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여름 노아의 방주 학예회 공연장, 까마귀 소녀를 본 고아 소년은 한 눈에 반한다. 외롭고 상처받은 짐승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핸드폰 번호 대신 집 주소를 교환한 소년 소녀는 그로부터 일년간 애달픈 연애편지를 주고받는다. 연애편지라고 해봤자 부모님이 얼마나 답답한지, 위탁 가정 형들이 얼마나 고약한지를 경쟁하는 기록이지만 그럴수록 둘은 더 밀착되어 간다. 결국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고 떠난 지 나흘 만에 싱겁게 붙잡히면서 철없는 가출은 실패로 끝난다. 불장난이 되어버린 사랑의 도피 행각은 고아 소년 샘(자레드 길먼)이 위탁 가정으로부터 폐기되는 후폭풍을 몰고 온다. 샘과 수지(카라 헤이워드)는 두 번째 가출 작전을 감행하고, 이번에는 캠프 동지들까지 합세한다. 탈출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해도 문제, 실패해도 문제인 사랑스러운 탈출 작전은 갑작스런 폭풍우로 난관에 봉착한다.
할리우드 인디 프린스, 웨스 앤더슨의 일곱 번째 장편 <문라이즈 킹덤>은 열두 살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다.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린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은 평화로운 섬에 카오스를 가져온다. 아이들의 부모와 보호자격인 캠프 대장, 캠프 대원들, 경찰까지 대동된 구출 작전은 사랑의 도피라는 탈을 쓰고 두 이야기를 오간다. 소년 소녀가 풍기는 소꿉장난 같은 로맨스와 추격 작전을 벌이는 그 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에겐 문제아들의 가출처럼 보이는 도피는 열두 살 당사자들에게 운명이다. 책, 레코드, 캠핑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물건들만 잔뜩 챙겨온 수지와 야영과 은닉을 하기에 완벽한 캠핑을 구사하는 샘, 아직 금성과 화성으로 떠나지 않은 소년 소녀는 소울 메이트가 되어 서로의 다름도 사랑한다.
웨스 앤더슨 월드란 애초에 철학과 논리, 드라마투르기 시나리오 작법 따위가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다. 잔망스럽고 말도 안 되지만 끌리는 마성의 세계랄까.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의 영상 중 어느 화면을 정지시켜도 완전해지는 상하좌우 대칭의 회화를 구사한다. 회화적인 영화를 구성하는 캐릭터들도 도식을 완성하면서 묘한 유머를 풍긴다. 웨스 앤더슨이 사랑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박적일 정도로 정갈한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가련한 인물들은 버스터 키튼식 애처로운 코미디를 환기시킨다. <바틀 로켓>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로 이어지는 잔망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연대기는 한결 같이 초호화 블록버스터급 배우들을 대동하고 소심하고도 미시적인 세계를 그려버린다. 장난기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캐릭터와 대사, 시종일관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화면 구성까지. <문라이즈 킹덤>은 인류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 대동하는 온갖 거추장스러운 것을 배제한 사랑의 원형이자 씨앗을 심는다. 일찍이 가져보지 못한,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로맨스이자 (고약한)동화다. 이왕 말이 안 되게 시작한 글이니 마지막도 장난스러운 헌사로 맺는다. 영화계에서 사랑스러움을 겨루는 몽드 셀렉션이 있다면 그랑프리는 웨스 앤더슨이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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