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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다” <군함도> 류승완 감독
2017년 8월 10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창작자로서의 호기심과 아픈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열망.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다.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날 법한 극적인 상황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개성 있는 사운드 활용부터 전작보다 깊고 넓어진 화면구도까지, 창작자의 의무인 영화적 시도로 가득하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모든 걸 쏟아 부었기에 후회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류승완 감독을 만나 심정을 들어봤다.

사진 한 장을 보고 <군함도>를 기획하게 됐다고 들었다.
군함도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항공 사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사진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일 뿐이지 영화를 시작한 전부는 아니었다. 이후 군함도를 둘러싼 사연을 취재하게 됐고 그 시대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석탄 채굴이 한창일 때는 군함도에 5천명이나 살았다고 한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그동안 무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겠다 싶어 군함도에 대해 열심히 파게 됐다. 여기에 창작자로서의 호기심까지 더해졌다. 지금까지 다수의 작품을 연출해왔지만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창작의 에너지가 끓었다고나 할까. 정말이지 <군함도>의 시작은 전례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군함도>에 대해 일본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한 인터뷰에서 군함도는 창작된 이야기며 징용문제를 포함한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한 것을 보았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더 이상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안타깝더라. 반면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역사가 있는 ‘사도탄광’을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다가 결국에는 탈락 시키고 다른 곳을 등재시킨 것이다. 일본 정부의 그러한 조치를 보면서 우리 영화가 확실히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뤄야 했기에 책임감이 막중했겠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은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영화든 새로운 인물과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군함도>에서는 어떤 작품에서보다 최대한 사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탄탄한 취재 과정을 거쳤었다. 영화라는 틀 속에서 창작된 상황과 사건이지만 극중 캐릭터들이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알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다. 탈출 장면도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한 극적인 상황처럼 그려지지만 군함도만 연구해온 전문가 및 다양한 역사, 군사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비현실적인 일도 아니다.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에게 무기를 쥐어 준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반응할 것인지 또 (군함도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인물들의 동선은 어떻게 그려질지 전문가들의 조언 덕분에 잘 표현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의 중심에는 실제 강제 징용의 아픔을 가진 분들에게 누가 되지 말자는 생각이 존재했다. 또 이런 생각들이 원동력이 되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촬영을 이어나가게 했다.

황정민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황정민 선배가 없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인물의 동선에 따라서 카메라를 움직여 화면의 폭을 넓히는 시도를 했는데 정민 선배가 큰 도움이 됐다. 사실 이 모든 연출적 시도는 배우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런데 정민 선배가 배우들의 중심에 서서 영화의 방향성을 잘 인지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줬다. 단역 배우에게까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나눌 정도였다. 현장에서 투입된 인원이 워낙 많아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았는데 여러 모로 선배가 큰 역할을 해줬다.

배우들이 실제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 들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도 감행했다고.
다들 뼈만 앙상할 정도로 살을 뺐었다. 체중을 유지 해야 하니까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렇다고 굶으면 병이 날 수 있으니 영양사를 모셔 식단 조절하며 영양의 균형을 맞췄다. 아무래도 스태프가 먹는 식단과 배우들이 먹는 식단이 달라서 더욱 힘들었을 거다. 그런 상황임에도 정민 선배가 앞장서서 배우들을 독려해줬다. 주연배우이상의 역할을 현장에서 해준 게 아닌가 싶다.
<군함도>에 대한 반응들이 그 어떤 작품보다 뜨겁다.
이렇게 기자 분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다양한 반응이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류승완의 색깔이 없어졌다는 평이 있더라.
<베테랑>(2015)이 가장 최근작이니 비교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 같다. 또 소재의 특수성이 더 부각되다 보니 감독만의 연출 색깔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색깔이 없어졌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매번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선보이려고 하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연출 초기작부터 차근차근 지켜 봐온 분이라면 <군함도> 역시 본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 것이다. 예를 들어 격렬한 상황에서 경쾌한 음악이 흐르면서 오히려 시각적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는 것이 그렇다. 또 진지한 순간에 유머러스한 상황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다가 극한의 순간, 인물이 돌변하는 모습을 담아 ‘욕망의 충돌’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두 그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시도해왔던 것들이다.

촛불 신은 연극무대 같았다.
연극무대 같이 보였다는 말은 굉장히 반가운 말이다. 말한 것처럼 연극무대처럼 연출했다. 오롯이 배우들 간의 갈등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반응하고 흥분하는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고 싶더라. 사실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이 복잡해 꽤 부담스러웠다. 리허설을 많이 했기에 다행히 리테이크를 찍는 상황까진 발생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배우와 스태프들의 호흡이 잘 맞아서 힘 있게 완성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촛불 신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던데.
그 시대 군함도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감안하고, 적합성을 따져 보면 논리적으로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군함도가 미군에게 폭격 당한 이후 전력이 끊긴다. 실제로도 군함도의 전력은 인근 섬에서 끌어 썼기 때문에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실제 촛불을 자주 사용했다고 들었다. 또 그 장면은 중세 유럽회화의 이미지를 참조하기도 했고. 물론 이 장면을 두고 촛불 정국을 연상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 시나리오 상에 있었던 설정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말에 대해서도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실제 역사를 고스란히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나 사명감이 있었다면 극 영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전했을 것이다. <군함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마침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군함도를 등재시키려 했다.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라도 조선인들이 탈출에 성공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욱더 커지더라. 감독은 자신이 만든 인물들의 속마음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하지 않나. 이 캐릭터들은 분명 참혹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인 징용 역사를 담은 자료집을 읽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선 해방이라는 정치적인 독립보다 개인 인권존중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자리도 변변치 않은 인권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 심지어 전쟁까지 겹쳤으니 그 얼마나 탈출을 바랐겠는가. 공포스럽고 처참한 상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꼭 살아서 집에 돌아가자는 의지가 점점 커질 수 밖에. 난 처음부터 이분들의 참혹한 삶을 다루는 동시에 탈출시키는 게 목표였다. 또 역사적으로 봤을 때 개인적인 탈출은 끊임없이 시도됐다고 한다. 극 속에서는 400여명의 집단 탈출로 그려졌지만 실제론 40여명 정도가 집단 탈출한 사례가 있었다.

