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명량>을 두 번 봤는데 아직까지는 관객처럼 즐기면서 못 보겠어요. 시사회 때 CG가 마무리 된 영상을 처음 봤는데 요즘은 CG가 정말 좋아졌구나(웃음), 이 장면은 이렇게 찍혔구나, 그 장면은 편집됐구나, 이런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스탭 가족 시사와 전야 시사 때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인데 그때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죠.
해전 신은 CG가 많아 촬영하면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유달리 징글징글 했어요(웃음). 배가 움직이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판옥선을 놀이기구 같은 기계 위에 올려놓고 촬영했어요. 블루매트를 깔아놓고 바다라고 상상하며 찍었는데, 영화에서는 정말로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저걸 어떻게 찍었지, 기술이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신기했죠.
영화를 보고 나서 아쉬움과 만족 중 무엇이 더 큰가요?
항상 아쉬움이죠.
어떤 점이 아쉬웠나요?
인물들이 정신적, 감성적 교감을 쌓는 과정을 지금보다 더 세밀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했어요. 지금은 시간 관계상 필요한 대사가 끝나면 다음 신으로 넘어가요. 하지만 감정신 같은 경우는 대사와 대사 사이의 호흡도 중요하거든요. 특히 수봉이가 죽은 아버지의 갑옷을 안고 우는 장면은 박보검이 연기를 정말 잘해서 아까웠어요. 영화를 찍고 나면 그런 점이 항상 아쉬워요.
우리가 너무 빠른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모바일 시대에는 모든 것이 속도 싸움이잖아요. 특히 영화는 상영시간이 조금만 길어도 너무 길지 않냐, 느슨하지 않냐, 그러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이제 여유를 가질 때가 된 것 같아요. <명량>은 재미보다는 생각을 주는 영화에요. 스피디한 오락영화도 필요하지만 <명량> 같은 영화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진지하게 느끼려고 <명량>을 보러 온 관객들은 오히려 영화의 묵직함을 바랄 것 같아요.
대사가 유독 적어요.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도 많지 않고요.
장군은 스스로 명백한 확신이 설 때만 이야기하고 행동한 분이에요. 조금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하면 군대가 전멸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군들이 재촉할 때도 동요하지 않고 신중한 거죠. 장군 내면에는 고민과 격랑이 있을지 모르지만 부하 장졸들과 아들 앞에서는 항상 강인한 지휘관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은 거죠.
부하의 목을 단칼에 베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항상 군기, 군율에 엄격하고 신상필벌을 분명하게 행한 분이에요. 영화 속 상황은 전시에요. 부하를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지만 군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처벌하는 거죠. 하지만 장군은 사실 매우 자애로운 사람이에요. 죽은 부하가 자신을 도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도 알고요. 그래서 장군이 부하의 목을 베고 난 다음 장면에서 술에 취했다고 설정했어요. 가슴에 꾹꾹 눌러 담은 장군의 비애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호흡들을 다 쳐냈지만 사실은 그 신도 굉장히 길었어요(웃음). 그것까지 보여줬으면 영화가 더 지루했을까요? (웃음)
대사가 적은 만큼 호흡이 더 중요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자지간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이회 사이에는 장군과 부하로서의 관계도 있어요. 이회도 군인이니까요. 지금은 편집됐지만 장군이 전쟁에 나가기 전 이회에게 칼을 주며 민초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순신 장군이 그런 임무를 내리지 않았으면 이회도 배를 타고 나가 싸웠겠죠. 그 장면은 통째로 날아가 버렸지만요(웃음).
편집된 장면에 아쉬움이 큰 것 같아요.
(웃음) 우리 같이 영화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모든 장면들이 아깝게 느껴져요. 장군의 심정, 이회의 심정, 민초들의 심정을 관객들에게 전부 보여주고 싶거든요.
전쟁이 끝난 뒤, 이순신 장군이 아들 이회에게 ‘무엇이 더 천행이었겠느냐’고 묻는데 장군의 생각이 궁금해요.
백성을 이야기하는 거죠.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잖아요. 민중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명량해전도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백성들이 어선을 끌고 와서 대장선을 구했어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에요.
민초들이 배를 끄는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했어요.
핏줄 때문인 것 같아요. 외국 사람이 <명량>을 봤다면 그렇게 울컥하지는 않았을 거예요(웃음). 같은 핏줄, 같은 조선사람,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 같아요.
<명량>이 현재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나요?
<명량>을 현실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현실이 답답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명량>이 지나친 애국주의를 강요한다는 비판도 있어요. 영화에 이런저런 다양한 의견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저는 좋아요. 그것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고요.
술입니다(웃음). 술을 먹고 자버려요.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뭐가 두려웠지, 하죠(웃음).
<명량>을 찍으면서도 두려움이 용기로 전환된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동료 배우들이랑 스탭들이에요.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이 군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갑옷을 입고 밤새도록 추운 곳에 서 있었거든요. 그 때 힘이 된 건 동료들이에요. 제 모습을 촬영할 때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에 뒷모습만 찍히기 때문에 자세만 취하고 있으면 되요. 그런데 고경표는 자신의 뒷모습만 찍히는데도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어요. 선배로서, 동료로서 너무 고맙고 감동 받았어요. 그 친구가 <명량>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고요.
최민식이 이순신을 만난 건 행운일까요, 고통일까요?
행운이자 고통이죠. 또 영광이고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는 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배우들이 연기 생활을 하면서 생각하는 절대적인 역할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모든 여배우들은 비비안 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맡은 스칼렛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해요. 아마 대한민국 남배우라면 이순신 장군 역할을 누구나 한번쯤은 흠모해봤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 역할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만약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이 허구의 인물, 허구의 이야기라면 마음대로 상상하며 연기하면 돼요. 다른 사람이 연기한 이순신과 내가 만든 이순신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거고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패잔병 같은 장졸들을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한 분이에요. 장군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이순신 장군처럼 목숨을 내놓고 실천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장군이 위대한 거죠.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 이어 ‘이순신 3부작’을 계획 중이라던데요.
열심히 만들어 보라고 그래요(웃음). 어휴, 수고해, 수고(박수). 그 고생을 또 해요? (웃음)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