연기 잘하는 신인을 보면 가장 부럽다. 왜냐하면,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오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투리도 도전하고, 흠.... 그게 내 나름의 노력인 거지!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싫증을 잘 내는 스타일이라 그런 거 같다. 매일 똑같은 모습은 나도 지겨운데 관객은 오죽할까. 별로 잃을 건 없으니까 다양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거지 대단한 도전이라 생각 안 한다. 그게 뭐 용기인가? 그런데 만약에 굳이 돈과 도전 중 선택하라면 도전을 택할 거 같긴 하다. 그래서 돈은 없나 보다. (웃음)

지금하신 말씀이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돈이 중요한 사람 혹은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 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문제고 아마 본인도 모르지 않을까 한다. 남이 그렇게 평가하는 거라고 본다. 나는 명예까지는 모르지만 나답게 살고 싶다. 돈은, 물론 아주 없다면 곤란하겠지만,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작은 대가를 받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는 면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작업하면 그 자체로 만족한다. 난 이런 피상적인 질문을 받으면 아주 약해진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봐라, 좌우명 써놓고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그렇게 쉽게 재단이 되던가.


일을 안 하실 때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
멀거니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체놀이를 즐긴다. 나에게 책을 주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받은 책은 꼭 읽는 편이다. 나의 미션인 거지. 그런데 요즘에는 한 시간만 읽으면 눈이 아파서 예전처럼 못 읽는 편이다. 평소 소설책을 즐겨 읽는데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데 이게 너무 눈에 무리가 가더라. 그리고 이번 ‘윤식당 시즌 2’ 다녀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TV만 틀어 놓고 있었다. 예전에 평론가 선생님이 준,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워 진도가 안 나가는 거다.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인데 그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해도 평전은 읽어보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후회하는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윤식당 시즌 2’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음, 이건 영화 인터뷰니 영화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윤식당’ 하면서 강호동과 유재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의 힘듦을 실감했다. 사람을 웃긴다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요리하는 걸 즐기지도 않는 사람이라 낑낑대고 하느라 힘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결론은 보는 사람이 재미있으면 하는 사람은 그만큼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힘든데도 일을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누군가는 즐기면서 일하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그렇게 못하는 스타일이다. 한편으로 ‘악’으로 하는 것도 있다. 모 TV에서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건 아마추어고 싫어하는 걸 하는 게 프로라고 하더라. 그걸 보고 그럼 난 프로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웃음) 그런데 일단 시작했으면 끝내는 게 내 미션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신데, 타인에 대한 잣대는 어떠신지.
내가 타고난 재주가 없다고 느낀 후부터 스스로 더 엄격해진 것도 있다. 타고난 게 많은 사람, 예를 들면 (이)병헌처럼, 눈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그런 사람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 부럽지만 그들을 내 잣대로 판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동년배라면 질투가 날 수도 있는데,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음,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평소 어떤 영화를 즐겨보시는지.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소소한 영화가 좋다. 최근 1년쯤은 바빠서 못 갔는데 씨네큐브에 가서 혼자 보곤 했었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힘들어서 쉬어가고 싶었던 경험이 있으신지.
어떻게 없을까,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도 당연히 있었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인 사정으로 연기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고, 당시는 정말 절박했기에 슬럼프다, 뭐다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주어지면 뭐든지 무조건 열심히 해야 했던 때다.

지금은 어떠신가.
환갑을 넘어서면서 결심했다. 내 미션을 다했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리라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막상 닥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여하튼 사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람을 보고 작품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시나리오가 나쁜 게 있기도 하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고 사람이면 사람, 작품이면 작품 하나만 얻어도 충분하다는 걸 요새 더 절감한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피곤하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물론 이 생각이 언제 변할진 나도 모른다.

2018년 새해 계획을 세우셨는지.
에고, 그런 거 없다. 계획을 안 세운 지 오래됐다. 일이 들어 왔는데 괜찮으면 하는 거다.

최근 인상적인 일이나 행복했던 기억은.
음....어제 오랜만에 인터뷰를 종일 하다 보니 끝나고 진이 빠졌는데, 평소 자주 만나는 임상수 감독과 설치미술가 한 분이랑 같이 만나서 술을 한잔했다. 그들은 내가 나온 영화도 ‘윤식당’도 안보는 인간들이라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얘길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했는데 참 좋았다.

2018년 1월 25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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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