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선영 기자(이하, 김)시사회 끝나자마자 30분도 안 돼서 인터뷰를 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깊이 있는 질문은 기대를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웃음)
박희순(이하, 박) 괜찮다. 우리도 원래 대답에 깊이가 없다.(웃음)
김 영화 잘 봤다. 하지만 보는 내내 숨이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다. 전면에 보이는 이야기 뒤에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고,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힘든 작업이었을 거 같다.
장현성(이하, 장) 그냥 이야기만 봐도 일반적인 장르 영화의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영화화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어떤 이야기 거리를 찾아서 그걸 극화하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모니터를 하다보면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참고하면 할수록 이야기가 점점 둥글둥글해진다. 물론 이 부분을 거치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 자체가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다른 평범한 것들에서 성큼 한 발작 나아가는 느낌으로 보여 지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화되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했다.(웃음)
김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것들을 많이 담아냈나. 아니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진행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이해나 연기에 대한 포커스가 변한 것들이 많은가.
장 난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잘 표현 됐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박 정말 겸손의 말이다.
김 그런 거 같다. 나는 이런 겸손의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본인은 어땠나.
박 사실 100% 만족은 없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제일 중요했던 건, 과연 내가 맡은 재문이란 인물의 행동을 내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을 까였다. 물론 사고이긴 하지만 친구가 애기를 죽인 건데, 아무리 사랑하고 친한 친구지만 그걸 이해하고 용서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그 책임을 다 지는 것까지 할 수 있을까.
김 정말 어떤 마음이면 그럴 수 있나 싶다.
박 그렇기 때문에 재문이라는 친구를 이해하는 작업이 나에게는 가장 컸다. 겉으로 보기에는 뚜렷하지 않지만, 그 세 명은 사회적인 위치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인물, 그 변화를 잘못 활용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물,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세 가지 부류의 인물 군상으로 나뉜다. 감독님은 그 부분을 ‘과연 당신은 어떤 부류에 속한 인물인가’ 이런 걸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이해하면서 재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사회는 어떤 일이 터져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남을 탓하고 이건 내 소간이 아니다 그러고.
김 그래서 사람들은 익명성을 선호한다. 책임 안 지려고.
박 그런 상황에서 재문은 마치 자신이 예수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걸 다 짊어지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와서는 ‘미안하단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러면서 앙탈을 부린다. 그런 게 인간이다. 그런 복합적인 것들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재문을 이해할 수 있게 내가 잘 표현 했나 하는 것은 영화 개봉해 봐야 알겠지.(웃음)
김 재문이 예준의 전화를 애인 전화 기다리듯 전전긍긍하거나 평소의 여러 가지 행동을 보면 우정을 넘어선 동성애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 처음에 작업하면서 동성애냐 아니냐에 대해 관객들은 이거다 저거다 분명 말이 많겠지만 우리들은 정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은 그렇게 까지 가면 더 극적일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의도했던 사회적 인물 군상으로 보면 그건 너무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동성애는 아닌 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계층, 계급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보인다. 자기보다 더 위에 있는 계급의 인물이 나에게 손을 내미니까 그 인물이 고맙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거다. 그래서 헌신적으로 그런 친구가 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거다.
김 영화에 세 사람 사이의 기류가 끊임없이 보인다.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저 세 사람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의 신경전도 보이고. 한마디로 나 하나만 연기 잘해서 되는 영화가 아닌 거 같다. 배우들끼리의 호흡, 감정의 조율, 다른 역할에 대한 이해가 많이 필요했을 듯 싶다.
장 그게 참 중요한데, 처음에 우리가 굉장히 힘들었던 건 관계에 대해서다. 예준과 재문이 군대에서 만났다고 하지만 계급적으로는 대단히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는 게 사실은 어렵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만큼 외에 다른 영역의 것들을 더 가지고 있다는 걸, 훈장이나 골동품처럼 과시하려고 포장할 수도 있는 거다. ‘나는 연봉 3억 이상의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열 명이나 있는데, 치킨 집 주방 요리사와도 굉장히 가까운 사이야.’ 이런 애매한 관계의 과시들.
김 나는 한 부류와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방면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사람이야. 라는 스스로의 자기 과시.
