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류지연 기자]
*해당 인터뷰에는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즘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체력은 어떻게 유지하나.
공진단 먹고 있다.(웃음) 그거 말곤 없다.
영화제작 초기단계부터 캐릭터 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터널>은 소위 말해 배우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나?
전작이었던 <아가씨>의 경우 한 컷 한 컷마다 세공을 하듯 찍었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이고 카메라 워킹까지 모든 것이 완벽히 디자인 된 상태에서 계획적으로 촬영했다면 <터널>은 다소 거칠게 촬영한 편이었다. 감독님이 카메라를 던져놓고, 즉흥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이들 비교하시는 <더 테러 라이브>때만 해도 최소한으로 소통을 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터널>은 거의 혼자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의식의 흐름대로 집중하며 연기할 수 있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가벼운 생활연기를 한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무거운 연기를 한다.
민아의 죽음이 분기점이었다. 정수는 처음에 터널이 붕괴가 된 후 패닉에 빠졌다 구조대장 대경의 말을 듣고 진정한다. 그러다 아내와 통화를 한 뒤 희망을 안고, 일주일동안 어떻게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가 민아를 만나 완전한 안정을 찾았다가 민아가 죽으면서 공포에 빠진다. 이후에 벌어지는 탱이와 두 번째 생존이 처음과 달라진 점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고 라디오에서 구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절망에 빠진다. 처음부터 민아의 죽음을 반환점으로 정해놓고 전반부는 다소 유쾌한 생존기에 집중하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는 그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아마 기절했을 거다. 무서워서 숨도 못쉬고. 하지만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밖의 상황과 안에 갇힌 정수의 모습이 더 크게 대비될수록 극적으로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1인극으로서 정수의 표현과 뉘앙스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수 밖에 없다. 애드립을 해야 하지만 상황상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지점이 있었을텐데.
예를 들어 민아의 차에 갔다가 본인 차에 돌아와서 “집에 왔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관객이 그 부분에서 웃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환풍기를 오가면서 촬영할 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집에 왔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그 곳에서 적응해나가는 정수의 모습이 한 편 짠하기도 했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그 안에 있다면’이라고 상상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인물을 새로 만들어 내기 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멋진 하루>, <비스티보이즈>에서 연기했던 방식들과 비슷했다.
<터널>을 선택한 이유는 어떤 것이었는가.
무거운 사건과 주제를 담고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인물이 마냥 고통 받는 모습 만을 그리지 않고 삶의 의지를 붙잡으면서 유머를 구사한다는 영화의 색깔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닥치면 정말 영화 속 정수처럼 행동할 것 같다.
아마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쓸 것 같다. 평상시에도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깊은 고민에 빠지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오히려 나가서 조깅을 하거나 러닝머신을 한다. 걱정이 많을 때는 육체를 혹사시키면 다음날 무게감이 확 줄어 있더라. 그런 삶의 자세가 정수와 비슷해서 심정적으로 잘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유소에서 시간을 끌었던 할아버지만 없었어도, 터널에 갇히지 않았을 거라고 정수가 원망하는 장면이 있었다.
오히려 할아버지 때문에 물 두 병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마운 것 아닌가. 갇힐 운명이면 갇혔을 것 같다. 그 일이 없었다 해도 사장이랑 실랑이 한 시간을 따지면 어차피 갇혔을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팅힐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길거리에서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부딛혀 줄리아 로버츠의 가슴에 오렌지 주스를 쏟은 뒤 휴 그랜트가 자기 집으로 그녀를 데려가 씻게 해주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줄리아 로버츠가 오히려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거다. 휴 그랜트 때문에 이렇게 번거로운 일이 생긴 건데도. 김성훈 감독이 이처럼 영화 속의 결을 입체적으로 나타내 준 것 같아 좋다.
먹방의 대명사로서, 이번에는 개사료 먹방에 도전했다.
그날 대사는 거의 다 애드립이었다. 굉장히 기적적으로 촬영된 장면이다. 개의 경우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의외로 한번에 술술 풀렸다. 개 중에서도 똑똑하지 못하기로 소문난 퍼그를 캐스팅해서, 도와주셨던 소장님도 이건 잘못 선택한 것 같다고, 퍼그를 훈련시킬 수는 없다고 했는데.(웃음) 길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저를 간식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이후 터널을 지날 때마다 트라우마가 생기진 않았나? 또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나.
근 6개월 사이에 엘리베이터에 몇 번 갇혔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잘 안탄다. 술 먹고 들어올 때는 타는데 맨 정신에 출근길에는 걸어서 오르내린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되게 민감해지더라.
혹시 비행기를 탈 때도, 사고에 대한 상상을 자주 하나?
비행기 탈 때 기종을 살핀다. 어떤 비행기가 자주 사고가 나는지 체크하는데 보잉사의 몇몇기종은 실제로 피한다. 또 보통 이착륙할 때 사고가 가장 많이 난다고 하더라. 앞부분보다 뒤 꼬리 쪽에 앉는 것이 더 위험하고.
이런 건 다 어떻게 아는건가?(웃음)
<롤러코스터> 찍을 때 다 조사를 했다.(웃음) 비행기 타는 걸 워낙 무서워 해, 비행기 사고에 대한 다큐도 자주 봤다. 보통 이착륙 시에 가장 사고가 많이 나고, 공중에서 비행기가 폭발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테러 아니면 전기합선. 연료 탱크 위에 모든 전선이 있기 때문에 합선이 되면 비행기가 폭발한다 하더라. 이를 알아챌 수 있는 징조도 있다. 갑자기 모니터가 나간다거나 에어컨이 꺼지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터뷸런스때 나는 벨소리의 경우 몇 번 울렸냐에 따라 뜻이 다르다. 벨이 두 번 울리면 식사서비스가 중단되고 세번이면 승무원이 모든 서비스를 중지한 뒤 모든 사람을 착석시켜야 한다. 4번 울리면 정말 비상상태인 것이다. 특히 계절변경선이나 적도, 후지산 부근을 지날 때 조심하라.(웃음)
하나에 꽂히면 잘 파는 스타일인가 보다.
