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그 나이까지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사랑 받는 것도 모자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몇 안 되는 배우들 중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배우들까지 인정한 57살의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상에 무려 13번이나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독보적인 연기인생을 살고 있는 배우다. “할리우드의 성차별은 나이든 여자를 악녀로 만드는 영화 때문에 생긴다” 라는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그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계 최고의 거물로 자신이 이뤄놓은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마다 앉는 40대 중반의 편집장역할을 맡았다는 캐스팅 소식은 분명 충격이었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은 ‘악마’로 분한 영화 속 모습은 여자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여자로 성공하기까지 그렇게 밖에 불릴 수 없었던 깊은 속내를 지녔으나 결코 티 내지 않는 인물로 승화시켰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여배우로 칭송 받는 그녀가 지닌 최고의 매력은 연기를 진실로 믿게끔 만드는 ‘힘’이다.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연극과 TV, 영화를 망라하는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캐릭터들은 지금의 그녀를 완성시켰다. 우리는 수많은 명품들이 차고 넘치는 감각적인 화면 안에 존재하는 ‘진. 정. 한. 명. 품’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가 영화를 찍은 후 느꼈던 소소한 느낌과 자잘한 즐거움을 고백한 이번 인터뷰는 단순히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라고 생각한 관객들에게 원작과 다른 색다른 감동과 함꼐 ‘메릴 스트립’만의 엔딩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유행에 큰 관심은 없어요. 살면서 패션쇼 같은걸 찾아 다니며 보진 않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남자든 여자든 의상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는 관심이 있어요. 우리가 버켄스탁(Birkenstocks)을 고르든, 버버리 (Burberry)를 고르든, 모두 무언가를 의미하니까, 그 점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워요. 그래서 의상, 즉 의상이 캐릭터에 가져다 주는 무언가가 제가 정말 관심 있는 부분이에요. 특별히 ‘디자인의 우수성’ 같은 데는 관심 없어요.(웃음)
Q : 어떤 옷을 입을 때 편한가요? 평소 자신을 어떤 스타일로 꾸미시나요?
청바지랑 티셔츠 입는 게 훨씬 편해요. 물론 지금은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매우 멋진 옷을 입었지만요. 그렇다고 영화가 제 스타일을 바꿔놓진 못했어요, 만약 있다면, 매일 아침마다 진지하게, 옷을 멋지게 차려 입는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게 됐다는 거에요. 정말 놀라울 뿐이에요“
Q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그녀가 인생에서 깊이 있는 즐거움을 좀 더 많이 맛 보았으면 해요. 어쩌면 저처럼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 그녀에겐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그녀에게 감탄하는 점 중 하나는 기꺼이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는, 때론 여성들의 그런 점을 매력 적으로 보지 않죠. 사람들은 그런걸 용납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몇몇 감독들을 만나서 알아 챈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 ‘이역 제가 할래요’ 을 동일하게, 동일한 어조로 여자가 말했을 때는, 거칠고 받아들이기 어렵게 느낀다는 거에요. 무척 흥미로웠죠!
Q : 당신이 보는 미란다와 앤 헤서웨이가 연기한 앤디의 관계를 말해주신다면요?
미란다가 처음 앤디를 만났을 때 그녀는 다른 어시스턴트들에게 끝없이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앤디의 이력서는 최고였고, 전형적인 ‘Runway’의 직원 분위기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그녀에게 색다른 기회를 주기로 한 거죠.
Q : 역할을 하면서 특별히 힘든 점은 뭐였나요? 어떤 점이 전과는 달랐죠?
상당부분 제가 초기에 했던 작품,<크래이머대 크레이머( KRAMER VS KRAMER)>와 비슷했어요. 그 영화에서 관객들은 시작부터 바로 내 역할을 매우 거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바로 결정해 버렸어요.(웃음) 말그래도 ‘ 심술궂은 여자’였죠. 각 역할에 있어 어려운 것과 동시에 도전할 만한 점은 그 안에서 ‘인간성’,’인간다움’을 발견하는 거였죠. ‘내면에 감춰진 점이 뭐지?’ 내가 몰랐던 점, 내가 보기 힘들었던 이런 것들이 저에겐 도전인 셈이죠.
