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류지연 기자]
오랜만에 뵌다. 한데 그 동안 인터뷰를 안 하다가, 이번 영화에서는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나.
그 때 이후 7년 동안 인터뷰를 안 했었다. 그 당시에는 영화로만 말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피에타>때도 그렇고, 내 영화의 홍보 방식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다. 배급사 NEW에서도 내 영화를 대중적으로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애정을 꾸준히 보여줬다. 내 영화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 극장을 추스려주시고 홍보팀도 꾸려주시는데, 감독으로서 그런 역할마저 방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물>에서 남북문제와 이데올로기 등 거대 담론을 소재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이야기였다. 70~80년대 실제로 표류하다 남쪽으로 넘어온 어선들이 많았고그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북에 돌아갈 때, 남쪽의 옷을 다 벗어 던지고 가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체제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한국에서 받은 것들을 가져가면 돌아가서 어떤 고통을 받게 되기에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중간중간 시나리오를 쓰다 작년에 마무리가 됐다. 그러다 류승완 감독에게 류승범을 소개받았는데, 이 역할을 잘하겠다 싶더라. 보통 배우로부터 영화를 시작하지 않는데, <그물>은 배우로부터 시작된 영화다.
남북문제가 여러모로 심각한 상황이다. 영화 속에서는 북한이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묘사하기도 하는데.
<풍산개>, <붉은 가족>에서 남북문제를 다뤘듯이,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전쟁세대로 북한군에 의해 큰 고통을 받았고, 그러다 병상에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북한을 적대적으로 봐야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적대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장 두려운 건 우리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우리가 희생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거다. 냉정하게 질문해보고 싶었다. 왜 이렇게 스스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지. 영화는 내던져진 한 인간에게 끊임없이 누구 편이냐를 묻는 상황을 담고 있다. 그게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이지 않나. 종북이냐 아니냐. 북한 또한 배신자냐 아니냐.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념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보통 한쪽이 나쁘고 다른 한쪽은 좋은 쪽으로 치우치는데, <그물>에서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남과 북의 상황이 동등함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김기덕이 국정원을 공격하는 영화를 만들었구나 생각했을 것 같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남한에서의 조사과정만 보여주고 영화를 끝내리라 예상했을 거다. 철우가 무혐의로 북한으로 넘어가면 영화가 끝나겠다 생각했겠지만, 북한에 돌아간 이후 철우가 남한에서 겪었던 일들이 똑같이 복사된다. 그러면서 관객은 어쩌면 이것이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 공통의 문제구나 생각하게 된다. 두 체제가 한 개인을 잔인하게 유린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좋고 나쁨을 떠나, 남북이 처해있는 본질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유민주주의 안에도 썩은 부분이 있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도 썩은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둘 사이의 수평을 잡고 싶었다.
개인이지만 모두 국가라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개인이 오직 애국심 만으로만 움직인다고 보진 않았다. 시스템 안에 부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본능적인 입장도 있고 개인적인 원한도 있을 수 있다. 대사 중에 ‘6.25때 죽은 가족들 복수하지 말아라’라는 대사가 있는 것처럼. 이렇듯 사회 저변과 개인의 내면에 깔려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전후 6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계속 충돌하고 있다.
철우가 감독의 자전적인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렇다. 나도 당연히 전쟁세대의 자식이고. 아버지가 겪은 고통을 유전자적으로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실제로 총상을 입고, 고문 받던 때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유전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적개심이 있었기 때문에 해병대에도 가서 공산당원 무찌르자는 구호도 외쳤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해결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영화를 적대감으로만 만들어서도 안되니 객관성을 가지려 했다.
극 중 류승범의 북한 사투리가 약간 어색하게 들릴 때도 있다.
북한 사투리도 지역마다 다양하다. 영화 속에 나온 건 내가 경험한 북한말이라 할 수 있겠다. 일산 문화촌이라는 지역에 살았는데, 북한군 포로들이 많이 있던 곳이었다. 실제로 땅을 파면 시체들도 나오고, 북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때 들은 것들을 기억하고 그 어투로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북한 어투를 리얼하게 보여준 다른 영화에 비해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류승범의 경우 캐스팅 비화가 알려져 있다. 이원근은 어떤 이유로 그 역할에 캐스팅한 건가.