이 모든 논란을 예상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고민 없이 영화로 만들었다. 단 한번도 계산하고 만들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이견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군함도>에 지금까지 500만(8월 3일 기준)이상 관객이 동원됐다. 500만명 모두 다른 생각을 갖는 게 정상이다. 단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 속에서 창작된 인물과 사건 어떤 것도 왜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탈출 장면조차도 역사 전문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의 범위를 확인 받았을 정도다. 탈출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투신은 실제 군함도에서 있었던 파업사태 때 조선인들이 경비 병력들을 제압하면서 활용한 방식을 토대로 구성했다. 초반 40여분의 경우에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데 힘을 기울였다. 솔직히 일제의 잔악한 식민 통치, 침략 전쟁, 사기업의 악행만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 더 통쾌함을 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말한 대로 일제의 만행을 자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전쟁은 어떤 사람이든 망가트리는 것 같다. 국적, 민족을 떠나서 ‘악’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존재인데 그 편에 선 순간 악행을 저지르지 않나. 일제의 악행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은 건 실제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인들은 열등한 민족이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키고 가축처럼 대했다.

대신 조선인 부역자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려냈다.
일제가 자신들보다 많은 숫자의 조선인을 일일이 상대하기 버거우니 조선인 부역자를 만든 것이다. ‘너희는 지배 받아야 마땅하다’는 식민사관에 기반해서 말이다. 일제시대에 일어난 모든 서러움을 군함도라는 한 장소에 압축시켜 보여주고 싶었다. ‘윤학철’이란 캐릭터 또한 부역자다. 그러나 이를 몰랐던 조선인들은 무조건적으로 그를 신봉한다. 똑똑한 지식인 계급이 힘든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는 잘못된 믿음에 의지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영화라는 매체의 한정된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을 듯싶다.
<무한도전>을 통해 군함도를 처음 접한 분들이 대다수다. 뒤늦게 안 만큼 제대로 된 자료를 찾기 힘들었다. 이제서야 군함도의 참혹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영화를 준비하는 4~5년 동안 여러 자료와 관련 단체의 증언을 들었다. 당연히 관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알지 못하니 영화 속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관객의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군함도>를 시작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많아진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우리 영화로 끝이 아니라 군함도에 대한 열띤 토론은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후회는 없는지.
시간을 되돌려도 여전히 <군함도>를 제작할 것이며 똑같이 만들 것이다. 극중 탄광사고가 있기까지 40분 동안 펼쳐지는 군함도의 다양한 모습을 시작으로 OSS요원이 작전지시를 받는 상황 속에서 1945년 동북아정세까지 모두 담아냈다. 조선 독립단체들의 갈등 또한 놓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친일 부역자들의 문제와 혼란을 그려냈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서사도 서사지만, 깊이와 넓이를 가진 화면 구성을 시도했다는 점도 내겐 유의미하다. 사운드 등 디테일한 시도도 이번 영화에서 집요하게 해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있을 텐데.
220억을 들여 실제 축구장 두 개 크기의 군함도를 세트로 구현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더라. 물론 영화 속에서는 티 나지 않는다. 스태프만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이다. 현장에서 나는 냄새까지 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220억이라는 자본이 들어가도 만드는 입장에서 부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난 단 한번도 스크린 독과점에 찬성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날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왜 당황스럽고 송구해 하는지 알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번 큰 상업영화가 등장할 때마다 언급돼 왔다. 알겠지만 스크린 수는 연출자와 제작자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관객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나.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독과점이 위법은 아니지만 명확하게 문제라고 인식되고 있는 이상 전체 스크린의 몇 프로를 하나의 영화가 차지하지 못 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연출자로서 이번 논란으로 인해 우리 영화의 본질이 가려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10년 동안 이어온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군함도>를 계기로 정리할 수 있길 바란다.

억울하진 않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억울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보는 만큼 반응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야 결론이 날 것 같다. 차분히 반응을 지켜보면서 받아들일 건 받아 들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건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군함도>처럼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또 만들 건지.
군함도처럼 날 뜨겁게 자극하면 움직일 것 같다.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동안 역사에 대해 정말 무지했구나 반성하게 되더라. 영화 감독이기 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역사 공부를 꾸준히 할 생각이다.

최근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
정신 없이 인터뷰하다가 초코 케이크를 한입 먹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더라.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웃음)

2017년 8월 10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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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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