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변신에 능한 동물이다.사람의 정기가 담긴 간을 먹으면 평생을 인간으로 살 수 있기에 그 전까지 온갖 변신으로 혼을 쏙 빼 놓는다고 해서 ‘요물’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면 하정우는 인간의 탈을 쓴 요물이라 불려도 마땅하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이 사람이 그 사람 이였어?!’라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만드니까. 때마침 그가 <구미호 가족>에서 맡은 역할도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수컷 여우’다. 그의 이런 범상치 않은 선택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어쩌면 개성 있고 독특한 성격의 보디가드로 나왔던 <프라하의 연인>이 가져다준 대중의 호감 도는 쉽게 인기와 부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정우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는 목적지로 가는 빠른 길 대신 돌아가더라도 길주변의 들꽃과 바람, 풍경을 즐기며 도착했을 때 자신에게 충만해진 내적 성숙을 더 귀하게 여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리라.

브라운관은 그에게 인기를 안겼다. 스크린은 그에게 환호했고, 무대는 그를 단련시켰다.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김기덕 감독의 <시간>에서 보여준 진중한 연기력은 대학시절부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카르멘>등에 출연하며 긴 시간 기본기를 다졌기에 가능했다. 사실 충무로 관계자들과 영화기자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해서 배우로 인정받거나 스타로 대성하진 못한다. 대중의 취향과 관계자들의 눈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적으로) 모든 조건이 충분한 사람이 너무나 완벽한 시나리오로 작품을 완성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해 잊히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반대로 연기나 작품이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행동도 미흡하기 짝이 없는 한 배우가 대중의 열렬한 지지로 스타로 거듭나는 케이스도 있다. 배우로써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그는 스타로의 삶을 완벽히 소화해 낸다. 그러나 하정우는 다르다. 그는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임과 동시에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다. 이제 영화인들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정상의 위치에서가 아닌 될성부른 떡잎을 만난 반가움 때문이다. MK픽쳐스가 야심차게 내놓은 뮤지컬 영화 <구미호>가족은 그 가능성에 대한 증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인터뷰는 기자 시사전 진행됐음을 밝힙니다.-

이희승 기자:( 이하 이:)영화 속 그 화제의 일자 앞머리를 기대했었는데..(웃음)
하정우 (이하 하:)조금 자랐어요. (눈썹 바로 밑을 가리키며)한.. 여기까지 내려왔어요. 지금 머리는 사진촬영 때문에 붙인 거예요.

이: 붙인 머리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럽군요.^^ 아시다시피 CG 작업 보완으로 <구미호 가족>기자 시사가 밀리는 바람에 일반 시사로 봤거든요.
하:(놀라는 듯)구미호가족 보셨어요?

이: 네! 보고 당연히 해야죠. 보고 인터뷰 해야죠.
하 :아~~ 처음 이예요. 영화 보신 분하고 하는 건.

이 : 영화보곤 시나리오도 궁금해져서 영화사에 졸라서 시나리오도 받았는걸요.
하 : 어, 너무 반가워요. 오늘 인터뷰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어떻게 보셨어요? 저 어떻게 나와요?

이: 제가 워낙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시나리오를 달라고 한 이유가 연결 부분이 약산 붕 뜨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 : 음, 그래서 어때요? 영화는? 보시기에...

이 :역시나 시나리오대로 나왔으면 너무 재밌었을 거라는 생각이 딱 들어요. 왜, 그 할머니 찾으러 가는 부분이 있잖아요. 손주 생일인데 자기 버리고 갔다면서.
하 : 그 장면 나와요?

이 : 그 신이 나왔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영화에서 할머니 분량이 너무 적어서 왜 나왔나 싶거든요. 또 시나리오의 그 부분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는데 왜 삭제됐는지 모르겠어요.
하 : 그 장면이 빠진 건 알고 있었어요.(웃음)그게 삭제되면서 제가 아버지랑 골목길에서 “네가 찾아봐!” 막 이러고 “아~예”하면서 찾는 것까지 다 나갔어요.