장 그런 사람은 일반적으로 정말 있다. 근데 그게 진심에서 그런다면 대단히 특별한 거고 사람자체가 좀 더 풍성해지는 거다. 나한테 가장 중요했던 건 예준이 왜 재문을 좋아하느냐, 왜 그 능력에 다른 여자들 놔두고 친구의 와이프 지숙을 갖고 싶어 하느냐. 그걸 설득시키는 거였다. 물론 재문을 좋아하는 건 예준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고, 재문의 진심이나 순수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고. 그러려면 예준 입장에서는 재문이와 지숙의 좋은 점들을 찾아내서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 관계가 시작되는 거니까. 나는 재문과 예준의 관계만 분명하다면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행인 게 박희순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박 마찬가지로 인물 관계나 자기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 서로 호흡 맞추는 데는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배역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편이었다. 영화에서 아기가 죽은 걸 발견하는 것도 누가 먼저 발견할 것인가에 대해 같이 얘기를 나누고 감독님한테 의견을 제시했다. 원래는 예준이 먼저 발견하는 거였다. 근데 그러면 예준도 힘들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더 모르게 되는 거고, 나도 뒤늦게 발견해서 아기를 뺏어서 연기 하는 게 되게 힘들어 지는 거다. 그래서 내 아기이고, 내가 잠깐 밖에 나갔다 왔지만 내가 먼저 발견하는 게 옳은 거 같다고 해서 그걸로 감독님과 싸운 게 몇 시간이 걸렸다. 장현성은 한 배역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니껀 니가 해’가 아니라 같이 서로 고민하는 조력자가 되어 준거 같다.
김 그런데 죽은 아기는 뭐로 만든 건가.
박 더미다.
김 더미 놓고 그런 표정과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게 놀랍다. 아기에 대한 감정을 이입시키는 게 어렵지 않았나.
박 사실 그 장면이 제일 힘들었다. 연극도 아니고, 영화라면 타이트하게 잡아 줘야 하고 더미가 안보이도록 각도 틀어 줘야 한다.
김 근데 너무 앞에다 뒀더라.
박 감독님께 ‘이건 완전 맨땅에 헤딩인데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랬더니 ‘그냥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너무 막막한 거다. 나는 처음에 디렉션이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이를 누가 먼저 발견 하느냐도 세 시간 토의 끝에 했는데, 그 다음은 아무것도 얘기 안 해주고 그냥 하라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발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의 미쳐서 환장한 그런 연기를 했다. 거의 탈진상태까지 갈 정도로. 근데 감독님이 ‘희순씨, 이번 연기 참 좋았어요. 스텝들 중에 운 사람도 있고. 근데 제가 생각 한 거에서 조금 감정이 오버 된 거 같아요.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만.’ 그러는 거다. 그래서 ‘난 이제 힘들어서 못해요’ 그랬다.
김 힘들어서 못한 연기가 그건가?(웃음)
박 그래서 정말 하루를 미뤘다. 감정이 너무 쇠신 되고, 힘들어서 안 나올 거 같으니까. 다음날로 미뤄서 최대한 요약시키고 감정 절제해서 했다.
김 사실 예준이 아이를 안고 달래는 장면은 눈 뜨고 못 봤다.
박 불안해서?
김 불안해서. 이미 줄거리 상에 예준으로 인해 아이가 죽는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에 저게 저 장면이구나 싶었다. 예준이 우는 아이를 불안하게 안고, 있는 데로 소리를 지르면서 통화를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나의 심리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장 힘들었다. 대본상에 ‘아이가 운다.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으면서 아이를 달랜다. 잘 되지 않는다. 아이를 다시 내려놓다 보니까 아이가 엎어져 있다.’ 이 정도의 설계도가 있었다. 나는 실제로 두 아이의 아빠지만 예준은 아이를 안아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사랑하는 친구의 아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지 평소에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마치 배게나 물건처럼 대한다. 예준은 재문 부부를 도와줘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대단히 큰 건수의 것들을 많이 올려야 되는 입장인데, 그 순간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생긴 거다.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사실 아이를 세심하게 케어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마음도 편하지 않고. 그런데 예준의 입장에서 그럴 듯해 보여야 하니까 현장에서 리허설을 많이 했다.
박 나는 더미가 힘들었지만 장현성은 살아있는 아기라서 더 힘들었을 거다. 아기 엄마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고, 아기를 잘 보는 친구인데 못 보는 척 해야 하니까.
김 성공한 거 같다. 누군가가 불안해서 못 볼 정도면.
