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본 인터뷰는 <아가씨>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칸 다녀와서 좀 쉬었나?
못 쉬었다. 도착하고 바로 시사회에 참석했고, 그 후 홍보 일정이 쭉 잡혀 있다 보니.
근데 매일 바쁜 게 아니고 쉴 때는 푹 쉴 수 있으니까 괜찮다.
휴식기에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진짜 별 거 없다보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냥 쉬는 거다.
기자 간담회 때 보니 말을 많이 아끼더라.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가?
확실히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외향적인 면도 있지만 내성적인 면도 분명이 있다. 거기다 아무래도 간담회에서는 더 조심하게 된다.
영화가 참 아름답더라. 시나리오 처음 읽고 난 후 느낌은?
일단 이야기가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반전이 계속돼서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고. 또 다채로운 감정들이 잘 어우러져 있더라. 히데코라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다.
히데코의 첫 인상은?
계속 변하는 캐릭터라 강렬했고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어려울 거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다. 영어자막이긴 했지만 내용을 알고 있어서 보는데 무리 없었다.
시사회 때 두 번째로 본 건가?
아니, 시사회 때는 못 봤다. 그 전에 인터뷰가 있어서.
그럼 한 번밖에 못 본건가? <아가씨>는 두 번 보면 좋을 작품이다.
두 번 본 분들이 많이 좋아하시더라. 아무래도 두 번째는 세심하게 살피면서 볼 수 있어 그런거 같다.
나도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배우로서 히데코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다. 다양한 감정들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다는 게 힘들기 보다는 재밌었다.
인물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다보니 연기를 할 때 이렇게 해봐도 되겠다 싶은 것이 많았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는 읽어 봤는지?
사실 소설은 읽지 못했다. 근데 원체 시나리오가 좋았다.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시나리오만 봐도 히데코는 탐나는 역이더라.
근데 시나리오 읽을 때 동성애나 그런 것들이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야기 흐름상 사랑을 하게 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감정에 이입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가 이해됐다. 내가 연기를 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거처럼 관객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섬세한 감정을 살려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박찬욱 감독님과는 친분이 있었는지?
사석에서 잠깐 잠깐 뵌 정도의 친분이다. 평소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기에 감독님이 작품 제의해줘서 좋았다.
2부에서 시낭송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시낭송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는지?
특별히 참고한 자료는 없다. 일단 일본어를 중점으로 그 장면들을 준비했다. 히데코가 책을 읽으면서 연기를 하지 않나. 책 읽으면서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빠른 시간 안에 인물이 계속 변한다. 1부, 2부, 3부에서 변하는 거처럼.
맞다. 구연 동화하듯, 여러 캐릭터를 소화한다.
그런 점들이 연기하면서 흥미롭더라. 또 내가 즐기면서 연기를 해야 관객들도 즐겁게 그 장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다소 웃기게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보신 분들은 없는 듯하다(웃음).
히데코가 신사들(청중들)을 갖고 노는 듯한 느낌? 자신을 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가 통쾌했다. 그 장면 촬영할 때 어색하진 않았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조명 감독님께서 유치원 선생 해도 잘했을 거 같다고 하더라(웃음).
히데코를 보고 욕망하는 남자들과 그들을 앞에 둔 히데코의 감정 없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히데코는 원체 그렇게 훈련 받은 사람이다 보니 그런 표정이 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문소리 선배도 낭독하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장면도 좋았다.
숙희가 아가씨와 손을 잡지 않나. 근데 2부 처음 시작할 때 숙희가 ‘아가씨는 그냥 나쁜 년이다’ 라고 한다. 아가씨가 숙희를 배신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건가?
아니다. 처음 손을 잡은 이후 숙희와 아가씬 계속 한 편이다. 정신병원에서 소리 지르는 것도 백작을 속이기 위해서다.
그런가. 아가씨가 숙희를 배신했다 생각을 바꿔서 다시 숙희를 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아닌데 당신의 말처럼 돼도 흥미진진했겠다.
<아가씨>는 정말 당신의 대표작이 될 듯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했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걸로도 유명하지 않나.
내가 그런가(웃음).
배우로서 받고 싶은 평가가 있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관객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시던 나는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내 생각에 난 어떤 하나의 캐릭터만을 고집하진 않는 거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배역을 딱 정해놓지 않는다.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만나면 그 부분에 흥미를 느끼고 별로 고민 안 하고 일단 해보는 편이다.
도전의식이 있는 거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꼭 집어 타협할 수 없다기 보다 장르적으로 공포영화는 못 할 거 같다.
이유는?
무서워한다. 보는 것도 무섭다. 공포영화는 정말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다. 지금까지 액션, 드라마, 스릴러 그리고 코미디 등 여러 가지 장르를 했는데 공포는 안 할 거 같다.
숙희와의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태리와 호흡은 어땠나?
아주 준비를 꼼꼼히 하는 친구로 현장에서도 당차게 자기 일을 해냈다. 상대배우로 호흡도 잘 맞았다. 또 동생처럼 친근하게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르더라.
금방 친해졌나?
아무래도 상대역이라 생각하면 더 애정이 간다. 또 빨리 친숙해져야 하는 관계니까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다.
숙희가 아가씨의 이를 갈아주는 장면이 아주 관능적이다. 특히, 당신의 얼굴에 보일 듯 한 홍조가 더욱 그렇게 보이더라.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고설키는데 있어 연기하기 힘든 진 않았나?
다행히 집중이 잘 됐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잘 이끌어 낸 거 같다.
촬영 시 힘든 점이 있었다면?