이: 그래서 약간 아쉬우세요?
하 : 아! 그 장면 빠져서요? 옛날에는 아쉬워했죠. 약 한 달 전에. 워낙 예전부터 촬영한 영화라.(웃음)

이: 하긴 크랭크인은 꽤 오래전이었죠? 작년 <용서받지 못한 자>인터뷰 말미에 차기작에 대한 대답이 ‘구미호 가족을 찍고 있는데 굉장히 애 같은 캐릭터다.’라고 표현한 게 있더라구요.
하 : 예.

이 : 근데 제가 보기에는 애 같진 않았거든요.
하 : 아~ 그래요?

이 : 마케팅 자체가 어벙하고 철없는 덤앤더머 라는 식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선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여요. 정말 할 말만 하잖아요. (웃음)그때는 영화들어가기 전이었지만 지금도 그런 캐릭터라고 보시나요?
하 : 어벙하기 보다는 약간 단순한 게 그렇다는 거죠. 애 같다는 건 제가 그런 거 같아요.(웃음)표현을 스스럼없이 솔직히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죠. 영화에서 그게 얼마만큼 나왔는지 지금은 가늠이 안 되지만 제가 찍은걸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이: 사실 등장인물들이 정말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구미호들이잖아요? 게다가 구미호! 하면 거의 여자들만 생각하는데 남자 구미호란 캐릭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뭔가 특별히 준비하신 게 있나요?
하 : 매력을 느꼈죠, 남자 구미호라서. 뭐 특별히 준비했다기 보다는 그래서 더 외모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레고머리의 ‘결’을 어떻게 보이느냐. 그런 거가 저한테는 중요했어요.

이 : 알려진 바로는 기름 바르셨다고.^^
하: 예. 머리에 에센스로 약간 반짝거리게 했어요. 여우털이 예쁘잖아요. 근데 노출되는 털이라곤 머리밖에 없으니까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그 다음에 일단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메이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좀 많이 냈어요. 의상은 거기서 다 알아서 해주시지만강아지들이나 동물들의 눈을 보면 되게 또렷하잖아요. 그래서 아이라인을 눈 밑에다가 그려주는 것도 의견내보고, 그런 부분에 많이 끌렸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제가 준비한 거는 살을 좀 찌운 거? 지금보다 한 10kg 가까이...

이 : 더 찌우신 거예요? 예. 그래서 <구미호가족>에서 퉁퉁하게 나오잖아요.

이: 의상담당하시는 분이 <친절한 금자씨>의 물방울 원피스를 유행시킨 분이라서 제가 그 부분을 좀 신경써서봤는데요. 그 피에로 복장이 저는 그 날개 도마뱀인가? 그게 연상됐었거든요. 근데 메이크업까지 신경 쓰시고 살을 찌우셨다는 것도 되게 의외시네요. 원래 여우들은 그리 퉁퉁한 편이 아닌데.
하 : (웃음) 날개 도마뱀 그거 맞아요. 체중은 아버지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아버지랑 둘이 조금 부딪치는 장면이 많잖아요. 또 외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외향적으로 많이 닮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템이 나왔거든요. 처음에는 제 이마를 3자로 더 파서 주현선배님처럼 그렇게 하면 어떨까? 했는데 그건 좀 오버고, 나이 들어 보인다. 그래서 그 머리로 한 거예요. 평범한 인간 같지 않으면서 또한 저한테 제일 안 어울리면서 나 자신을 많이 가릴 부분을 많이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생각나더라구요.

이 : 지금까지의 출연작품과 지금의 하정우씨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건 안경하나와 헤어스타일 하나로도 굉장히 다른 느낌이 난다는 거예요. 그런 정형화 되지 않는 모습이 배우생활에 굉장한 매력이 될 거란 생각을 했었거든요.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구요. 영화 속의 캐릭터와 합체된 모습을 보다가 오늘 안경 끼고 너무 댄디하게 나오셔서..하 : 오늘 처음 꼈어요. 원래 안 끼고 다니는데 눈이 나빠서.

이:<시간>에서도 그 안경하나도 굉장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죠. 근데 <시간 >기자 시사때 김기덕 감독님의 역사적인 발언이 있었는데, 그 영화와 관련된 행사는 미국 <네버 포에버>촬영 때문에 다 불참하시게 된 건가요?
하: 5월 시사회도 그렇고 한국에 있던 시사에도 계속 불참하게 되는 바람에 너무 안타까워서 이번 주 일요일에 하는 마지막 상영 때 무대인사 나가요. 그 다음 주에는 제주도 상영이 잡혀서 성현아씨하고 시간 맞춰서 행사 참여하기로 했어요. 늦게나마. 지난 7월에 잠깐 한국 나왔을 때 그때 몇 개 매체 인터뷰 한 게 다라서.

