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명함’이란 소리가 있다. ‘정재영’은 어느 순간 얼굴이 명함인 유명 배우가 됐다. 사실, 그 ‘어느 순간’이라는 게 단기간에 이루어진 게 아님을 우린 알고 있지만 말이다. 스크린에 잘 어울리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그는 영화에서 이름도 아닌 이름인 ‘뭐시기’로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게 고작 ‘얼굴’이다. 그 얼굴은 본명 정재영 앞에 붙는 ‘스타’라는 타이틀과 맞바꾼 ‘배우’로서의 정재영의 명예이자 자존심이다.
흥행의 단맛도 봤으면 이젠 슬슬 세련된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됐는데, 뭐가 그리 아쉬운지 정재영은 ‘만택’이란 이름표를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자랑스레 떡하니 붙이고 사랑 찾아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갔다 왔다. 그래서일까?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는 어딘지 모르게 만택이의 그 ‘촌티’가 아직까지 흘렀다. 이런 오만방자한 생각을 머금고 있는 본 기자에게 정재형은 이날, 범상치 않은 기운을 펼쳐 보이며 정곡을 찌르는 가시를 숨긴 채 투박한 어투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2005년 가장 눈부신 활동을 한 배우라고 닭살스런 뻐꾸기를 날리기에 앞서, 정재영은 올 한해 참으로 치열하게 연기 했고 지금도 그 치열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재영: 요즘 기자 분들은 ‘아이리버’ 이런 것 대부분 쓰던데. 녹음도 잘되고...
최경희: 제가 기계치여서 이것 밖에는 사용을 못해요;;
최경희: (살짝 삐쳐서) 그건 그렇고, 건강은 어떠세요?
정재영: (부은 얼굴을 감싸면서) 살 빼야 하는데 잘 안 빠져 가지고 걱정이다. <나의 결혼원정기>(이하 ‘원정기’) 때문에 살을 많이 찌웠다가 빼고 있는 와중인데, 술을 하도 먹으니 이게 도통 빠질 생각을 안 한다. 왜 이리 술 먹는 건수가 연일 생기는지.. (흐하흐하)
최경희: <나의 결혼 원정기>를 부산영화제 때 미리 본 분들도 많다. 주위 반응이 어떤가?
정재영: 모르죠~ (흐하하) 분위기가 나쁘진 않다. 부산에선 보신 기자, 평론가 분들께서 좋게 보시고 좋게 말해주는데,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는 두고 봐야겠다.
최경희: <..원정기>에서 연기한 ‘만택’이는 어떤 인물인가?
정재영: 한마디로 촌스러운 인간이다. 어쩌면 일반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공감 못할 수도 있는 그런 남자다. 직업상으론 그럴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처한 환경이나 직업에서 오는 애환들은 도시인들 입장에선 ‘어떻게 저럴 수 있나?’라고 생각되는 인물이다. 숙맥인데다가 답답한 성격이지, 그렇다고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고 더더군다나 여자를 사겨 본적도 없고. 38살에 몽정을 할 정도이니 말 다한 거 아니냐.(크하하)
최경희: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본인 스스로 만택이에게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정재영: 여자를 많이 안 사귄 게 아니라, ‘못’ 사겨 봤고 그리고 실제로 결혼도 했다는 점에선 좀 비슷 하려나? 옛날엔 좀 보수적인 성격이었다. 그런 면에서 쬐끔 비슷하다고 인정한다. 근데 내가 느끼는 공감은 보통의 남자들이 느끼는 비슷한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택이 캐릭터만 보자면 사회생활하기 힘든 인간이다(크하하).
최경희: <웰컴 투 동막골>의 성공 이후, 유한 이미지보다 세고 강한 이미지의 영화를 선택할 줄 알았다.