최근에는 애견에 대해 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개를 키우다가 혼자 살면서 키울 수가 없었는데, 영화 속에서 탱이를 만난 다음 다시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약간 상남자 스타일이기 때문에 대형견을 좋아한다.(웃음) 큰 개 위주로 생각하고 있다가 비숑프리지에를 봤는데 마음이 가더라. 개의 역사를 찾아보니까 원래 프랑스 왕실에서 키우던 개였는데 서커스 공연에 출연하게 돼 너무 흔해지니까 그때부터 보급이 됐다 하더라. 같은 광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친밀감을 느꼈다.(웃음) 굉장히 사교적이고. 혼자 있어도 잘 견디는 스타일이다.
오달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암살>에서 같이 진하게 연기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 때부터 괜한 신뢰와 믿음이 생겼다. 영화 속에서 정수는 대경의 말을 바보같고 순진할 정도로 믿는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나, 시나리오 상에서 배경 설명이 없이도 그런 대경의 행동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오달수라는 배우가 가진 신뢰 때문인 것 같다. 따로 떨어져서 연기하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의지가 많이 됐다.
배두나와는 극중에서 전화를 통해 호흡하는 장면이 많다. 통화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서로통화를 하면서 리액션을 받아주기도 했었다고 들었는데.
배두나와는 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다. 또 그녀의 해석이 참 좋았다. 자칫하면 그녀가 맡은 역할이 감정적으로 반복이 되고 소모적일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관객의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두나는 감독에게 영화 끝까지 눈물 한 방울도 안흘리고 참을 거라고 하더라. 아내인 사람이 포기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영화적으로 힘이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반대로 강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두나가 오히려 손을 더 많이 내밀고 도움을 줬던 것 같다. 내가 해줬던 거라고는 전화해준 것뿐인데, 두나는 직접 촬영장에 와서 누워보고, 투어도 하고 그랬다. 그런 자세가 굉장히 고마웠다.
직접 영화를 연출해본 경험도 있어서, 촬영하면서 감독과 상의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서로 대립했던 부분이 있었나?
일단 감독을 해 보니까 이제 그러면 안되겠다 생각을 해서 대립은 잘 안한다. 감독은 나보다 만배는 더 고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근방식을 달리해서, 내가 여러 개를 던져 놓은 다음 감독님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같이 만들어 낸 장면이 마지막 부분에 대경이 캡슐을 타고 사고현장에 내려갔다 온 장면이었다. 초고에는 그 장면이 없었다. 대경이 초반에는 구조에 대한 굉장한 의욕이 있는 인물임에도 소극적으로 엔딩이 된 것 같아, 뭐라도 해야 되지 않냐는 의견을 드렸다. 그래서 그 씬이 만들어졌다.
배우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는 어떻게 다른 것 같나?
감독을 하면서 지레 겁을 먹은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진웅이 형이나 이경영 선배 모두 평상시에는 굉장히 스스럼 없이 대하는 친한 사이인데, 감독과 배우로 만나니 굉장히 신경이 쓰이더라. 조금 무표정이기만 해도 뭐가 안 좋은가 해서 눈치도 살피고 그랬다. 100명이 넘는 스텝들의 리더로서 현장을 이끌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등 뒤에서 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영화는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 결정 내리기 참 어렵더라. 배우가 조금만 언짢은 내색을 해도 그게 감독에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주연배우로서 현장에서 해야 할 역할들도 신경 쓰게 됐다.
직접 연출을 해보니 뭐가 제일 중요하던가.
<암살>, <아가씨>를 찍으면서 캐스팅과 시나리오, 헌팅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헌팅에 목숨을 거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왜 박찬욱 감독님이 <아가씨>에서 저택의 롱샷 하나를 찍으려 나고야 까지 갔는지.(웃음) 그런 장면 하나가 영화의 뉘앙스를 결정하고 뉘앙스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배우의 경우 만약 <터널>이 나를 캐스팅 안 했다면 영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웃음) 농담이다. 시나리오도 굉장히 중요하다. 예전엔 시나리오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연기로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일단 시나리오가 잘 완성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반드시 자기가 진짜 관심 있는 얘기를 해야 한다.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아직은 모르겠다. <롤러코스터>와 <허삼관 매혈기>가 분위기 상 대조적인 영화였다. 다음 영화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 지 생각 중이다.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는 있다. 트리트먼트 상태인데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찍기 시작할거다. <신과 함께> 일정이 끝나면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 남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올해는 계속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를 촬영할 것 같다. 내년 여름방학쯤에 개봉할 거다. <신과 함께>는 생각보다 매우 유쾌한 작품이다. 차태현 형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인 이정 형의 멱살을 잡는 장면을 봤는데 굉장히 웃기다. 판타지 물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리얼한 연기여서 김용화 감독님이 톤을 잡은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웹툰 보는 것처럼 이야기가 쉽게 진행되는 작품이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강아지 복실이를 분양 받았을 때다. 처음에 개를 입양하면 ‘복실아’ 하고 이름을 불러도 자기 이름인 줄을 모르는데 어느 날 자기 자신이라는 걸 인지했을 때 기분이 짜릿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웃음) 이제 결혼도 하고 애를 낳아서 아빠 소리를 들어야 할 나이가 아닌가.(웃음)
2016년 8월 17일 수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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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