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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삶이고, 삶이 무대인 사람. 뮤지컬 <시카고> 최정원
2010년 1월 25일 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어제 공연 너무 잘 봤어요.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부르며 등장하시는데, 어떤 게 카리스마인지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시카고>와는 인연이 깊으시죠?
10년 됐네요. 제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시카고>고, 관객은 물론 비평가들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게 해 준 작품이 <시카고>죠. 2000년 초연 때, 지금 옥주현씨가 하는 ‘록시 하트’ 역을 했고요, 3년 전부터 ‘벨마 켈리’로 변신해서 살고 있답니다.

한 작품 안에서 두 명의 인물로 사셨으니, 의미가 남다르시겠어요.
록시에 대해 잘 알고 벨마를 하니까, 상대에 대한 배려도 생기고, 깊이감도 더해지고, 여러 가지로 재미있어요. 록시는 뭐랄까? 한마디로 ‘여시’죠. 되게 즉흥적이고요. 반면에 벨마는 안은 부글부글 끓는데, 겉은 굉장히 ‘calm down’ 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예요. 색깔도 다르고, 춤 느낌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여배우로서 두 인생의 삶을 살아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다시 록시를 하라고 해도 잘 할 자신이 있지만, (웃음)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록시를 연기하고 있는 옥주현씨를 보면 오래 전 최정원씨가 했던 록시가 떠오를 것 같아요.
떠오르죠. 처음에는 제가 록시를 연기 할 때 했던 재미있는 것들을 옥주현씨에게 얘기 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친해지면서 여러 노하우를 많이 알려줬는데, 지금 그런 것들을 무대 위에 잘 녹여 내고 있는 것 같아요.

2002년 롭 마샬 감독의 영화 <시카고>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때문에 영화와 비교하며 보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영화는 공간 활용도 자유롭고, 비주얼도 굉장히 화려한데 반해, 무대라는 것은 한 공간에서 진행되다보니 심심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무대는 대신, 냄새를 바로 맡을 수 있고, 직접 들을 수 있는 라이브의 묘미가 있잖아요? 또 영화는 오랜 시간을 찍어 완성품을 내 놓는 거지만, 우리는 2시간 안에 즉석에서 모든 걸 다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영화에 출연한 르네 젤위거(록시)와 캐서린 제타 존스(벨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데, 순서로 따지면 최정원씨의 록시가 먼저잖아요. 영화 개봉 때 관심이 많았겠어요.
그렇죠. 영화 <시카고>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눈여겨봤죠. 저는 또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시카고>를 세 번이나 봤어요. 제가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처음 본 뮤지컬도 <시카고>고요. 그 때 보면서 노트에 무대 세트를 막 그려 넣고, 감상을 적으며 한국에서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가 98년도였는데, 2년 후에 한국에서 <시카고> 공연을 올리게 됐죠. 너무 행복했어요. 특히 많은 분들이 저의 색깔과 잘 맞는다고 해 주셔서 더더욱 좋았죠.
초연 때 벨마를 연기했던 인순이씨가 이번에도 벨마로 출연하시는데, 더블캐스트인 인순이의 벨마와 최정원의 벨마에게는 어떤 다른 매력이 있을까요.
제가 카리스마가 있는 벨마라면, 인순이씨는 순해 보이는 가운데 부드러운 열정이 묻어나는 벨마를 보여주세요. 누가 더 낫고, 안 낫고를 떠나서 한 캐릭터에는 연기하는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이 다 접목되는 거니까, 다른 매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들에게 항상 궁금했던 게, 더블게스트를 하면 무의식적으로 상대 배우에게 경쟁의식을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런데 사실, 무대에 같이 서지 않기 때문에 볼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옥주현씨와 남경주씨는 매일 공연장에서 보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더블이 좋은 건, 내가 무대에 서지 않고서도 상대를 통해서, 인순이 언니를 통해 보면서 고쳐야 할 부분과 보강해야 할 부분을 노트할 수 있는 있는 거죠. 더블에는 그런 큰 장점이 있어요.