정재영: <..동막골>이 개봉하지 전에 <..원정기>는 다 찍은 작품이다. 그런 거는 사실, 다른 분들이 판단해 주시는 거지, 내 스스로 유한 이미지로 캐릭터를 안착시키고 연착륙 시키는 건 없다. 한마디로 난 ‘작품 따라 간다.’ 근대 작품이 크든지 작든지 간에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리고 <..원정기> 큰 영화다! (크하하하)
최경희: 평소 들어는 봤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생소한 나라다. 거기서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정재영: 일정 아주 빡빡하게 해가지고(관계자를 째려보며). 스텝들 쉬지도 못하면서 영화 찍었다. 어차피 해외촬영은 일정이 늘어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일정 빡빡하고 날씨가 더워서 힘들기도 했지만 스텝들과 함께 무진장 즐겁게 찍었다.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깐 만날 보는데서 찍는 거보다는 조금 더 설레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최경희: 소문에는 작품 들어가기에 앞서 캐릭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다고 들었다. 그런 준비 과정으로 인해, 주변에서 말하길, 징그럽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된 건가?
정재영: (연기 잘한다는) 소문 내가 낸 거야~ 이렇게 하라고 해서 얘기를 한 건데, 남이 들으면 욕한다. 무슨 준비를 해, 안 한다(크크).
정재영: 만택이를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건, 재미와 진심이다. 이 두 가지를 다 표현해 내려고 감독님과 의논도 많이 했다. 이게 만택이로 분한 나의 목표이자 감독의 목표이기도 했다.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너무 무겁지 않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가볍지 않게 연기하려고 애 좀 썼다.
그 선을 잘 지키면서 캐릭터에 담긴 ‘진심’과 캐릭터 자체에서 오는 무거움을 희화화해 ‘재미’를 주는 게 목표였고 그게 잘 드러나는가에 대해서는 관객 분들이 판단하는 거다. ‘목표는 좋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할 말 없지만(허허). 만택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재미와 그 속에 녹아 있는 슬픔을 잘 가져갈라 고 노력했다.
최경희: 정재영이 요 근래 내놓은 작품 중 상대역이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다(호호). ‘수애’와의 연기호흡은 어떠했나?
정재영: 수애씨, 참 정상적이죠. <가족>에서는 대게 쎈 캐릭터로 나왔다. 남자답고. <..원정기>에서도 약간은 거친 면이 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로는 굉장히 여자 같다.(하하) 물론 수애, 여자 맞지. 말도 거의 안하고 진짜 현모양처 스타일이다.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연기 면에 있어서는 일단 거짓으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 (연기)멋도 안내고. 상대방의 느낌과 극의 흐름을 중요시 여겨서 나하고는 무척 잘 맞았다.
최경희: 미리 나온 영화평들을 살펴봤더니 사회적인 알레고리가 만만치 않게 극 안에 녹아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 이끌려서 캐스팅 제안을 수락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한 코믹멜로 영화가 아니라서.
정재영: 단순 코미디나 코믹멜로였어도 선택했을 거다(하하). <아는 여자>도 코믹에 멜로가 가미된 작품이었다.
최경희: <아는 여자>는 단순 코믹멜로라고 하기에는 매우 독특한 영화기도 했다.
정재영: 맞다. 예쁜 멜로는 아니었다. <..원정기>도 마찬가지다. 사회성, 시사성이 짙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라, 사실 그런 것 잘 모르기도 하고. 결국엔 사랑 얘기인데, 농촌총각들이 사랑을 찾아 가는 거다. 단지 세련된 도시인들의 사랑을 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속에 진솔함과 진심이 담겨 있는, 절실함이 담겨 있는 코미디, 이런 걸 ‘휴먼코미디’라고 해야 어울리겠다. 이런 점이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던 거다. 농촌총각의 현실, 탈북자 등과 같은 소재는 초석에 불과할 뿐이다. 실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에도 이런 문제(농촌총각의 결혼문제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잘 몰랐다.
최경희: 그렇다면 개봉이 얼마 안 남은 이때, 배우로서 우려되거나 걱정되는 점은 뭔가?
