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영화가 개봉하는데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 어느 정도 비중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막상 기자시사 때 보니까 영화 찍은 양보다 더 많이 나온 것 같아요. 다른 분들께 편집된 건가?(웃음)일단 나오는 분량이 많아서 기분은 좋더라고요
실질적으로도 주인공이시잖아요.
아쉬운 게 포스터에 빠졌다는 거. 그게 조금 아쉬운데 뭐 어쩔 수 없죠. 영화 속에 보여주는 관계가 드러나니까.
일부러 그걸 노리고 뺀 게 아닌가 싶어요. 관객들 뒤통수를 치게.(웃음)
그렇게 봐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영화가 완성된 지 일년 만에 개봉하는 거죠?
사실 정신 없이 찍었어요. 개그 할 때 찍은 거라. 그게 1년 전이거든요. 개봉되는 게 많이 무덤덤해요. 다른 배우 분들은 찍고 나서 영화의 흥행을 많이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감정을 안 가져서 일단은 개봉됐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막상 시사회 가서 봤는데 제 부분이 많이 나와서 두 배로 감사하죠.
원래 2시 시사가 일반적이라 4시 30분 시사는 잘 안 오는 편인데 극장이 꽉 차서 놀랐어요.
저도 ‘기자 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다니!’하면서 얼마나 올랐는지.(웃음) 보시는 분들이 욕만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관객 분들도 기대를 그렇게 많이는 안 하실 거예요. 돈 많이 들인 초호화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고 비중 있는 분들이 안 나오니까 부담 없이 보러 오실 것 같은데 거기서 ‘고혜성이 어느 정도 하는구나.’, ‘영화가 볼거리가 있구나’ 그 정도만 되도 만족할 것 같아요.
첫 질문은 뻔하지만 이걸로 가려고 했어요. 개그맨이셨고 한창 잘나가셨는데, 갑자기 영화로 전향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출연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개그 쪽하고 영화 쪽이 50대 50으로 똑 같은 비중으로 되고 싶었어요.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 고민에 빠져있지만. 거의 10몇 년간을 이 두 가지 중에 뭘 해야 되나. 어느 분야가 더 어울리고 뭘 더 잘하는지를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서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도 완전히 방송과 개그의 꿈을 놓지 않았거든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그래서 갈등을 하고 있는데……그러던 찰나에 영화하자고 전화가 왔길래, 원래 개그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어서 바로 ok를 했죠.
시나리오도 안보고?
네. 바로 ok해가지고 무조건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때도 감독님께 지금처럼 똑 같은 말을 드렸어요. ‘원래 연극하고 싶었다. 영화도 개그랑 똑같이 가고 싶다.’고. 제가 사정사정한 거죠. 제발 좀 하게 해달라고. (웃음) 돈도 일체 더 달라거나 그런 비슷한 이야기도 안 꺼냈어요. 나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일체 돈 같은 거 더 달라거나 그런 얘기를 안 했다니까요. 감독님께서 저를 캐스팅한 이유가 개그콘서트의 현대 생활백수 코너를 보고 캐스팅을 했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방송국 PD역할을 주셨는지 솔직히 신기해요. 매치가 안됐을 텐데. 약간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그때는 개그 짜는 시간도 너무 부족했거든요. 인터뷰에서 CF까지 정신 없는 와중에 잠 줄여가면서 찍은 영화가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예요. 감독님 말씀 무조건 따르고. 제가 너무 사정해서 찍은 영화기도 하고 또 영화를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그렇게 연기했죠.
근데 시나리오 봤을 때 수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아우, 그런 건 없었어요. 좋았죠. 좀 더 넣어달라고 그랬죠.(웃음) ‘내가 운이 좋긴 좋구나 첫 번째 영화에서 베드신도 있고’ 그랬다니까요. 근데 지금도 몸이 별로 안 좋은데 그때도 체격이 별로 좋질 않아서 그 신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딱 한달 보름 전에 결정된 거라 그때부터 헬스클럽 다니면서 엄청 운동하고. 이제 근육이 막 나오려고 하는데 찍는 바람에.(웃음) 앞부분이 나오면 좋은데 뒤쪽이 많이 잡혔잖아요. 은근히 부담되더라고요. 몸 만들려고 고생한 기억이 많이 나네요. 아령 들고 촬영장 갔을 정도였으니까. 찍기 전에 10분간 운동하고. 기다리면서 틈만 나면 하고.
