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과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그녀는 <사랑할 때….>를 부끄럽지 않은 작품, 행복하게 찍은 영화라고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영화에서 혜란은 자매 중 맏언니로, 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신의 사랑에 솔직하면서 동시에 상처 받기 두려워하는 여자다. 영화 속 현실적인 대사들과 맞물린 김지수의 연기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우리, 이제 그만 하죠.”라고 평생 처음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의 끈을 놓아버리는 혜란의 대사는 새침하면서도 고혹적인 외모의 그녀가 맡았기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살지만 나름의 많은 상처를 가진, 불 같은 20대를 지나 현실의 무게를 절감하는 경험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우리는 김지수가 지닌 저 야누스적 매력에 더욱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외모 뒤편에 가려진 가식과 궁상은 사실 김지수에게 볼 수 없는 본 모습인데 <사랑할 때…>의 기자 간담회자리에서 그녀는 가족의 정의에 대해서도 소중하고 꼭 지켜야 할 것 이란 표현 이외에 ‘지긋지긋하다’란 표현을 덧붙이며 공인이기 전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살았던 자신의 속내를 내보였다. 모든 인간들에게 가족은 행복하기만 한 집단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저런 표현은 충분히 신선했다. 언제나 똑 부러지고 할 말하는 그녀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왔던 대중들에게 이번 인터뷰는 바로 그녀의 이런 점이 확실히 묻어 날것이다. 무비스트의 기사적 표현 방식에 확실한 반감을 드러낸 김지수의 의견은 직업적 소명과 개인의 취향을 명확히 나타낸다.
더불어 녹음된 음성 파일을 다시 한번 들어볼수록 ‘말’ 잘하는 배우와 ‘단어’를 잘 쓰는 배우를 자연스럽게 구분 짓게 되는데 김지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지닌 배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여배우를 만나 ‘사랑’에 관해 얘기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사랑의 소중함을 가장 사실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영화다. 그녀의 솔직한 진심을 받아들이려면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이 가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영화적 밀도를 겪어봐야 한다. 설사 보지 않더라도 배우 김지수가 가진 솔직함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벌써 챙겨봤을 테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른 거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아무리 영화 전문의 기자 분들이어도 다 똑같을 순 없잖아요. 내가 하는 작품이 늘 좋은 평만 받을 수는 없는 거고, 저는 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일관된 것 보다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이렇게 써져 있는 평가를 보면서 ‘어, 이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네?’ 그러고 받아 들이는 편이예요. 뭐를 놓고 흥행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 그냥 어쨌든 감독의 창작물인데 만약 작품이 굉장히 질 낮고, 누가 봐도 부끄러운 작품이라고 해도 그런 식의 표현은 좀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비스트의 한 코너의 표현이라는 건 잘 알아요. 저 스스로도 영화 전문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영화를 만들고 그 작업에 참여 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썩 기분 좋은 표현은 아니라는 거죠.
표현 방식에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죠.
저는 강력하게 그걸 바꿔야 된다는 쪽이에요. 안 들어가는 사이트도 아니고 내 작품만이 아니고 다른 작품도 그렇게 평가한걸 봐 오면서 제가 느껴왔던 부분이기도 해요. 다른 곳 보다는 조금 더 영화에 대한 예의를 지켜 주셨으면 하는 바도 바램도 있지만 솔직히 얘기 하자면 너무 저급스런 표현이잖아요.
예전엔 퍼센트로 나타냈었어요.
그게 차라리 더 낫죠. 숫자로 매긴다는 것도 웃기긴 한데 ‘쪽박’, ‘피박’ 보다는 낫죠.(웃음)참여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인 거 같다란 생각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직까지 내색한 분이 없어요? 제가 최초인가요?
그걸 직접적으로 바꿔달라고 하신 분은 없었어요.
회사에 들어가서 ‘김지수가 이랬다더라.’ 라고 꼭 해주세요.(웃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 때문에 바꾸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기분 나쁘다란게 아니고 무비스트는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니까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최소한 영화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수준에서 영화를 평가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그런 영화적인 얘기로 들어가서 항상 고혹적이고 단아하고 이런 이미지로 다가 오셨었는데 ‘혜란’이란 역할은 정말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잖아요.
가장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캐릭터죠. 전 고혹적인 건 체질에 안 맞아요. 정말 체질에 안 맞아. <로망스>의 윤희 같은 캐릭터는 되게 불편한 캐릭터고, 여자인 내가 봐도 조금 우아 하고 예쁘게 나오는 거, 사실은 재미없구요, 별로 와 닿지도 않고 그래요. 혜란이란 캐릭터가 내가 다가가기 편하고 그리고 좀더 공감도 많이 가고.