정재영: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게 영화로서 만들어질 경우 설득력이 있을까를 처음엔 걱정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거는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너무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은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어떤 분들은 농촌총각이 우즈베키스탄으로 결혼하기 위해 간다는 영화의 기본 시놉시스만 듣고, 이거 농촌총각들을 비하하는 얘기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들을 갖고 계신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대게는 100프로 농촌총각이 아니다. 실제로 농촌총각들에겐 결혼문제는 대단히 절실한 문제다.
정재영: 오히려 보통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게 허구로 보일 수도 있고 과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현실을 몸소 체험하는 분들이 만약에 봤을 때는 진짜 웃지 못하는 거다. 나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최경희: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런 문제들이 영화의 소재로 쓰인 만큼 연기할 때도 그런 부분에 신경이 쓰였을 듯하다.
정재영: 신경 안 썼다(크하하하). 내가 그걸 왜 신경 써? 그건 보는 사람들에 따라서 다른 거다. <..동막골>이 800만 관객을 모았다고 해서 그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이 같은 기분에 젖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원정기>는 재미와 진심, 이 두 가지를 만족 시키는 쪽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농촌총각 문제를 알고 있거나 지금 겪고 있는 분들이 본다면 훨씬 더 공감 하실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 보더라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웃고 즐기면서 보더라도 ‘저런 게 있구나!’ 당사자들 보다 조금 밖에 못 알고 있지만 그냥 웃음 속에서 그런 문제에 편안하게 부딪혀 보는 접근법을 발휘하는 거다. <..동막골>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영화 속의 남한군과 북한군의 설정을 잘못 해석해서 영화의 주제를 오인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듯이 <..원정기>의 농촌총각의 현실을 너무 영화 속에서 크게 의식하는 관객들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영화가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을 찾아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이 영화가 하려는 거지 다른 데에 중점을 둔 영화가 아니다. 그거는 영화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뿐이다. 너무 장황하게 얘기했나? (크하하)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최경희: 말을 듣고 보니 영화가 진짜로 기대된다.
정재영: 그냥 부담 없이 영화 보라는 뜻이야(킥킥)
최경희: <..동막골>,<박수칠 때 떠나라>가 연속 흥행에 성공해,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얻어냈다. 그런데 당신은 인디나 독립 쪽에 가까운 마스크의 소유자다.
정재영: (토라진 듯) 얼굴이..
최경희: 그런 뜻이 아니라(하하), 상업 영화를 찍으면서도 왠지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는 듯한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정재영: 그거는 누구다 밟는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서, ‘경구’ 형도 마찬가지다. <박하사탕>, <오아시스>가 흥행이 터졌으면 모를까, 작품성은 인정받았는데 흥행에선 크게 성공을 못하니깐 대중이 배우에게 갖는 그런 막연한 느낌. <공공의 적>이 흥행에 성공하고 <실미도>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니 갑자기 티켓파워 있는 배우로 이미지가 변했듯. 영화에 따라 그때그때 드는 느낌인 것 같다. 뭐 나는 ‘대중성’이 없었으니깐! 흥~
최경희: 왜 갑자기 겸손한 모습을(호호).. 얼마나 인기 좋은데.
정재영: 나 같은 경우, <..동막골>이 너무 흥행이 잘돼 덕 본 케이스다. 만약에 그 영화가 흥행이 안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실, 내가 생각할 부분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느냐, 세 마리 토끼를 잡느냐, 한 마리도 토끼밖에 못 잡냐 아니면, 다 못 잡냐, 이런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배우는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것보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매진하면 나머지 결과는 굴곡이야 있겠지만 (배우로서) 오래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재영: 나에게 대중성이 있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싹없어진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이 극복해야 될 문제일 뿐이다. 잠깐 반짝 할 때만 유행처럼 배우생활을 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가) 흥행이 안 돼도 위기고 흥행이 너무 잘 돼도 위기다. 모든 현상의 양면성을 생각해 볼 때, 좋다고 해서 좋은 생각만 할 수 없는 거다. 나? 지금은 좋을 때다.
