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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을 비극처럼, 비극을 희극처럼 <올레> 박희순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올레>에서 박희순은 13년째 고시생인 ‘수탁’을 연기한다. 사법고시가 폐지된 후로는 자살까지 시도하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캐릭터다. 그럼에도 제주에 간 후에는 경박할 정도로 발랄하고 변태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희극을 비극처럼, 비극을 희극처럼’ 연기하라던 연극판의 말처럼, 박희순은 배역의 명암을 적절히 조율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간 계속 어두운 분위기의 역할만 맡았는데, 본래 즐겁고 발랄한 성격이라고 하더라.
예전엔 좀 내성적이었다. 밝아지려고 노력 해오면서 변했다. 나이 먹는 것과도 상관 있는 게, 스스로를 좀 내려놓게 된다.(웃음) <올레>에서는 대놓고 코믹한 역할을 맡았으니 끼 있는 내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걸 보여주는 게 영화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더 될 것 같아서 제작보고회나 인터뷰때 평소보다 더 오버한 경향도 있다.(웃음)

<올레>를 본 소감은.
기술시사때는 내가 뭔가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 해야 했나 하는 아쉬움부터 느꼈다. 내 연기의 부족한 점만 보이고. 언론시사때 다시 보니 의도했던 것만큼 재미있게 찍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만족한다.

13년째 고시생이니 엄청 침울한 인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에선 상당히 가볍고, 다소 경박한 느낌까지도 준다.
나도 처음엔 대본을 보고 이렇게까지 발랄한 느낌을 풍기는게 맞는 건가 의아했다. 수탁은 굉장히 우울할 것 같은 인물이니까.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이 캐릭터는 오히려 조울증이 심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늘 억눌려 있고 가라앉아 있는 수탁이 20대때 같이 장난치고 떠들던 친구들을 만나면 좀 붕 뜬 모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평소보다 더 오버하는 거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일탈하고 싶어 했을 것도 같고. 일상의 자신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싶다. 희극을 비극처럼, 비극을 희극처럼. (조금은 민망한 듯 웃으며) 이런 말을 연극할 때 많이 했다. 우울한 사람일수록 감정의 높낮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나게 떠들다가도 갑자기 외로워지는 것 말이다.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도 그런 맥락에서 연출 된 건가.
그건 좀 귀여워 보이고 싶어서 내가 의도한 거다. 역할 자체가 자칫하면 밉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외모라도 신경 써야 될 것 같아서. 그래야 덜 변태스러워 보일 것 아닌가.(웃음) 기본적으로 수탁은 고시공부 한다고 맨날 방에만 쳐박혀 있던 인물이니 머리가 좀 길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걸 좀 변주해보고 싶었다. 채두병 감독이 나더러 “선배 눈이 강아지를 닮아서 캐스팅했다”고 한 만큼, 좀 더 강아지스럽게 보이자는 생각도 들었고.(웃음)
중필(신하균)이 당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친구로 나온다.
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중필의 영향을 받아서니까. 정작 영리한 중필은 시험에 못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빨리 빠져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는데도 수탁은 끝까지 고시원 생활을 계속 한다. 인생의 방향성을 비롯해 중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도 마냥 좋아하기 보단 애증이 있달까. 그건 수탁이 중필의 첫사랑이었던 선미(조은숙)를 좋아했기 때문일 거다.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중필이 기타연주 하면서 선미에게 사랑고백 하던 그 자리에 사실 수탁도 있었다. 옆자리에 자는 척 눈 감고 누워 눈물을 흘리면서.(웃음) 그걸 중필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세월이 지난 거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 간만에 친구를 만났는데도 계속 시비를 건다.(웃음)

선미는 왜 수탁에게 부고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을까.
제일 만만 했겠지.(웃음) 은동(오만석)은 결혼한 유부남이고, 중필은 껄끄러운 관계가 됐고. 수탁은 이것저것 다 들어주던 순수하고 편한 친구였으니까.

