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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뭔가 ‘있는’ 영화인지, ‘있어보이는’ 영화인지 헛갈려! | 2005년 3월 31일 목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달.콤.한. 인.생.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제목부터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왠지 모르게 ‘품격있는 있어보임’이 출렁거린다.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병헌이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를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면, 도입부터 썩 괜찮은 삶의 이치를 얻어가는 듯한 묘한 자족감이 슬며시 파고든다. 이병헌의 목소리와 ‘쏴아쏴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연두빛 나뭇잎들이 병치된 화면에는 이상한 슬픔기가 담겨있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예상과 함께 어둡고, 스산한 감정들이 괜시리 일렁인다.

그리고 다음 장면부터는 사실상 이 영화를 보기 전, 재빠르고 충실하게 쏟아져나온 타매체의 사전기사들 덕택에, 이미 과도하게 주입된 예의 그 ‘환상적인’ 비주얼, 말하자면 김지운 감독식 ‘품격있는 있어보임’의 비주얼들이 시야에 강렬하게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미 명쾌하게 해석된 비주얼 메타포들을 재차 확인하는 작업인지, 혹은 얼마든지 나만의 독법을 찾아낼 수 있는 작업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관람’의 태도에 끼어들면서, <달콤한 인생>을 보는 일은 ‘과도한 의식’과의 피곤한 싸움으로 고착된다.

‘한국 최초의 느와르 액션’을 표방한, 이에 김지운 감독은 ‘액션느와르풍의 피범벅러브스토리’로 소개한, <달콤한 인생>의 프레임 안에는 어쨌거나 ‘느와르적’인 코드들이 발현된다. 음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범죄, 거기에 깃든 인간의 어두운 열정, 음모, 비정함, 파멸 등의 무거운 분위기, 또는 강한 명암대비나 팜므 파탈의 등장 등 몇 가지 공통 분모를 지닌 필름 느와르. 전통적인 의미의 필름 느와르가 아니어도, ‘느와르’로 통칭되는 영화 속에는 그 특유의 ‘어두움’을 표현하는 양식화된 스타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당연히 느와르적인 스타일을 풍기는 비주얼이 구축돼 있고, 이는 전작 <장화, 홍련>을 통해 확연히 입증된 김지운의 미적 감각과 융합되며 더할 나위 없는 ‘뽀샤시’화면들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캐릭터들의 얼굴을 야누스처럼 가르는 그 확연한 명암 콘트라스트랄지,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과 상징적으로 맞물린 범상치 않은 공간감 등 눈과 머리를 복잡하게 자극하는 <달콤한 인생>의 ‘꽉찬’ 화면.

낡고 허름한 공간에서도, 세련된 감각이 번들거리는 이 영화의 ‘아트(art)’에 가까운 비주얼은 (머리로나 가슴으로나) 놓치고 있는 것들이 허다하더라도,‘품격있는 있어보임’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딱 떨어지는 선의 블랙수트’를 입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홀짝이는 등 그 외향이나 취향 모두 부르조아풍인 주인공 ‘선우(이병헌)’는 마치 깔끔한 음악과도 같이 움직이는 그의 ‘해결=폭력’과 조화되며, 그 자체가 미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한편으로, 선우가 ‘희수(신민아)’와 관련된 ‘보스(김영철)’의 명령을 어기면서 벌어지는 처절하고 끔찍한 피의 향연에선 고어(gore)적인 표현에서 유발되는 고도의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사실상, 그 설정이나 묘사가 일견 만화적인 ‘백사장(황정민)’, ‘명구(오달수)’, ‘태웅(김해곤)’ 등의 캐릭터나 러시아제 쉬테시킨, 스미스 앤 웨슨 38구경 리볼버 등 현실성 낮은 소도구, 선우가 그런 총기들을 구입하는 밀매 사무실의 판타스틱한 공간감은 이 영화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안심하며 그 비주얼을 소비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호에 따라 무시못할 매력으로 다가설 이 비주얼은 불운하게도, 김지운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장황한 의도와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결합되지 못한듯 하다. 「‘멋진 남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모티브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한 주인공의 분노, 진실을 알고 싶은 욕구, 기억에 대한 고통, 겉잡을 수 없는 파멸」을 그리면서, 「해결 방식이 폭력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은 과연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 상태에서 구원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극한으로 치닫은 인물들이 파멸되기 직전에 무엇을 느끼는지 전달하고 싶었다」는 김지운 감독.

그건 그야말로 감독의 생각일뿐, 화면밖의 관객들은 보스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선우가 희수와의 단 3일로 인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어떠한 감정적인 동화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며 선우가 보스에게 내뱉는 말은, 관객들이 김지운 감독에게 정말이지 묻고 싶은 궁금점이기도 하다.

혹자의 분석대로, 선우와 보스가 진정 사랑한 것은 ‘팜므 파탈’치곤 너무 귀여운 희수가 아니라 서로인 것인지, 그렇다면 선우가 죽은 뒤에 유키 구라모토의 간지러운 선율과 함께 보여지는 희수의 모습은 관객들을 혼란케 하는 트릭인지, 도무지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

잘나가던(?) 인간의 삶이 삐끗하며, 어그러지는 모습에서 ‘인생의 어둡고 쓴 맛’을 느낀다? 사실상 이런 이야기마저 어느 정도 식상한데, 사실상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해석이 가능한 이 영화의 ‘모호성’은 어쩌면 그 그릇에 비해 훨씬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겨냥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생성된다.

자주 클로즈업된 이병헌이 아무리 빼어난 표정연기를 선보인다해도, 왠지 뮤직비디오처럼 팬시화된 ‘비애감’으로 느껴지는건 왜일까. 이 영화의 ‘품격있는 있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손들어주기 싫은 건 왜일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분위기있게 장식한 선문답식 내레이션(스토리와 왠지 겉도는!)이 허영기있는 지식인을 보듯 불쾌해진다면, 필자의 너무 편견어린 감정일까.

14 )
dupy
저는 전반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많이 받아서. 아직도 못헤어나오는중   
2005-04-05 17:06
hwaci451
영화를 보는눈은 다 같은게 아닌듯 싶네요.. 저에게 있어 달콤한 인생은 너무도 슬프고도 멋진 영화였습니다. (이런영화는 돈주고 봐줘야죠..^^*)   
2005-04-05 10:12
ssregy99
기자님 말에 공감. 영화를 보고도 뭔가 개운치 않았는데 내 맘이 저거였군   
2005-04-04 16:58
blackb612
엔딩장면은 뭔가요? 선우가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창문앞에서 미소지으며 날리는 펀치..   
2005-04-03 16:00
adenia
비쥬얼..은 정말 좋던데요..전   
2005-04-02 23:18
ysj715
돈주고 보긴 아까운 영화.   
2005-04-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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