Q: 많은 사람들이 실 생활 속에 당신을 두려워하기도 하는데,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죠? 다른 배우들한테는 우상 같은 존재라 더 어려워하기도 할텐데.
처음엔 그럴지 몰라도 곧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요. 영화 촬영 첫날 내가 대사를 잊었을 때, 모두가 ‘흠..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거지?’ 라고 생각 했을 거에요.(웃음) 그리고 그런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났죠
Q: 패트리가 필드(의상담당자)가 당신이 촬영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더군요.
몇 파운드 빠지긴 했어요, 좀 걱정해서 그런 것 같아요.아시다시피 이번 역은 근심 많은 역할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악역을 연기하는 게 재미있는지 물어보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아마도 내 스스로가 그녀가 느끼는 근심과 압박에 스스로 동화되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전 그게 각본이란 걸 알았죠. 대본을 읽고 누군가가 편집장으로서 그녀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압박을 느꼈어요. 저는 중년의 여성이 얼마나 쉽게 대체 가능 한지 알고, 또 그게 그녀(미란다)에겐 그리 유쾌하진 않죠. 옷 입는 것도 사실 무척 힘들었어요, 마치 잠수복을 느낌이랄까? 일반적인 여성들이라면 그런 옷을 입는걸 매우 즐기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저에겐 그렇지 않고 구속 받는 느낌이에요. 몸에 안 맞는 옷 같아요.
Q: 극중 미란다가 권위 있는 여성들과 그들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석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 같아요. 이 역할이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진 모든 여성을 대표하진 않아요. 미란다의 결혼은 매우 뚜렷하고, 두 사람 사이에 깊이 박힌 ‘특정 이유’ 때문에 헤어지게 된 거죠. 영화에서 우리는 그 점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영화는 그 결혼에 관한, 본직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단지 그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간략하게만 알 수 있죠. 그런데 남자들이 자신들의 부인이 자신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건 전형적인 거 같아요. 대게 그런 게 이슈가 되죠.
전 사람들이 대담하고 권위 있는, 또는 사회에서 매우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들에게’보스’라고 불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걸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고, 그리 좋게 보진 않잖아요. 같은 위치에 서기를 열망하는 수백만에 남자들 보다, 그들을 좀 더 쌀쌀맞게 보는 경향이 있죠, 전 그걸 이해할 수 가 없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점을 살펴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솔직히 말해서 전 ‘안나’가 곧 ‘미란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에 그녀를 만난 적도 없고, 그녀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요. 전 자유롭게 이 역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전 영화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봐왔고,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어요. 그들이 제 연기에 많은 도움을 준 셈이죠. 만약 당신이 영화를 보면서 미란다 프라이슬리가 멋진 양복을 차려 입은 은발 머리의 신사라고 상상 하다면 매우 색다르게 느껴질 거에요.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바리톤 목소리로 나온다면 훨씬 강력하게 느껴질 거에요
Q : 패션 업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어요?
상당 부분 몰랐어요, 특히 영화 촬영 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죠. 세계적인 브랜드나 패션 업계를 지배하는 큰 규모의 기업체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뿐만 아니라 패션상사나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기분 좋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 그렇다고 깊이 있게 연구해서 본건 아니 예요. 패션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삶 속에 스며드는지, 우리가 영화 속에서 패션이 ‘먹이’라는 걸 발견하는 사실이 참 흥미롭죠. 영화 속 한 장면에 미란다가 앤디 에게 패션의 위대함과 어떤 디자이너에게 나오는지, 도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말해주는 장면이 나와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패션계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먹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죠.
