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영화 홍보를 위해 인터뷰를 하는 건 거의 처음으로 안다. 반갑다.(웃음)
9년 전에 <뜨거운 것이 좋아>를 찍고 나서 비슷한 인터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는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어제부터 긴장했다.(웃음)
<싱글라이더>에서 꽤 비중 있는 ‘지나’ 역을 맡았다. 완성본을 보고 난 소감이 어떤가.
아직도 스크린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다.(웃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영화 촬영을 하기에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 선배들과 스탭들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완성본을 보고나니 호주까지 가서 촬영한 보람이 있었다. 호주 풍경이 너무 예쁘고 시원해 보이더라.
지난해 출연한 <부산행>과는 판이한 분위기의 드라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지나’라는 캐릭터에 공감됐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분들은 평범하지 않은 10대 생활을 보낸 내가 어떻게 지극히 평범하게 성장한 ‘지나’의 이야기에 공감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데 ‘지나’가 호주에서 보냈을 시간이 내가 원더걸스 활동 때문에 미국에서 체류했던 시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낀 외로움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미국 생활을 할 당시 나이가 ‘지나’ 와 비슷했던 것 같다.
18살이던 2009년에 가서 20살이 된 2011년에 돌아왔다. 2년 반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을 것 같다.
당연히, 안 힘들었다고 할 순 없다.(웃음) 멤버도 같이 있고 도와주는 스탭도 있었지만 친구도 가족도 없이 외국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다 지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경험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 시간이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 덕분에 ‘지나’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미 큰 도움이 된 것 같다.(웃음)
맞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지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똑같이 시나리오를 읽어도 물음표가 많이 남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타지 생활을 경험해봤기에 ‘지나’가 너무나 짠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점에서는 여전히 서툰 점이 많았다. 나 역시 해변에서 ‘재훈’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재훈’이 ‘지나’의 요청을 받아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내가 진심으로 연기를 해야 관객도 보다 감정이입이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촬영 초반이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다. 테이크도 여러 번 갔는데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다. 그때 이병헌 선배가 “네가 진심으로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내가 돌아 볼거야. 그러니까 네가 내가 돌아봐 줄 수 있도록 해줘야 돼”라고 말해 주시면서 직접 카메라 뒤에 서 있어 주셨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마치 정말로 선배님한테 부탁하듯이 “저 좀 도와주세요!” 하고 외쳤다.(웃음) 그 장면을 다 끝내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좀 시원해지더라.
주변 선배들에게도 여러 조언을 들었을 것 같다.
<부산행>때 함께 했던 김의성 선배가 시사회때 와 주셨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말씀하시길, 기존의 내 이미지를 깨기 위해 노력한 게 눈에 잘 보여서 너무나도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편하게 연기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연기를 잘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아프지만 많은 도움이 될 조언인 듯하다.
물론이다. 나도 느낀 부분이고, 또 선배 덕분에 더더욱 정확히 인지하게 된 부분이다. 사실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까 지레 겁을 먹고 소심해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워낙 어린 나이에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게 돼서,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태도가 연기에 제약이 된다고 느낄 때도 있다. <싱글라이더>를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주영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런 것 같다. 게다가 공효진 선배를 비롯한 많은 선배님들은 배우가 연기를 잘하려면 많은 걸 경험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도 많이 해보지 못하면서 지냈다. 원더걸스 활동을 할 때도 무슨 일이든 내가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은 후에 가졌던 공백기 동안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연습을 했다.
예를 들면.
혼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또 어릴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제는 은행 업무를 꼭 직접 하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은행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연기에 어느 정도 재미가 붙어가는 모양이다.
너무 재미있다. 힘들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지칠 때도 있지만 항상 촬영을 다 끝낼 때쯤 되면 그래도 재미있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도 당신이 작품에 상당히 열심히 임했다고 칭찬하더라.
그 기사 보고 감동받았다.(웃음) 연기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잘 해보려고 애쓰는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대선배라서 질문 하나 하는 것도 망설였다. ‘이 질문을 해도 될까?’ 하면서 속으로 몇 번씩 생각하고 난 다음에 질문하곤 했다. 다행히도, 한 번 여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대답해 주셨다. 그 후부터는 모르는 점은 자꾸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열심히 한다고 표현해주신 것 같다.