두 시간 동안 무대 위에 힘을 쏟고 나면 녹초가 될 것 같은데, 매일 무대에 서는 걸 보면 놀랍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공연 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우울했다가도 공연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병이 있다가도 병이 낫는 스타일이에요. 무대 체질인 거죠. 아침에 기운이 없고 기분이 안 좋아도 공연을 하고 난 밤에는 최상의 컨디션이 돼요. 그런데 그게 내가 뭔가를 뿜어냈기 때문이라기보다, 관객을 만나서 그들의 박수를 받으면 기운을 재충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예요.

반대시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못 서신 적이 있으신가요?
2007년도였을 거예요. <맘마미아> 첫 공연을 올릴 때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 동안은 그냥 “내가 장이 안 좋은 건가?” 했는데, 정밀검사를 해 보니까 쓸개즙을 내뿜는 쓸개관에 커다란 담석이 2-3개 있더라고요.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하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수술을 하면 2주를 쉬어야 하는데, 공연을 스톱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포기 할 수도 없어서 링거를 맞으며 공연을 강행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아팠던 배가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그렇게 2달간 수술을 미루며 공연을 다 마치고, 혹시 몰라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해 봤는데, 담석이 다 빠져 있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도 “이게 절대 자연 치유 될 수 있는 병이 아니다”라고 하시고.(웃음) 하마터면 비키니 수영복을 평생 못 입을 뻔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병을 이겨낸 것 같아요.

배우는 몸 관리가 중요한데, 평소 체력 관리는 열심히 하시나요?
저는 많이 합니다. 수영도 하고, 산에도 다니고, 요새는 개인 트레이닝도 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제 몸이 자유롭지 않으면 절대 자유로운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몸을 편히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요. 그게 한 작품만을 위해 바짝 하는 게 아니라, 제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하는 거죠. 그 훈련을 20년 동안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시카고>전에 뮤지컬 <피아프>를 하신 걸로 아는데, 에디트 피아프 연기를 위해 목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바꿨다고 들었어요. 다시 <시카고>로 넘어올 때 적응기간이 필요하진 않았나요?
적응 기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열흘 만에 적응이 되더라고요.
역을 하면 그 배역에 빠지시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빠진다기보다는, 공연할 때는 자연스럽게 몰입을 하게 되는 거죠. 목소리도 몸의 느낌도, 걸음걸이도, 눈빛도 모든 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창녀를 연기하는데, 목소리는 (곱게 지르며) “저~ 히~♪” 이렇게 하면, 굉장히 언밸런스하잖아요. 그럴 때는 (강하게) “뿌에르 또리꼬~♪” 이렇게 소리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내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 할 거야” 한다면 그건 가수겠죠. 뮤지컬 배우인 만큼 맡은 역할에 따라 모든 걸 변화 시킬 수 있는 에너지와 마인드를 몸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이 파란 여인을 연기하는데, “난 아니야, 난 아무래도 눈이 블루로 변하지 않아”라고 자신 없어하면, 관객이 그걸 블루로 받아들이겠어요? 실제로 제가 예전에 <프로듀서스>라는 뮤지컬을 할 때, 금발의 백치미가 흐르는 여성을 했었는데, 늘 무대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아~ 네 눈은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나 파랗다. 지금부터 너의 끼를 마음껏 펼쳐 봐” 라고요. 그랬더니 공연 중에 상대 배우가 “어! 누나 오늘 렌즈 했어요? 눈동자가 달라 보여요!”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마인드에 따라 배우는 마술사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대단한 자기 암시네요.
마인드 컨트롤인 거죠. 인간 최정원은 그대로지만, 작품에 맞는 마인드를 늘 생각하고,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배역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는 것 같아요.