박 그 씬은 참 불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웃음)
김 더미를 화면 뒤로 좀 빼고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장 그래서 난 그 장면에서 고개를 점점 위로 치켜 올렸다. 카메라가 올라가서 안 보였으면 싶어서.(웃음)
김 그렇게 예준을 아끼는 재문이 감옥에서 나와서는 ‘내가 뭐 죄졌냐?’ 라고 얘기 한다. 재문이라는 인물이 심경의 터닝 포인트를 하는 지점이라고 느껴진다.
박 그럴 수 있다. 재문은 착하고 순박한 인물이어서 사기를 당해 돈이 없어졌을 때도 차마 예준에게 도와 달라고 말을 못한다. 근데 예준이 도와준다고 했을 때, 와이프가 나서서 고맙다고 하면 옆에서 ‘야!’ 라고 소리는 질렀어도 그냥 그걸 또 받아들이는 그런 게 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던 거 같다. ‘나는 죄 없다. 니 죄를 내가 다 뒤집어쓰고 나온 거야. 이게 나다~’ 예준에게 상황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고 예준과의 관계를 바꿔주는 그런 마음이다.
김 나중에 예준이 ‘그래 내가 죽였다!’ 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의 끈이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건가.
박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 친구를 통해서 뭔가 압박하고 있는 거다.
김 예준은 굉장히 차가운 인물이다. 사람들의 비아냥거림도 차갑게 피하지 맞서지 않는다. 심리의 기복이 강압적으로 눌려 있다가 짜증이 나면 사람을 벨 것 같다. 연기하는 내내 본인의 스트레스가 눌려 있을 거 같다.
장 우리는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 상상에 감정을 갖다 놓고 유지를 하는 게 좋다. 그게 잘 안되면 실패할 확률이 많으니까. 예준은 정서적으로 표현이 과장되지 않은 사람이고 이성적으로 많이 훈련 돼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잘 참는다. 하지만 극도로 뭔가가 올라오면 뚜껑이 열리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뚜껑이 날아간다. 다혈질이고 호불호가 확실하다. 그런 사람의 감정 상태를 유지 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
김 마지막에는 거의 신경쇠약 직전이더라!
박 예준이나 재문이나 정말 감정적으로 힘들고, 참는 걸 많이 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바로 도망을 갔다. 장현성에게 ‘야! 잠깐만 있다가 같이 가’ 그러면 ‘형! 여기 있으면 터져 버릴 거 같으니까 나가 있을게. 어디로 와’ 이러면서 술 먹을 때도 미리 나가버렸다.
김 그래서 내가 영화 보는 내내 숨이 막혔나 보다. 그게 너무 잘 전달 돼서.(웃음)
몇 가지 궁금한 장면이 있다. 재문이 예준에게 ‘넌 자랑스러운 친구야’ 라고 말을 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예준이 화장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장 솔직히 난 그 장면을 뺏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일반적인 예측 가능한 진행들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감독님의 선택이니까. 거울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하나는 나를 내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거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거울을 보는 게 좋은 사람, 거울을 보는 게 싫은 사람. 나는 직업이 배우이면서도 거울을 안 본다. 내가 유일하게 촬영 중에 거울을 볼 때는 오줌 눌 때 그 앞에 거울이 붙어 있을 땐데, 그때 거울보고 ‘어? 여기 얼굴 왜 이렇게 됐지?’ 그럴 때가 많다.(웃음) 아마도 예준은 거울 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일 거 같다. 예준이 거울을 보는데서 의미를 찾자면, 내 친구가 저렇게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 주는데 반해서 나는 얼마만큼 순수하게 내 친구를 좋아하는 가? 뭐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박 그 씬이 우리가 술 먹는 씬 찍고, 그 다음에 주차하러 나오기 까지 그 사이에 촬영을 한 거다. 근데 거울 보는 그 씬을 한 세 시간 찍었다.
김 정말? 그 짧은 장면을 왜?
박 우리도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그러느냐.’ 그랬는데, 감독님이 사람을 죽이기 전에 손을 씻는 의식 같은 걸 담고 있다고 했다. 우리 감독님은 매 씬에 자기 내면에 있는 의미를 항상 생각하고 작품을 쓰신다.
김 아니, 그렇게 의미를 담으신 분이 아까 기자 간담회 질문에서는 왜 대답을 못하셨을까.(웃음)
박 내말이. 감독님은 작품을 쓸 때 인터뷰를 미리 생각하고 작품을 쓰는 분이다.(웃음)
김 하하하.
박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아.. 이거는 분명 인터뷰 때도 나올 얘기 인데요.’
