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리고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액자 바깥을 응시하는 소녀. 동그랗게 뜬 두 눈이 의미하는 것은 두려움이거나 갈망, 혹은 유혹이 아닐까.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매혹적인 소녀의 눈빛과 미소로 다양한 해석을 불러온 작품.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세밀한 고증을 통해 창작해낸 그리트라는 하녀와 베르메르의 사랑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책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피터 웨버 감독의 세밀한 연출의 힘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바로 9월 3일 개봉하는 미완의 로맨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풍광과 17세기 여인들의 의상,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감각적인 영상만큼이나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바로 홈페이지에만 들러도 느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음악은 이미 골든 글로브 최고 음악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으며, 화폭에서 튀어난 듯 재현된 영상과 함께 스토리 전반에 흐르며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공신이다. 홈페이지에 연일 쏟아지는 O.S.T에 대한 찬사 역시 예측되었던 일. 이렇게 관객들을 또 한번 열광시키는 감미로우면서도 신비한 멜로디 톤을 만들어낸 이는 프랑스 출신의 알렉산드르 디스플릿 감독이다.
15년 경력의 알렉산드르 디스플릿 감독은 TV나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음악도 50여편 이상을 작곡해온 베테랑 작곡가. 파리에서 태어나 6세부터 피아노, 트럼펫, 플롯 등을 마스터하며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에 영화음악부문으로 두 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9/11 테러를 기리기 위해, 전세계 열 한명의 감독이 모여 만든 단편영화 < September 11 >의 타이틀 곡을 맡기도 했다. 이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O.S.T를 통해 BAFTA(영국 아카데미 영화제)에도 노미네이트되며 다시 한번 그만의 감각적인 음색을 자랑하고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O.S.T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코어는 바로 그리트의 테마곡인 ‘Grief's Theme’. 베르메르를 향한 그녀의 숨겨진 진심과 흔들리는 마음이 현악기와 타악기의 어울림으로 긴장감있게 표현되고 있다.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함이 느껴지는 곡. 영화의 타이틀곡인 ‘Girl With a Pearl Earring’은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실로폰과 같은 맑은 소리를 통해 표현해내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통해 영감을 받은 작가, 그리고 그가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그림 그 너머의 사랑이야기는 다시 스크린을 통해 그 매혹의 영롱함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17세기의 네덜란드의 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화면과 그 여백을 채우며 흐르는 음악은 한 거장 화가의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이상의 기쁨을 준다. 영상과 음악이 만나 되살려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의 변함없는 신비로움과 그 O.S.T는 오랜만에 만나는 영화 음악다운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