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시는 군요.^^소품 얘기하다 이야기가 흘렀는데 박시연씨 같은 경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셨지만 여배우로 검증이 안 된 상태였고, 주현 선배님과 박준규 씨를 제외하고 여동생으로 나온 고주원 씨도 <청연>이후 첫 캐스팅이었어요. 배우들 캐스팅이 완성되고 나서 솔직히 어떤 느낌이셨나요?
하 : 일단 조금 외인 구단 같은 느낌이 들었었죠.(웃음) 그 다음에 교합이 안되더라구요. 시연씨 상대배우가 박준규 선배님이셔서 더더욱 그랬고, 같은 가족으로 나오는데, 박시연씨하고 저하고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잖아요. 출발점도 틀리고. 과연 우리가 한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도 많았어요. 처음 에는요. 물론 아버지 같은 경우는, 아 맞다. 우선 막내가 캐스팅 되고 그 다음이 저, 아버지 그랬거든요. 그 다음에 나머지 두 명의 캐스팅이 잘 안됐었어요.

이 : 그런 비화(?)가 있었군요.
하: 네. (웃음)그래서 정말 많이 궁금했어요. 누가될까, 누가 될까 그러면서, 근데 박시연씨가 됐다고 해서 조금 의아해 했죠.

이: 솔직히 ‘어떡하지?’그런 생각은 안 들었나요?^^
하 : 그 의아함은 아주 조금이었구요, 내심 걱정은 ‘이 영화 이거 이상하게 가는 거 아냐?’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부딪혀 보고 필름 상에 담아지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인간 됨됨이나 자세 그런 것들이 자극이 된다고 할까요? 매력 있는 사람이구나. 배우로써.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서로의 신뢰감이 쌓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이런 걸 생각하는 자체가 건방진 거죠.

이: 하지만 영화적인 것도 선배시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정말 솔직한 대답을 해주셨어요. 사실 하정우씨는 갑자기 스타덤의 중심에 충분히 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다른 길로 돌아가려는 듯한 뉘앙스가 자꾸 풍기거든요. 드라마 하다가 미니시리즈 갔다가 인기 얻으면 영화오고 그런 식을 버리고. 영화도 국내 작업 후에 차기작이 글로벌 프로젝트라 미국으로 두 달 동안 혼자 가있었다고 들었어요. 평범한 선택은 아니죠. 빠르게 보다는 천천히 확실하게 가려는 의도가 보여요.
하 : 아니요. 그게 좀 아끼려고 그러는 것도 있구요.(인기 있는)그런 상태로 다른 일을 하는 게 재미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프라하 연인에서 얻었던 이미지로는 저는 믿고 싶지가 않았어요. 명분이 없었던 거죠. 그걸로 다음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을 만한 그런 것들, 부풀려진 것들이 너무나 저한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용서받지 못한 자>로 영화관계자 분들한테 주목받게 돼서 <시간>과 <구미호 가족>까지 이어진 것도 그 이유예요. 차라리 <용서 받지 못한 자 >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프라하의 연인>과 ‘2세 연기자’라는 것까지 세 개가 맞물려 작년에 완전히 포장된 제 모습을 보고 진실을 알고 싶었어요. 나의 위치를 알고 싶었고.