Q : 영화에서 보면 ‘size6’이 ‘size5’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 또 여자들이 ‘size5’(한국 사이즈 55)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압박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세요? 전 우리 모두가 쇠약하게 보이도록 애쓰고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사회 모든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치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처럼.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점은 의과학교에 남자보다 여성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대한 큰 반동이죠, 곧 법대나, 사업 영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완전한 보완 작용이죠. 지금 13세인 어린 여자애들에겐 참 가혹한 현실이죠. 제가 자랐을 때보다 더. 그때도 모델 ‘트위기’ 처럼 깡말라 보여야 하는 게, 내가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라고 느꼈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는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이런 것들은 매우 부정적이죠..
그녀는 저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았던 거죠.(웃음) 그녀의 남다른 매력이요? 저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부터 그녀를 지켜봤어요, 그리고 완벽하게 성숙한 여인으로 나타났죠. 정말 아름다워요. 그런 모습이 그녀 자신보다 앞서서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훌륭한 여배운지를 망각할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런 매력적인 면이, 그녀를 가리기 때문이죠. 지난해 가장 간과된 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역할이었어요. 매우 멋졌죠. 그리고 이건 꽤 달라요. 그녀는 솔직해졌고, 매력적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하죠. 그런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재능 있어요.
Q: 영화에서는 성공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 필수 불가결한 걸로 나오잖아요? 당신은 살면서 어떤 거라도 성공하기 위해서 희생한적이 있나요?
네,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미란다는 매우 특별한 여성이에요. 그녀가 어떤 일을 하던, 마찬가지로 특별한 남자만이 그녀를 사랑할 수 있어요. 일하는 모든 여성이 이혼 하게 된다고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런 것들을 전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죠.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가정을 갖기를 희망한다면, 그 누구라도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만 해요 끊임없이 생각하죠.
매우 까다롭지만 그런 다중처리 방식, 한번에 15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여성이 미래를 주도하는데 적합한 이유죠. 남자처럼 행동하는 여성이 색안경을 끼고 단 한가지의 방식으로 문제 있는 사람을 평가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더 많은 것을 할지도 모르지만 또한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성으로서 누리는 삶의 모습을 잃게 되죠.
Q : 당신이 연기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글쎄. 그그녀가 그런 일을 했을 땐 매우 어렸고, 커피를 타오는 등의 일을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런 뒤치닥 거리를 하면서도 배울 점은 많이 있어요. 바로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전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야 그 책을 읽었어요, 책의 범위는 이 업계에 대한 호기심 측면이 제한되어 있더군요. 책은 단지 오락물일 뿐인데 악의 적인 음해 (중상 모략)편지같이 언론에 노출됐지만.
Q: 당신이 맡은 역이 그리 유쾌한 역은 아닌데 그런 면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 것 같군요.
미란다가 종종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녀가 ‘ 내 커피 어떻게 된 거야? 걔 죽었어? (그녀의 어시스턴트를 의미하며..) 라고 말할 때 내가 그 회사의 어시스턴트라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거예요. 재미있는 표현이잖아요. 그러나 그들은 미란다를 너무나 무서워했기 때문에 웃지 않았죠. 그런 점이 유명한 영화 배우가 돼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사람들은 내가 주변에 있을 때 두려워해요. 그리고 내가 촬영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그 요청은 몇몇 사람들을 거쳐가게 되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녀는 설탕을 안 좋아해, 스위트앤 로우 어디있어?’ 그러면 다음사람이 ‘그런데 우유는 뜨거운걸 좋아할까 찬걸 좋아할까?’ 그러죠. 그런걸 요청하지 않았는데, 단지 커피를 달라고 했을 뿐인데, 참 이상해요.(웃음)
Q : 오직 한 명의 디자이너 발렌티노만이 카메오도 등장했는데요, 패션업계 내부에서 이 영화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두 자신들의 옷을 저희에게 제공했죠. 우리가 가진 예산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제가 맸던 핸드백은 무려12000불이나 했어요!. 거의 60벌의 옷을 입고 60개의 핸드백을 들었다니까요.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옷, 가방, 신발 등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을 거에요.
Q: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바라는 건 뭐죠?
건강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선물이나 그 외에 다른걸 바라진 않아요. 다른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57살인 지금, 전 행복해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지만, 제 인생에서 매우 축복 받은 기분이에요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 글_이희승 기자
자료협조: 오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