<시카고>에 남경주씨가 ‘빌리 플린’으로 등장하세요. 무대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해야 하나. 이젠 너무 당연한 그림 같다고 할까? 남경주씨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하셨죠?
굉장히 많이 했죠. 올 여름에도 또 같이 해요. <키스 미 케이트>라는 셰익스피어의 <말광량이 길들이기>를 각색한 작품인데, 부부로 출연해서 로맨틱 코미디를 또 선사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호흡이 잘 맞는 배우는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 본 만큼, 서로가 서로에 대한 장단점은 물론 변화 돼 온 모습도 아주 잘 알 것 같은데, 조언도 많이 하나요?
굉장히 많이 하죠. 조언을 받기도 하고, 하기도 하고. 서로 아이디어도 내고, 작품 구상도 하고. 오빠는 “어떻게 하면 너처럼 끊이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고 말해 주세요. 그걸 부러워 해 주시기도 하고요. 반면 제가 보는 남경주씨의 매력은 무대 위에서만큼은 진짜 젠틀하고, 항상 열심히 하세요. 많은 선배들이 있지만 경주 오빠는 정말 특별한 배우죠. 그래서 오빠 역시 관객들에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고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봐서 그런지 이제는 오누이 같아요.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의 6번 아가씨로 데뷔하셨어요. "가자, 아들레이드"가 첫 대사였는데, 그 때의 그 떨림을 지금도 기억나시나요?
그럼요. 또 제가 그 첫 대사를 틀렸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해요(웃음). 그러니까 수천 번 연습했던 첫 대사를 첫 날, 첫 공연에서 틀린 거예요. 두 시간이 넘는 공연에서 제 대사는 그거 딱 하나였는데 말이죠. 그런 대사를 씹어서 커튼콜 때 엄청 울었어요. 그런데 또 운 덕분에 그 날 팬이 생겼지 뭐예요. 일개 앙상블 배우가 커튼콜 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면서 공연이 끝나고 저한테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친구가 아직도 제 팬인데 그 얘기를 해요. "일렬로 서서 손잡고 인사를 하는데, 그 때 언니 눈만 보석이 하나 달린 것처럼 반짝반짝 거렸다"고. 저는 대사를 틀린 게 너무 가슴 아파서 운 건데 말이죠.(웃음)

(웃음) 오랜 시간 연습한 대사를 틀려서 정말 억울했겠어요.
(부드럽게) “가자 아들레이드~”이렇게 해야 하는데, 입에다 힘을 너무 줘서 발음이 “가자 아드나드나~” 이렇게 꼬여 버린 거예요. ‘헉! 나 지금 뭐 한 거야~?’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웃음). 2년 동안 실미도처럼 트레이닝 받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얻은 기회인데, 결국 평생 잊지 못할 대사 한 마디가 된 거죠.

하지만 <아가씨와 건달들> 출연 이듬해에 <가스펠>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셨어요. 사연이 굉장히 드라마틱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가스펠>에 굉장히 쟁쟁한 선배들이 다 참여하고 있었어요. 저는 한참 어린 후배였기 때문에 옷도 정리하고, 물도 떠다놓고 하면서 선배님들이 연습하는 걸 지켜봤죠. 또 연습이 다 끝나고 선배들이 가시고 나면 연습실에 혼자 남아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 저 나름대로 역할 하나를 잡아서 두 달 동안 꼬박 연습을 했어요. 대사 하나 움직임 하나 다 외운 거죠. 그게 주인공 역이었는데, 그 역을 맡은 선배가 공연 시작 9일을 앞두고 사고로 다쳐서 못 하게 된 거예요. 주인공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죠. 그 오디션을 당당히 보고 합격을 해서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코러스 라인을 맡던 막내가 바로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이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그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해서 큰 논란은 없었어요. 또 당시 제 머리가 허리까지 왔었는데, 그 역할을 위해서 스포츠머리로 잘랐어요. ‘이철헤어커커’라는 곳에 가서 머리를 밀어버린 거죠.(웃음)