특히 노래방 신이 인상 깊었어요. 엄마랑 여동생이랑 정말 신나게 놀다가 동생이 임신했다고 결혼한다니까 매몰차게 지우라고 하잖아요. 그 다음 장면이 요즘 결혼 하는데 얼마냐 드냐고 하는 장면이고. 이런 것 자체가 영화의 드라마적인 것과 더불어 장녀인 김지수의 현실 연기가 보이는 듯 했어요.
나 같으면 애 지우라는 얘긴 못 할 것 같아요. 그 현실감은 제가 동생들이 있어서 더 묻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부분도 있을 수는 있지만 찍을 당시에는 혜란이가 심정적으론 그런 얘기를 했지만 본 마음은 당연히 아니겠지, 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요즘 결혼하는데 얼마나 들어?”라는 대사가 동생에 대한 언니의 마음이 묻어나는 거니까. 아무튼 혜란이가 처해있는 상황들이 딱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고 내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만 해도 사실은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에 되게 딱하게 느껴지고 공감 갈 때가 많았어요.
여기 오기 전에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 봤어요. 솔직히 지수씨가 블로그 하실 거란 생각을 안 했거든요.^^ 재미있는 사진도 많고 그 관련 글도 너무 잘 써놓으시고. 가장 최근에 올린 한석규 선배님 담배 피는 사진과 그 덧글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하하. 그건 정말 우연하게 찍었는데 그런 표정이 딱 걸린 거예요. 내가 한 선배님을 찍잖아요? 그럼 포즈를 취해 주시다가도 “지수야~근데… 올리지는 마라” 그래요. 그러면 “선배님, 이런 모습도 대중들이 봐야 돼요. 연기 잘하고, 그런 모습만 보여주지 말고 이런 친근한 모습도 보여줘야 돼요” 그러면서 막 일부러 장난스런 사진들, 이한위 선배님이랑 우스꽝스럽게 찍은 모습을 일부러 올려 놓은 건데 그런 것들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쓰신 글을 읽다 보니까 <사랑할 때…>를 너무 재미있게 찍었기 때문에 흥행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번 영화로 흥행배우로서 자리매김해야 되지 않겠냐, 라는 글을 귀엽게 이모티콘까지 곁들여 써놓은걸 발견했거든요.아…그건 블로그가 아니고 김지수닷컴 이었어요. ‘아, 저도 흥행배우 돼봐야 돼지 않겠습니까?’ 라고 쓴 거. (웃음) 배우라면 내 작품이 백만 보다는 이백만이 보는 게 좋고 이백만 보다는 오백만이 보는 게 좋은 게 당연한 거죠. 사람인데. 근데 욕심이 나는 것 보다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지 흥행은 내가 욕심 부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뭐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지옥이 되잖아요. 내가 지금 <가을로>가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했다고 해서 얼마더라? 한 80만 정도 했다고 알고 있거든요, 78만? 분명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지만 저는 굉장히 빨리 털어 버렸어요. 애초부터 흥행에 대해서 그렇게 큰 욕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항상 늘 최소한 투자한 사람들에게 손해만 안 봤으면 좋겠고, 나도 창피한 정도만 안됐으면 좋겠다. 이 정도지. ‘대박’,’초 대박’이란 거는 오백만 천만 이런건데 이건 거의 하늘의 뜻이거든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닌 거죠. 그런 행운이 나한테 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흥행이 됐다고 해서 작품이 좋고, 안됐다고 해서 작품이 안 좋은 게 아니니깐.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나 모든걸 다 흥행으로 평가하는 건 아니니깐 그거에 크게 상처 받거나 낙담하지는 않아요.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직업적 특성상 한국영화는 그 날 저녁에 바로 리뷰를 써서 올려야 하기 때문에 당시 그 느낌을 그대로 반영해 쓰는데 간혹 가다 내가 처음 받았던 느낌과 다르게 잔상이 많이 남으면서 뒤늦게 ‘참 좋았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작품이 있는데 <사랑할 때…>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거든요.
근데 왜 흥행성 ‘쪽박’이냐고!(웃음) 이 영화가 어려움을 모른 사람들이나 인생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들, 소위 편하게 산 사람들한테는 되게 구질구질 할 수도 있고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잊고 싶거나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되게 힘든 영화일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영화를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해시키고 공감시킬 수는 없는 거잖아요. 20대 초반의 사랑 얘기가 나한테 와 닿지 않듯이 20대 초 중반의 친구들이 이 영화를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거에 대해서 “뭐야, 왜 이걸 보고 못 느끼는 거야?”라고 항변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20대 초반의 사랑이야기를 보고 유치하고 말이 안 된다고 공감 못하듯이 마찬가지거든요. 제가 생각 했을 때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보편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면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사랑할 때….>를 보고 공감할 수 있고 최소한 이질감은 느껴지진 않는다는 사실은 꼭 말해주고 싶어요.
