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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을 얻고, 압박감을 버리다 <군함도> 송중기
2017년 8월 3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김수진 기자]
<늑대소년>(2012)에서 여심 뒤흔드는 눈빛연기로 스크린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배우 송중기가 5년 만에 <군함도>로 돌아왔다. 모성애 자극하던 애완남이 맨몸에 석탄가루 흠뻑 뒤집어 쓴 채 강렬한 남성미를 발산하는 특수부대 요원이 되었다. 그는 “군 생활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절실함을 얻었고,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부여한 군 생활을 비롯해 빛나는 현재, 그리고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미래를 그와의 인터뷰 속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은 느낌이 든다.
군대 가기 전에는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센 이미지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왜 그토록 조급했을까? 왜 아등바등 했지? 라는 생각이 든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 (연기에 대한 생각이) 유연해진 듯싶다.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갈증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태양의 후예>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나게 됐고, 자연스럽게 좋은 쪽으로 일이 풀리더라.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나 자신을 옥죄고 있었던 압박감을 풀어준 계기였지 않나 싶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어린 선임들 밑에서 고생 많이 했겠다.
29세에 입대해서 31세에 전역했다. 일반 남성이라면 보통 20세, 21세에 가니까 굉장히 늦은 편이다. 물론 떳떳하진 않지만, 늦게 가서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들더라.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단련이 됐고 여러모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사실 걱정과는 달리 군대에서 재미있게 지냈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평범한 친구들과 살 부대끼며 지냈던 추억들 모두 가슴 속에 소중하게 남아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후 <군함도>를 선택한 이유는.
<군함도> 시나리오를 처음 건네 받았을 때가 <태양의 후예>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어떤 작품의 시나리오든 받으면 오래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다. <군함도>는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매니저에게 바로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상업영화의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봐주냐 아니냐에 있지 않나. <군함도>는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듯했다. 남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 것 같더라. 무엇보다 전반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줄 류승완이라는 연출자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멀티캐스팅 사실을 알고 있었나.
내가 출연을 결정했을 당시엔 황정민 선배님만 캐스팅 돼 있었다. 정민 선배는 기획단계부터 참여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오히려 혼자 이끌어 가는 부담감을 덜어 낼 수 있어서 편했다. 전부 다 알 순 없지만, 오히려 류승완 감독님이 (멀티캐스팅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난 촬영 내내 혼자 튀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영화가 ‘텐트폴 영화’(영화 투자, 배급사에서 개봉하는 작품 중 흥행 성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간판 작품들로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의 손실까지 막아줄 수 있는 영화)고 내가 튀려고 하는 순간 작품이 산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단독 주연인 작품을 끌어 갈만한 그릇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파악 중이다.

‘박무영’이라는 캐릭터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나.
기본적으로 ‘무영’이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작품에 몰입했다. 황정민과 김수안, 소지섭과 이정현이라는 인물관계 속에서 ‘무영’만 상대역이 없지만, 사실 표면적인 인물구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극중 ‘무영’을 심리적으로 흔드는 상대는 수안이가 연기한 ‘소희’라고 볼 수 있다. ‘무영’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동기가 ‘소희’인 것이다. 이 친구에 대한 감정을 기점으로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했다.

극중 ‘무영’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대해선 아쉬운 마음은 없는지.
‘무영’은 전사나 어떠한 부연설명이 붙지 않는 캐릭터다. 당연히 중간부터 등장해야 한다. ‘무영’의 개인사를 더한다면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본을 봤을 때 놀랐던 건 시나리오 상에서는 1시간 만에 ‘무영’이 등장했는데, 35분만에 등장하더라. 물론 타이밍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무영’의 등장으로 인해 극 전체 흐름이 끊기면 안되니까… 다소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다. 실제로 촬영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초반에는 한달 반 가까이 촬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현장에 가서 분위기를 파악했다. 녹아 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가장 힘들었던 신은.