근데 처음 영화 찍은 배우들은 대부분 아쉽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은근히 만족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사실 많이 어색해요.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 녹음된 거 듣고 어색해 하듯이 영화에서의 내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 기억이 되살아나더라고요. ‘내 목소리가 정말 저런가?’실망도 되고. 한편으로는 ‘저게 내 스타일인가 보다 그냥 받아들여야겠다’란 느낌도 들고. 제가 생각해도 말투가 어리버리하고 어수룩하게 나오는 거예요. 실제로 영화 찍을 때도 이렇게 까지 어수룩하게 나올지 몰랐는데 그렇게 나오니까 마음에 안 들었다가 그 모습이 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일반 대중들에게는 도리어 친근하게 다가갈 것 같고. 그걸 장점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영화 속 제 모습이 괜찮아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여자들에게 가장 많이 당하는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최후의 승자로 남는 역할을 맡으셨잖아요. 관객들이 고혜성씨가 맡은 영수란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으세요?
퍼즐처럼 많은 장면이 뒤죽박죽 되어 있어서 영화 보는 중간에 화장실 갔다 오거나 전화 받으러 나갔다 오면 이해를 못할 것 같아요. 한마디로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인 거죠. 시사회에 왔던 후배들 얘기가 초반에는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더 궁금해지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느낌을 받았대요. 제 역할이 처음에는 정말 어수룩하게만 나가다가 알고 보니 친구 마누라하고도 연관이 있고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잖아요. (그 내용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실제 제 성격의 90%는 들어간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영수의 모습으로 빠져들어서 연기를 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편안하게 제 스타일대로 했던 것 같아요. 상대 여배우들도 저를 굉장히 잘 따라 줘서 대하기도 편했죠. 유명한 전도연씨나 다른 배우 분들이랑 했으면 얼어서 못했을 텐데.(웃음)
마지막 장면에 서로의 시계가 어긋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의 설명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끝나서 아쉬웠어요. 굉장히 중요한 반전인데.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장면이에요. 제 친동생 성수가 석호 마누라 하고 통화하면서 끝나는 거잖아요. 결국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아,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거였구나. 시나리오에 없는 그 엔딩 장면을 보고 어떠셨어요?
저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한편으로는 ‘이거 갈 때까지 갔구나. 정말 끝장을 보는구나.’ 그랬다니까요. 인물들의 관계가 설마 저 정도까지 연결될 줄은 몰랐었거든요.
그 정도로 수위가 높을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근데 사실 주위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요. 영화에서는 그걸 좀더 많이 함축해서 엑기스 식으로 보여주지만 실제로 <내 여자친구….>처럼 여섯 명의 관계가 저렇게 되기는 쉽지 않죠. 감정은 있는 영화라 보시는 분들이 많이 당황할 것 같고 많이 찔리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솔직히 연인 분들이 보면은……참, 보라고 말해야 되는데 영화 끝나고 나서 서로 대화 나눌 때 말다툼 한두 번은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기자 코멘트를 쓸 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커플을 보면 절대 안 된다. 상상이 구체화 된다.’ 그렇게 썼거든요.
그렇죠. 홍보하기가 힘든 영화인 것 같아요.(웃음)
섹시로맨틱 코미디인데 정말로 로맨틱 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연애의 이면을 많이 담고 있고.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죠. 실제보다 조금 더 과장이 되어 있고.
그럼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 쪽에 비중을 두고 활동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원래 꿈이 50대 50이었는데 개그에 대한 꿈 50%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50은 영화 쪽인데 솔직히 개봉만 된 것만으로도 꿈은 이룬 거죠. 실제로 영화에 대한 매력이 더 큰 것 같아요. 영화 찍으면서 느낀 건데 찍은 기간은 두 달밖에 안됐지만 연기를 한다는 게 스케일부터 차이가 나더라고요. 개그는 일단 무대가 좁고 시간도 짧고 정해져 있잖아요. 근데 영화는 더 많은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거라 매력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무대 인사 때도 개그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연기가 더 어렵다고 하셨죠.
아, 진짜예요. 영화 찍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란 게 대본만 외우면 되는 거지. 세상에 개그맨은 대사도 외어야 하고 웃기기도 해야 하고 새로운 창조를 하는데 영화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그대로만 하면 되는 거다.’라는 식의 무시를 좀 했어요. 솔직히. 개그가 최고로 어렵다고, 그런 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영화를 찍어 보니까 개그가 새롭게 웃음을 주는 거라면 연기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야 하는 창조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찻집에서 상대 여배우와 연기를 할 때 대본에 나오는 데로 똑같이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나만의 느낌으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만들어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개그 못지 않게 이것도 창조구나.’싶고.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네 느낌대로 해봐” 이렇게 주문을 하시니까 갑자기 당황되는 거예요. 물론 내가 경험한 것도 있지만 영화 속 상황은 경험해 본적이 없으니까 나름의 상상을 통해서 창조를 해야 돼서 그런 게 많이 힘들고, 영화 속 1,2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것도……
영화는 정말 기다림의 미학이죠.