(웃음)시기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특히 경력이 있었던 분들 같은 경우에는 안 그러려고 해도 예뻐 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기하시는 분도 많았겠죠. 더군다나 다들 연극 영화과를 졸업하고, 무용과를 졸업하고, 성악과를 졸업하고 온 분들인데, 고등학교도 마치지 않은 애가 브로드웨이 선생님들에게 배워서 올라와서는, 뭐만 하면 그들보다 킥도 더 많이 차고, 뭐만 하면 더 많이 꺾고, 뭐만 하면 더 잘 우니, 예뻐해 주기보다 “쟤, 뭐야”라고 된 거죠. 또 쉬라고 해도 혼자서 계속 춤추고, 노래하고 하니까, “시끄러워!” 소리도 치시고.(웃음) 그러면 속으로는 ‘(불쌍한 목소리로) 연습실에서는 연습하는 게 아닌가~’하면서도 추운 밖에 나가서 연습을 계속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참 오해들도 많았는데, “진짜 쟤는 뮤지컬에 미친 아이구나”, “쟤는 정말 뮤지컬을 위해 태어났구나”를 아시고는 한 분 한 분 손을 내밀어 주시고, 그랬죠. 그 전에는 제가 연습도 못하게 문을 잠겨놓는 분도 있었고요, 연습 하려고 하면 심부름을 시키는 선배들도 참 많았어요.

주인공을 맡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그 운을 기회로 만든 건 최정원씨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네요.
네. 저는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준비했던 역할이 공고가 나서 오디션을 보게 된 건 운이지만, 그 역할이 아니었더라도 언제가 저는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도 저는 제가 맡은 역할 외에 다른 배역을 잡아서 그 사람의 대사와 움직임들을 다 외웠어요. 그래서 혹시 상대가 무대에 못 올라가게 되면, “제가 해 보겠습니다!” 하고.(웃음) 이런 식으로 모든 공연에서 상대의 대본까지 다 외워서, 누가 뭘 시키면 그걸 자유자재로 했어요. 왜,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게 문제로 안 나왔다고 해서 내가 공부한 게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혹 지금 내가 그걸 못 하더라도, 다음 공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경험 때문이라도 ‘노력 하는 자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실 것 같아요.
그럼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저는 믿어요.

아까, 브로드웨이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롯데월드 예술극장’ 뮤지컬 단원으로 입단했어요. 그 때 회장님께서 문화에 투자를 많이 하셨던 분인데, 그 분이 데리고 온 브로드웨이의 정말 내로라하는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에게 텝 댄스부터 발레, 재즈, 이런 것들을 2년 동안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월급까지 받으면서요. 한 달 월급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에 60~70만원. 22년 전이었는데 말이죠. 또 한 달에 한 번, 오디션을 보면서 등급이 정해졌어요. ABCD가 있다면 저는 처음에 D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대학을 나오고 어디 교수하시는 선생님보다 제 월급이 더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외국 시스템이었던 거죠. 선배라고 돈을 더 많이 주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줬으니까요. 그렇게 2년 동안 교육을 받았었는데, 그 때 참 좋은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남경주씨가 나중에 유학을 갔었는데, 다시 그 분들을 찾아서 배워가지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들만한 선생님들이 없다고.

