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있는 걸 굳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거짓말일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둘 사이에 의도치 않게 어떤 불편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아직까지 한 쪽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서로를 불편하고 괴롭게 만들지라도 덮어두지 말고 알려야하는 것일까? 거짓말은 나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이엔 비밀이 없이, 정직하고 솔직해야하므로?
짧은 생을 살아본 현재까지의 결과로,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말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있을 때엔 해롭지 않다. 그러므로 들키는 모든 거짓말은 나쁘다. 다만 하나의 거짓말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누군가를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또 누군가를 난처하게 하거나 절망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렇게 해서 거짓말이 발생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그것을 감춰두기 위한 부수적인 거짓말들이 연쇄적으로 필요해지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거짓말. 이것은 죄책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거짓말의 대상이 행여나 눈치채지 못하게 그것을 상쇄할 만한 정성과 마음 쏟기에 부지런할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은 그런 재주를 갖고 있지 않다.
제프(토비 맥과이어)가 이웃집 여자 라일라(로라 린니)의 급박한 외침에 -물론 라일라는 매번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제프의 출근길을 방해하는 불쾌한 여자이긴 하지만- 늘 그랬듯 억지 미소라도 지어보이며 발길을 멈춰 그녀의 얼토당토한 넋두리를 들어주었다면 라일라가 직장까지 따라와서 덮어두고 싶은 제프의 거짓말을 목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프는 자신의 불륜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말은 돌이킬수 없는 거대한 파국을 야기시켜 모두가 입을 다물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평온한 일상과 무난한 인간관계 등 겉으로는 완벽한 삶의 외형을 지키기 위해 가까스로 유지되는 제프의 삶은 언뜻 보기엔 잘 정돈된 그의 집 뒷마당처럼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공허하고 불안정한 그의 눈빛을 통해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우린 알 수 있다.
그의 삶이 꼬여버린데에는 확실히 스스로에게 잘못이 있다. 집착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 집착을 보이다 관계를 틀어지게 만들고, 중요한 일에 대해선 순간적으로 무시해버려 돌이킬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을 불러온다. 그렇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제프에게도 억울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는 와이프(엘리자베스 뱅크스)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고, 창녀와 이메일을 주고 받다 들킨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궁극적인 문제라면, 남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여자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여자가 하는 말을 남자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단지 제프의 잘못만이 아니다. 연애보다 몇 배 더 큰 권태의 파도가 치는 것이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TV 예능프로에서 남자 배우가 말하길, 아내와 나의 사이는 마치 남북 관계 같다고,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무도 모르는 나의 거짓말을 고백하지 않는 것으로 유지되는 평화와, 고백함으로 인해 상대를 괴롭게 만드는 것. 어떤 것을 선택 해야할까? 여전히 나는 의문이다. 들키지 않는 거짓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비밀을 지키고 싶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거짓말의 수명을 끝내버리는 것 못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눈 감을 때까지 그 거짓말을 기억함으로써 시시때때로 뜨끔하고 미안해하고 되려 의심하고 두고두고 찜찜해야할 것은 오롯이 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