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올레>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어린 시절 내 추억이 떠올랐다. 중필이 보여주는 멜로 장면들에서 남자들의 바보 같은 첫사랑 모습도 보였고. 남자 셋이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한 모습도 재밌을 것 같았다. 또 현실에 답답한 이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는 영화라고도 생각했다.
여전히 인터뷰 하기 힘든 배우 넘버원으로 꼽힌다.
에에이, 안 그렇다. 요즘엔 그래도 옛날보단 말 많이 한다.(웃음)
대기업 과장으로 나오는데 정작 직장생활은 해본 적이 없다. 역할에 어떻게 접근했나.
다행히 <올레>가 회사 생활을 많이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디테일하게 직장인의 생활을 다 표현하지 않아도 돼서 개인적으론 좀 다행이었다. 그래도 주변 친구들은 다들 직장인이니까,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도움이 됐다.
10년동안 ‘개처럼’ 일한 대기업 과장 치곤 몸이 너무 좋더라.
요즘은 관리 잘 하는 사람들 많다.(웃음) 싱글인 내 친구도 직장생활 하는데 운동 열심히 해서 몸 좋던데?(웃음) 사실 <런닝맨>을 찍을 때 액션씬을 소화하면서 허리가 좀 안좋아진 적이 있다. 그 때 들어보니 수술이나 물리치료보다 허리 주변 근육을 잡아주는 운동이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 실제로도 운동으로 어느정도 회복이 됐고. 그래서 웨이트를 열심히 하고 등산도 한다. 걷는 것도 좋아한다. 모자 쓰고 걸어다니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웃음)
맞다. 중필은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다. 쎈 캐릭터들에 비해서는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배역에 접근하는 방법까지 편안하다고 말할 순 없다. 코미디에서는 연기의 톤과 수위조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호흡 차이로 웃기냐 아니냐가 차이 난다. 잘못하면 썰렁해 질 수도 있고. 그런 걸 계산하다보면 어려운 건 비슷한 것 같다.
코미디물인만큼 배우들 간 호흡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 같다.
호흡이야 너무 잘 맞았다. 셋 다 연극무대 출신이니까.
연극무대 출신들끼리 모였을 때 느껴지는 연대감이 있나.
물론이다. 나는 박희순 선배 공연을 보면서 학교를 다녀서 워낙 친하다. 오만석씨는 어릴 때부터 본 사이는 아니어도 지금까지 공연하고, 연출도 한다. 내가 직접 가서 본 적도 있고. 배우가 연극무대에 서 봤다는 건 관객들과 호흡을 같이 해봤다는 뜻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배우들은 서로 말로 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
세 사람이 제주도에 모여 있었으니 즐거운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꼭 막걸리를 한 잔씩 했는데 정말 그게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그날 촬영을 다같이 정리하는 기분으로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맨정신에는 뱉기 어려운 말을 할 때도 있다. 연기에 대한 의견도 나눈다. 드라마를 찍으면 그럴 시간이 없다. 또 배경이 제주도다보니 공기도 좋고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4월에서 6월 사이의 제주는 정말 아름답다.
영화처럼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본 적 있나.
그래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땐 여행을 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됐고, 나이가 드니 각자 일이 바쁘고 가정이 생겨서 또 어렵더라. 촬영 하면서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1박이 됐든, 가까운 곳이든, 친구들과 같이 여행 가보고 싶다.
첫사랑은 추억 속에만 있어야지.(웃음) 다시 만나면 그때부턴 추억이 아니라 현실인 거고. 과거와 현실은 다른 거다. 영화를 보면 내 과거를 연기한 배우도 나랑은 너무 다르지 않나.(으하하) 그래서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추억은 그런 것 아닐까.
간직하고 있던 선미의 머리핀을 결국 선미의 어린 딸에게 꽂아주고 돌아선다.
나와는 아주 다른 지점인 것 같다. 그런 물건을 간직해본 경험 자체가 없다. 마음 속에만 묻어뒀겠지. 그런 걸 보면 중필은 39살이 되도록 아무도 안 만났을 것 같다. 첫사랑의 추억이 담긴 머리핀을 간직하면서 과연 다른 사람을 만났을까.
