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돌아온 조디 포스터 알현차 간만에 출타해 접한 영화 <플라이트 플랜>. 한 마디로 말하자면............“역시 누님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고군분투하는 조디 포스터의 활약이 두드러진 원 맨 시스템의 영화라 볼 수 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지고, 두 명도 아닌 한 명이 원톱으로 나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곤궁한 시츄에이션의 영화라면, 당근 배우의 몫이 상당할 수밖에 없음은 다들 아는 바,
비행기 안을 이리 뛰댕기고 저리 뛰댕기며 용맹무쌍 모성애를 발휘함과 동시에 함량미달인 시나리오를 극복하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고공비행스런 스릴러를 엮어내는 조디 포스터의 존재감은 <플라이트 플랜>에서 단연 발군이다.
맛이 간 거 아니냐는 미친 여자 취급까지 받아가며 미친 듯이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제 몸을 던지는, 단단한 의지로 보이 이를 압도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패닉룸’의 그 모습과 다를 바 없으며, 현실 속 두 아이의 엄마 조디 포스터와도 포개진다. 나쁜 놈들 대신 기저귀와 집안일로 싸움하는 그 평범한 삶이 만족스럽다는 누님의 이야기에 함 귀 기울여보자..
Q: <플라이트 플랜>은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얘길 다루고 있다.
이젠 익숙하다 (웃음)
Q: <패닉룸>의 상황과 같아서?
(웃음) 이런 작품에선 텍스트가 정말 중요하다. 대사마다 다른 톤과 리듬으로 변화를 줘야한다. 빅벤과 같은 명소가 등장하는 것도, 멋진 세트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제한된 공간에서 대사로만 연기해야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도 리얼타임으로 진행된다. 좋은 작품이지만, 그만큼 큰 도전이기도 했다
Q: 그래서 그런지 예고편이 스릴 넘치더라...
예고편도 흥미진진하지만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다. 예고편을 보면 단순한 액션 영화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액션도 들어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 감동적인 영화다.
비행기 설계 전문 엔지니어인 카일 프랫은 건물에서 추락사한 남편 데이빗의 장례식을 위해 베를린에서 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남편의 관을 비행기에 싣고서...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옆 좌석에 앉아있던 딸이 없어진 거다.
비행기 안을 여기저기 찾아봐도 딸의 행방이 묘연하자, 당황한 카일은 승무원들에게 기내 수색을 부탁한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실종될 리는 만무할 터인지라 승무원들과 기장은 카일의 정신 상태를 의심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딸 줄리아가 승객 명단에 들어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탑승권 역시 사라지고 없다.
남편 데이빗의 시신이 안치됐던 베를린의 병원 영안실에 연락을 취한 기장은, 딸 줄리아도 데이빗과 함께 건물에서 추락해 죽었다는 놀라는 사실을 전해준다. 그때부터 카일은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고 비행기의 보안관인 카슨의 보호 감시 하에 있게 된다. 카일은 자신이 정말 남편과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착란 증세를 일으킨 건지 혼란에 빠진다...
Q: 말하자면 자식 잃은 부모의 악몽을 그린 셈인가?
그렇다. 그보다 더한 악몽은 없을 거다. 난 내 자식을 잃어버린 적은 없지만 파리의 지하철에서 조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다행히 걘 영리해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날 기다렸고, 덕분에 우린 쉽게 만났다. 그때 나이가 11,12살쯤 됐을 거다.
한번은 레고 랜드에서 아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날 놓친 적이 있었다. 난 그앨 볼 수 있었지만 그 애는 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섭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 애의 모습이 선하다. 3살쯤 됐을 땐데, 자신도 그때의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우리 형제는 네 명이다. 엄마는 복잡한 장소에 갈 땐 꼭 헤어졌을 경우에 만날 장소를 지정해주곤 했다. 우린 늘 엄마를 잃어버렸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마음껏 돌아다니려고... 그러다 싫증이 나면 '만남의 장소'로 돌아오곤 했다. (웃음)
Q: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아이들 문제에 너무 과민한 것 같다. 안 그런가?
그렇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은 계속 악화되기만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딸을 본 기억조차 없다고 말하고, 점차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으로 믿게끔 된다. 주변 환경에 의해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본연의 자신을 되찾게 된 후 그녀는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로 다시 딸을 찾아 나서게 된다.
Q: 그렇게 의지력이 강한 여인 역을 맡은 소감은 어떤가?
좋았다. 촬영 말미에 베를린에서 찍은 도입부 부분만 빼고 나머지 부분은 쭉 연결해서 찍어서 그런지 몰입도 잘됐다.
Q: 그나저나 <패닉룸> 이후 얼마 만에 선택한 영화인가?
한 3년쯤 된 거 같다.
Q: 꽤 긴 기간인데, 일부러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멀리한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한 가지는 40대 이후 배우들을 위한 배역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그리고 난 너무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왔었다. 그래서 충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창의적인 삶을 살기가 힘들다. 기저귀 갈고, 집안일 하는 것 외에 뭔가에 도전해서 성취해보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자라나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들에게 3년마다 넉 달 정도씩은 풀타임으로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나머지는 함께 여행도 다니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겠노라고...
