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열풍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테니스는 오래전부터 부르주아적 레저스포츠로써 명맥을 이어왔다. 부르주아라는 말에 반감을 사실분도 있겠지만, 하얗고 짧은 운동복을 입고 초록색 공을 팡팡 치는 모습에서 근접할 수 없는 삶의 여유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고로 운동이란, 고픈 배를 움켜잡고 무조건 운동장 몇 바퀴 뛰는 게 고작이라고 여겼던 필자의 남루한 삶의 그릇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테니스가 인기인 서구에서 만큼은 활기찬 인생 플러스, 로맨스도 가미된다는 상상이 나오나보다. 이기고 지는 거에 따라, 세계랭킹 숫자가 급변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도, 월담을 감행하면서까지 사랑을 엮으니 부럽기 그지없다.
‘워킹타이틀’표 로맨틱코미디(<러브액츄얼리><브리짓 존스의 일기>등 다수)만 오래도록 전문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윔블던>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깔끔해서 ‘보기’ 좋은데, 나름대로 ‘진심’도 배어나오니 “워킹타이틀” 브랜드 네임은 영화적 ‘신뢰’의 보증수표가 된다.
오랜 선수생활 끝에 얻은 힙업 된 엉덩이를 능력의 척도로 여기는 아줌마들 상대로 사교클럽에서 테니스 강사를 시작해야 하는 ‘피터’(폴 베티니)는 윔블던 대회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하려 한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랭킹 순위표의 하단부터 검색해야 빠른 검색이 되는 그에게, 인생역전하기식의 다부진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하는 대회는 아닐 것이다. 거기다 가족까지 그의 은퇴경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뿐더러, 공중분해 되기 일보직전이다. 초라한 은퇴를 목전에 두고 그의 앞에 나타난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는 대회 우승 트로피보다 값진 다시없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경계하는 피 말리는 대회에서 피터는 리지의 환심을 얻어서 그런지 아니면, 행운의 여신이 한물 간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관용을 베푸는 건지 몰라도 게임에서 승승장구한다. 유명선수에게만 화려하게 터지던 카메라 후레쉬는 은퇴를 앞둔 피터에게 향하고, 양손에 떡인 명예와 사랑을 어쩌면 한 큐에 해결할 것 같은 기대감에 이 남자, 오늘도 경기하랴 미래의 장인어른 눈 피해 담 넘으랴, 바쁘다.
“워킹타이틀”의 특징과 장점에 동시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윔블던>은 스토리의 진부함을 전형적인 영국남성과 미국여성을 등장시켜 극복해낸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 <윔블던>은 테크닉이 뛰어난 작품이다.
유명선수인 리지의 경기보다 피터의 한 고비한고비 넘기는 게임을 영화 전면에 배치한 것도 이런 테크닉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피터를 연기한 ‘폴 베타니’보다 리지로 분한 ‘커스틴 던스트’가 우리에게 더 인기 있는 해외스타이기에 그녀가 테니스하는 모습이 관객의 재미를 더 안겨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테크닉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윔블던>은 또한,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을 연출해 그 실력과 명성을 쌓은 ‘리차드 론크레인’ 감독이 사랑과 인생, 그 모든 것의 축소판 윔블던대회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재미의 리듬감이 톡톡 살아난다. 물론, <세븐> <패닉 룸>의 촬영감독이었던 ‘다리우스 콘지’가 관객의 감정마저 계산해 넣은 실감나는 테니스경기 장면이 이 ‘리듬감’의 주체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워킹타이틀”표 영화는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는 <윔블던>은 장기간 그 유효기간이 남아서 그런지, 여전히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