탈출 시퀀스를 한달 반 동안 35회차를 촬영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 탄광 신도 힘들었다. 황정민 선배는 <국제시장>(2014)에서 자신도 탄광신을 찍어봤다며 그게 가장 힘들 것이라고 걱정해주기도 했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 정민 선배는 탄광신을 찍지 않았지만.(웃음) 세트가 실제 막장과 거의 흡사했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좁았고 석탄가루를 가득 묻힌 상태에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혼란스러웠던 현장이었다. 스태프는 좁은 공간에서 여러 가지 기술을 발휘했어야 했기에 난감했을 거다. 폭발 사고를 비롯해 다양한 상황들이 막장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나. 결코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지만 그만큼 탄광신이 잘 완성된 것 같아 뿌듯하다.
촬영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
촛불 신을 찍을 때였다. 지난 해 겨울은 모두 정의감에 사로잡힌 시기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날 촛불 신 촬영이 있었다. 그래서 감회가 더 남달랐다.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모두 묘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신 자체도 흥미로웠다. 마치 연극무대처럼 진행됐다. 인물들의 동선도 복잡했고 고도의 촬영기법이 더해졌다. NG가 엄청 나겠구나 예상했는데, 촬영이 단 한 번 만에 끝나서 놀랐다. 리허설을 하긴 했지만 대사 호흡이 딱딱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시나리오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었다. 일본군과 대항해 탈출을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선 채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나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이 언론시사회 때 내게 먼저 출연제의를 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상 내가 먼저 감독님에게 러브콜을 했다. 군대 있을 때 휴가 나와서 <베테랑>(2015)을 이틀 연속으로 봤었다. 군인에게 휴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모두 감독님의 영화를 보는 데 썼었다. 그만큼 감명 받았던 거다. 이전부터 매니저가 군 부대 소포로 <암살>(2015), <곡성>(2016) 등 시나리오를 심심할 때 읽어보라며 보내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베테랑> 시나리오도 미리 접했었다. 개봉하고 영화를 보니 시나리오보다 몇 배 더 잘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류승완 감독님의 팬이 됐다. 감독님의 차기작에 내가 맡을 만한 역할이 있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한 친구 유아인이 <베테랑>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군함도>를 보고 (이)광수와 (박)보검이가 부러워했다. 나 역시 <베테랑>을 보고 배우 입장에서 아인이가 부러웠다.(웃음) <사도>(2016)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연기를 잘하더라. 남우주연상도 받지 않았나. 그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더라. 성격을 아니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 감독은 배우들을 ‘뜨겁게’ 사용하는 것 같다.
그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좋은 그림이 많이 나왔다. 감독님이 대단한 게 어떠한 컷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매사 치열한 모습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사실 감독님이 다른 감독님들에 비해 많은 나이도 아닌데, 이미 대중이 신뢰하는 연출자 중 한 명이 되지 않았나.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감독님처럼 미친 듯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의 후예>, <군함도>로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추게 됐다.
예전에는 남성 영화는 무조건 조폭이 등장하는 느와르라는 편견을 가졌다. 그리고 통과의례처럼 나도 언젠가는 이런 작품에 출연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게 맞는 캐릭터를 찾는 게 중요한 듯싶다. 맞지 않는 옷인데 꼭 입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태양의 후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남성미를 잘 보여준 것 같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라는 박력 있는 대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돈다.(웃음)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감사했다. 사실 찍을 때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 입장에서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말도 나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한다는 사실이 아무리 연기지만 썩 내키진 않더라. 어쨌든 이 장면을 기점으로 송중기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욕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좋은 작품을 통해 관객 분들에게 진심을 보여주면 또 다른 모습이 발견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걸어 본다.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지.
그동안 안정적인 역할만 맡은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가득한,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보는 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길 수 있는 캐릭터 말이다. 현재 활동 중인 대선배님들과는 감히 비교할 순 없고, 그저 또래 배우 사이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작품이 있다면.
