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5일은 미국경제의 국치일이나 다름없다. ‘리먼 사태’로 불리는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미국거대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도미노현상이 일어났다. 최대 보험사 AIG가 공중 분해됐고,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연속으로 도산했다. 주식시장이 휘청거렸다. 집값도 폭락했다. 3천 만 명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 몰렸다. 리먼 광풍은 바이러스처럼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중산층이 몰락했다. 서민들의 퍽퍽한 삶은 말라비틀어진 빨래만큼 빡빡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태를 야기한 검은 손들은? 그들은 국민의 혈세를 거름삼아 살아남았다. <마진 콜>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24시간 전으로 시계를 돌린다. 그 때 그 시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픽션이라 치부하기엔 굉장히 리얼하다.
시작부터 살벌하다. 영화는 한 금융회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중에 리스크 관리팀장 에릭(스탠리 투치)이 있다. 갑작스러운 해고통지를 받아든 에릭은 떠나기 직전 부하직원 피터 설리반(재커리 퀀토)에게 USB를 넘긴다. “조심하게”라는 말과 함께. 괜한 충고가 아니다. 그날 밤 에릭이 남긴 파일을 분석하던 설리반은 자신의 금융회사가 ‘유독성 증권’(서브프라임모기지) 때문에 치명적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의 위급성은 이후 사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CEO 존 털드(제레미 아이언스)가 헬기를 타고 회사로 날아온다. 몇 시간 만에 긴급회의가 소집된다.
영화의 진풍경은 이제부터다.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직급에 따라 천지차이다. 손해 따윈 있을 수 없다고 큰소리치는 안하무인이 있고, 양심 앞에서 고민하는 인간이 있고,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될까 눈물 흘리는 인간이 있고, 방패막이로 책임을 뒤집어쓰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이 상황으로 인해 승진기회를 얻는 인간도 있다. 가장 냉혈한으로 그려진 인물은 회장 존 털트(Tuld)다. 리먼 브라더스의 실제 CEO였던 리처드 펄드(Fuld)를 연상케 하는 이 인물은 선택 앞에서 망설임이 없다. 회사가 보유한 파생상품이 곧 휴지조각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판매를 종용한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첫째가 되거나, 영리해지거나, 사기를 쳐야 한다”고 말하는 회장에게 윤리 의식 따윈 없다.
그에 비하면 팀장 로저스(케빈 스페이시)는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속지 말아야 할 건, 그렇게 보일 뿐 그야말로 속물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동료들을 잘라낼 땐 눈 하나 깜짝 않던 그가, 큰 돈 들여 키운 애완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이 인물의 이중성이 읽힌다. <마진 콜>은 금융권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담아내는데 능숙하다.
월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이 돈의 흐름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IMF 사태를 겪은 나라의 입장에서 ‘돈의 맛’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IMF 이후 더 큰 희생을 강요당한 건, 서민이다. 나라 곳간이 두둑해지고 대기업 부문 경쟁력은 강화됐지만 서민의 삶은 더 휘청거렸다. 결국 털리는 건, 없는 자의 주머니다. 어떻게 해야 주머니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회장이 말한 “첫째가 되거나, 영리해지거나, 사기를 쳐야 한다”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2013년 1월 3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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