어린애들끼리 모여서 졸업 작품으로 으쌰으쌰~해서 만들었는데 ‘저 정도 연기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라는 의욕으로 <시간>을 택했고, 그것과 앙상블을 이룰만한 영화가 <구미호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상업적으로 통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 쉽게 얘기해서 제가 ‘쇼부’치려는 결과를 바라기 보다는 아직 시작 단계니까 이제 이 작품을 발판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네버 포에버>를 선택한 이유도 내가 영어로 대사를 할 수 있고, 더 넓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네버 포에버>까지는 완전 다른 영화로 새로운 프로필을 만들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사실 뉴욕은 어학연수 경험도 있고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낯설음은 없었지만 상대배우와의 호흡과 영어연기에 어떤 감정을 넣어서 자유자제로 응용하느냐가 제일 걱정됐는데 아는 분 소개로 니콜 키드먼 화술코치를 만나 준비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 : 다른 배우들이 한방에 몰아가려는 걸 디딤돌 식으로 차근차근 쌓으려는 그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하: 일단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야 돼요.(웃음)그런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빈센트 앤 코라는 시계가 가짜로 판명됐잖아요. 그것도 5년 계획해서 한 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선택한 이 일은 제 몸과 마음이 결정한 거잖아요. 이것도 다 사업이고, 비즈니스기 때문에 일단 주도면밀하게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면 롱런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중요한 거는 롱런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걸 절대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마련해서 인지도를 얻으면 그 다음부턴 제가 하고 싶은 작품 할 수 있는 거고, 그거에 대한 위험감은 없으니까 나중에 진짜 내 마음대로 한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면서 TV도 하고 여러 장로를 넘나들면서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 조금 더 신중하자! 조금더...

이: 그렇다면 다르게 질문을 해보죠, 롱런할 수 있는 준비시간에 자신이 잊혀지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으신가요?
하 : 그 불안감은 물론 있어요. 하루하루 정말 그 불안감은 진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그런 고통이죠. 정말 잠이 오지 않는 고통, 그런 것도 엄습해 오는데 그럴수록 정공법으로 가야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지금까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연극을 하고 그렇게 해 왔는데 순식간에 얼씨구나, 해서 팔짝 뛰어버리면 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운거…….그런 것 같아요.물론 철저한 계획아래 했던 건 100%아니죠. 돌이켜 보면 상황이 그렇게 된 것도 있고. 처음에 이 영화 먼저 선택하고 나서 얼마간 연기되는 바람에 그 사이에 뭐 하나 할까? 하는 순간에 <시간>이 들어왔고 <구미호 가족>중반부터 감정 잡고 있는데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더라...하면서 이어진 거죠. 순간순간 그런 운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 : 제가 <시간>을 먼저 보고 <구미호 가족>을 봐서 그런가, 이 영화의 아들역할을 너무 잘하셔서 전작에서 보여준 멋진 남성미가 너무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머리는 일자로 자르고, 칠 부바지 입고......
하 : 다리 짧아 보이는 옷 입이죠? 바지가 작아서 항상 먹어요. 안으로. 하하 망가지더라도 또 다른 인물이잖아요. 제가 선택한 거고. 개인적으로 조니뎁을 좋아해요. 그의 작품선택을 특히나요.


이 : 아, 예전 기사에 <유령신부>느낌이 나서 선택했다는 걸 봤어요. 그런 컬트적인 요소가 이번 영화에 많이 묻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하 : 영화를 안본 상황이라 아직 잘 모르겠지만 찍을 때 느낌들, 특히 박시연씨하고, 박준규선배간의 탱고 장면은 그런 느낌이 많이 나지 않나요? 의상도 그렇고. 저 같은 경우는 <구미호가족>의 출발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부터 시작했거든요. 면도 자국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 같은 거. 처음 감독님하고 만나서 얘기했던 것도 그거예요. 감독님도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하고 이 영화는 약간 이럴 것이다. 그런 느낌이이나. 하고 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선 코드가 비슷하다고 할까요? 역시나 작업이 너무 재미있었구요, 제가 보기엔 시나리오 상에 아들 역할 자체가 약간 비어있다고 생각해서 디테일한 뭔가를 잡는다기 보다는 그 부분에 온기를 조금 넣고 싶었어요. 어리버리한 단순무식이라기 보다는 목표의식이 있으니까 다른 거 말고 그것(인간이 되는 것)만 집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로지 간에 대한 마니아적인 모습이죠.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오로지 인간이 되기 위한 열정! 그거 하나 때문에 생활이 그렇게 일자가 되는 거고. 옷도 안 갈아입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은 화려하게 갈아입는데. 영화초반 첫 뮤지컬에서 머리 올린 거 말고는 그 머리 그대로고.(웃음)

이 : 그 복장 그대로 군산 시내 돌아다녔다는 소문은 들었어요.(웃음) 사실 하정우씨 개인적으로는 무척 살인적인 나날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때마침 베니스 영화제 초청받고 귀국하자마자 인터뷰 하나 못하고 바로 내려가고. 또 영화 배경인 텐트안의 온도가 사막과 맞먹어서 고생하고.
하 : 그래서 쉴 때는 계속 포커만 쳤어요. 아버지 하고. 준규 형이랑, 매니져랑. 근데 실력이 비슷비슷한 거예요. 나중엔 제가 정식으로 하자고 해서 인터넷으로 칩을 샀어요.