<맨발의 꿈>(2010)때는 동티모르의 어린 친구들이 연기에 몰입하게끔 북돋아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세 배우가 동등한 위치에서 합을 맞췄다.
그때와는 상황이 정말 달랐다. 그 땐 아이들의 연기를 잘 받아주는 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날뛰는 입장이었다. 신하균은 그런 나와 티격태격해야 했고. 오만석은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잘 맞춰줬다. 동생이지만 실제로도 굉장히 리더십 있는 친구다. 덕분에 우리 세 배우의 합이 잘 맞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 사람이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남자 셋이 모이면 뻔하다. 여자 애기를 한다. 물론! 작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대부분 한 다음에.(으하하) 여자 얘기란 게 자기 여자친구일수도 있고, 연예인이나 이상형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친분은 있었지만, 한 작품에 참여해서 몇 달 동안 같이 지내본 적은 없으니까. 제주에 붙어있으면서 서로 끈끈해졌다. 영화 내용도 무겁거나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종류라서 연기 하다가 쉬는 잠이 생기면 서로 농담도 하고 자유롭게 지냈다. 특히 오만석! 아재 개그의 달인이다. 분위기를 주도한다.(웃음)

촬영 내내 제주에서 지낸 걸로 들었다.
그 전에도 촬영 때문에 워낙 해외에 많이 나갔기 때문에 낯설진 않았다. 서울에 있을 땐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할 게 많은데 제주에 동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촬영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더라. 그 안에서 촬영 무리들끼리만 생활하니 소통도 잘 되고.

극중에서 루비(한예원)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데, 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에게 사랑고백을 하는게 어느 정도 진심이었지 궁금하더라.
나도 감독님께 비슷한 질문을 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 대목에서 오로지 루비에 대한 강렬한 사랑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니다. 수탁은 13년간 고시에 붙지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 아닌가. 그렇다고 시원하게 그만두지도 못하니, 스스로 용기도 없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자책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오래 전에 선미에게도 고백하지 못했고. 이런 찌질한 삶을 좀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섞여 있지 않을까 싶다. 여자에게나마 용기를 내보고 싶었던 거겠지.

유다인과 한예원도 꽤 비중 있게 나온다. 그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실 내심 그녀들에게 미안하던 차였다. 너무 삼총사 위주로 홍보가 된 것 같아서. 유다인씨 경우는 특히나 나랑 작품을 세 번째 같이 하는 거다. <의뢰인>(2011) <용의자>(2013) <올레>(2016)까지. 본래 유다인씨는 ‘풀잎’ 같은(웃음) 청초한 분이라서 무리에 잘 섞여서 노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촬영장은 워낙 엠티 같은 분위기가 조성돼서 그런지 잘 어우러져 놀더라. 처음 본 모습이다. 게스트하우스 안에 있는 배우들끼리 모여서 얘기하고 술 마시고 했으니 그럴 만 했다. 한예원씨는 걸그룹 출신이라 그런지 끼가 무지 많고. 쉬는 날은 다같이 제주도에서 우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첫 장편영화를 찍은 채두병 감독은 어떤 분이던가.
그의 캐릭터를 알만한 일화가 있다. 영화를 찍기로 한 후에 감독님과 배우가 함께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 후로 새벽 여섯시나 일곱시쯤만 되면 카톡이 울렸다. 감독님이 밤새도록 자기 생각을 쓴 장문의 글이나 참고자료를 카톡으로 보내는 거다. 배우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닌 얘기도 있는데 새벽마다 깨야 되는 거지.(으하하) 모두가 깨게 해서 동질감을 주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어느 순간부터 알림을 무음으로 해놨다.(으하하) 그 정도로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분이다. 워낙 박학다식하기도 하고.

