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그것도 ‘공인’을)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랄 것도 없다. 단 한 가지 “그 사람 실제로 보니까 어떻든?”이 한마디로 그 사람의 평가는 시작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언론과 그 언론을 어떻게 다루라고 가르치는 소속사와 또 대중들의 심리로 점철된 가면을 몇 겹씩이나 쓰고 있을지도 모를) 모습과 일치하는지가 가장 궁금한 게 바로 관객이자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이미 스타가 된 배우들 혹은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들을 공인으로서의 배우로 다룰 것인지, 인터뷰 때 보여준 평범함을 부각시켜 인간으로 내비칠지를 고민하는 건 되려 행복한 고민이다. 물론 그런 고민이 필요 없을 만큼 실제로 만나서 실망한 사람들도 있고, 기대하지도 않은 즐거움을 동반한 인터뷰로 내내 가슴 설레며 글을 쓰게 만드는 인터뷰이(interviwee)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기 ‘어떤날’이란 듀엣을 결성해 만든 음악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내보이더니 훌쩍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가 “11살부터 항상 옆에 있어서 그냥 치기 시작했다”는 클래식 기타를 전공 삼아 전세계에서 모인 기타 신동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화라는 장르에 ‘가수’가 아닌 ‘음악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영화를 한층 빛내는 음악만을 골라 탄생시키는 황금의 손을 가진 한 기타리스트가 있다.
인터뷰가 잡혔을 당시만 하더라도 앞서 말한 직업적 원론에 잠시 갈등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 왔던 이병우 VS 실제 만날 이병우’의 저울질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깨달았다. 뭔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만족하는 곡을 작곡해 왔던 그가 영화 음악을 맡는다고 해서 전혀 다른 곡을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연주로 이미 다 표현된다는 사실을 그의 연주만 들어도 이미 알고 있었어야 했다.
‘음악이 있는 마을’을 뜻하는 독일어 ‘무직도르프’(‘뮤직’이 아니다. 독일어기 때문에 ‘무직’이라고 읽어야 한다고)란 음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병우는 피아노를 소재로 한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음악 감독을 맡아 영화에선 이례적으로 기획단계부터 전 부분을 아우르는 작업을 끝내고 <괴물>OST후반작업에 한창이었다. 그와 나눈 영화 이야기, 기타이야기, 음악이야기를 가감 없이 올려본다.
요즘 콘서트 준비하랴, <호로비츠를 위하여>끝내고 바로 <괴물>들어가시고 많이 바쁘시죠? 작년에 이어 영화음악을 많이 맡고 있으신데 영화음악을 맡는 나름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제가 연주를 해도 주 종목은 기타라서 그 외에 시간이 많을 때 영화를 맡게 된 거거든요. 그런 작업이 한두 개 알려지다 보니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주위에서 추천도 해주시고. 사실 영화작업을 ‘좀’ 해야 되겠다 생각했던 건 올해부터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그렇게 많이 안 했거든요.
근데, 작년만 하더라도 4편이나 하셨어요. <왕의 남자>부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또 두 개 있었는데 뭐더라, 아 맞다.<분홍신>, <연애의 목적>이렇게.
4편이나 되요?(웃음) 아…그 전년도엔 하나도 안 했어요. 원래 2004년도에 원래 <왕의 남자>를 하기로 했었는데 영화가 1년이 미뤄진 거거든요. 배우가 누락되는 바람에. <스캔들> 이후에 한 작품이 <연애의 목적>이었고. <내 생애..>도 가장 막바지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래서 갑자기 영화음악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거죠.(웃음)그러다가 올해 많이 들어왔고. 시나리오 읽어보고 시간이 되면 하죠.
영화음악이 기존의 활동(가수, 기타리스트)과 다른 점으로 “감독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이라고 했는데 권형진 감독께서는 어떤 말들을 하셨나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글쎄요. 권감독이 저하고 유치원을 같이 다녔어요.(웃음) 그런 것 때문이라도 음악영화라는 자체가 다른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제작비로나 다른 것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밀어붙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권형진 감독이 굉장히 까다로워요. 겉으로는 ‘허허허~’ 그러는데,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에요. 어떤 게 가슴에 와 닿을 때까지 일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음악을 다룬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는 건 특히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무대인사에 온 피아니스트 김정원씨가 “한국영화최초의 클래식 음악을 다룬 영화다”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소개할 정도라서…
그렇죠. 어떻게 나오는지 해보고 싶었고, 해봤기 때문에 어떤 게 좀 부족했고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지죠. 음악 영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거라는걸 새삼스럽게 알았고, 아무래도 제작단계부터 음악에 대한 콘티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준비 되야 하는 게 많았죠. 권형진 감독하고는 그런 인연도 있고 해서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해보려고 했는데 사실 그런 거에 비해서 난관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를 섭외하는 것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었죠. 일단 영화가 음악을 제쳐놓고라도 그 내용을 슬프게 눈물 나게 연출하느냐 는 연출의 힘이에요. 김정원은 빈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만나가지고 “너 한번 안 해볼래?” 그래서 한 거고.(웃음) 근데 전 어제 기자 시사 때 못 봤어요. 그 전까진 질리게 봤지만.