개그는 그게 없거든요. 한번 무대 올라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본인이 쭉 하면 되니까 편한데 이건 뭐 조명을 잠깐 옆으로 옮기는 것만 하더라도 몇 시간씩 걸리고 바뀌는 동안 감정 유지해야 하는데 그 동안 감정이 유지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 경험을 해보니까 영화 배우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싶어요. 1년에 몇 편씩 찍는 분들은 정말이지, 돈도 많이 받지만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버티면서 하시는지.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 하시는 분들 존경까지는 안 했거든요. 개그맨, 코미디언 분들만 존경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입에서 “모든 영화배우 분들 존경합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이 영화를 찍고 나기 전과 후에 고혜성씨의 연애 관이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가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신경 안 썼던 상대방의 교우관계를 다시 보게 된다던지.
지금 현재로썬 여자친구가 없거든요. 나는 솔직히 만나고 싶으면서(웃음) 상대방은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거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바깥으로 꺼내 애기를 안 하는 것뿐인데, 제가 사귀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면 모르는 채 하거나 그냥 어느 정도 이해해줄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저 또한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하는데, 그 여자가 나보다도 다른 남자가 좋다면은 보내줄 용의는 있어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시군요.(웃음)
그 동안 이별을 많이 해봤어요. 절망의 나락으로 깊게 빠졌다가 올라온 적이 여러 번 있죠. 사귀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좋아해서 떠났는데 그게 반복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점점 더 무뎌지게 되고. 제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하게 된 것 같아요. 상대방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간다고 하면 이제 그렇게 아파하지 말자고. 처음부터 이 여자가 나만의 소유가 아니고, 나만 만나야 된다라는 생각도 버리고 다른 남자 만난다고 하면 보내주는 게 나도 가슴 안 아프고 예전처럼 가슴 밑바닥까지는 가지 않을 테니까. 가장 최근에 이별을 해서 지금은 아무도 사귀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누굴 사귄다고 하면 정말 소유하고 싶지 않아요.
사랑에 굉장히 쿨 해지셨나 봐요.
저는 그냥 친구 같은 그런 관계로 갔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진정한 사랑은 우정이다.’ 평생 이별 없이 끝까지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게 우정이잖아요. 우정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 사귄 여자친구가 헤어지고 일본에 갔거든요? 현재 남자친구도 있고. 근데 가끔 1년에 한번씩 연락이 와요. 편하게 통화하고.
사귈 때보다 더 친한 사이가 돼버리죠.
그렇죠. 그런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가 된다면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은 거죠. 왜냐면 자꾸 반복되니까. 사랑하고 또 이별하고. 그래서 앞으로는 사람 사귈 때 서로 너무 심하게 구속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유로운 친구 같은 관계로 가려고요.
앞에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영화 속 캐릭터가 자기 성격과 거의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셨는데, 영화 속에서 ‘이건 정말 난데?’ 하고 느꼈던 장면이 있나요?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 다 해당되죠. (웃음) 운전할 때 멋져 보이려고 한 팔로 후진하고. 그건 시나리오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여자들이 후진할 때 멋있게 본다는 거. 실제로도 써먹고 “오빠 운전 너무 잘한다. 어쩜 그렇게 후진을 잘해.”그런 말도 듣고. 그러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자동차 데이트 신은 제가 자주 겪었던 그 장면이라 연기하기 편했어요. 물기 젖은 모습 보여주는 것도. 샤워하고 난 다음에 물기 젖어 있는 거 일부러 연출하고.(웃음)
아, 동생이랑 친구랑 셋이 닭갈비 집에서 술 먹는 장면이요. 제가 술을 잘 안마셔요.
실제 모두 취하신 것 같았는데.
저만 빼고 그 두 명은 진짜 마셨어요. 정말 마시면서 찍었죠.(웃음) 술을 원래 안마시기도 하지만 특히 소주는 입에도 안대거든요. 10년 전에 술 담배를 끊어서 술은 정말 특별한 자리에서 분위기상 맞춰줄 때만 먹는데 술취한 연기 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얘네들은 먹으면서 하는 거라 정말 취해있는데 저는 맹물 먹으면서 연기해야 하니까. 속으로 먹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그 장면이 정말 힘들었어요. 스스로가 술 취한 모습을 보는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 모습을 연기 한다는 거에 대한 딜레마도 있었고. 연기라 어쩔 수 없이 해야 됐고. 그래서 그 장면은 지금 봐도 만족을 못해요.