<늑대소년>이다. 연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단순히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출연을 결심한 작품인데, 정말 대사 한 줄 없어 당황스러웠다. 감독님은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초반엔 들더라. 막상 할 게 없겠네 라며 접근한 작품인데, 촬영이 진행될 수록 신경 써야 될 게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소한 몸 동작도 배우에게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사가 없어서 상대역이었던 (박)보영이에게 “대사 맞춰보자”고 말장난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그만큼 상대방의 대사를 듣기만 하니 상대 역과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늑대소년>도 그렇고 <태양의 후예>, <군함도>까지 모두 충성심이 강한 캐릭터다. 평소에도 그런지.
친구, 연인, 매니저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 그리고 관객 분들 등등 다양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들과의 관계가 얕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관계가 깊다면 진심으로 대하려고 한다. 그래야지 결과적으로 내가 상처받지 않는다. 친한 사람은 잘 믿고 따르는 편이다.

연인인 송혜교와 닮은 점이 많다고 들었다.
일단 성격이 비슷하다. 심각할 정도로…(웃음) 작품 보는 눈도 비슷하다. 영화와 음악 취향도 겹친다. 둘 다 아이유 팬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낀 건 만남을 가지기 전, <태양의 후예> 촬영장에서였다. 촬영이 끝난 뒤 이런저런 건의사항을 스태프에게 말해야겠다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혜교 씨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스태프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있더라.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싶었다. 연인이 되고 나서는 예상보다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성향도 비슷하고, 둘 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배우로서 외모 경쟁력에 있어서는 센 편이라는 말에 동의하나.(웃음)
흔히 잘생겼다는 말을 듣는 배우들은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연기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정말 치열하게 배우 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렇지 않나. 정말 존경심이 샘솟는다. 나 역시 내 외모를 최대한 장점으로 승화시켜 배우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나 디카프리오 같은 배우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류승완 감독님이 제임스 코번을 언급하면서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신 기억이 난다. “넌 가만히 있으면 눈빛이 무섭다. 어두운 모습이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역할이 있으면 그냥 하라”고 힘을 불어 넣어 주셨는데,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서 감동했었다.
슬럼프 없이 잘 달려온 듯싶은데.
슬럼프가 없진 않았다. 작품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배우에게 슬럼프는 언제나 찾아 오기 마련이다. 평소 성격이 무딘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무룩했던 적이 있었다. 군대 가기 전부터 군 생활에 적응하는 초반까지 좀 힘들었다. 입대 전에 하고 싶었던 작품 출연을 결정 짓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장이 나와 군대를 가게 됐다. 아무래도 정을 준 작품이니까…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 속상한 마음에 남몰래 운 적도 있었다. 군대 가는 것보다 그 작품에 참여하지 못한 게 더 서글프더라.

송중기로 사는 인생은 어떻나.(웃음)
솔직히 과분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무명시절이 길었던 배우들을 생각하면 그에 비해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은 편이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그릇이 커진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넘치지 않게, 내가 가진 그릇에 맞추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연기든 일상생활이든 뭐든 마찬가지다. 더 이상 그릇을 넓히지 않고 지금 주어진 것들 속에서 즐겁게 사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배우가 안됐다면 뭘 했을까.
방송과 관계된 일을 했을 것 같다. PD와 아나운서를 한때 꿈꿨기 때문에… 여전히 이쪽 바닥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때는 스케이트 유망주였는데 그만 둔 이유는.
냉철하게 말해서, 스스로에게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광역시 대표로 대회 출전도 했었지만, 막상 전국 대회를 나가보니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친구들이 많더라. 앞으로 스케이트로 밥 벌이는 못하겠구나 라고 판단했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적은.
정말 소소한 것도 괜찮나? 최근 조카가 ‘삼촌’이라고 불러줬다. 아직 완벽하게 부르지 못해서 ‘사촌’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다.(웃음) 머지않아 둘째 조카도 ‘삼촌’이라는 말을 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2017년 8월 3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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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블로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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