신의재군과 김정원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마냥 배우로만 보는 것과는 음악 선배로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정원씨의 독일어 내레이션은 연기를 안 해 보셨는데도 극중 설정하고 맞물려 정말 실감 나더라구요.
저는 좀 걱정되는 게 뭐냐 면 영화마케팅 상으로 의재군이 피아노로 재능도 많고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는 ‘신동이다. 천재다’ 그러는 건 영화 내에서의 얘기지, 지금은 그렇게 해주기에는 아이에게 위험한 게 있어서 걱정이 돼요. 아이의 그런 점이 마케팅적인 부분으로 희생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에요. 하지만 분명한 건 너무 재능이 있다는 거죠. 정원이는 제가 유학간 곳에 이미 어린 나이에 입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저는 늦게 들어간 사람이고. 수업도 같이 듣고 그랬어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봐왔죠. 정원이를.
하라니깐 흔쾌히 하던가요?
“형만 믿고 하는 거예요.”그런 말을 하긴 했죠. 선뜻하긴 힘들었을 텐데.(웃음)
기자시사회에서 박수가 나오는 경우는 드문데 영화 끝나고 나서 박수가 나오더라구요. 연주하는 장면위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게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흡사 연주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 정말이요? 어쨌거나 정원이가 합류하게 돼서 너무 반가웠고, 고마웠어요. 그리고 제작 단계부터 무직도르프(musikdorf) 아티스트(신이경, 브라이언 슐츠)가 합류해서 너무 재미있는 작업이었죠.
유학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음악을 하는데 굳이 차이를 안 둔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지만 90년대의 이병우와 2000년대의 이병우는 확 다른 느낌이다. 90년대에는 대중적인 가요활동을 하셨음에도 클래식한 느낌(음반에도 비발디 같은 노래를 편곡도 하고 ) 이라면 2000년대는(악기를 더 공부하고 나선) 좀더 대중적으로 다가오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 영화음악을 만들고 있으니까 영화에서 요구하는 그런 부분을 맞추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내가 만든 앨범에서는 내 스타일을 하면 되는 거고 영화음악은 영화에 가장 맞는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에서 음악이 화면을 앞질러서 가는 것도 안 좋은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음악이 계속 나오잖아요. 특히 피아노 소리가. 처음에는 피아노 음악으로 많이 가려고 했는데 안에 리얼리티가 피아노니깐 영화를 감싸주는 전체가 또 피아노 일수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감정에 충실한 음악들이 뭔가 생각하고 아이의 감성을 표현해야 하니깐 전체 분위기를 축축하게 만들면 안됐어요. 맞추다 보니까 그런 느낌을 받으신 것 같아요.저는 개인적으로 거기 나오는 주제음악을 아주 좋아해요.
그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쓰신 악기가 있으신가요?
영화음악 만들 때 주로 기타 가지고 작곡을 하구요, 거기서 나오는 경민이 <엄마>라는 곡 이 주제곡이예요. 그 곡은 영화 시작 하기 전에 만들어졌죠. 먼저 만들어 달라고 해서. 다들 그 곡을 좋아했어요. 이번에는 아이의 감성을 담기 위해 어떤 영감을 목적으로 뭘 보거나 참조하지 않고 그냥 써졌어요. 사실 영화음악이란 게 현장 필름이 좀 오고 그걸 보면서 많이 작업하는데 이번엔 아무래도 모든 음악적 콘티가 먼저 나왔어야 돼서 경민이가 치는 곡 선택들이 다 정해진 후에 영화가 진행됐죠. 그래서 앞에 말한 신이경씨나 브라이언의 자문을 많이 얻었죠. 그 분들이야 말로 피아니스트니까.(웃음)
극 중 경민이가 자연을 소재로 작곡한 노래들이 있어요. ‘이건, 시냇물, 나뭇잎, 코끼리’ 그게 굉장히 귀에 남더라.
그건 신이경씨께서 작곡하신 거예요. 직접 연주하셨고. 너무 예쁘죠. OST에 담기에는 그 형태를 표현했기 때문에 작곡자로서 신이경씨가 내세우길 부끄러워하세요. 비중이나 유희적인 음악이라 부끄러워하시는 듯해요.
