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정우성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똥개>가 어제(5월 15일) 한 호텔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똥개>는 한 지방 소도시에서 경찰(김갑수)의 아들로 태어난 좀 덜떨어져보이는 룸펜청년 차철민(정우성)의 삶을 그린 휴먼코믹드라마. 멋지지도 영리하지도 않지만 차돌 같은 용기만은 살아있는 가슴 뜨끈한 진짜배기 청년이다.
무엇보다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수 어린―그러나 날이 선 눈빛, 외로운 뒷모습 같은 것들을 트레이드마크로 달고 다니던 정우성의 연기변신. 야심 제로의 백수총각 차철민을 연기하며 대한민국 대표미남은 사정없이 망가졌다. 생각해 보라. ‘추리닝(요새 한참 유행하는 트레이닝복 패션이 아니다)’을 걸치고 뒹굴거리며 코미디 프로에 낄낄대고, 김치를 담그고 빨래와 바느질을 하고, 계란후라이 반찬에 집착하는 정우성이라니. 꿈도 희망도, 더군다나 야심은 더더욱 없어 ‘똥개’로 불리며 아버지에게 구박당하는 남자, 그게 정우성이라니. 뭐 영화의 스틸 사진을 통해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미남은 부시시한 모습으로 방구들을 굴러도 미남이라는 사실을 새삼 통감하게 되긴 하지만, 가히 혁명적 변신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배우 정우성에게도, 그리고 그의 팬들에게도.
한편 정우성의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는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TV 드라마 <황금마차>에 출연했던 엄지원. 들리기로는 3차까지 진행된 오디션에서 맛깔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천연덕스런 연기를 선보여 스탭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어냈단다. 엄지원이 연기하는 정애는 중학교 중퇴에 가운데 손가락에 王자 문신이 조잡하게 새겨져있는 전형적인 날라리 아가씨. 그러나 알고 보면 속이 천리만리 깊은 그녀의 원대한 포부는 장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커피숍을 차리는 거란다. 어리숙해 보이는 철민의 좋은 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홀로 마음속에 사랑을 키워간다.
홍은철의 사회로 진행된 제작 발표회에서는 곽경택 감독과 정우성, 김갑수, 엄지원 세 주연배우, 그리고 제작사 대표가 자리한 가운데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똥개>에 대한 소개와 영화 장면들과 메이킹 필름이 함께 담겨있는 짤막한 동영상을 관람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감독이나 배우의 표정과 말투에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나온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치받는” 진국 청년의 활약상은 오는 7월 확인할 수 있다.
Q: 똥개는 어떤 영화인가?
곽경택 감독: ‘가족’이 담겨있는 영화다. 한솥밥 먹으며 부대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구> 때부터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기 더해 세상이 꼭 가진 거 많은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전달하고 싶었고. 사필귀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쁜 일 안하고 우직하게 살면 보답이 올 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 그리고 중소도시라 배경이 과거 같은 느낌을 주는데 요즘 이야기다.
Q: 제목이 독특하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민망하기도 하다. 제목을 지을 때 갈등은 없었는가?
곽경택 감독: 실은 겉장에 ‘똥개’라고 쓰여진 시나리오를 받고 나도 당황스러웠다. 제목을 바꾸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 이상은 없었다. 방송이건 영화건 요새 점점 솔직해지는 분위기이니 크게 문제는 안될 거라고 생각한다.
Q: 정우성의 엄청난 변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마치 못가진 자의 대변인 같은 역할인데.
정우성: 사실 불우한 환경이라는 점은 이제까지 내가 연기한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간 내가 보여준 캐릭터가 가족이 부재하는, 아니 가족이 있는지의 여부조차 알기 힘든 인물이었다면 <똥개>의 경우에는 틀리다. 아버지와의 진한 유대, 갈등 같은 것들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외에 말이 많다, 사투리를 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점 정도가 이제까지와의 차이가 아닐까.
Q: 수려한 외모와 경상도 사투리가 어째 좀 매치가 안될 것도 같은데, 영화 속 대사 한 마디 들려주길 부탁한다.
정우성: ......... 니 이름이 뭐고? (이 짧디 짧은 한 마디로 요청에 답한 정우성은 민망한 듯 물을 마신다)
Q: 김갑수는 정우성의 아버지 역인데. 실제보다 많은 나이로 나오는 게 억울하지 않은가?
김갑수: 물론 억울하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막상 촬영해보니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정우성: 촬영장에서 “내가 왜 니 아버지냐”며 하도 화를 내셔서... 근데 찍어놓은 거 보니 분장도 별로 안하셨는데 정말 아버지 같더라. (좌중 폭소). 앞으로도 영화에서 아버지와 함께 등장할 일이 있으면 꼭 선배님을 추천하겠다.
Q: 엄지원에게 묻는다. 정우성이라는 대스타와 함께 작업한 소감?
엄지원: <비트>를 보고 내 마음속의 우상이 되었던 배우와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무지 떨렸던 것도 사실. 그러나 영화 찍으면서부터는 정우성 선배님이라기보다는 영화 속의 철민이로 편하게 다가오고 있다.
Q: <똥개>에서 특별히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있다면?
곽경택 감독: 장비나 문법상의 새로운 시도는 없다. 스스로 자신을 가지고 있고 관객들도 좋아해줄 것 같은 장면은 라스트의 유치장 싸움씬. 오늘 정우성이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고 얼굴이 퉁퉁 부은 이유는 다 그 씬 때문이다. 기술로 싸우는 게 아니라 개싸움처럼 맨몸으로 부딛치는 느낌, 그런 질감이 의도했던 대로 잘 살아 만족스럽다.
Q: 영화 속에서 보면 정우성이 집안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장면이 있던데, 실제로도 그런 일 해봤나?
정우성: 실제로 할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설거지는 자주 한다. 바느질, 다림질도 잘 할 자신이 있고. 김치는 영화 속에서 담궈본 게 처음이라 무슨 맛이 나는 김치가 됐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Q: 접으면서 영화에 대해 한 마디씩.
곽경택 감독: 소위 웃긴 영화를 보고 박장대소 한 후에 허탈감이 밀려오는 일이 종종 있다. <똥개>는 그와는 좀 다른,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머금으며 볼 수 있는 영화다. 현재 70퍼센트 정도 작업이 끝난 상태. 기대해 달라.
정우성: 원래 결과에 대해 그렇게 기대를 가지는 편이 아니다. 늘 담담한 마음으로 하려고 하는데 이 영화만큼은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된다.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다.
김갑수: 이렇게 열심히 매달려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노력만큼이나 결과물도 좋다.
엄지원: (갑자기 영화 속의 정애가 된 듯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 영화 <똥개>, 억수로 재밌게 찍고 있습니다. 재밌게 봐주이소.
취재: 임지은
촬영: 이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