우리나라 뮤지컬 발전에 그런 분들이 숨어 계셨군요. 최정원씨는 뮤지컬 1세대라고 불리세요. 한국 뮤지컬계의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초창기에는 뮤지컬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죠. 인식도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좋게 변한 건데,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좋아진 게 정말 더 많아요. 이제는 육교나 게시판에 뮤지컬 홍보물이 가장 많을 정도로 좋아해 주시니까.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대중스타들도 뮤지컬을 하기 위해서 노력들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고. “꿈이 뭐냐?”라고 물으면 “뮤지컬 배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제가 어디에 가면 뮤지컬 배우로서 존경을 받는 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분야를 선택했던 제 자신이 자랑스럽고 좋아요. 아쉬운 부분도 있죠. 거품이 많아졌으니까. 좋은 작품이 많아진 반면에 나쁜 작품도 많아졌고. 좋은 배우가 있는 반면 나쁜 배우도 있고, 또 좋은 제작사가 있지만 나쁜 제작사도 많이 생겼죠. 돈만 벌기 위한. 그러다보면, 그런 작품을 본 관객들은 “다시는 뮤지컬 안 봐!”가 돼 버려요. 뮤지컬을 20-30년 해 오고 있는 선배들로서는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죠. 그리고 연습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연예인이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걸 보면 먼저 이 길을 걸어 온 사람으로서 안타깝죠. 내가 정말 아끼고, 내 인생과 내 모든 것을 바친 곳인데, 그들이 와서 그냥 흙 묻은 신발을 신고 무대를 돌아다니는 걸 보면 참……. 그냥, 주인과 객인 거죠. 그런 거 볼 때 마다, 안타깝기도 한데요, 어쨌거나 제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 하시니까 다른 의미로 옥주현씨가 생각나는데, 옥주현씨가 거의 처음이었어요. 연예계에서 뮤지컬로 넘어 온. 당시엔 상당히 말도 많았는데, 어제 보면서 놀랐어요. <아이다>때 보고, 옥주현씨 뮤지컬 연기는 5년 만에 다시 본 건데, 그 때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네. 많이 늘었죠? 우선은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한 것은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함께 한 배우들이 잘 이끌어 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옥주현씨는 정말 뮤지컬을 좋아해요. 남다르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관객들이 예뻐해 주는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공연하는 걸 보면서 ‘옥주현씨가 인복이 참 많구나’를 느꼈어요.
그렇죠. 상대적인 효과가 굉장히 크니까요. 저도 어렸을 때, 남경주씨라든가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게 참 많거든요. 연기라는 게, 연출도 중요하지만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중요해요. 이게 핑퐁이잖아요. 자기 것만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죠. “야!” “왜!” “너!” “뭐!” “어쩌고!” 이런 것들이 정확하지 않으면 밀도가 떨어지죠. 그래서 사실은 더블을 할 때, 그 더블 중에서도 선호하는 배우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상대만이 아는 거죠.

이제 대 선배이신데,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인가요.
글쎄요, 내가 나를 못 보니(웃음). 후배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선후배가 없다고 생각해요. 무대 내려와서는 밥도 사고, 먼저 경험한 아이 낳은 거랑, 사랑했던 거, 결혼 생활 이런 것들을 얘기해 주긴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옥주현씨가 제 선배가 되기도 하죠. 또 앙상블 한 명 한 명, 제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럴 때는 떡볶이를 사주면서라도 배워야줘. 그들이 제 멘토가 될 수도 있고, 제 선생님이 될 수도 있어요.

<시카고>도 그렇고 이제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에서는 자리를 잡았어요. 창작 뮤지컬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선배로서 기회가 된다면 창작 뮤지컬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뮤지컬을 시작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른 나라예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창작 뮤지컬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 관객과 만나고 있는 <영웅>이라든가, <사랑은 비를 타고>라든가 작지만 좋은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좋은 라이선스 뮤지컬이 없다면 좋은 창작 뮤지컬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라이선스는 나빠!”, “우리나라에서는 창작만 해야지!” 하는 건 아닌 거죠.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을 처음대할 때, 자세랄까? 다가가는 방법이 조금 다를 것도 같습니다.
제가 제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작품이든 충실하게 다가가는 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라이선스 뮤지컬, 특히 외국에서 스텝들이 함께 오는 건, 편하긴 하죠.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의 재능을 이어 받을 수 있으니까요. 굳이 비교하자면 창작 뮤지컬이 ‘자연분만’이라면, 라이선스 뮤지컬은 ‘제왕절개’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이렇게 낳든, 저렇게 낳든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건, 모두 소중한 거죠.