음..그건 잘 모르겠어요. <가을로> 개봉하기 전에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들이 나오는 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거든요? 이것도 모르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어떤 판단을 안하고 있어요. 그냥 물 흐르듯이 순리에 맡기고 싶고. 내가 많이 공감을 하면서 찍은 영화는 그 영화가 뭐, 10만이 보든 50만이 보든 100만이 보든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의 공감대 퍼센트는 비슷하거든요. 내가 공감한 작품들은 대부분의 대중들도 공감해요. 흥행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런 부분도 있죠. 자극적이고 세고, 뭔가 사람들의 눈요기를 자극할 만한 게 없는 작품들이 흥행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좀 차이가 나니까. 솔직히 이 영화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보이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래도 최소한 <사랑할 때….>가 자랑스럽다고까진 못해도 어쨌든 삶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게 가장 좋고 멋 부리지 않는다는 게 좋았어요.
영화의 흐름이 감정적인 부분이 끊어지고 이어나가는 게 굉장히 사실적이었어요. 저런 상처에 저런 상황이면 나도 저렇겠구나, 라는 공감대랄까.
어떻게 보면 <로망스> 같은 영화는 이 영화의 정 반대의 꼭지점에 가 있는 영화거든요. 대단히 비현실적인. 이건 아주 현실적인, 그야말로 그냥 현실에 딱 발을 붙이고 있는 스토리죠. 제 개인적으로 그 영화는 나도 공감이 쉽게 가진 않아요. 현실에선 일어날 순 없는 사랑이야기라 한번쯤 보고 싶은 대리 만족을 할 순 있지만 이런 현실적인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정혜>도 그런 스토리고 그런 류에 강하게 끌리긴 해요. 조금 전 인터뷰에 이런 얘길 했거든요. “요즘 드라마들이 정서가 점점 없어져 가는 게 너무너무 싫다”라는 요지의 말이었는데 앞으로 내가 다른 장르의 것들을 보고 그때 코미디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멜로 이후의 다른 장르를 또 언젠가는 할 텐데 늘 항상 이런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는 다소 올드하고 구질구질하게 보일지도 몰라도 나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게 흘러간다는거예요.
솔직히 영화에서 혜란이란 역할을 맡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많이 보였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하면서 즐거운 점이 있다면요.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누구랑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 적이 없었는데 그게 연기를 통해서 이루어졌죠. (웃음) 즐거움이자 대단히 괴로운 일이긴 했지만 전 노래방에서 막 춤추고 그러지 않거든요. 혜란이 같은 경우에는 오죽하면 그랬어요. 술도 안 먹고 맨 정신에도 이럴 수가 있을까? 그랬지만. 망가지려면 더 망가질 수도 있었어요. 솔직히. 근데 너무 코믹스럽게 그러지는 많자, 웃기려 작정한 사람처럼. 그런 생각에 욕심 보다는 누르면서 연기를 했어요. 실제로는 술 먹고 맨 정신에 춤추고 못 해요.
술 먹고는 하시구요?(웃음)
술먹고 어떤 주정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즐거움 이랄까? 이 어쩌면 내가 실제로 살면서 하지 못하는 거에 대한 배우들의 대리 만족일수도 있어요. 내가 잘 해보지 못하는 거를 작품을 통해서 경험해 보는 게 그게 되려 즐거움이었고 혜란이란 인물이 아무래도 입체적인 인물이다 보니까. 그런 인물들은 연기할 때 즐겁고 하는 재미가 있고 그리고 현장에서 찍으면서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이 있어요. 정적인 인물들은 시나리오의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드는데 그렇지 않은 인물들은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거 이외에 내가 연기 하다가 본능적으로 테이크 마다 다르게 표현되거든요. 그러면 생각지 않게 요런 게 재미있네? 그런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혜란한테 있었어요. 현장에서 찍으면서 발견하는 즐거움이요.
배우 김지수가 보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이라고 보시나요?
아니요.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봐요. 나중에 다시 이어지는 느낌으로 가긴 했는데 완벽한 희망은 아닌 것 같아요. 희망의 여지만 줬다 뿐이지. 그 엄청난 현실을 이 둘이 극복하고 사랑을 잘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둘이 손잡고 웃으면서 끝나는 것보다는 뭐랄까 “그래서 이 둘은 결국은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어,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었어.” 라고 끝나는 것 보다는 이렇게 희망의 여지만 주고 끝나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신이에요. 감독님께도 당시에 그런 속내를 말씀 드렸더니 감독님이 “그럴까요?”그러시더라구요. 그 말에 마음이 순간 약해져서 “아니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안 그럴 수 도 있구요.” 그랬더니 그냥 찍으시더라 구요. 제가 강하게 “아우~감독님 이거 바꿉시다”라고 어필하진 않았어요. 근데 이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흐름과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럼 어떻게 마무리 됐으면 하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핸드폰 광고 패러디 같기도 하고. 내가 자꾸 그런 생각을 하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이 장면이 그런 것 같아’ 생각이 되면 그게 잘 개지지 않는 것 같아.(웃음)
사실 여배우들의 행보를 보다 보면 대충 어떤 식으로 갈 것인지가 대충 가늠이 되는데, 김지수씨는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걸어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박수칠 때 떠나라>하셨을 때.