최경희: 신인감독과의 작업이 두드러진다.
정재영: 두드러진 게 아니라 나, 신인감독하고 밖에 안 한다(캬캬). 장진 감독님, 강우석 감독님하고 작품 한 것 빼고는... (허허) 나도 유명한 감독님하고 영화 찍고 싶다. 하고는 싶은데 그 유명하신 감독님들의 스케줄은 유명 배우하고 미리 다 약조가 돼 있어가지고(킥킥).. 5년, 10년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 와중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받아 보면, 아무래도 1년 안에 들어가는 작품 중, 기성감독과 신인감독의 작품 비율이 8:2이기에 당연히 나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8:2다. 그것 중에 맘에 들고 하고 싶은 작품들이 눈에 띄면, 이상하게도 신인감독의 작품이 대다수였고 또 그게 잘 됐다.
최경희: 역시나 <..원정기>의 황병국 감독도 이번 영화가 첫 작품이다. 그와의 영화 작업은 어떠했나?
정재영: 영화라는 게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목소리다. 시나리오도 감독님이 직접 쓰신 거고, 얘기의 정서를 누구보다도 감독님이 잘 알고 있다. 배우는 그걸 대변해주는 거고. 쪼금 플러스알파라면 표면적인 정서를 인물이 들어가 연기하면서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고 정도의 역할을 해주는 게 배우다.
일단 그 작품의 정서가 최우선돼야 한다. 그 정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감독님이었고 그런 생각의 소통에 있어서 나와는 잘 맞았다. 도움도 많이 받고. 연기하는 것도 자꾸 따라가는 것 같다.
사실 후진 작품에서 좋은 연기 안 나오고, 좋은 작품에서 나쁜 연기 안 나온다고 본다.
최경희: 의미심장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연기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완전히 자신을 비우고 연기에 임하는 편인가?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 내에서 연기의 폭을 확장해 나가는 편인가?
정재영: 자세히 보면 다 똑같다(하하).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목소리와 쓰고 있는 근육과 자기감정이 있을 때 나오는 표정과 눈빛은 아무리 역할이 틀려지더라도 변할 수 없는 거다. 그걸 극복하고 연기변신을 완벽하게 하려면 새로운 영화에 들어갈 때마다 성형수술하면 된다. 머릿결도 바꾸고 생김새도 바꿔야지만 완벽한 연기변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다. 물론,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두세 작품하면 못해. 왜? 몸이 망신창이가 되잖아.
또 몸 망가지는 걸 떠나서, 대단하게 알려진 사람이, 연기변신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더 이상 할 게 없을 때 그렇게 해야 하는 거고, 유명하지도 않은 놈(자신을 지칭하는 듯)이 그렇게 하면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지. 바로 ‘모야! 쟤?’한다니깐. 나도 그런 부분 때문에 고민 많이 했다. 지금은 내 안에서 그냥 하는 거다. 마음 같아서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을 때도 간혹 있다^^;
최경희: 흠... 연기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마땅히 거기에 대해서 말을 못하겠다. 정재영이란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안게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다. ‘독불이’라는 캐릭터 이름에서부터 ‘마초’적인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그런데 지금은 순박한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다. 어쨌든 연기변신에 성공한 것 아니냐?
정재영: 나도 그런 마초적인 연기를 <피도 눈물도 없이> 때 처음 해본 거다. 그 전에는 주로 연극과 공연을 통해 코미디를 해왔다. 그런데 그 영화 뒤에 <실미도>, <귀여워> 같은 작품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 친구는 그런 느낌의 배우인가보다’로 생각한 거다. 그 때 내가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 그러잖아요. ‘독불이’ 이미지에 내가 잘 맞았으니깐 그에 걸맞은 시나리오가 그 당시 태반으로 들어왔다. 그런 분위기에선 갑자기 코믹한 캐릭터가 나한테 들어오진 않는다. 그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아는 여자>를 찍은 거다.
