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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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문제적 작품 <살인마 잭의 집>과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 최다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다. 두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자.
◆ <살인마 잭의 집>
“영화를 둘러싼 논란 알지만, 나는 표현의 한계를 넘고 싶었다”고 입장을 밝힌 라스 폰 트리에. 본인도 인정한 문제적 작품!
▲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상영 20분 만에 퇴장 관객 속출! 정말 그 정도일까?
단언컨대 초반 20분 내에 박차고 나갈 정도의 잔인함과 폭력적 수위와 강도는 아니다. 센 표현을 기대했다면 예상 외로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초반 20분까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 살인마 ‘잭’(맷 딜런)의 집의 실체는?
연쇄살인마 잭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기술공이다. 땅을 산 후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지으려 한다. 건축 자재의 문제로 짓다 허물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데 이는 그의 살인 행각 진화 과정과도 얼추 비슷하다. 결말 즈음 타이틀인 ‘살인마 잭의 집’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는데...가히 전율이다.
▲ ‘교양 살인마’ 혹은 ‘신사’로 자칭하는 나르시시스트인 ‘잭’, 타고난 걸까?
청결 강박증을 지닌 잭은 우연한 계기로 살인에 눈을 뜨고 이후 살인을 계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청결 욕구를 지닌 덕에 ‘잭’은 살인 후 완벽하게 뒤처리하고 이는 완전한 증거 인멸로 이어진다. 살인 횟수가 증가하면서 그는 스스로 교양 살인마와 신사를 자청하고 살인을 예술 행위로 미화하는 등 나르시시스트 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동물 학대를 하던 소년은 여자와 아이, 남성으로 그 살인 대상을 넓혀간다. 급기야 희대의 학살자이자 독재자를 우상화하는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인다.
▲ 고해 욕구
영화는 안내자 '버지'(브루노 강쯔)와 '잭'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저승사자로 추정되는 ‘버지’에게 ‘잭’은 대화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이에 ‘버지’는 사람들은 '기이하고 난데없는 고해 욕구에 사로잡힌다'라고 답하며 ‘잭’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 가로등 밑에 선 그림자, 연쇄살인마는 왜 살인을 하나?
어떤 목소리에 이끌려 살인한다는 흔한 변명을 비웃으며 ‘잭’은 가로등 밑에 선 한 남자의 그림자 크기로 살인 욕구를 비유한다. 뭐 간단히 요약하자면 살인 직후 느낀 큰 쾌감은 점차 약해지고 그 자리를 고통이 채우며 고통은 점차 커진다는 것. 이를 없애는 방법은? 바로 살인이다.
▲ 라스 폰 트리에는 왜?
여성과 아이를 살인 대상으로 하는 것을 비롯해 적나라한 살인 묘사는 심히 불편을 넘어 보기 힘들 수 있는 수준인데, 이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수긍 혹은 납득하지 못한다면 영화는 또 하나의 폭력에 불과할 것이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겠지만, 연쇄살인마를 단지 자극적으로 활용 소비하지 않는 것은 명확하다.
● 한마디
라스 폰 트리에가 바라본 사이코패스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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