사실 그 전까지는 이원근 씨를 몰랐는데, 피디가 전해준 몇 명의 오디션 영상을 보니 제일 눈에 띄었다. 대사 톤이 안정감 있었고, 정말 진지한 자세로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촬영하면서 보니 류승범과 충돌하는 씬에서도 자기 에너지를 잘 표현하더라.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
극 중 이원근의 캐릭터가 제일 판타지스럽다고 생각했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저렇게 순진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갔다.
그런 사람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영화 속 부장, 중간 팀장, 고문하는 사람의 캐릭터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이원근의 캐릭터에는 감독의 희망을 좀 담은 것 같다. 이산가족으로서 철우의 마음을 좀 이해하려고 했다. 내 영화는 그래도 되지 않나. 내 영화는 항상 어떤 주제나 관념을 위해서 캐릭터가 필요하다면 집어넣어 왔기 때문에. 때문에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말도 듣지만 그런 걸 통해서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좋다. 또 아직까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이미 장편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다. 좋은 연기자를 영화 속에서 짧게 쓸 때 너무 미안하다. 북한 말의 삭막함이 느껴지게 툭툭 내던지는 말투가 굉장히 좋았다. 작은 역할인데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고 최선을 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많이 미안했다.
작은 역할이라도 김기덕 감독 영화에 출연해보겠다는 배우가 많지 않나. 혹시 요즘 눈 여겨 보는 배우가 있나.
그렇게 말하면 그 배우들이 기다릴 것 같아서 곤란하다. (웃음) 가끔 배우들이 출연하고 싶다고 먼저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속으로 사실 걱정을 많이 한다. 같이 할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누군가를 거론한다는 게 그 배우에게 부담을 주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만약에 내 영화 싫어한다면 얼마나 불쾌하겠나. (웃음)
왜 배우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걸까.
다들 그런 것 같진 않다. (웃음) 다만 기존 영화들이 좀 말랑말랑하지 않나. 상업영화에서 맡게 되는 지나치게 순수하다거나 그런 역할들에 비해, 내 작품에서는 아이러니한 캐릭터들을 다룬다. 웃는데 마음은 울고 있거나 하는 캐릭터 등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 매력이 있기도 하고. 또 연기자를 극단까지 몰아가서 감정을 분출하게 하는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이 늘 욕심이 있는 것 같다.
<그물>이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놀랍다는 의견도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해달라고 문제제기 하려고 했었다. 농담이다. (웃음) 어쨌든 성적인 부분보다는 청소년이 볼 때 영화에 애국이란 걸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국가관이 모호해질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 면에서 놀라운 등급이라 생각한다. 청소년이 남북 현실과 그들이 살 미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등급을 내려준 것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웃음)
이번 영화를 보고 김기덕 감독님이 변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다음 영화로 안 변했다는 걸 보여주겠다. (웃음) 스스로는 안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보는 사람의 생각은 또 다르니까. 그 동안은 개인의 욕망과 인생에 집중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국가와 안전 얘기를 하니까 그런가 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안전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안전해야 영화도 찍을 수 있다.
이전에 비해 잔인성이나 폭력성이 많이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예전 영화에 비해서 달라졌다는 말들도 있지만, 이번 영화 하나로 다 바뀌는 건 아니다. 본질적인 감정은 똑같은데 표현의 방법이 조금 바뀔 뿐이다.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인간의 시간>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가진 욕구의 극한을 보여주면 그걸 통해 자연의 질서나 인류가 지속되는 에너지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주 잔인할 수 있지만 결국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초기 영화에서 보였던 피학적이고 가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능력의 한계다. 하지만 항변하자면 직접적이지 않은 대사로 훌륭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본적이 없다. 그런 영화나,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나는 소재 자체에 대한 접근도 다를뿐더러,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인 메시지들이 좋기보다는 모호하게 느껴졌다. 나도 배우는 과정이다. 영화는 항상 0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 않나.
진달래, 제비, 사슴 등을 넣어 만든 영화 속 지령이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예쁘다.
원래 슬프고 잔인한 것은 예쁘다.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 받는 감독이다. 그런 관심이나 타이틀이 영화 만드는데 부담으로 작용할 때는 없나.