OST작업에 있어선 굉장히 빠르게 다음 작업을 잡아 버리시는 것 같다. 1996년에 <세 친구> 이후에 2004년만 제외하곤 계속 영화관련 일을 해 오셨어요. <호로비츠…>끝나고서는 벌써 <괴물>까지 작업 중이신 것 보니. 본인 스타일 이신가요?
아니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데 언제까지 해야 된다고 하니깐 거기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보이는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저는 미리미리 빨리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굉장히 느려요. 워낙 일 처리가 늦기 때문에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 답답할걸요.
일전에 영화 작업을 한 돈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 들어서 아무래도 스케줄을 바로 바로 잡아버리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웃음) 예술가 마인드와 CEO의 입장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그런 부분을 무시 할 순 없죠. 그게 꼭 영화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아닌 것 같구요, 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해야 되는 일들이 있어요. 그게 꼭 제가 다른 사업하시는 분들하고 다른 게 비젼 제시를 못해요. 저는 흐르는 대로 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실 영화음악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나 회사에서는 저희 보다 더 많이 하실걸요? 제가 만약에 영화음악을 해야 되겠다 하면 더 할 수도 있겠죠. 일단 상황이 되면 하겠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그래서 영화음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주어지면 잘 해 보려고 하는 거지 이게 제가 생각해서 진행하고 그런 건 아니 예요.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감독님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마냥 좋았다고 했는데 수많은 악기 중에서 기타에 끌린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기타는 11살부터 쳤었어요. 그리고 중 2때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죠. 이유 없이 저한텐 기타가 있었구요, 좋았죠. 기타를 강요 받지도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급 때문에 이거에(기타)에 질려버릴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제가 목말라서 했기 때문에 좀 느리게 성장했어도 항상 음악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부모님께서 레슨 보내고 그랬으면 그게 도리어 역효과였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 의외로 기타 친다고 했을 때 반대를 안하셨나봐요. 보통 기타 친다고 하면 집안의 반대가 필수도 들어가잖아요.
걱정하셨죠. 근데 다른걸 잘하는 게 없으니까. 너 좋은 거나 해라 그러신 것 같아요.(웃음)
저희 편집장님이 예전에 음악을 했었는데 감독님 팬이셔서 이 인터뷰가 잡혔을 때 꼭 전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어요. 악보를 쉽게 구할 수 없는 시절에 이병우씨 악보를 어렵게 구해서 막 연습하고 그랬었다고.
기타가 특별한 악기 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애정이 있는데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만둔 사람들이 다 기타를 쳤으면 저는 아마 굉장히 불우한 삶을 살고 있을 거예요. 그나마 다들 공부 때문에 그만 뒀기 때문에 저는 공부가 약하니까 계속 하고 있는 거죠.
흔히들 하는 표현 중에 한국의 누구누구! 이런 표현을 쓰듯이 역으로 외국의 이병우는 누굴까 생각해 봤거든요? 진짜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미국의 펫 메스니가 생각되더라고요. 몽환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서 그런 가 굳이 단어를 나눠 표현해 보자면 감독님은 ‘지니어스’(genius: 다재다능한 천재)한 반면, 펫 매스니는 ‘프로디지’(Prodigy:비범한 천재) 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일단 저는 어릴 때 펫 메스니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20대에 너무 좋아했던 뮤지션이예요. 그사람의 열정에 너무 감탄하고 있고. 그런데 요즘에는 잘 안 들어요. 너무 좋아했었던 시기는 오프 램프(Off ramp) 그 시기에 제일 좋아했어요. 완전 광 팬이었죠. 팬의 한 사람으로서 두 단어의 차이는 많이 모르겠지만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에요. 20대 제 가슴에 있는 뮤지션이죠. 근데 어느 분이 펫 메스니에게 <마리 이야기>OST를 줬다는 거예요. 팬의 입장에서 그 앨범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너무 영광이었어요. 아무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면만 좋아도 그건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이상이 다르듯이.요즘에 많이 듣지 못해 아쉽지만.
<호로비츠…>기자 시사가 있기 하루 전 <짝패>의 시사가 있었다. <짝패>의 OST는 달파란 (강기영),방준석씨가 하는 ‘봉숭아 프레젠트’ 에서 맡아 진행했다. 엄밀히 말하면 90년대 초 활동할 때의 바로 밑 후배인데 영화 음악계에선 양대 산맥처럼 독보적인 활동을 선보이는 셈이다. 어떤 느낌인지?
솔직히 얘기해서 그 분들을 잘 몰라요. 제가 여기서 음악을 한 건 어릴 때고 그리고 바로 유학을 갔었기 때문에 그 뒤에 누가 누구구나 하는 정도죠. 윤상이나 그런 친구들이죠.