분명 힘든 점도 있었다. 특히 베드신 같은 경우가 힘들었다. 그 외에 감정을 교류하는 신은 일단 친밀감에서 감정이 시작돼서 그 후 미묘하게 감정이 변하는데 그 감정이 사랑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멜로 라인이 영화에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에 숙희와의 사랑이 다른 사랑보다 더 어렵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감정에만 집중했다.
하정우씨와 호흡은 어땠나? 처음 같이 연기했는데.
호흡이 진짜 좋았다. 처음 촬영한 장면이 백작이 아가씨를 찾아와서 방문을 두드리는 신이다. 방에 들어와서 갑자기 자기 출신을 밝히는 신인데 호흡이 척척 맞는다는 느낌이 들더라. 새로운 장비로 촬영하다보니 카메라 워킹 때문에 NG가 났지 연기하면서는 오히려 NG가 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아가씨와 백작이 아웅다웅하는 찰진 대사가 <아가씨>의 또 다른 재미다.
하정우 선배가 대사가 많았다. 긴 대사가.
아니다. 영화 때문에 배우기 시작했고 시나리오 보며 공부하고 연습한 거다. 처음에는 솔직히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입에 익은 후에는 그래도 수월했다. 눈에 익고 귀에 익으니까 다행히 술술 나오더라.
일본어 연기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히데코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발음에 신경을 썼다. 특히 일본어 대사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 속도가 내가 평소 얘기하는 속도의 2배 정도 된다. 빠른 템포로 얘기하는 걸 굉장히 많이 연습했다. 입이 풀어지고 나니 좀 괜찮더라. 낭독하는 건 오히려 대사보다 편했다. 낭독은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 연기하면 되니까.
어떤 의민지 알겠다. 낭독은 또박또박 읽으면 되지않나.
맞다. 대사는 낭독하는 것 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보니, 그 속도 맞추는 게 힘들었다.
<아가씨>는 요즘 보기 드문 여성 주도 영화다.
<해어화>나 <계춘할망> 등 최근에 그래도 좀 많지 않았나.
<화차>도 그렇지만 당신은 여성이 주도적인 영화를 잘 찾아 하는 거 같다.
운이 좋은 편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한정된 작품 안에서 배역을 결정해야 되는데 난 시나리오를 만나는 인연이 좀 쉽게 이뤄지는 거 같다.
당신의 경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편인가? 작품 선택 기준이 있다면?
많이 들어 온다의 기준이 어느 정돈지 모르니까, 내가 많이 받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작품 결정은 일단 들어온 시나리오 중 마음 가는 걸 선택한다.
홍상수 감독님 다음 작품도 같이 한다고 들었는데?
촬영을 다 마쳤다.
벌써 다 끝났나? 영화 제목은 뭔가?
아직 모른다(웃음). 개봉할 당시 제목이 정해진다.
스스로 히데코와 닮은 점이 있다면? 만약 숙희역을 했으면 어땠을지?
글쎄, 히데코와 내가 실제로 닮은 점이 딱히 있는 거 같지 않다. 숙희 역도 매력 있다.
아가씨 의상이 멋지더라. 옷발이 정말 잘 살던데. 또 이번에 남장도 했는데?
고맙다(웃음). 그리고 남장은 재밌더라. 남장을 하고 가발을 탁 벗는 장면이 있는데 그 순간 참 통쾌했다.
마지막 이모부한테 쓴 편지 내용도 통쾌했다.
원래 그 편지가 나레이션이 일본말, 편지 글이 한국말이었는데 나중에 편지글을 일본말로, 나레이션을 한국말로 바꾼 거다.
나레이션이 한국말로 돼서 더 통쾌한 듯하다. 최근에 인상 깊었던 영화는?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곡성>은 무섭다고 해서 못 봤다(웃음).
<아가씨>를 촬영하며 느낀 점은?
<아가씨>는 극적인 영화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새로운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게 돼서 기쁘다.
감독님이 굉장히 꼼꼼히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를 봤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런 정교한 세트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연기에 도움이 된다. 왜냐면 비록 사물이라도 그들이 뿜어내는 공기가 다르다.
결혼하는 장면은 일본에서 촬영한 건가? 주요 촬영지, 그러니까 세트장은 어디였나?
결혼하는 장면은 일본으로 참 아름다웠던 곳이다. 세트장은 여러 군데인데 사실 확실한 지명은 잘 기억 안난다. 내가 지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 정신병원은 서대문 형무소였다. 세트장에 다른 감독님, 배우들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이 많이 방문했다. 참 손님이 많은 촬영장이었다(웃음).
아가씨 마치고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았는지?
난 감정에서 수월하게 빠져 나오는 편이다. <화차>도 그랬고. 순간 몰입하고 순간 빠져나온다.
천상 배우다(웃음). 향후 계획은?
일단 홍보까지 마치면 좀 쉴 생각이다. 촬영만큼 홍보도 힘들고 중요하니까. 휴식 후 당분간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집중하려 한다.
최근 기쁜 일은?
기쁜 일은 찾고자 하면 너무 많다. 아주 작은 거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
꼭 알고 싶은가?
궁금하다(웃음).
원래 그런 면이 있긴 했는데 특히 요즘 자연이 주는 것에서 기쁨을 많이 느낀다.
전에 인터뷰 때도 이런 얘기 했었는데 얼마 전 태양이 강물에 반사되는 걸 우연히 봤다.
마치 별들이 예쁘게 떠 있는 거 같더라. 실눈을 떠서 봤더니 그것들이 더 번져서 강물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데 너무 예쁘더라. 그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아주 많은 거 같다. 또 문득 하늘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나는 계속 변하고 있는데 하늘은 항상 똑 같구나, 참 고맙다. 이런 걸 느끼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2016년 6월 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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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