감독의 디렉팅이 구체적이고 명료한 편인가, 아니면 최대한 배우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쪽인가.
디렉팅 자체가 좀 특이한 데가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수탁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자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때 ‘말이 달리다가 헉헉대는 연기’를 해달라고 하더라. 에? 여기선 그간 참았던 감정을 좀 터뜨려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호흡만으로 표현하라니. 어쨌든 일단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해봤는데, 나중에 보니 화면에 비춰진 내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거친 호흡이 절벽에 섰던 수탁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런 독특한 디렉팅이 나에겐 신선했고, 그 후로는 이 양반이 하는 얘길 무조건 따라가다 보면 나도 새로운 걸 느끼고 얻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제작보고회때 보니 세 배우가 감독을 놀리는 것 같은 분위기도 들더라.(웃음)
감독님이 워낙 권위적인 면이 없다.(웃음) 보통 조감독을 뽑을 때 이력서를 받거나, 어떤 작품을 했냐고 물어보지 않나. 그런데 채 감독님은 오히려 자기 프로필을 지원자에게 주변서 “난 이런 사람이니 니가 판단해서 하고 싶으면 해”라고 했다더라.(웃음) 미국에서 영화 수업을 받은 영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수탁을 연기하면서 신났던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쎈 캐릭터만 했으니까. <세븐데이즈>(2007)나 <맨발의 꿈>(2010)에서 조금씩 보여주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신나게 노는 캐릭터는 처음이다. 옛날 연극 무대에서나 보여준 적이 있었지. 그래서 들떴다.
<간기남>(2012)이후 모험보다는 흥행 위주의 작품으로 태세 전환을 한 것처럼 보인다.(웃음)
(으하하) 흥행을 따라가다 보니까, 그 역시 장단점이 있다. 사실 작품에 몰입하 다보면 자연스레 흥행이 되는 게 맞는 건데, 내가 한 작품들이 그간 너무 흥행을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배우로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꾸 흥행이 될 것 같냐 아니냐를 판단하게 된다.

작품 선택하는 데 가장 어려움 점은.
요즘엔 ‘천만 관객’이란 게 흥행의 기준이 됐다. 사실 그런 영화들은 어느정도 공식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공식 하에 배경이나 사람, 작품이 주는 느낌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런 큰 작품 아니면 반대로 완전히 저예산 영화만 남아버리니, 선택할 수 있는 영화 소재도 제한적이라는 것도 요즘 영화계의 현실이다. 옛날보단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다양성 영화’라는 명목 하에 따로 홍보 되는 영화가 있을 정도니까. 소재와 내용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넓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배우도 흥행이라는 기준을 좀 내려두고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화에서 39살을 연기했는데 실제 그 나이에는 어떤 고민들을 했나.
그때 되게 우울했다. 결혼을 못 했을 때다. 어느 자리에 나가서 나이를 말 해야 할 때 39과 40은 굉장히 어감이 다르지 않나. 또 막연하게나마 그 나이가 되면 주변에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 같고, 연기도 부담감 탁 내려놓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웬걸. 실제 그 나이쯤 되니 연기는 더 어려워지더라. 내가 그간 해온 게 맞는지부터 시작해서 해왔던 대로 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니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건지. 지금은 고민이 더 깊어졌다. 연극 하던 시절에 비해선 경제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이제는 단순히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넘어서 책임감이란 게 있으니까.

어떤 책임감을 말하는 건가.
(침묵하다가) 내가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고집과 자존심이 있다. 그것들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해야 정확할 거다. 이걸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가 늘 고민스럽다. 때로는 그걸 지키려다 오히려 자신감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반대로 너무 자존심만 세우게 되는 것도 우려되고. 아직 내 속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잘 정리가 안 된다.(으하하)

배우로서 좀 고민이 되는 시기인가보다.
좋은 작품과 좋은 역할을 기다리는게 좋을까. 아니면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서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다양하게 소화해내는게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한다.
꿈꾸던 40대를 살고 있나.
20대때도 내가 연기를 계속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영화를 이렇게 오랫동안 할 거라곤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선 꿈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40대땐 완숙한 연기를 하는 좋은 배우가 돼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얼토당토않게 모자라다.

언제쯤 좋은 배우가 될까.(일동 으하하)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죽기 전엔 됐으면 좋겠다.(웃음)

앞으로 좀 한가해지면 뭘 할 건가.
서핑을 좀 배워볼까 한다. 난 수영을 못해서 생각해본적도 없는 취미생활인데 한 번 해보니 의외로 재밌더라. 잔잔하게 치는 파도에서 일어나 설 정도는 된다. 이제 막 재미 붙일 때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때는.
흐음. 시사회 때문에 계속 걱정만 했다. 감독님도 첫 작품이고 하니, 서로 기대 했다가 안좋은 평이 나오면 마음 상할까봐. 내가 일부러 감독님한테 쿠사리를 줬다.(으하하) 시사회 끝나면 이제 다시 보지 맙시다! 볼 일이 없어!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시사회 끝나고 나서 평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그게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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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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