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열두 번째 용의자>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한국전쟁의 채 가시지 않은 전운이 뒤섞인 전쟁 직후, 남산 밑에 위치한 ‘오리엔타르’ 다방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다방에 모인 시인, 화가, 소설가 등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간밤에 발생한 유명 시인 ‘백두환’(남성진)의 살해 사건이 화제에 오른다. 얼마 후 담당 수사관(김상경)이 다방을 방문하고 그 안에 있던 열한 명의 용의자 중 범인을 특정하는 과정을 다룬다. 살인 추리극에 시대적 특수성을 상당 부분 담고 있어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과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이 포인트.
다방 마담을 연기한 박선영을 비롯해 허성태, 김동영, 정시순, 장원영, 김지훈, 남연우, 나도율, 김희상, 한지안, 동방우가 열한 명의 용의자로 참여했다.
데뷔작 다큐멘터리 <사요나라 안녕 짜이쪤>(2009)와 <무말랭이>(2014)로 선보였던 고유성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사건 담당 수사관 ‘김기채’역의 김상경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 시나리오였는데 그 점이 아주 흥미롭게 묘사됐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이어 “평소 선과 악의 이분적인 구분을 믿지 않는 편이다. ‘김기채’는 자신의 신념에 한 점 흔들림 없는, 입체적인 변모를 보이는 인물이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또 “집에서 쉼 없이 랩 하는 것처럼 떠들며 대사를 외웠다”고 많은 분량의 대사를 소화한 노하우를 덧붙였다.
오리엔타르 다방 주인 ‘노석현’역의 허성태는 “평소 한정된 공간에서 심리를 주고받는 영화를 좋아하기에 당연히 끌렸다. 두 번째 이유는 김동영이었다. 매우 좋아하는 동영이가 하자고 했다”라고 사연을 전했다.
비밀을 간직한 화가 ‘박인성’을 연기한 김동영은 “이전에 해보지 않은 절제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라 도전해보고 싶었다. 또 훌륭하신 선배분들이 함께한다기에 그 기운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명성 감독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점이 이후 벌어진 이념 대립과 혼탁한 사회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해당 시기를 영화로 꼭 다뤄보고 싶었다”고 영화 취지를 전했다.
이어 고 감독은 “시대극에 적은 예산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야 했기에 평소 좋아하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을 참고로 했고, 다방 이름 ‘오리엔타르’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특급 살인 사건>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 부천국제판트스틱 영화제 폐막작 <열두 번째 용의자>는 10월 10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이다.
● 한마디
단순 살인 사건으로 시작해 더러운 광기의 지배를 받았던 혼돈의 시대 고발로 무게를 옮기는데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추리극 안에 담은 시도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초중반 몰입도도 상당한 편. 주 무대인 오리엔타르 공간 디자인과 인물을 잡은 카메라 구도가 준수하다.
(오락성 6 작품성 6)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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