일전에 <단적비연수>로 대종상 음악상을 받고 <천군>의 영화음악을 맡으신 황상준 음악 감독하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터뷰 할때도 느꼈듯이 영화음악 작업이란 게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배우처럼 개런티가 올라가거나 하지 않는단 거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음악 작업은 해외에 비해서 가장 열악하고 시간이 촉박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음악 감독으로 산다는 건 분명 힘들 일이 틀림없는데 그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솔직히 얘기해서 제가 다른 나라에서 해보질 않아서 비교자체가 안 되는 것 같구요. 시간을 짧게 주면 안 해야죠.(웃음) 사실 매번 촉박하긴 한데 편집이 끝날 때까지 계속 영상에 대한 것 때문에 편집이 밀리고 개봉은 잡혀 있고, 그 사이에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할 순 있다고 봐요.
저는 주제음악을 만드는 것에 가장 신경을 써요. 그 주제를 가지고 계속 베리에이션(variation-변주곡) 되게 하는 게 제가 하는 스타일이고. 그런데 힘든 게 뭐냐면 나중에 감독님하고 얘기를 할땐 음악 들어가는 장면만 따로 보거든요. 계속 그 주제를 쓰니까 감독님 입장에서는 다른걸 원할 때도 많죠. 제 경험으로는 화면에는 맞는데 계속 다른걸 해 놓으면 나중에 풀(full)로 볼 때 뭐가 뭔지 전혀 안 남더라구요. 가장 맞는 주제를 만들고 그 후에는 다시 베리에이션 하고, 같이 작업한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시간이 될 때까지 여러 가지 해보는 스타일이죠.
아까 얘기가 나오셨지만 부모님이 특히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사실 <호로비츠..>의 경우도 인생의 멘토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음악을 하면서 가장 영향을 받고 자신의 음악세계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 궁금해요.
아유..저는 부모님들이 가능하면 제가 하는 거를 해주시는 분들이라서 너무 행복했어요. 또 한가지는 살아오면서 혼자 가졌던 시간들에서 모든 거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영화를 하면서도 많이 배우고, 하나하나 다 영향이 있죠. 너무 많아서 몇 명을 나열할 수가 없죠.
문화산업이 거대해 지면서 점차 영화 산업이 커지고 전문적이 되면서 영화음악만을 전문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생겼다. 아무래도 <스캔들>에서 <왕의 남자>까지 영화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감독님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는 것 같다. 영화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일단 영화 음악을 하려면 두루두루 많이 알아야 해요. 컴퓨터로 하는 작업들 모두하고 또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까지. 일단 ‘영화음악만을 하겠다’ 라기 보다는 모든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접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일 때는 바로 뭘 해야 하고….’ 그런게 되야 겠죠. 어물쩡 하는 시간이 있으면 많이 스트레스 받으니까.
예를 들어서 오케스트라 악기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될 테고 악기를 잘 쓸 수 있는 게 아무래도 중요하겠죠. 음, 너무 막연한가.(웃음) 컴퓨터 미디 쪽도 알아야 하고 사운드 프로세싱도 알아야 되고 믹싱도 관심 있어야 후반작업 때 도움이 많이 되죠.
영화음악은 OST에서는 음악만 들려주지만 전체 사운드랑 맞아야 되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 나는 높은 선율을 썼는데 거기서 여자가 소리를 높게 지르고 있어서 부딪히면 안되잖아요. 거기서 어우러진 음악을 항상 생각해야 된다는 거죠. 말이 되나?
비전공자인 제가 들어도 이해되게 콕 찍어 주셨으니,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음악가로서의 이병우를 집중 조명 못해 본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이제 사무실도 알았겠다 조만간 다시 습격(?) 하겠습니다.
조만간 사무실 이전을 하거든요. 그때 꼭 놀러 오세요.
오래 전부터 알아온 옆집 오빠 같던 이병우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구하자 사뭇 진지해진 태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건 흡사 여태껏 감미로운 연주를 들려주다가 하나하나 코드를 잡아주는 동아리 선배 같은 모습이었다. 가느다란 기타줄을 고르고 섬세하게 터치하듯 정성을 들여 말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그리고 기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이해시키는지 어쩌면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진지하게 매 순간 진실한 눈으로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저 순간에도 끊임없이 기타를 잡고 연주를 하는 게 가능한 거라고. 내 식대로의 결론에 도달하자 19살 즈음에 처음 들었던 그의 따듯한 기타소리가 되살아나 오랫동안 마음을 덥혀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추억과 함께.
취재_2006년 5월 19일 금요일 | 이희승 기자
사진_2006년 5월 19일 금요일 | 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