극중에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 멜로라인이 형성된다.
감독님이 내 역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멜로라인이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청년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더라.(으하하) 나이는 중년이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욕도 하고, 그러면서도 여자 앞에서는 머뭇머뭇 쑥스러워하는 모습 말이다. 웃을 때는 해맑고.
멜로 상대역인 유다인과의 호흡은 어땠나.
다인씨는 촬영할 때는 활발해보여도 사실은 매우 조용한 분이다. 그래서 특별한 에피소드랄 건 없고, 연기를 통해서 교감했다. 설정 자체가 뜨겁게 사랑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여행지에서 만난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촬영했다.
‘러브랜드’에 가는 장면도 있다.
원래 대본엔 더 많았다. 특이한 조형물이 많더라.(웃음) 구석구석 많이 찍었는데 과한 건 편집됐다.
채두병 감독은 신인감독답지 않게 굉장히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다. 현장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과 배우가 준비해온 것 사이에서 절충을 잘 해준다. 배우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다소 모자란 게 뭔지도 잘 안다. 그런 안배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놀라웠다. 잠시 잠깐 출연하는 배우여도 끝까지 이야기를 다 들어준 것도 인상적이고. 허점이 많아 보이지만(웃음) 현장에서의 능력은 다른 베테랑 감독 못지 않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제안하면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나.
난 본래 감독님께 뭔가를 제안하는 편이 아니다. 설령 드는 생각이 있어도 현장에서 연기로 보여준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일단 예산은 중요하지 않다. 역할의 크고 작음도 상관 없다. 물론 역할을 ‘크다’와 ‘작다’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하지만.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한 두 씬만 나오는 영화도 많다.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면 한다.
본인이 배우로서 가장 품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뭔가.
본래 지난 것을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 그런 걸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도 고민이 가장 많고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20대 때 했던 영화들이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지구를 지켜라>(2003)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시 나는 영화도 많이 안 해본 상태였던 데다가, 캐릭터들이 표현하기에 너무 어려운 지점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니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모르겠더라. 고민이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힘들었던 작품들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 해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이제는 어떤 캐릭터가 들어와도 그 시절보단 좀 수월하게 느껴지겠다.
연기는 늘 백지에서 시작한다. 20대든 지금이든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좀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모으기도 많이 모았다. 지금 이 카페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요즘은 좀 자제하고 있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쪽에 돈을 많이 쓴 편이다. 지금은 애장품들에 맞는 케이스를 제작해서 동생이 하는 가게에 전시해 놨다. 뿐만 아니라 레고도 쫘악 깔려있다. 레고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면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는 손모양을 하며) 기다리면서 살 생각만 한다.
피규어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입체감있게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행복하다. 물론 비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오래될수록 귀한 물건들이 있다. 어릴 때 봤던 <빽 투더 퓨처>(1985)같은 것! 또 <아바타>(2009)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과 배트모빌까지 종류별로 다 있다. 조커는 정말로 거의 다 있을 거다. 특히 레고는 색감도 좋고, 블록이 쌓여서 거대한 완성품이 됐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설계한 사람도 너무 대단하다. 레고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흐흐) 근데 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서 전부 다 갖기엔 힘들다.(웃음)
외롭다는 생각을 할 때는 없나.
(의아하다는 듯이) 난 외롭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할 게 너무 많다. 오히려 우리 일이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 특성이 있지 않나.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많다. 그러다가도 심심할 만 하면 누가 연락 와서 술 마시자고 하고.(웃음) 밖에서 술 먹기 싫은 날은 집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마시기도 한다.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고 조명의 조도도 딱 맞춘다. 결혼 한 분들은 이런 걸 못하니까 날 부러워하더라. 자기 시간, 자기 공간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나.
정서적으로 풍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한테도, 친구들한테도, 관객들한테도. 워낙 좋아해 주셨다. 그래서 감사하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다 속에 들어갔을 때. 다이빙을 한다. 매 달 갔다. 그 속에 들어가면 지형이 워낙 다양해서 바닥이 뻥 뚫린 곳도 있고, 발에 닿는 곳도 있다. 저 바다 안에 과연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김고은씨와 같이 다니나?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많다.(웃음)
2016년 8월 26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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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