20대 땐 앞뒤 안보고 열정적으로 일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 하지만 난 현재에 만족한다. 인생에선 균형이 중요하다. 젊을 땐 뭔가에 열정적으로 몰입하기 쉽지만 나이가 먹으면 몰입의 대상이 한정되게 마련이다.
Q: 어떻게 <플라이트 플랜>은 기대에 부응할만한 작품이었나?
당연하다.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Q: 이유는?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비쥬얼에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완고하지 않고 편하게 사람을 대해준다. 늘 부인이 만든 음식을 촬영장에 싸왔고, 출연진과 스탭들을 찍어서 테입을 만들어 주곤 했다. 나중엔, 저 감독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Q: 보안관으로 등장한 피터 사스가는 어땠는가?
마음이 열려있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션 빈 역시 사람이 참 좋았다. 늘 조종실 안에 있는 조종사의 역을 맡았기 때문에 나왔다 들어 갔다를 반복했지만...
어떤 사람에겐 감독의 책무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난 묘하게도 연기할 때보단 메가폰을 잡을 때 더 편안하다
Q: 꽤나 흥미로운 답이다. 왜 그런가?
모든 선택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비전만 뚜렷하다면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면 된다. 감독의 생각과 뜻에 맞춰 연기를 하는 것 보단 그편이 내겐 훨씬 스트레스가 덜 하다.
Q: 그렇다면 메가폰을 계속 잡을 건가?
준비도 하고 있고 또 그럴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난 작품 준비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몇 년 전에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작품이 촬영 2주전에 제작 취소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Q: 혹시 < FLORA PLUMB > 아니었나?
맞다, 7년이 지났는데, 다시 제작 준비를 진행 중이다. 난 그 작품을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
Q: 미완의 프로젝트?
그렇다
Q: 아까 40대 이후 배우들을 위한 배역이 적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걱정되는가?
난 사실 큰 상관이 없다. 일하고 싶어 안달난 건 아니니까... 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나이에 제한받는 컨셉의 배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래도 난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Q: 당신은 주류에서 약간 벗어난 배우라는 느낌이 있다. 주관이 뚜렷하다고나 할까?
내 대부분의 출연작은 주류적인 영화였다. 처음엔 독립영화에 애정을 쏟았고, 그 관심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난 늘 주류에 속하는 배우였다. 그러나 그건 내 뜻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배우는 배역 안에서만 변신할 뿐이다. 누구나 메릴 스트립이 되길 원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개성이 있기 마련이다. 난 배우로서는 확실히 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Q: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어필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주류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난 배우로서 영화에 삶을 걸었다. 70여 일 간의 촬영으로 한 작품이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속엔 내 모든 게 담겨있다.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대변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무관심한 배우들도 있지만, 솔직히 난 그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
Q: 아역배우 시절 기억나는 점이 이것저것 있을 게다. 그 시절이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무척 행복했다. 촬영장에서 1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들이 참 재밌었다. 난 촬영장 분위기를 무엇보다 좋아한다. 그래서 출연 스케쥴이 없을 때도 촬영장에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오곤 한다. 안 나와도 되는데 왜 나왔냐고 다들 묻곤 하지만 그냥 그 분위기가 좋다. 함께 식사하며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것도 재밌고....
그 블루 칼라적인 느낌도 좋다. 영화 촬영은 사실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요하는 작업 아닌가? 영화 제작의 테크니컬한 면도 매력이 있고.
내가 먼저 권유하진 않겠다. 하지만 애들이 계속 간청하고, 영화에 대해 정말로 애정을 보인다면 먼저 연극 쪽에서 기량을 닦으라고 말할 거다. 적극적으로 말리진 않겠지만 중요한 변수는 아이들의 개성과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의 진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으려면 일단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건강해야할 것이다. 근데 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봐왔다
Q: 그럼 자녀들이 연기 활동에 관심을 표한 적은?
과학쪽에 관심이 많다. 큰 애는 특히 컴퓨터와 과학에 관심이 크다. 둘째 애는 어른들 앞에서 무척 수줍음을 탄다. 원래 수줍은 애는 아닌데 어른들이 시키는 일엔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다.
Q: 애들은 참 빨리 크는 것 같다
물론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다
Q: 태어나고 자란 캘리포니아에서 지금도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L.A.에서 살고 있다. 뉴욕에도 집이 있고... 사람들은 날 동부쪽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난 캘리포니아를 사랑한다. 다른 데서 살고 싶지 않다. 이곳에선 조깅 바지를 입고 사흘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로워서 좋다
Q: 동료 배우들과는 자주 어울리는 편인가?
그렇진 않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스탭쪽 사람들이 많다. 프러덕션 디자이너, 카메라 팀 등등.. 배우들과 어울리긴 쉽지 않다. 다들 늘 집을 비우니까! 배우들과 만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Q: 그나저나 직접 요리를 하는가?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한다. 애들이 너무 부산스러워서 요즘은 15분 만에 후딱 식사를 해치우지만 그래도 매일 요리는 한다. 빨리 애들이 자라서 파스타가 아닌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자료협조: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