자연분만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예전에 최정원씨가 수중분만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나네요.(웃음) 개인적으로 최정원씨는 결혼을 굉장히 늦게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하셔서 놀랐었거든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던 게 사실이고요, 하더라도 저는 외국 사람이랑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제가 워낙에 자유분방하고, 어디에 구속되기 싫어하는 스타일이어서요. 그리고 저는 애정표현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무뚝뚝한 남자 싫어하고요, 남자다운 남자도 싫어해요. 그러니까 친구 같은, 수다도 함께 떨 수 있는 그런 남편을 원하는데, 지금 신랑이 얼굴과 몸은 한국 사람이지만 마인드가 그래서 너무 좋아요.(웃음)
배우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을 조율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지금은 배우로서의 삶에 더 포커스를 맞추면서 살고 있어요. 가족들도 아예 거기에다 맞춰 주서 사실은 굉장히 누리면서 살고 있죠. 아이도 엄마가 행복해하니까 자랑스럽다고 얘기하고, 남편도 자기 일 잘하는 아내가 있기에 좋다고 말을 해 줘요. 너무 고맙죠.

주위 조건이 잘 받쳐주고 있군요.
네. 받쳐주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예요. 너무 고맙죠.

어릴 때 부모님들도 뮤지컬 하는 걸, 지지해 줬나요? 굉장히 끼가 많은 아이였을 것 같은데.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연극배우를 했어요. 그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린 청소년 연극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죠. 그러니까 “연기력으로 되게 타고났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원치 않으셔서 연기를 못했죠. 그러다가 결국 제 길을 간 건데, 처음 아버지는 반대를 하셨고, 엄마는 지지를 해 줬어요.

아버지의 반대는 어떻게 꺾으셨어요?
꺾지 않았어요. 그냥 말을 안 했어요! (웃음) 아버지가 몇 년 동안, 저랑 식사도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그러셨죠. 그런데 저는 저 대로, 제 인생인데 부모님 의견에 따라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브로드웨이에서 멋지게 공연하는 게, 제 꿈이었기 때문에 목표를 향해 밀고 나갔죠. 지금은 아버지도 좋아해 주세요.

아버지에게 인정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겠네요.
1995년도였어요. 한국뮤지컬대상 여우 신인상을 첫 회 받았는데, 그 때 시상식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됐어요. 저는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얘기하는 상황이었고, 방송국에서는 그걸 찍고 있었죠. 그런데 저 쪽에서 아버지가 보이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 키가 184미터고, 몸무게가 80킬로예요. 엄청 크시죠. 그런 분이 큰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니까, 방송국 관계자들이 막 막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아버지가 그 이후로는 저의 광팬이세요.

다음 생에 태어나도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나요?
글쎄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비행기 조종을 한 번 해 보고 싶어요. 다음 생애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네요. 제가 하늘을 나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아니면 초능력자가 돼서 지진이 난 곳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도 구해주고 싶어요.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바람이니까. 정말 그러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비결이 도대체 뭔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죠.

훗날,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 제일 멋진 배우.

2010년 1월 25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1월 25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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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0501
정말 멋진 분!!   
2010-02-14 04:15
blueyny
최정원씨의 연기는 언제봐도 매력적입니다..
  
2010-02-11 15:34
kooshu
포스가 확   
2010-02-07 13:38
scallove2
잘봣습니당   
2010-02-05 20:34
djrps
정말.. 최정원씨가 새로 서는 무대마다 믿음이 가요~ 영화는 몰라도 공연은 배우보고서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최정원씨는 캐스팅에 올라와있으면 믿고 보게 되요~   
2010-02-04 01:32
pennio724
최정원씨 너무 느낌이 좋아요~~ 언제나 포스가 느껴지는 그녀의 무대,, 그 공연 정말 보고싶습니다!!!   
2010-02-04 00:16
norea23
시카고 너무 보고싶어요^^   
2010-01-31 20:45
mvgirl
듬직한 배우   
2010-01-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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