오히려 시작할 때는 욕심이 더 많았다. 빨리 뭐가 되고 싶고, 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영화 감독으로서 겪는 성장통을 겪었다. 과거에 만들었던 영화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니 <나쁜 남자>도, <섬>도 지금 찍는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때 가진 세계는 그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이것저것 많은 상을 받았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도 남부럽지 않다. 스스로 내 자신을 ‘지는 꽃’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아름답게 지고 싶다. 장미처럼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죽는 게 나을지, 목련처럼 거무죽죽하게 멍들어가며 죽는 게 나을지 모르지만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자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화가 주목 받지 못하고, 내 영화가 끝났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그게 나임을 인정하겠다.
성장통을 겪으면서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건 세월의 힘인 걸까. 어떤 계기가 있었나.
계기는 인간관계였던 것 같다. 영화의 세계도 결국 인간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나. 가지고 있던 믿음들이 자본에 의해서 손쉽게 훼손되는 경험은 누구나 하지 않나. 비단 영화계만 그런 게 아니라 삶 자체도 그럴 것이다. 그런 과정에 나 또한 관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눈 앞의 대상들을 더 이해하게 됐다. 그런 과정이 성장통이었다. 그럼에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정말 짧은 시간에 2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논쟁의 중심에 서서 칭찬도 많이 받고 비난도 받고, 이런저런 평가를 들었다. 행복한 감독이다.
요즘 영화계는 흥행영화 아니면 다양성영화로 양분돼 있다. 많은 영화들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영화를 20년간 만들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었다. 내 영화 시사회인데 극장에서 다른 영화를 상영하고 있더라. 전광판에는 분명 매진이라고 떠있는데. 그런 일들에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자본의 논리가 있다 생각했고, 언론에서도 아무래도 흥행 영화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누구 하나의 탓이라기 보다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이런 구조가 크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자 대비 이윤을 얻어야 하는 그들이 원칙을 바꾸진 않을 테고. 모든 것은 관객이 바꿔야 하는 문제다. 관객들이 의미 있는 영화에 티켓팅을 해 주면 그것이 기적이 된다. 나는 이제 ‘지는 꽃’이 돼도 억울하지 않지만 어디에선가 상업영화를 할 것인가, 예술영화를 할 것인가 고민하고 불안해 하는 감독들이 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배출되는 감독들이 많은데, 그들의 시도가 성장통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머리를 좀 다치면 가능할 것 같다. (웃음) 농담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기에 내 머리는 이미 너무 복잡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다. 중국 자본의 도움을 받아 미국 메이저에서 배급하는 <무신>으로 그런 시도를 했었다. 핵심적인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지금은 약간 정체된 상황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피에타>부터 <그물>까지 보면 배우들의 연기가 튄다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든달까.
먼저 시간과 돈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배우의 연기가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걸 안 좋아한다. 연기자는 영화라는 캔버스가 필요해서 쓰는 물감처럼 쓰고 싶다. 요즘 연기가 지나치게 강조돼 연기자의 연기만 보이는 영화들이 많은데, 그게 가끔은 징그러울 정도다. 스토리는 별거 없지만 여러 명의 톱스타가 출연하는 연기자 백화점 같은 영화랄까. 그 중에 한 명만 제 영화에 있어도 객관적으로 보여줄게 많을 텐데 생각한다. 아까 말씀하셨듯 연기가 붕 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욕심으로는 연기라는 게 내 필요에 의해 물감으로 쓰이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조재현씨가 대단한 것 같다.
<나쁜 남자>가 없다면 지금의 조재현이 있을까. (웃음) 반대로 조재현은 자기가 없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하더라. (웃음)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끊임 없이 많은 유혹과 충돌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머물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리얼리티에만 근거해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리얼리티를 좋아하지만. 요즘 한국 영화들을 보면 특히 실화 소재가 많아졌고, 영화 속에 역사 속 영웅들을 끌고 온다. 내게 세 가지의 원칙이 있다. 역사를 끌어오지 않는다. 역사 속의 인물을 끌어오지 않는다. 실제 사건을 끌어오지 않는다. 나는 사실 자신도 없고, 실화 소재의 영화를 만들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발상한 이미지를 결합시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내겐 더 흥미롭다.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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