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정말 그렇게 잔혹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사람마다 주관적이겠지만 개인적으론 어느 정도 ‘YES’다. 대부분의 슬래셔 무비처럼 찢어죽이거나 갈아죽여 시뻘건 피가 스크린에 퍽퍽 튀어대진 않아도, 한 사람, 한 사람 참으로 불쌍하게 죽는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 때문.
특히 MTV에서 선정한 ‘가장 빛나는 액션 장면’에 노미네이트됐던 고속도로 자동차 충돌신은 영화의 시작부터 얼얼한 맛을 뿌리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대형통나무를 빵빵하게 실은 트럭에서 통나무 하나가 굴러떨어지면서 발생되는 연쇄적인 자동차 충돌, 추돌 사건. 그 속에서 갖가지로 짜부러지고, 찔리고, 불타 죽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당하는 교통사고마냥 심장이 찌릿찌릿해진다.
<데스티네이션 2>는 제임스 웡에서 데이빗 R. 엘리스로 감독이 바뀌고, ‘클레어’ 역을 맡은 알리 라터를 제외하곤 배우들도 모두 교체됐지만, 기본 골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전편에서 수학여행 가기 직전, 자신이 탄 비행기가 폭발하는 악몽을 꾼 ‘알렉스(데본 사와)’같은 존재도 당연히 등장하고, 알렉스 때문에 잠시 천운(天運)의 생존자로 남았지만, 차라리 그때 죽을 걸 나중에 죽어 더 비참하게 된 주변 인물들도 비슷한 포맷으로 배치됐다.
단, 2편에서는 ‘죽음을 미리 볼 수 있는’ 주인공이 여자다. 친구들과 주말여행을 떠나던 ‘킴벌리(A.J 쿡)’가 앞서 말한 고속도로 연쇄 충돌 사고로,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는 환상을 보게 되는 것. 그녀는 자신의 환상과 엇비슷하게 진행된 실제 사고를 겪고 난뒤, 이래저래 그 사고가 <데스티네이션>에서 일어났던 비행기 사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들이 결국엔 모두 죽게 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살아보려고 동분서주하는 내용이 <데스티네이션2>의 줄거리.
전편의 러닝타임이 98분, 이 영화는 그보다도 8분이 단축된 깔끔한 러닝타임으로 구성됐다. 그야말로 ‘죽일 사람 죽이기 위해’ 빠른 스피드로 전개되지만, <데스티네이션>이 한편으로 보여줬던 미묘한 심리 공포로부턴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인다. 도대체 죽음의 시나리오를 행사하는 주체가 ‘악령이냐 뭐냐’ 심각하게 머리 굴리고 봤던 재미라든가, 잔혹한 맛은 떨어지지만 황당하게 죽는 인물들에 웬지 모르게 웃음이 피식 돌기도 했던 전편에 비하면 귀염성이 덜한 편.
하지만 내면적으로 파고드는 인상깊은 요소도 없지 않다. 그중 하나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깔고 있는 구조주의적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예정된 틀(운명)에 균열이 생긴 까닭에 이를 메우기 위해 생존자들이 모두 죽게 된다는 대사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참 섬뜩해지는 부분이다.
게다가 2편의 인물들은 죽음의 힌트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려 애쓰기에 운명과 의지가 격돌하며 빚어지는 긴장감이 상당하다. 그 결과 운명의 승리냐, 의지의 승리냐 궁금증을 가득 유발시키는데, 아무래도 개인적으론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이 약간 헛갈린다. 또, 죽음을 깜빡 속인 ‘킴벌리’가 이 영화에서 살아남는 설정도, 명확히 이해되기 힘든 부분.
어쨌든 2편은 1편에서 죽었던 사람들 덕택에 운좋게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어차피 곧 죽을 팔자였다는 아이러니한 연결 고리로 성립된다. 그럼 3편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내용으로 꾸며질까. 여러분들도 한번 상상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