이: 화투도 아니고 포커를요? 시작은 누가 하신 건데요?
하: 시작은 일단 아버지가..(웃음)주현선생님이 “뭐 심심한데 게임이나 하자“그러셔서 나중에 우현 선배님이랑 형사역할 맡은 철민이 형, 겨서 판 커지고. 근데 전 안 잃었어요.

이: 선배들 돈인데 가져갈 수 있나요?
하: 가져가요. 그건 딱 얘기하고 시작했거든요. 따서 나눠주고 자시고 하지말자, 술사는 것도 없다. 그렇게. 처음에 포커 하다가 담배피고 싶으면 나가서 한 대 피고 들어오고 다들 그랬는데 아버지가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다 있는 자리에서 도박하는 자리하고, 술자리는 나이 불문하고 담배 편하게 펴! 그런 분위기가 잡히니까 촬영 없을 때도 항상 대기실에 가 있고. 제가 칩 주인이니까 놓고 하다가 누구 오세요, 하면 오셔서 하다가 아버지 단독신이면 “잠깐만 있어”하고 끝내고 오시고. 그래서 영화 PD님 하고 감독님이 절 되게 좋아하셨어요. 배우들이 어디 안가고 세팅하는데 시간 오래 걸려도 잘 넘어가고. 저 개인적으로도 아버지랑 친해지니까 연기하기 편하구요. 끝나고 나서도 정말 가족같이 지내게 됐어요.

이: <구미호 가족>과 별개로 개인적인 연기론이 궁금한데요. 2세 배우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데뷔 초부터, 그러니깐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왜 연기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사가 하나도 안 나와 있어서 연기에 올 인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랄까? 그 부분이 궁금해요.
하 : 거기에 대한 기사가 안 나온 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도 모르니까요. 처음 시작한 거는 정말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는 건 그냥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성향정도?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거예요. 원동력이라 함은 그냥 A형적인 성격. 같이 연기한 친구 중에 ‘네가 어떤 고민과 불안해하는 그 부분이 바로 삶에 대한 힘이고 원동력이다’라고 말해준 동기가 있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인거는 연극이라는 게 저한테 이렇게 정공법으로 갈 수 있게끔 가르쳐줬다는 거죠. 그때 만났던 선배들이 저한테 참 많은 영향을 끼쳤던 거 같아요.

이: 사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 여자 친구를 만들려는 이유가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란 요지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정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쉽게 이런 말을 꺼내긴 힘든데. 하는 생각.
하: 진짜 겉멋 들었을 때는 예전에 주변사람들이 ‘연기자가 안됐으면 뭐가 됐을 것 같니?’ 라고 물어보면 ‘난 죽었을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세게 얘기했어요. 근데 그건 너무 교만한 생각이더라구요. 순간, 진짜 그런 말들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연기를 위해서 나의 어떤 인간적인 부분까지 다 포기해 나가면 굉장히 어리석은 거라는 거죠. 어차피 내 삶에서 직업이 주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가족과 삶, 결혼 같은 기본적인 게 주가 되어서 나의 사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더 많이 신경 쓰고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생각. 그런 것들을 담아나가야 연기도 설득력 있고, 나이에 맞게 표현력이 진실해 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생각 제대로 박혔다’는 표현이 어떤걸 두고 하는 말인지 느끼게 해주는 대답이네요. 그렇다면 요즘 들어 받는 스포트라이트와 기대주,뭐 이런 표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 : 너무 기분 좋죠. <용서 받지 못한 자> 끝나고 나서 충무로의 유망주! 막 이랬는데,<시간>을 보신 분들이 충무로의 최고의 유망주, 라고 ‘최고’를 붙여 주셨더라고요?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고, 아무튼 흥미롭죠.

이: 앞으로 <구미호 가족>을 보실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
하: 재미있게 보세요, 이건 좀 그렇고. 즐기는 거죠. 영화를.

2006년 9월 26일 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2006년 9월 26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