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발언이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큰 이슈를 끄는 현실에 질려서 일까? 22번째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9.11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고, 음모론이 대두되면서 ‘녹음’을 원칙으로 인터뷰에 응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적어도 9.11 사태에 대해선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되려 <JFK>가 음모 같다.”면서 미국 정부의 힘이 커졌다는 게 더 수상한데 아무도 그걸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개탄스러워했다. 특히 이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며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속내를 비추며 3번째 버전으로 출시예정인 전작 <알렉산더>의 진행상황을 체크하느라 한 시간 가까이 지각한 사실을 정말 미안해 하며 말문을 열었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한 블랙커피를 연거푸 리필하며, 시종일관 여유롭고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올리버 스톤의 진실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자가 되기 전이나 후에도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항상 <네추럴 본 킬러>라고 대답한다.
고맙다. 그때는 무척 어렸었겠다.(웃음)
오랜 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인이 한국 분인걸 처음 알았다. 너무 아름다우신데, 두 분이 서 어떻게 만나셨는지 알고 싶다.
아름답다고 칭찬해 줘서 감사하다.(웃음)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한국 남쪽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15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차를 봤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목포로 이사를 가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가족의 장녀로써 미국의 영화 <뮬란>처럼 가족을 도우러 미국으로 건너왔다. 체구는 작지만 상당히 힘이 있는 여자고, 자신의 주장을 가감 없이 하는 그녀의 용감한 모습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80년대에 만났고 결혼은 10년 됐다. 한국노래를 정말 잘한다. 자주 불러주기도 하고.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자주 접한 걸로 알고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이미지나 어떤 특징이 있는지,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나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월남에서 60년대에 나온 무사영화, 마녀들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아시아 영화를 접하게 됐다. 70년대 중국영화 80년대 일본 영화도 참 좋았다. 내 영화가 아시아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도 같다.(웃음)아마도. 83년부터는. <스카페이스>가 나온 이후 중국영화가 내 영화를 많이 모방해서 시체의 수가 늘어났으니까.(웃음) 한국영화 같은 경우는 7,80년 대에는 너무 진지하고 칙칙하고 어두웠고 중국영화나 일본 영화의 화려함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솔직히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특히 <무사>나 <쉬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너무 잘 만들어졌고, 연기들도 너무 잘하고 낭비되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게다가 내러티브도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영화의 좋은 점은 보면 일본 영화보다는 페이스가 빠르고, 센티멘탈한 부분이 없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나는 그 부분이 정말 솔직 담백하다고 본다. <조폭 마누라> 참 재미있게 봤고, <그때 그 사람들>같은 경우에는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사건과 사람의 본성을 잘 엮었다. 그 캐릭터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인간의 양면성이 들어가 있는 암살자도 흥미롭지만 이건 흡사 세익스피어의 정신이 들어가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을정도다.
내가 만약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상당히 자랑스러울 거다. 아마 임상수 감독이 만들었죠? 더불어 박찬욱 감독은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어디에서 이런 재능들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 또한 아주 훌륭하다. 솔직히 미국에서 흥행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중국의 판타스틱 영화를 선호한다. 너무 진지해서 인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문제 역시 내가 가진 문제점이기도 하다. 내 영화도 너무 진지해서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들으니까.
배우들 캐스팅이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하다. 영화화 되는데 시기상조라는 여론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고사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JFK>나 <플래툰>,<월드 트레이드 센터>같은 화제가 되는 사건들을 스크린에 옮겨놓으시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이 영화의 스크립트를 읽고 마음에 들어서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는 내가 관여하기 전이라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할리우드는 모든 스크립트를 톰 행크스에게 보낸다. 그는 자신이 받은걸 6개월 동안이나 읽지 않고 내버려둔다.(웃음)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는 그 곳에서 일단 5월 달에 내가 한다고 한뒤 스튜디오에서 예산이 안 맞아서 파라마운트로 넘어갔다. 그 다음에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 퍼스트 초이스 였다. 이틀 만에 ‘yes’라는 답이 돌아왔다.
케이지는 정말 돈에 연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줬다. 받은 돈도 많지 않지만 그나마 받은 돈도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좋은 일에 앞장섰다. 일단 케이지를 확보한 다음에 예산을 따냈지만 영화예산인 6300만불 안에서 진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뉴욕에서도 촬영을 하고 세트도 만들고 하는데 60일정도가 걸렸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배우가 영화의 1/4은 책임지고 있다고 본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배우들이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없다. 남자들도 그렇고 아내들도 그렇고. 그런데 모든걸 자연스럽게 연기해 줬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답은 (조금 고민하더니)나는 드라마티스트니까 당연히 논란이 되는걸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상황을 쓸 때랑은 다른 것 같다. 당신들은 마감이 있으니까 어려움이 있겠지만 드라마티스트 같은 경우에는 시사적인 거나 평범한 것에 관심을 갔는데 난 대형사건에 관심이 간다. 역사적인 체험이니까. 다행히 그런 인물들을 자주 만 날수 있었고, 만날 때마다 큰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월남전에 참전한 이유도 인생을 사랑하고 정말 후회하지 않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9.11은 21세기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 뭔가 빛을 가져다 주고 싶었다. 모르는 부분, 고귀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달까.
그 영화를 만들어서 뭔가 만족감을 느낀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가 그렇다.(웃음) 이 영화는 알다시피 실화이고 두 남자를 기리는 영화로 봐주었으면 한다. 중요한 건 팩트(사실)들은 아직 다 안 나왔다는 사실이다. 3년 동안 많은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잘 모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걸 처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보면 회계사지만 해병대 출신이 나오고, 나중에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는 걸로 나온다. 그건 일종의 복수를 표현한 것 인가? 미국이 결국엔 복수를 택한다는.
사실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이 사람이 이라크를 갔으니까 집어 넣은거다. 그걸 삭제했으면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아니었을 거다. 이라크전 참전은 너무나 나쁜 결과를 가져다 줬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은 9.11에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에 쳐들어간 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얘기했을 땐 지지도 받고 문제가 없었지만 이라크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하나의 질문으로 영화를 끝낸다. 그러니까 “그때는 상황이 이랬는데 지금은 상황이 어떠냐?”를 관객에게 되려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봐달라.
내가 알기로 그 사람은 회계사로 일하다가 9.11사태를 계기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고 들었다. 본국으로 왔다가도 3번이나 돌아갔다고 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친구들이 몇 사람이 있는데 민간 계약을 따와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사람들은 일종의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봐도 된다. 이건 잘 안 알려져 있는 얘기지만 실제 그 사람이 영화 제작사와 1년 동안 실랑이를 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반 부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해서.(웃음)
2006년 10월 13일 금요일 | 글_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