장 진짜로.(웃음)
박 그래서 곳곳에 의미를 숨겨 놨다.
김 영화에서 둘이 술을 마시거나 할 때, 예준은 가만히 있어도 재문이 옆에 착 붙어서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항상 제스츄어 중에 하나가 재문이 예준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찍는다. 마치 애인처럼. 대본상에 그런 게 있었나, 아니면 만들었나.
박 내가 설정한 거다. 왜냐하면, 예준의 입장에서는 재문처럼 순박한 친구가 하나쯤 있다는 게 자신한테 도움도 되고, 아주 좋다는 정도면, 나는 그걸 더 넘어서 ‘나는 이 친구가 너~무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아주 자랑스럽기 까지 해.’ 이런 감정인 거다.(웃음)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랬다.
김 아주 감정이 충만했다. 보통 남자끼리는 잘 하지 않는 제스츄어인데.(웃음) 같이 연기했던 지숙(홍소희)이 재문의 치킨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말하더라. 근데 사실 그때 재문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박 지숙이 찾아와서 얘기를 나눌 때도 내가 했다고 얘기를 한다. 근데 사실은 내가 아니라 예준이 부득이하게 그런 거라고 얘기를 해야 옳은 인간이다. 근데 그 책임을 다 떠안고 감옥까지 갔다 오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멀리하면서 그 비밀을 숨기는 이유는 책임이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 책임을 내가 짐으로써 그런 영향이 아내에게도 갔고, 서로 간에 위치와 계급, 얘기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복받침과 설움이 한꺼번에 터진 거다.
김 불길에서 눈물을 글썽이는데, 그 장면 때문에 영화는 오픈된 결말의 형태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배우로서 해석하자면 어떠한가.
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를 사랑한다. 좋아한다. 빨리 나가자. 살아야 한다.’ 친구를 잡아끄는데 예준은 뿌리 치고 여기 있겠다고 한다.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장 감독님은 다른 테이크를 썼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끝까지 고집 했던 건, 예준이가 재문이 끌고 나가려는 손을 놓고 ‘이제 됐어.’ 속죄랄까, 그런 말로 정말 하기 힘들었던 그런 것들을 풀어내고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장면은 두, 세 가지 버전의 형태로 찍었던 거 같다.
박 그것도 두 세 시간 싸웠다.(웃음)
김 두 세 시간은 기본인가 보다.(웃음)
박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늘 두 세 시간 싸웠다.
장 근데 감독님은 열어 놓고 싶었던 거 같다. 마지막 결정은 어쨌든 연출자의 몫이다. 내가 느끼기엔 고해의 심정 같다.
김 두 사람 다 오랫동안 연기를 했다. 그 전에 혹 무대에 같이 선 적이 있나.
장 처음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같이 작품을 한 건 처음이다.
김 연극을 같이 해볼 계획은 없나.
장 시켜만 주면 한다.
박 이 조합을 만들어 주면 오케이다.
김 한 번 영화로 맞춰 봤으니, ‘됐어요. 서로 바빠요.’ 그럴지도 모르는 일일 텐데.(웃음)
장 바쁘지 않으니까.
박 이 불경기에 시켜만 주면 야.(웃음)
김 아~ 또 경기가 불경기구나.
박 이 영화는 IMF 이후의 경기 침체 상황을 포함 했던 거다. 근데 몇 년 뒤에 개봉을 하다 보니까 지금 또 어려워진 상황과 맞았다. 감독님과도 그런 얘기 하면서 서로를 위로 했다. 근데 감독님은 그 사이에 또 FTA 협상을 집어 넣으셨다.
김 이렇게 영화 개봉 늦어지는 건 박희순에게 일도 아니겠다.(웃음)
박 하하하. 그렇다.
김 이것들이 틈만 나면.. 또..
박 ‘참을 인’ 자 세 개를 새기면 살인도 면한다고. 아.. 정말.
김 오랫동안 연기를 하면서 그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셨을 텐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적도 있겠지만, 자신이 배우로서 먹고 살아도 되겠구나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솔직하게 말해달라. 겸손한 대답은 정중히 사양한다.
장 진짜 없다. 난 연극이 좋은 게, 연극은 내가 하는 걸 내가 못 보니까 좋다. 방송이나 영화나 내가 하는 걸 보는 게 너무너무 고역이다.
김 그런가? 모니터 안하나?
장 몰래본다. 사람들 없을 때.