이번 작품으로 효진 언니를 알게 돼서 너무 좋다. 보이는 것처럼 시원하고 털털한 선배다.(웃음) 영화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은 없지만 호주에서 제일 긴 시간을 보냈다. 밥도 같이 먹고 쇼핑도 같이 갔다. 게다가 내 캐릭터를 같이 고민해 주셔서 힘이 됐다. 너 내일 이거 찍지 않니? 어떻게 준비했니? 이 부분은 네가 좀 더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 이건 감독님과 상의해봐. 늘 이렇게 조언을 해주셨다.
훈훈한 이야기다.(웃음) 하지만 대단한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보다 쉽게 얻었다고 평가 받는 측면도 있다.
그런 평가는 당연한 것 같다. 원더걸스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쉽고 빠르게 찾아왔다. 그래서 책임감이 많이 생겼고,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이 나의 연기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걸 알고있다.
너무 많은 평가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견디나.
음. 즐길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댓글을 볼 경우에는 오히려 그 내용을 더 깊게 생각한다. 상처받거나, 힘들고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오히려 그 상황에 깊게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그런 지적을 털어낼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판단하기가 쉬워진다. 그런데 이렇게 견디는 방법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웃음)
걸그룹 활동과 배우로서의 삶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는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고, 나 역시 그때그때 어떤 감정을 전달 드릴 수 있다. 그런데 연기는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온전히 한 작품에 다 쏟고, 모든 일정이 다 끝난 후에서야 관객의 평가를 받는다. 연기를 끝내고 힘이 다 소진된 상태에서 칭찬을 받으면 재충전이 되는 느낌이다. 또 다른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리듬 같다.
그렇다. 다작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최대한 많이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자신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장르가 있다면.
앞으로 어떤 장르를 해보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당히 어렵다. 무엇이든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주변에서는 약간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액션 장르도 소화해보고 싶다. 운동하는 것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그동안 춤을 많이 춰서 그런지 몸 쓰는 게 좋다.
해보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내심 스스로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장르나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뜻이었다.(웃음)
음.(웃음) 이주영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안소희라는 배우가 겉으로 보면 참 밝아 보이지만, 약간은 그늘진 면모가 있다고 말이다. 그게 ‘지나’ 캐릭터와 어울려서 좋았다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어딘가 조금은 어두운 면이 있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난다면, 나와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간 대중에게 보여준 이미지를 뛰어넘는 것이 중요한 숙제겠다.
아무래도 원더걸스로 활동하던 당시에 새겨진 이미지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를 없애거나 지우고 싶지는 않다. 원더걸스로 활동한 시간은 나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그때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보여드린 이미지 위에 배우로서 더욱 다양한 색깔을 입히고 칠하고 싶다.
<싱글라이더>가 그런 작품이 될 것 같나.(웃음)
한 컬러 입혔다고 생각하고 싶다.(웃음)
아직 서툴지만, 그래도 전작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제일 좋다. 또 시사회 때 아버지가 영화를 보러 와 주셨을 때 했던 말도 좋았다. ‘또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두 번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울컥했다. 원더걸스 언니들도 너무 고생 많았다고 해줬는데 사실 그때도 울컥했다. 사진 찍으러 가야 하니까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꾹 참았다.(웃음) 그런데 혜림이는 결국 울었다고 하더라.(웃음)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인상에 남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윤여정 선생님이 출연하신 <죽여주는 여자>를 봤다.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도 그 나이가 됐을 때 그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멋있는 포부다.(웃음)
일단 다작 하는 배우부터 먼저 되고 싶다. 소처럼 일하는 소희가 되겠다.(웃음)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면.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인터뷰하는 과정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홍보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올빼미족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적응이 잘 안 됐다. 그런데 이 일정으로 인해 내가 조금씩 바른 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다.(웃음) 긴장되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 덕분에 영화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즐겁다.
2017년 3월 3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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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