어쨌거나 이제는 공인의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학창시절에 가졌던 두 개의 꿈도 모두 이루셨고.
솔직히 여한은 없어요. 이대로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살더라도. 두 가지 모두 힘든 건데 둘 다 이룬 거니까. 근데 이제는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한번 맛 봤기 때문에 이제는 그만 두라고 해도 그만 못 그만 두는 그런 단계예요. 특히 영화에 대한 맛을 아주 강하게 봐서.(웃음) 아주 달콤한 맛을 느꼈기 때문에 평생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원래 오디션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개그맨 하기 전부터 영화 오디션 많이 보러 다니고 떨어지고 그랬죠.
영화 한다고 했을 때 선배 분들은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혹시 ‘개그나 계속하지 무슨 외도냐’ 그런 반응?
아니, 그런 분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개그맨 한창 하고 있을 때인데도 10명중 8명은 ‘너는 영화배우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런 얘기 진짜 많이 들었어요. 제가 하고 싶다는 얘기도 안 꺼냈는데 그분들이 먼저 ‘넌 개그보다는 영화나 연기가 어울리는 것 같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되려 개그맨의 가능성이 없다라는 뜻으로 들려 상처받았을 것 같은데요?
캐스팅 되기 전부터 그런 말을 들어서, 막상 하기로 했다니까 “역시 넌 연기 쪽으로 빠질 줄 알았다.” 그러시고. 지금도 개그보다는 연기 쪽이 낫다는 의견이 거의 7,80%예요. 얼굴이 웃기게 생기질 않아서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고민에 빠져 있는 게 영화라는 게 쉽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개그나 방송 쪽보다 문이 더 좁거든요. 방송은 영화 보다는 많이 열려있고, 얼마든지 조금만 노력하면 들어갈 수 있으니까. 솔직히 지금 개그를 하나 준비하고 있거든요. 영화 개봉되고 주변의 평이 좋고 잘하면 다음 영화도 찍을 수 있고, 그러면 영화 쪽으로 갈수 있는데 지금 방송 쪽에서 준비한걸 먼저 해버리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이 고민을 작년 5월에 영화 끝내고 지금껏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번 영화의 평을 듣고 ‘넌 연기는 아니다. 개그나 해라’ 그러면 정말 대중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려고요.(웃음) 영화는 어떻게 보면 방송과 틀리게 예술장르잖아요. 제가 무작정 막무가내로 우긴다고 해서 떼쓴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 여자친구…>속에는 정말 주옥 같은 대사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연애경험자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섬뜩한 대사들. 남자들의 심리가 정말 그 정도일까 싶기도 하고. 사실 보면서 약간 무서웠어요.
무섭죠. 인간 중에서는 석호 같은 인간도 있고 영수 같은 인간도 있어요. 더 심한 인간들도 있고. 객관적으로 저도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공감하지만 석호라는 인물이 마냥 매력적이 진 않죠. 이중인격자고. 그런데도 정말 저 사람의 환경에 처한다면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라는 그런 마음에 동정하게 되고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 관객들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매력적이진 않으면서 동정은 가는.
사실 <내 여자친구 …>의 경우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보고나니 기대 이상이란 느낌이 드는 영화에 속하거든요? 게다가 한창 바쁘실 때 찍은 것 치고는 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다른 배우들이 촬영할 때 거의 참석하질 못했어요. 방송이랑 같이 하고 있을 때여서 양쪽 모두한테 죄인이었죠. 개콘 PD님과 영화 감독님한테. 내가 좋아하는 거라 안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그 당시에 개그를 안하고 영화만 했었더라면 한 두 세배는 더 잘했을 거예요. 제 주의가 작품을 할 때는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지 된다라는 주의거든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던 게, 비몽사몽간에 찍은 게 있어서 그것 때문에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 다잡았지만. 그리고 제작 환경이 아무래도 이런저런 제약이 있었거든요. 넉넉하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장비 빌리는 거며 날짜가 잡혀있으니까 형편에 맞춰서 작업해나가야 하니까. 개그는 그렇지 않거든요.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몇 분 올리기 위해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래서 단체 작업이란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극중 영수라는 역할을 맡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나요? 평범하면서도 그렇다고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약자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실속은 다 챙기는 인물이라서 표현하기가 의외로 어려웠을텐데.