김 가족들과도?
장 그렇다. 근데 연극은 내가 하는 걸 내가 볼 수 없으니까. ‘아 몰라. 난 잘하고 있어’ 그러면서 막하고, 끝나고 나면 ‘아~ 오늘 끝내줬어’ 하면서 맥주한 잔 쫙 마신다.(웃음)
박 하하하.
장 진짜로 그렇다. 내가 영화 데뷔작이 <나비>라는 영화인데 첫 주연 영화다. 운이 좋았다. 영화라는 게 전혀 뭔지도 모르고 부산에서 두 달을 찍었는데, 영화 쪽 기술이랄까, 훈련되지 않은 에너지 자체가 날 것일 때, 그때가 그래도 ‘내가 영화를 해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냐 하면 처음이고 잘 모르니까. ‘내가 저기 나오는 게 신기하네.’ 그랬던 적은 있어도 저 정도면 괜찮겠네 그런 적은 없다. 이 영화도 2,3년 정도 전에 찍은 건데 지금 보면 지금의 나와 너무 너무 다르다. 그 사이에 다른 여러 가지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지금 보면 ‘내가 저 때는 왜 저걸 저렇게 했을까’ 그런 것들만 보인다.
박 나는 연극하면서 극단 목화에 있을 때, 1인 8역을 했는데.
김 대체 1인 8역은 뭔가?
박 주연, 조연 있으면 막내가 그 나머지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건데, 세트 만들다가 내 씬 되면 들어가고 그럴 때였다. 여장 역할도 하고. 공연을 하는데 내가 두 마디 대사를 치고 딱 바꿔서 한 마디 대사를 치는 거였다. 근데 그 순간 객석에서 훌쩍 훌쩍 소리가 났다. 단지 세 마디인데. ‘어~ 이것 봐라.’(웃음) 그때 내가 관객들과 소통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고 나서 오태석 선생님이 한 참 뒤에 얘기를 하셨는데, 그 때 박희순이 배우가 될 재목이라고 깨달으셨다고 했다. 그게 첫 작품이었는데. 이후로 그 말은 나에게 굉장히 힘이 되고 계속 자신감을 갖게 했다.
김 드디어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개봉을 한다. 하지만 대중의 코드에 완벽하게 맞는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영화의 장르를 ‘웰 메이드 치정 드라마’ 라고 구분해 놓았는데 ‘웰 메이드’는 맞아도 ‘치정’은 아닌 것 같다.
장, 박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한다.
장 사실 영화는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 문화 예술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얘기하면 여러 가지 작용들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혹은 여러 가지 사조들에 의해서 변화하거나 진화한다. 근데 지금이 굉장히 위험하다. 자본이나 산업적인 논리에 의해서 작품들이 크게 좌지우지 되는 게 굉장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입장이기도 하다. 많은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싶은데 산업적인 이유 때문에 채널을 닫아 버린다면 그거는 나쁜 짓이고 범죄행위다. 내가 어렸을 때, 그때는 단관개봉시절인데 종로 코아 아트홀인가에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개봉했었다. 그 영화는 그 시대에 형식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영화였다. 그때 10만정도 관객이 들었는데 지금 같은 기준으로 보면 200만 정도가 되는 거다.
김 그때 이슈가 굉장히 많이 됐었다.
장 틀림없이 그런 분들이 있을 거다. 그런 것들에 열정과 갈증이 있는 사람들. 근데 만드는 사람들이 그걸 닫아 버리면, 사회나 예술 문화가 굉장히 불균형 해지고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봐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형식과 주제로 이야기를 꾸며 보려 한 거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거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관심 있어 할만 한 사람들에게 정보가 필요하다. 내가 장르영화, 멋진 영화, 하기 싫다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배급사나 투자자를 무조건 욕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엄연히 비즈니스맨들 이니까. 그래서 가장 좋은 건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단순한 이 채널 사이에 좀 더 적극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면 이런 것들이 조금씩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그런 의미에 있어서 작용 되었으면 좋겠다.
박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부산영화제나 인디포럼에서 상영을 했는데, 어떤 관람 평 중에 ‘코풀러 왔다가 인생을 풀고 간다.’ 라는 멘트를 적은 분이 있더라.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세 명 중에 어떤 인물상이고, ‘나 같으면 어떻게 행동 했을까’ 자기를 돌아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 한다. 소수 극장에서 개봉을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많이 와서 봐 주셨으면 좋겠다.
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