그 작품이 작년에 찍은 거였죠. 영화적으로 움직임이 없고, 큰 대사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여자,정혜>와 비슷한 느낌인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일단 시나리오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영화적 이야기를 ‘이런 부분은 말이 안되지 않아?’란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겠지만, 그냥 시나리오의 독특함이 좋았고 장진 감독님도 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에 하나고, 마지막 엔딩은 그 영화의 서두 부분과 뭔가 달라 보였어요. 서정적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너무 하고 싶었고, 내가 잘 표현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것 같아요.제가 연기한 부분이 반전이 되기도 했고. 몇 장면 안 나와도 임팩트가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덕을 보자, 혹은 봐 볼까?’란 생각도 들었고.(웃음)
그렇다면 작품을 고를 때 배우 김지수의 감을 믿으시나요? 아님 ‘양성윤’이란 본인의 본능을 믿으시나요?
음…나의 감을 다 믿진 않아요. 배우가 자기의 감을 다 믿는다고 자신하는 건 자칫 위험한 일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열어둘 필요가 있어요. 결국 마지막 선택은 내가 하는 거지만. 저는 나의 시선만 옳고, 다 맞다 라고 생각하는 쪽은 아니에요. 다만 뭔가 말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이 존재하니까.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 없어도 마음이 움직여 지는 그 감은 믿는데 과연 내가 ‘흥행이 될 것이다 안 될 것이다’ 란 느낌은 없어요. 뭐가 흥행이 안 되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많은 대중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수많은 관객들이 내가 무당이 아닌 이상 그걸 알 수도 없는 거니까. 사실은 <가을로> 끝나고 나서 한 며칠 동안 ‘과연 내가 시나리오를 앞으로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무슨 기준으로 선택 해야 할지를 고민했거든요. 결론은 그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걸 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걸 하자!’ 그런 생각.
그렇다면 여태껏 연기한 여러 인물들 중 <사랑할 때..>의 혜란은 배우 김지수 인생에 어느 부분을 차지하나요?
어려운 질문인데, 이 영화가 내 인생에 있어서 대단한 큰 비중, 근데 감독님은 섭섭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웃음) 아주 큰 비중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만나도 이렇게 얘기 하는 게 되게 웃길지 모르지만, 제가 가끔씩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 <여자 정혜> 할 때 첫 영화니깐 사람들이 “목숨 걸 고 해” 그랬거든요. 그 말에 내가 “왜 목숨을 걸어야 해? 싫어, 내 목숨이 더 중요하지” 이렇게 우스개 소리로 그런 소릴 했어요. 그 영화 끝나고 나니깐 “<여자 정혜>가 호평을 받았으니까 두 번째 영화에 올인 해봐!”그러는 거예요. “ 난 올인 안 할거다!”그랬어요. 나 <정혜> 때도 올인은 안 했거든요. ‘올인’을 안 한다라는 거는 대충대충 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에요. 나는 앞으로 계속 작품을 할 것이고, 물론 모든 작품 마다 올인 하는 배우도 있겠죠. 그건 작품을 대하는 자기만의 방식인 거예요. <가을로> 할 때 (엄)지원이한테 도 “넌 이 작품에 올인 해라. 난 지금 하는 <미열>에도 올인 안 할거다. 올인 해서 진 빠지고 다음 꺼 할 기력도 없으면 어떡해? 난 다음 작품 할 거 항상 남겨 둘 거다.” 그런 얘길 했거든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나한테 그런 의미고. 이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나의 성격 중에 하나가 그런 부분이 있어요, “아님 말구” 그런 거. 하나하나에 너무 연연해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도 어렸을 때는 안 그랬었거든요. 집착하고 힘들어하고. 이게 결국 아 나한테는 별로 좋은 게 아니구나 어느 순간 깨닫고 나서부터는 자칫 너무 무신경 하게 보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비겁할 수는 있지만 나는 그게 편하고 좋아요. 이 영화는 나한테 그런 비중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나이 먹으면 상처도 덜 받고, 낙담도 덜하게 되고 그런거죠.(웃음)
그렇다면 나중에 사랑에 상처 안 받을 날이 올까요?
나는 사랑 앞에서 쿨한 성격이 못 되기 때문에.(웃음) 다른 것에 쿨(cool) 할 수 있어도.사랑 앞에서 쿨 한 사람들은 진짜 무서운 사람들 같아요.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