특별히 다른 사람을 생각하진 않았고요, 그냥 제 스타일대로 끌고 나가야겠다란 생각은 있었어요. 끌고 나가되‘개콘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는 최대한 벗어야 되겠다는 생각. 그것 때문에 되게 힘들었죠. 연기 할 때 목소리를 원래 제 목소리 대로 하는데 감독님은 자꾸 그게 개그에 나왔던 목소리라고 하는 거예요. 어투가 비슷할 순 있지만 나름대로 그 목소리를 버리고 영화에 맞는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감독님 입장도 이해가 되면서도 워낙 백수 캐릭터가 강해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어요. 그때와 같은 대사가 영화 속에 딱 한 장면 나와요. 유일하게 “형이야”라는.(웃음) 동생한테 술집 장소 알려줄 때 전화 받으면서 “어, 형인데…”이렇게 하는 건데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대사는 같아도 느낌은 다른데 자꾸 비슷하다고 해서 그게 좀 힘들었죠.
이 영화를 계기로 다른 영화로 영역을 넓혀 나가신다고 하셨는데 “이 역할만은 자신 있다!” 이런 게 있으시다면?아들 이라던지, 재벌 쪽. 그 쪽은 아닌 것 같고.(웃음) 개콘의 백수가 잘된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런 생활을 많이 했었고, 밑바닥 인생을 겪었기 때문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배달 일부터 해가지고 안 해 본 게 없기 때문에 그런 서민적인 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까 밑바닥 인생을 표현하는 역할은 잘 할 자신 있어요. 그게 제일 편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설경구 선배님의 인터뷰 기사 중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공공의 적>에서 형사역할 하다가 검사 역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고. 그런 것처럼 각자 자기한테 맞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대중들이 봤을 때 ‘저 사람은 저게 잘 어울려.’하는 역할을 하는 게 가장 좋죠. 원하지 않는 역할을 하면 외면 받는 게 당연하니까. 안 성기 선배님 같은 경우에 <라이오 스타>의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리고 가장 그 분 다운 역할이었던 것처럼. 전 정말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 받았거든요. 다른 영화보다도 안 선배님의 그 역할이 가장 완벽한 역할이지 않았나. 그 사람과 맞는. 정말 많이 감동 받았어요. <라디오 스타>를 보고.
예전에 두 분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쓸 때 인트로를 ‘이 영화가 흥행하지 않으면 기자를 관두겠다’고 까지 쓴 적이 있었어요.
아, 정말 최고의 영화 같아요. 한국영화 역사상! 예술적인 면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고 배역도 너무 매력적이고 최고이지 않았나 싶어요. 근데 의외로 주변에서 많이 안 봤더라고요.
게다가 TV에서 너무 빨리 방영 했죠.
주변사람들에게 무조건 빨리 가서 보라고. 이건 TV에서 보면 안 되는 영화라고 추천했어요. 어디 신문에서 CJ 부회장님이 다시 재개봉 시킨다는 거 알고 “거봐라, 이거 너무 아까워서 다시 재개봉하는거야. 빨리 가서 봐라”면서 막 홍보 했다니까요. 저도 안성기 선배님같이 몸에 딱 맞는 역할을 찾고 싶어요. 가장 나하고 가까운 역할. 그걸 하고 싶죠. 안 선배님의 다른 영화들도 너무 다 잘 어울리셨지만 그게 70이나 8,90이었다면 <라디오 스타>의 역할은 딱 100프로였다고 봐요. 아마 그분도 연기 하기에 편하셨을 거예요. 호흡도 많이 중요했었고. 상대배우하고의 호흡도 무시 못하잖아요. 제가 아무리 설경구 송강호 선배님처럼 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상대 배우가 안 받쳐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보거든요? 정말 마음 맞고 오랫동안 연기 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사실 인터뷰 나가기 전에 무비스트에 들어가 기사를 쭉 읽어봤어요. ‘잘나가시는 배우 분들이 다 걸렸던데, 나도 여기 걸리는 구나.’싶은 거예요. 이름 없는 곳에서 연락이 온다 해도 감사해 하면서 인터뷰 할 텐데 평소에 자주 들어가는 곳에서 연락이 와서 지금 너무 좋아요. 영화 개봉되는 것도 좋고, 제가 어렸을 때 꾼 꿈이 이뤄지고 점점 제 영역이 넓어지는 것도 좋고. 흥행이 안되고 영화가 외면 받고, 제 연기가 욕을 먹더라도 후회는 없어요. 너무 하고 싶었던 거 한 거고. 이제 결과만 남았죠.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연기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원래 우울하거나 폭력적인 거는 싫어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늘 웃음을 주는 역할만해서 영화를 하면서도 개그를 안하고 연기를 해도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는 밝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2007년 3월 26일 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2007년 3월 26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