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변주의 수사, 인물을 향해 느닷없이 다가가는 줌인, 이 영화 또한 형식면에서는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들은 마천루 대신 소소한 옛 도심의 자취가 남아 있는 서촌 동네를 여러 번 반복해서 지나간다. 꿈과 현실이 모호한 경계에서 그 모습 그대로의 길과 동네를 돌다보면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정서를 풍긴다. 해원이 엄마를 떠나보내고 홀로 걷는 길, 성준과 걷는 길, 그리고 낯선 남자와 걷는 길은 같은 길이 아니다. 유부남 성준이 책임감에 짓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 또한 다른 정서를 내포한다. 분명 자기 비하를 자조로 연결하던 신랄한 묘사는 전작과 그대로 반복되지만, 이상하게도 웃음보다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자기비하를 자조적 개그로 공중에 날려버리던 행간은 우울한 초상이 되었다. 그리고 해원이 일말의 변화를 암시하던 꿈에서 허망하게 깨어나면서 영화는 가능성 없이 침잠하는 삶에 갇힌 인물들을 가엽게 바라본다. 글쓰기란 결국 자신을 미화하는 과정이다. 자기비하와 자조의 글쓰기 또한 결국은 창작자를 미화한다는 논리를 대입하자면, 자조의 드라마 홍상수의 작품들 또한 고도의 미화 과정을 거친다. 이번 영화는 미화보다는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남자들은 여전히 ‘찌질’하고, 여자들은 성녀와 악녀를 오가며 질타와 동경을 한 몸에 받는다. 해원 역시 성준에게는 잠시 잠깐의 구원이 된다. 해원과의 본능적인 사랑과 감옥이자 보금자리인 가정,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다 가지려고 하는 남자의 본성과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서투른 여자는 격렬하게 충돌하면서도 손을 놓지 못 한다. 감독은 "인간의 갈등 중 가장 격렬한 갈등은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고, 제도권 안에서 한계를 갖는 남녀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격렬하면서도 물결치지 않는 현실에서 인물들은 쳇바퀴를 돌고 있다. 삶이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라던 대사처럼 영화는 변화와 희망의 기운을 닫아버린다. 우물같이 정체된 현재 속에 갇혀버리는 인물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성준의 뒷모습은 더 이상 조롱의 대상이 되지 못 한다. 반복되는 장소에서 비일상적인 연애를 일상적으로 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각자의 가장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에.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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