정재영: 워낙 작품을 나하고 많이 했고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주변 분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를 제외하고는 내가 코미디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는 여자>를 했던 거고. 단지, 영화를 찍으면서 걱정을 했던 거는 주변 사람들이 ‘저 외모를 가지고 멜로를 하나?’ 이런 게 걱정이 됐다(허허). 다들 멜로를 빙자한 장진식의 코미디겠지라고 생각들 많이 했을 거다. 그 영화 이후로 나에게 들어오는 영화 장르가 다양해졌다.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크하하)
최경희: 이젠 인간 ‘정재영’을 다들 궁금해 한다. 그와 반대로 아직도 배우 ‘정재영’을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면서 징그럽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당신을 평한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과정에 대해 얘기 해주면 좋겠다.
정재영: 많이들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데 별것 없다(하하).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하고 닥치는 대로 한다. 단지 캐릭터나 영화를 만듦에 있어 좋은 작품인가 좋은 연기냐를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똑같이 고민은 하되, 그 안에 있어서는 누가 좀 더 그럴싸하게 생각하고 리얼리티하게 연기하고 그 리얼리티 안에서 디테일을 누가 더 많이 찾느냐의 싸움이라 생각한다.
한 장면에 10가지의 진실과 진심이 있다면 그걸 찾기 위해 누가 더 많이 혹은, 더 빨리 생각하고 노력하는 가에 따라 배우의 연기력은 달라진다. 영화 현장에 끝까지 참여도 해보고 토론하고 이렇게 저렇게 찍다보면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몸에 배는 거다. 결국 누가 많이 찾느냐의 문제다.
최경희: 정재영의 연기를 평할 때 많은 이들이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연극에서 다져진 연기력’ 이 표현은 좀 어폐가 있다. 영화와 연극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재영: 막연하게들 나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한다. ‘연극에서 다져진 연기력’, 이런 평은 사실, 내 연극 보지도 않아 놓고 그냥 말하는 거라고 본다.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는 다르지만 연기에 접근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막연하게들 나에 대해 저런 평을 하는 것 같다. 메카니즘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정재영: 보여줄 것 다 보여줬는데. 신선함도 없고~ 낯섦에서 오늘 독특함도 없고~ 아이고 이제는 뭐로 버텨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캬하하).
최경희: 아직 ‘사극’이 남아 있다.
정재영: 맞다. 내가 사극 장르를 아직 해보질 못했다. 그런데 그건 장르적인 문제고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나 사극 분장하면 무진장 잘 어울린다. 다들 조선시대에서 지금 방금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최경희: 당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이름만큼은 매번 너무 신선하다(하하). 만택이, 독불이, 뭐시기, 동치성, 꾸러기 등등...
정재영: 이름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내가 지나가는데 ‘까치 지나간다’라는 소리 듣는 것보단 낫다. 앞으론 세련된 이름의 배역이 들어오겠지. 아니 안 들어오려나(히히). 실은 다음 영화 캐릭터 이름도 촌스러움과 특이함에선 결코 만만치 않다.
최경희: 마지막으로 무비스트 회원들에게 <나의 결혼원정기>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정재영: 쌈마이 영화는 아니고 그렇다고 굉장히 오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아니다. 목표는 오직 그거였다.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뭔가 씁쓸하게 만드는 그러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이런 원대한 꿈을 안고 찍었는데. 결과는 관객 분들이 관심이 있으면 직접 보고 ‘이렇다 저렇다’라고 코멘트 남겨주시라.
안 보기에는 쪼끔 아까운 작품이다. 두 번 다시는 이 소재로 영화 못 찍는다. 다음에 베트남 가서 찍어 만들기도 애매하고 말이다(하하). 한마디로 ‘볼만은 하다’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